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2
252화 이타콰 (1)
대규의 외침과 동시에 벼락검의 사슬 검날이 사정없이 허공을 베어 버렸다.
“플로우 참파!”
샤샤샥!
화르륵-
검에서 튀어나온 수십 개의 화염 벼락이 돌풍을 타고 눈동자 정중앙에 꽂혔다.
한 개가 아닌 수십 개의 화염 벼락이 꽂히자 거대한 태풍의 눈도 어쩔 수 없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콰지직!
무언가 단단한 게 깨지는 소리가 나면서 주샤콘의 돌풍 내부가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됐다!’
하지만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
내부의 무풍지대가 무너지면서 엄청난 돌풍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대규는 돌풍의 내벽에 갇혀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아폴론의 모습을 발견했다.
‘저 자식도 데려가야겠지.’
아폴론을 내벽에서 꺼내 옵티뭄의 등 위에 태웠다. 아폴론의 몸은 시체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옵티뭄을 몰아 빠르게 주샤콘의 내부를 빠져나갔다.
우선 하늘 위쪽으로 무작정 수직으로 상승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거대한 태풍이 무너지고 있는 게 보였다.
곧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외계인 보스 몬스터 주샤콘을 해치웠습니다.]
[셀 수 없이 많은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양의 마나를 흡수했습니다.]
[레벨이 두 단계 상승했습니다.]
하지만 대규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직도 전쟁터인 벌판은 어둑어둑했다.
그리고 본래 아폴론이 할당받았던 외계인 보스 몬스터는 아직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대체 그 녀석은 어제 나오려는 거지? 그리고 어떤 녀석인 걸까?’
이제 그 몬스터 녀석이 나타난다 해도 대규가 혼자 처치해야 될 상황이었다. 아폴론은 도저히 전투할 수 있을 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옵티뭄의 등 위에서 축 늘어져 아폴론을 보며 생각했다.
‘설마 죽은 건 아니겠지?’
물론 그럴 리는 없다. 신의 육체는 불로불사의 몸이다. 만약 죽음에 가까워졌거나 전투에서 완전히 졌다면 심연의 결계가 열렸을 것이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대규는 아폴론의 코 아래쪽에 자신의 검지를 대 봤다.
후우욱-
뜨뜻미지근한 콧김이 느껴졌다.
‘살아 있군.’
대규는 그의 몸을 짐짝처럼 옵티뭄의 엉덩이 쪽으로 밀어 놓은 뒤 안장 위에 올라탔다.
짐짝처럼 엎어져 있는 행색이 초라했지만 그간 아폴론의 행적을 돌이켜봤을 때 그를 예우해 주고 싶은 마음은 1mg도 들지 않았다.
“옵티뭄, 가자!”
“히이잉!”
대규는 옵티뭄을 몰고 아폴론 부대 영웅들과 자신의 부대 영웅들이 있는 벌판 옆 절벽으로 날아갔다.
절벽에 도착하자 영웅들이 대규와 아폴론을 기다리고 있는 게 보였다.
대규가 돌아오자 영웅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자 아폴론 부대 영웅들은 옵티뭄의 등 위에 축 늘어진 자신들의 상관을 보고 놀라서 웅성거렸다.
“아폴론 님이… 어떻게 된 거야!”
“설마 전투에서 지신건가? 말도 안 돼…….”
대규는 웅성거리는 아폴론 부대의 영웅 중 대장군 지위에 있는 영웅을 부른 뒤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의 상관인 아폴론은 적에게 당해 잠깐 기절했습니다. 그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 잘 돌봐야 할 것이오.”
“아,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상관이 정신을 잃고 기절하자 아폴론 부대 영웅들은 크나큰 혼란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대규는 그런 영웅들을 보며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직 전투가 끝난 게 아니다. 하지만 저렇게 영웅들이 우왕좌왕하다간 전쟁터에서 몰살당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게다가 보스 몬스터는 아직 한 마리나 더 남아 있었다.
‘그리고 구르게스와 스몰 이타콰들이 더 남아 있을지도 모르고.’
그것보다 아폴론에게 할당된 보스 몬스터는 대체 무엇인걸까?
대규는 전혀 그 몬스터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아폴론이 제우스에게 받았던 양피지라도 넘겨받아서 보스 몬스터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라도 알아야 했다.
아폴론이 기절한 지금 녀석을 상대할 수 있는 건 대규뿐이었으니까 말이다.
대규는 아폴론 부대 대장군에게 물었다.
“그대는 아폴론이 제우스 님께 받은 양피지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소?”
아폴론 부대 대장군은 인간과 비슷하게 생긴 정령이었지만 귀 끝이 뾰족했다. 그리고 창백할 정도로 하얀 얼굴에 긴 생머리 같은 금발을 지닌 미남자였다.
