# 254
254화 이타콰 (3)
사슬검 끝에서 화염 벼락 수십 개가 튀어나갔다.
슈슈슉-
화르륵!
화염 벼락들은 이타콰의 투명한 얼음 심장을 향해 날아갔다. 벼락들이 뿜어내는 열기 때문에 심장 표면에 작은 이슬 방울들이 맺히기 시작했다.
‘녹기 시작한다!’
역시 강렬한 화염은 단단한 얼음조차 녹인다.
“@#$$!”
화염 벼락들이 심장에 닿자마자 이타콰는 고통스럽다는 듯 울부짖었다.
그때 투명한 얼음 심장이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차가운 냉기가 심장으로부터 뿜어져 나왔다.
푸쉬쉬쉬-
꼭 드라이 아이스를 상온에 올려놓았을 때 뿜어져 나오는 냉기 같았다.
엄청난 한기에 멀리 떨어져 있는 대규의 몸조차 저절로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저것이 녀석이 지닌 최후의 스킬인가 보구나.’
최후의 방어.
저 스킬을 발동한 거로 보아 녀석은 이제 완전히 궁지에 몰린 것 같았다.
‘하지만 나도 지지 않는다.’
화르륵-
대규의 벼락검에서 악마의 화염이 불기둥을 이루며 하늘 위로 솟구쳤다.
“주샤콘!”
큰 소리로 주샤콘을 부르자 구르게스 만큼 크기가 줄어든 주샤콘이 대규를 향해 다가왔다.
대규는 마지막으로 주샤콘의 돌풍에 다시 한 번 불기둥을 이룬 악마의 화염을 담았다.
뜨거운 화염이 다시금 주샤콘의 돌풍 안으로 들어가자 냉기로 인해 크기가 줄어들었던 주샤콘의 불길 돌풍이 서서히 커지기 시작했다.
돌풍과 합쳐지면서 불기둥 화염은 더욱 하늘 위로 치솟았다. 그런데 돌풍 속의 화염이 은은한 푸른빛을 띠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플로우 상태에서 형성된 화염이라 그런 것 같았다.
‘화염 자체가 플로우 상태를 담고 있는 건가?’
이제 주샤콘은 냉기를 뿜고 있는 단단한 얼음 심장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콰콰쾅!
주샤콘의 불길 돌풍과 얼음 심장이 맞부딪히면서 엄청난 굉음이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심장에서 뿜어져 나오던 냉기는 제압됐고, 심장은 서서히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헉! 엄청나군.”
심장의 크기는 그리 크지 않았는데 막상 녹아내리니 엄청나게 흘러내렸다. 물웅덩이가 아니라 거의 호수 수준으로 녹아내리고 있었다.
벌판 바닥에 호수를 만들었지만, 심장은 아직도 녹아내리고 있었다.
‘무슨 강물을 다 끌어 올려서 만든 심장이냐?’
녹아내려서 형성된 벌판의 호수에는 한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규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완전히 심장을 녹여 버려야 한다.
다시 한 번 플로우 상태에서 화염 벼락들을 발사했다.
콰지직!
결국 심장은 흔적도 없이 녹아 버렸다.
곧 이타콰의 신체도 모두 녹아내렸고, 벌판에는 거대한 호수만이 형성돼 있었다. 그런데 호수 한가운데 뭔가가 둥둥 떠올라 있는 게 보였다.
그것은 이타콰의 얼음 심장을 축소시켜 놓은 것처럼 생긴 주먹만한 투명 얼음 구체였다.
대규는 그것을 손에 쥐어 보았다.
“아얏!”
너무 차가운 탓에 손이 얼음 구체에 쩍 들러붙어 버렸다.
대규는 급하게 사슬검날 끝으로 화염을 살짝 부른 뒤 손을 뗐다. 얼음 구체에 닿았던 손은 벌겋게 부어 있었다.
‘엄청난 냉기군. 이것이 보상인 얼음의 조각인가?’
그랬다.
하지만 대규가 아이템의 설명창을 미처 확인하기도 전에 얼음의 조각은 허공으로 튀어올라 사라졌다. 대규의 부대로 전송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주샤콘을 해치우고 얻은 보상 돌풍의 조각도 바로 주둔지로 전송됐었다.
‘이거 내가 두 마리의 외계인을 쓰러뜨렸으니 보상들도 내가 독차지하게 되는 건가?’
대규는 기절한 아폴론의 모습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그렇겠지. 사실 아폴론 녀석은 이번 전투에서 제대로 한 것도 없잖아.’
솔직히 아폴론이 한 거라곤 잘난 척하면서 먼저 달려들었다가 주샤콘에게 꼴보기 좋게 당한 것 말고는 없었다.
일단 영웅들이 기다리고 있는 절벽으로 돌아가야 했다.
