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1
251화 주샤콘 (10)
아폴론은 자신만만하게 주샤콘에게 달려들었다.
대규는 그런 그를 가만히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렇게 나섰다가 큰일 나지.’
물론 막진 않았다.
자신은 분명 아폴론에게 조심하라고 일렀다. 하지만 그 말을 듣지 않은 건 아폴론이었다. 이제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아폴론의 책임이었다.
아폴론은 허리춤에서 자신의 칼을 꺼내 들었다.
검신에서 눈처럼 하얀빛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신화 등급 무기인가 보군.’
대규는 아폴론의 무기를 주시하며 생각했다.
이제 그는 눈앞에 보이는 주샤콘의 돌풍을 똑바로 바라보며 외쳤다.
“저깟 돌풍 따위는 내 칼륍스(chaylbs)로 베어 버린다!”
칼륍스가 그의 검 이름인 것 같았다.
아폴론이 검을 하늘 높이 치켜들자 검신에서 퍼져 나온 하얀 빛이 돌풍을 향해 뿜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하얀빛은 물결처럼 여성스러운 곡선을 그리면서 돌풍 한가운데를 날렵하게 베어 버렸다.
휘이잉-
“@#$%!”
바람 새는 소리와 함께 주샤콘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됐다!”
아폴론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외쳤다.
이제 이 외계인 보스 몬스터를 해치우면 자신이 저 꼴 보기 싫은 대규 녀석보다 우위에 서는 것이다.
‘어쩌면 내가 전쟁의 신 칭호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의 가슴속에서 흥분이 마구 솟구치기 시작했다.
아폴론이 다시 자신의 칼 칼륍스를 들고 휘두르려는데,
휘이이잉-
주샤콘의 돌풍이 훨씬 거세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돌풍 표면의 색깔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는 대규가 충고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표면이 붉게 변하기 시작하면 무조건 눈을 감아.’
하지만 그는 눈을 감지 않았다.
어떻게 지금 눈을 감는단 말인가. 지금이 녀석을 공격할 절호의 기회인데!
물론 아폴론은 자신의 눈동자가 붉은빛으로 충혈되기 시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는 두 눈을 번쩍 뜬 채 칼을 들고 주샤콘을 향해 다시 한 번 달려들었다.
그런데 그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왜 이렇게 눈이 뻑뻑하지?’
눈이 메마르는 것 같고 뻑뻑했다. 그리고 이상한 이물감마저 느껴졌다.
‘아무래도 저놈의 돌풍 때문에 눈이 마르는 것 같군.’
아폴론은 눈을 깜빡였다. 하지만 눈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거슬리기 시작했다.
이젠 작은 모래 알갱이들이 눈동자 안에 돌아다니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빌어먹을!’
아폴론은 미친 듯이 눈을 깜빡였다. 하지만 그럴수록 눈의 이물감은 점점 더 심해졌다. 그리고 시야가 흐려지기까지 했다.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눈을 비비기 시작하자 갑자기 극심한 가려움이 온 눈에 파고들었다.
“으윽……!”
좀 비비면 가려움이 해소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가려움은 점점 극심해졌다. 눈꺼풀이 아니라 눈알 안쪽이 가려운 것 같은 기괴한 느낌이었다.
눈에 가려움을 느낀 아폴론의 몸동작에 빈틈이 보이기 시작하자 주샤콘은 때를 노려 그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휘이이잉-!
주샤콘의 재앙의 돌풍 스킬이었다.
돌풍이 거세지더니 주변의 모든 것들을 날려 버리기 시작했다. 벌판의 바닥은 바람 때문에 사정없이 푹푹 파이기 시작했다.
그 엄청난 돌풍 앞에선 신의 육체도 소용없었다.
몇 배는 강한 돌풍이 순식간에 아폴론의 몸을 휘감아 버렸다.
“으아앗!”
그리고 아폴론은 눈 깜짝할 사이에 주샤콘의 소용돌이 돌풍 안으로 빨려들어 가 버렸다.
정말 순식간이었다.
대규는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봤다. 물론 두 눈은 감고 있는 상태였다.
두 눈을 감고 있어도 공략집과 크아이가의 눈이 그 광경을 보여 줬다. 물론 흑백이고, 형체가 흐릿하긴 했지만 말이다.
‘아폴론이 순식간에 먹혀 버렸다!’
그리고 대규는 아폴론이 돌풍 안쪽으로 빨려들어 가기 전 그의 눈동자를 봤다.
붉게 충혈돼 있던 그의 눈은 분명 정상 상태가 아니었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빨리 저 녀석의 소용돌이 내부로 들어가 약점인 태풍의 눈을 부숴 버리는 거다.’
돌풍의 표면은 여전히 붉은색이었고, 대규는 계속해서 두 눈을 감은 채로 있었다.
옵티뭄을 하늘 위쪽으로 몰아 녀석의 소용돌이 꼭대기로 올라가야 한다.
그리고 꼭대기에 있는 구멍을 통해 소용돌이 내부로 들어가야 했다.