하지만 얼굴엔 거만한 기운이 좔좔 흘렀다.
그는 신인 대규 앞에 고개를 숙였지만, 살짝 거만한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
“그건 대규 님이 신이라도 넘겨드릴 수 없습니다. 우리 아폴론 님께서 받은 양피지니까요. 그건 함부로 넘겨드릴 수 없답니다.”
답답한 녀석이군.
대규는 대장군을 똑바로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
“지금 그 보스 몬스터가 이곳으로 쳐들어올 것이오. 그리고 아폴론은 지금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지. 만약 그대들이 다 죽게 돼도 상관없단 말인가?”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꾸했다.
“왜 저희만 죽게 됩니까? 대규 님의 부대 영웅들도 죽게 될 텐데요.”
대규는 그 말에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생긴 것과 달리 지능은 아주 하잘것없군. 나는 신이니까 이동결계를 칠 수 있습니다. 여차해서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내 부대원들에겐 이동 결계를 쳐서 주둔지로 달아날 수 있지. 하지만 그대들은 어떻지? 그대들에게 이동 결계를 쳐줄 수 있는 아폴론은 지금 저렇게 기절한 상태요. 그럼 위기 상황에서 누가 그대들을 주둔지로 이동시켜 줄 건가?”
그 말에 대장군의 얼굴이 굳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규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쏘아붙였다.
“그대들도 이곳에서 방금 전 나와 아폴론이 상대했던 보스 몬스터 주샤콘의 모습을 멀리서나마 봤겠지. 그것이 보스 몬스터의 능력이요. 여차하면 판테온의 신도 기절시켜 버린단 말이지.”
이 말을 하면서 대규는 기절한 아폴론을 향해 흘끗 눈짓했다.
이제 아폴론 부대의 대장군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뭐, 그대의 뜻이 그렇다면 잘 알겠소. 우리 부대는 이쯤에서 후퇴하도록 하지. 대장군이란 자가 그렇게 사리 분별을 못 해서는… 쯧! 어디 한번 잘 싸워 보시오.”
후퇴하겠다는 말에 아폴론 부대 영웅들의 낯빛이 단박에 어두워졌다.
결국 아폴론 부대 대장군은 이렇게 말했다.
“크윽… 알겠습니다. 아마 양피지는 아폴론 님의 갑옷 상의 안쪽에 있을 겁니다. 항상 그곳에 보관해 두시니까요.”
대규는 그 말을 듣고 기절해 있는 아폴론에게 다가가 그의 갑옷 상의를 뒤지기 시작했다.
곧 둘둘 말린 양피지 조각이 나왔다.
양피지를 펴자 아폴론이 할당받은 보스 몬스터에 대한 정보가 나왔다.
[이타콰(Ithaqua)]
양피지에 적힌 몬스터의 이름을 본 대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이 녀석 역시 전에 상대했던 바사탄처럼 자신과 똑같이 생겼지만, 능력치가 축소된 녀석들을 부하로 두고 있는 것 같았다.
스몰 이타콰는 아기 바사탄들과 같은 존재인 것이다.
대규는 양피지에 적혀있는 이타콰에 대한 정보를 숙지했다.
녀석에 대해 양피지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우주의 극지방에서 사는 얼음 해골 외계인. 빙결 형태의 공격 스킬, 마법 등으로 상대방을 공격한다. 정령급 영웅들은 이타콰의 곁에 다가가기만 해도 바로 얼어붙는다. 약점은 가슴 부위의 심장이다.]
‘스몰 이타콰와는 좀 다른 능력을 지니고 있군.’
대규 부대의 영웅들이 해치웠던 해골 외계인 스몰 이타콰들은 그냥 해골 형태의 외계인이었지만 이 녀석은 얼음 계열의 몬스터였다.
‘심지어 마법도 쓸 줄 안다고…….’
게다가 곁에 다가가기만 해도 정령급 영웅들은 바로 얼어붙는다니까 이곳에 있는 모든 영웅을 먼 곳으로 대비시키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대규는 신의 목소리를 이용해 자신의 부대 영웅들과 아폴론 부대 영웅들에게 말했다.
“적이 나타나면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으십시오. 보스전이니 끼어들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자칫 잘못했다간 얼어 죽게 될 겁니다.”
그리고 지영과 라이펑을 바라보며 이렇게 덧붙였다.
“그대들은 아폴론 부대 영웅들도 이곳에서 잘 통솔해 주길 바랍니다. 최대한 화염 계열 스킬이 있는 영웅들을 찾아내 이곳을 방어하도록 하세요. 녀석은 얼음 계열 몬스터이니 녀석이 뿜는 냉기를 막으려면 화염 스킬이 효과적일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지영과 라이펑은 신속히 영웅들에게 다가가 화염 계열 스킬이 있는 영웅들을 가려내기 시작했다.