대규는 옵티뭄을 몰고 절벽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절벽에 도착해 옵티뭄에서 내리자마자 거대해졌던 몸의 크기를 줄였다.
그러자 땅바닥에 서리가 한 바가지 후두둑 떨어져 내려 언덕을 이뤘다. 이타콰와의 전투에서 맞은 서리벼락들이었다.
그런데 몹시 놀라운 광경이 눈앞에 보였다.
바로 절벽 전체가 눈과 서리로 잔뜩 뒤덮여 있었다. 꼭 극지방의 설산처럼 말이다.
그리고 영웅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하얗게 질려 있었고 입술은 보랏빛을 띠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추위에 벌벌 떨고 있었다.
하지만 영웅들은 곧 돌아온 대규를 바라보고 절벽이 떠나가라 함성을 질렀다.
대규가 승리해서 돌아온 걸 눈치챈 것이다.
“와아아아-!”
“대규 님 만세!”
심지어 대규 부대의 영웅들뿐만 아니라 아폴론 부대의 영웅들도 환호성을 질렀다.
어쨌든 적을 쓰러뜨리고 귀환했으니 말이다.
영웅들의 눈썹엔 서리와 얼음조각들이 얼어붙어 있었다.
대규는 영웅들의 모습과 절벽을 뒤덮고 있는 하얀 눈들을 바라보며 지영에게 물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제가 없는 사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죠?”
그러자 지영이 대규에게 대답했다.
“방금 전까지 이곳 절벽에 어마어마한 한기가 몰아쳤습니다. 대규님의 명령대로 화염 계열 스킬이 있는 영웅들을 뽑아 최대한 방어했는데도 한기를 다 몰아내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래도 어찌어찌 버텨 냈지만…….”
대규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분명히 이 눈보라는 이타콰가 만들어 낸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분명 대규와 이타콰가 전투를 벌였던 곳은 이곳 절벽으로부터 적어도 100km는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녀석이 빙결 스킬이 이 정도로까지 영향을 미친단 말인가?’
확실히 외계인 보스 몬스터는 격이 달랐다.
대규는 아폴론 부대의 대장군인 정령을 바라보며 물었다.
“전투는 끝났습니다. 아폴론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아직 깨어나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서서히 정신이 돌아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호흡도 안정됐구요.”
“그럼…….”
대규는 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 부대는 주둔지로 돌아갈 거요. 아폴론이 깨어나면 그대도 영웅들을 통솔해 그대들의 주둔지로 돌아가도록 하시오. 어쨌든 내 부대 영웅들과 힘을 합쳐 이곳에서 이타콰의 한기를 방어해 낸 건 잘했소.”
“아, 아닙니다.”
아폴론 부대 대장군은 대규의 칭찬에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나저나 아폴론이 아직도 안 깨어났다는 말이 좀 충격적이었다.
주샤콘이 빨아들인 기력의 양이 엄청났던 것 같았다.
말을 마친 대규는 영웅들에게 이동 결계를 쳤다.
곧 투명한 결계가 323명의 영웅을 감쌌고, 그들은 순식간에 주둔지로 순간 이동 됐다.
주둔지로 돌아온 대규는 내심 제우스가 그전처럼 자신의 주둔지 지휘사령부 천막 안에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의 애완 독수리가 지휘사령부 천막 앞에서 승리한 자신과 영웅들을 반겨 줄 거로 생각했다.
아테나의 부대에 소속돼 있던 영웅 시절부터 항상 전쟁에서 승리할 때마다 제우스는 주둔지를 찾아왔었다.
하지만 대규의 예상과 달리 제우스의 독수리는 없었다.
천막 안으로 들어갔지만 텅 비어 있었다.
어떻게 된 걸까?
좀 이상했다.
하지만 대규는 자신 부대의 영웅들에게 전쟁의 보상을 나눠 주기로 했다. 일단은 그것부터 해야 했다.
대규는 영웅들과 함께 지휘사령부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대규가 천막 안으로 들어가자 그 뒤를 이어 지영과 라이펑, 그리고 다른 영웅들이 차례로 천막 안으로 들어섰다.
천막 내부가 매우 넓어서 그런지 영웅들 323명이 다 들어와도 공간은 널찍했다.
우선 대규는 전공에 대한 보상을 영웅들에게 내리기 시작했다.
영웅들이 전투에서 각자의 적을 쓰러뜨리고 얻은 보상이었다.
곧 허공에서 상당히 많은 양의 젬스톤들과 작은 눈알 모양의 아이템들이 후두둑 떨어졌다.
‘뭐가 이렇게 많아?’
그도 그럴 것이, 대규 부대 영웅들은 아폴론 부대 영웅들이 해치워야 했을 스몰 이타콰들도 먼저 다 해치웠었다.