하지만 주샤콘의 돌풍은 너무나도 거셌다. 특히 재앙의 돌풍 스킬을 발휘하자 멀리 떨어져 있는 대규의 몸도 크게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대규는 보관함에서 황금의 벌꿀 술을 꺼내 먹기로 했다. 하지만 돌풍이 엄청나서 직접 꺼내 먹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나에겐 공략집이 있지.’
벌꿀 술을 먹고 싶다고 생각하자 공략집이 저절로 그것을 먹여 줬다. 엘릭서와 회복약도 저절로 먹여 주는 공략집이니 이 정도는 기본이었다.
꿀꺽꿀꺽-
그러자 옵티뭄의 몸에 숨겨져 있던 비야키의 비행 능력이 활성화됐다. 비야키가 낼 수 있는 비행 속도는 몹시 빠르니 그 속도로 저 돌풍을 뚫고 상승하면 될 것이다.
“가자, 옵티뭄!”
“히이잉!”
옵티뭄이 날개를 푸득거린 뒤 매우 빠른 속도로 녀석의 돌풍을 뚫고 위로 올라갔다.
곧 소용돌이 돌풍의 꼭대기에 도착했고, 한가운데 블랙홀 모양의 기류 공간이 보였다.
“가자!”
곧 돌풍 안쪽으로 대규와 옵티뭄은 휘말리듯 빨려들어 갔다.
“으아아아!”
저번에 구르게스를 훈련용 몬스터로 잡기 위해 녀석과 싸웠을 땐 이런 느낌이 아니었다.
구르게스의 경우 내부에 진입할 땐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가는 기분이었는데 주샤콘의 경우는 완전 달랐다.
무슨 웜홀 같은 것에 빨려들어 가는 느낌이었다.
엄청난 압력 때문에 온몸에 고통이 느껴졌다.
퍼어엉!
굉음과 함께 대규와 옵티뭄은 주샤콘의 내부로 완벽하게 들어왔다.
돌풍의 안쪽은 구르게스처럼 역시 얌전한 무풍지대였다.
그리고 다행히도 돌풍의 내벽은 외벽처럼 붉은빛이 아니었다.
‘그 눈의 가려움을 유발하는 스킬은 녀석의 내부에 있으면 먹히지 않나 보군. 다행이다.’
대규는 그제야 두 눈을 뜨고 주샤콘의 내부를 바라보았다.
저 아래쪽을 바라보자 운동장만 한 거대 눈동자가 대규를 바라보고 있었다.
“……!”
저것이 주샤콘의 태풍의 눈!
‘빨리 해치워 버리자.’
분명 구르게스의 태풍의 눈보단 훨씬 내구도가 강하겠지.
대규는 플로우 상태로 돌입했다. 플로우 상태에서 참파 검법을 발휘해 저 거대한 눈을 난도질할 계획이었다.
그 정도 난도질이라면 아무리 단단한 눈이라도 버텨 내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흐아압!”
기합과 함께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곧 오른손과 불카누스의 벼락검에 푸른 빛이 돌기 시작했고, 플로우 상태에 돌입했다는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대규는 눈을 반짝이며 옵티뭄을 몰고 거대한 태풍의 눈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이 고요한 무풍지대에 대규와 태풍의 눈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대규의 사슬 검날이 태풍의 눈동자를 베어 버리려는 순간,
키이익!
돌풍의 내벽에서 이상한 것들이 튀어나와 대규를 가로막았다.
대규는 그것들을 향해 사슬검을 휘둘렀다.
다행히 집중이 깨지진 않았다. 참파 검법이 눈동자 대신 그것들을 향해 날아갈 뿐이었다.
화르륵-
서걱! 서걱!
끼에엑!
그것들은 좀비처럼 생긴 이상한 생명체들이었다.
하지만 분명 낯이 익었다.
대규는 그와 비슷한 것들을 처음 구르게스와 싸울 때 본 적이 있었다.
바로 구르게스의 돌풍 표면에 붙어 있었던 기력이 빨린 영웅들의 모습이었다.
이 좀비들 역시 기력이 빨린 정령, 혹은 몬스터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더 이상 생명체로서의 자의식이 남아 있지 않았다.
오직 주샤콘을 위해 싸우는 좀비가 됐을 뿐이다.
그 좀비들은 돌풍의 내벽 사방에서 튀어나와 대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점점 그 숫자가 늘어나자 결국 플로우 상태가 깨져 버렸다.
‘크윽! 이 자식들이 방해할 줄이야!’
대규는 불카누스의 벼락검을 휘두르며 외쳤다.
“레툼 익투스!”
그러자 화염 벼락들이 사슬검 끝에서 나가며 좀비들의 몸을 꿰뚫었다.
키에엑!
녀석들은 비명을 지르며 순식간에 잿더미가 됐다.
그런데 익숙한 얼굴이 돌풍의 내벽에 갇혀 있는 게 보였다.
바로 방금 전 돌풍에 휩싸여서 사라져 버린 아폴론이었다.
‘멍청한 녀석, 결국 이 좀비들과 같은 신세가 됐군!’
아폴론의 얼굴은 벌써 퀭하게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잠깐 동안만 이 돌풍에 갇혀 있었을 뿐인데도 말이다.