대규는 그 모습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며 생각했다.
‘좋았어. 그럼 이제 나는 이타콰가 언제 쳐들어올지 알아야 한다.’
신의 눈을 사용해서 적진을 염탐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전투는 이 절벽 주변이 아니라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래야 영웅들에게 닥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까부터 주변의 온도가 좀 낮아진 것 같은데…….’
어느새 입에서 옅은 입김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심지어 몇몇 영웅의 살갗엔 닭살이 올라와 있기도 했다.
하지만 이타콰의 모습은 벌판 너머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대규는 신의 눈을 사용해 보이지 않는 벌판 저 멀리 너머를 바라봤다.
그러자 거세게 불어닥치는 얼음 바람이 보였다.
휘이이이잉-
쿵! 쿵!
거대한 얼음해골이 아주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녀석이 걸어오고 있는 지점과 대규가 있는 이 절벽까지의 거리는 적어도 백 킬로미터 이상은 떨어진 곳이었다.
‘그런데도 그 냉기가 여기까지 전해져 오다니.’
아무래도 녀석이 더 다가오기 전에 자신이 먼저 녀석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 전투를 벌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대규는 재빨리 옵티뭄의 등에 올라타며 영웅들에게 말했다.
“그럼 나는 전투를 하러 다녀오겠습니다.”
말을 마친 대규는 옵티뭄을 최대한 빨리 몰며 이타콰가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날아가면 날아갈수록 점점 추워졌다.
옵티뭄의 목 갈기엔 얼음 서리가 맺히기 시작했고 녀석이 울음소리를 낼 때마다 하얀 입김은 점점 더 짙어졌다.
아래쪽을 내려다보니 어느새 벌판은 서리가 잔뜩 쌓여 있었다.
대규의 입에서도 하얀 입김이 퍼져 나왔고, 대규는 허리춤의 사슬검을 살짝 꺼내 작은 화염을 지폈다.
그러니 좀 따뜻해졌다.
‘이제 녀석이 나타날 때가 됐는데…….’
그때 엄청난 서리 덩어리가 대규와 옵티뭄의 위로 떨어졌다.
“으와앗!”
몸에 직격으로 떨어진 서리를 털어내고 있는데 저 멀리에서 거대한 해골 외계인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녀석의 몸 전체에는 눈과 서리, 얼음들이 두껍게 쌓여 있었다.
“@#%$!…….”
녀석은 나지막한 소리를 내며 고개를 들고 머리를 세차게 흔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시 한 번 서리 덩어리들이 눈보라가 되어 날아와 대규를 덮치기 시작했다.
곧 외계인의 얼굴이 눈, 서리들 속에서 드러났다.
녀석은 얼음으로 이뤄진 해골 형상의 몬스터였다. 해골이라서 그런지 눈알이 있어야 할 곳엔 구멍이 뚫려 있었고, 그 구멍에선 기괴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곧 공략집이 떠올랐다.
-차원의 틈 공략집-
몬스터 이름: 이타콰(Ithaqua)
보상: 얼음의 조각
특징: 우주의 극지방에 사는 고대 외계인. 빙계 스킬과 마법을 쓰며 다가가기만 해도 정령들조차 단번에 얼어붙어 버린다. 오직 화염 공격만이 효과적으로 통할 뿐. 약점은 가슴 부위의 심장. 하지만 심장을 깨뜨리거나 부수지 말고 녹여 버려야 죽는다.
보유 스킬:
빙결-단시간에 냉기를 이용해 반경의 사물과 적들을 모두 얼려 버린다. 마나 소모 100.
얼음 송곳-어마어마한 양의 날카로운 얼음들을 쏟아내 적들을 무자비하게 찔러 죽인다. 마나 소모 50.
최후의 방어-약점인 심장이 파괴되기 전 최후의 마나를 짜내 자신의 심장을 단단하게 얼려 버린다. 마나 소모 300.
<이타콰에 대한 공략(하급)을 습득했습니다.>
<이타콰에 대한 당신의 공격력이 10% 상승합니다.>
<이타콰로부터 아이템을 습득할 확률이 조금 높아집니다.>
<이타콰의 약점을 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영상을 재생하시겠습니까? Yes/No>
‘역시 공략집의 설명이 양피지보다 훨씬 알차다.’
약점이 심장인 것을 알려준 데서 그치지 않고 어떻게 공략해야 하는지 자세하게 알려 주고 있었다.
하지만 내용 중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스킬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