당연히 보상이 평소보다 두 배는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보다 저 눈동자는 무슨 아이템일까?’
구르게스를 해치우고 나오는 태풍의 눈인 것 같았다.
자신이 10마리의 구르게스를 해치웠을 땐 나오지 않았던 거로 보아 꽤 희귀한 확률로 나오는 아이템인 것 같았다.
태풍의 눈을 바라보자 아이템 설명창이 떠올랐다.
[태풍의 눈(전설)]
[구르게스를 해치우면 일정 확률로 주어지는 보상. 섭취할 수 있는 소모품 아이템으로 이것을 섭취하면 바람의 힘을 받아 민첩성이 +10 상승한다.]
민첩성을 올려 주는 소모품 아이템이구나.
영웅들 역시 태풍의 눈에 대한 아이템 설명창을 보고는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먹을수록 능력치를 올려 주는 아이템이라 몇 개를 중복으로 받아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실제로 뛰어난 실력을 지닌 영웅들은 태풍의 눈을 몇 개씩 받은 상태였다.
특히 그중에서도 대장군인 지영은 홀로 태풍의 눈을 거의 20개는 모은 상태였다.
그것들을 전부 복용하면 민첩이 200이나 상승하게 된다.
‘엄청나군!’
벌써 태풍의 눈을 복용하기 시작한 영웅들도 있었고, 복용하는 대신 보관함에 잘 넣어 두는 영웅들도 있었다.
저 정도 귀한 아이템이라면 판테온에 팔아도 꽤 많은 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폴론 부대 대신 해치운 스몰 이타콰의 경우엔 보상으로 젬스톤을 떨궜다.
이번에도 대규 부대 영웅들은 젬스톤을 싹 쓸어 모았고, 꽤 부자가 됐다.
보상 수여식이 끝나갈 때였다.
지휘사령부 천막 안에서 제우스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판테온의 신들은 듣거라. 지금 당장 중앙 신전으로 오거라.]
제우스의 음성이 지휘사령부 천막 내부에 울려 퍼지자마자 다른 영웅들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한편 대규는 어리둥절해졌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전쟁에 승리했는데 제우스는 이리로 오지도 않고 갑자기 이렇게 소집을 하다니.’
곧 목소리는 사그라졌고, 대규는 영웅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중앙 신전으로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제 다들 현실로 돌아가도 좋습니다.”
대규가 명령을 내리자 영웅들은 고개를 끄덕인 뒤 현실로 돌아갔다.
그때 지영이 대규에게 물었다.
“대규 님, 다음 훈련 일정은 어떻게 됩니까?”
“저번처럼 사흘 뒤로 알고 있으면 됩니다.”
아직 한 마리의 외계인 보스 몬스터가 남아 있었다. 각자 할당된 2마리 몬스터를 제일 먼저 해치우는 신이 맡을 최후의 한 마리 말이다.
그런데 제우스는 갑자기 왜 소집을 하는 걸까?
어쨌든 그는 신들의 왕이니 그의 명령을 거부할 순 없었다. 대규는 옵티뭄을 몰고 판테온의 중앙 신전으로 향했다.
중앙 신전의 외관은 더욱 견고하게 변했다.
그냥 전쟁의 요새 수준이 아니라 이제 외벽은 더욱더 단단해지고 공중엔 강렬한 실드 마법까지 걸려 있었다.
투명 실드를 바라보고 있는 대규를 본 문지기가 이렇게 말했다.
“티탄 신족과의 최후의 전투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신호겠죠. 그 전투를 대비하지 않으면…….”
문지기는 두려운 눈빛을 하며 말꼬리를 흐렸다.
대규는 문지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것보다 제우스 님이 왜 우리를 소집했는지 아십니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최후의 외계인 부대에 관련된 일인 것 같습니다.”
‘그랬군.’
아무래도 최후의 외계인 부대와 전투를 벌일 신을 선정하려는 것 같았다.
‘이쯤이면 아마 다들 할당된 몬스터들을 해치웠을 테니까 말이야.’
대규는 중앙 신전으로 들어섰다.
원탁엔 대규를 제외한 나머지 판테온의 신들이 미리 모여 둘러 앉아 있었다.
아폴론은 다행히 깨어나 정신을 차린 듯했지만 아직도 퀭한 얼굴이었다. 주샤콘에게 빨렸던 기력을 완전히 다 회복하지 못한 것 같았다.
대규가 원탁으로 다가오는 걸 본 아폴론은 황급히 시선을 돌려 고개를 숙여 버렸다.
그의 표정을 보니 상당히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대규는 자신의 자리 옆에 앉아 있는 아테나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녀의 표정이 평소와 달랐다.
평소의 아테나는 차갑고 단호한 표정을 짓는 냉정한 여신인데, 오늘 그녀의 모습은 왜인지는 몰라도 흥분으로 상기돼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