아무래도 빠르게 기력을 빨리고 있는 것 같았다.
“크으으… 대규…….”
아폴론이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대규를 불렀다.
“제, 제발… 나를 구해 줘…….”
그 모습을 보자 꼴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조언을 무시하고 주샤콘에게 막무가내로 달려들었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물론 대규는 구해 주지 않았다.
우선 지금은 주샤콘의 태풍의 눈을 파괴하는 게 먼저였다.
‘그리고 주샤콘을 해치우면 아폴론 녀석도 저절로 구출될 테니까 말이야.’
그때 아폴론이 괴로운 듯 신음 소리를 냈다.
“누, 눈이 가렵다……. 너무 가려워……. 으아아아…….”
그는 자신의 손을 뻗어 눈에 가져갔다.
‘저 자식 지금 뭐 하는 거야?’
대규는 놀라서 아폴론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는 양 손가락으로 자신의 눈알을 뽑을 듯이 눈꺼풀을 잡아 대고 있었다.
위험하다.
대규는 손목에서 아라크네의 거미줄을 뿜어 아폴론의 양손을 묶어 버렸다.
“으으윽! 날 놔줘!”
“미안하지만, 그러고 있어라.”
말을 마친 대규는 옵티뭄을 몰고 드디어 태풍의 눈 근처로 다가갔다.
하지만 내벽에서 좀비들이 끊임없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대체 이 녀석은 돌풍 속으로 얼마나 많은 생명체를 집어삼킨 걸까.
대규는 벼락검을 빠르게 휘두르며 화염 벼락을 좀비들에게 내리쳤다.
시간은 좀 걸렸지만 결국 태풍의 눈동자 가까이에 도달했다.
눈동자의 동공이 보였고, 그곳에 정확히 검끝을 찔러 넣었다.
“흐라압!”
탱!
하지만 검날은 눈동자에 들어가지 않았다.
눈이 눈꺼풀을 급하게 닫아 방어한 것이었다.
‘흥, 얼마나 그럴 수 있는지 두고 보자!’
대규는 플로우 상태에 돌입해 참파 검법을 시전했다.
“플로우 참파!”
휘릭, 휘릭!
서걱! 서걱!
칼을 휘두르는 속도가 너무 빨라 대규의 손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수십 개의 칼날과 화염 벼락이 눈동자를 향해 날아갔다.
사실은 한 개의 칼날에서 한 개의 벼락이 차례로 나가는 것이었지만 대규가 육안으론 보이지 않을 만큼 검을 빠르게 휘둘러서 수십 개의 칼날에서 수십 개의 벼락이 동시에 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
화염 벼락이 눈동자를 공격할 때마다 눈동자는 이상한 소리를 냈다.
하지만 아직도 완전히 눈동자를 파괴하려면 멀었다.
여태까지는 눈에 상처가 몇 개 난 것이 전부였다.
그사이 좀비들이 돌풍 내벽에서 다시 형성돼 대규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대로라면 끝이 없다. 내 공격과 스킬만으론 이 녀석들을 빠르게 해치울 수 없어.’
좀비들을 계속 베었지만, 끝이 없었다. 대규의 체력이 암만 좋고 신의 육체를 지니고 있다지만 영원히 버틸 수는 없었다.
“흐라압! 레툼 익투스!”
화염 벼락이 검끝에서 나갔다.
하지만 좀비들을 없애는 대신 돌풍의 내벽을 향해 날아갔다.
빗나간 것이 아니었다.
벼락을 맞은 내벽이 살짝 갈라지기 시작했고, 그 갈라진 틈새로 주샤콘의 돌풍 외벽에서 거세게 치는 바람들이 파고들기 시작했다.
틈새바람이라 해도 재앙의 돌풍 스킬을 지닌 그 바람의 위력은 엄청났다.
휘이이잉-!
좀비들이 주춤거렸고, 대규의 몸 역시 휘청거렸다. 하지만 하체에 힘을 주고 잘 버텨 냈다.
평소 옵티뭄을 타면서 단련된 하체 근력 덕분이었다.
대규는 자신을 향해 불어오는 바람을 노리며 불카누스의 벼락검을 힘껏 휘둘렀다.
“가라, 불길아!”
화르륵!
불길이 사슬검에서 뿜어져 나갔고, 곧 틈새로 들어오는 돌풍에 붙었다.
화르르르륵!
돌풍은 화염을 싣고 주샤콘의 내부 무풍지대를 가득 메웠다.
‘화염에 바람이 붙으면 미친 듯이 빨리 퍼지지.’
맨 처음 구르게스를 상대했을 때 썼던 전법이었다.
화염이 돌풍 내부를 가득 메우자 뜨거운 열기가 주샤콘 내부에 퍼지기 시작했다.
좀비들은 화염 돌풍에 휘말려 단번에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대규 역시 몸이 너무 뜨거웠다. 최대한 갑옷과 장비들의 마법 저항력을 발휘해 열기를 막았다.
그나마 벼락검이 화염 계열 초월자 등급 무기라 화염에 대한 저항력이 강해서 다행이었다.
불길을 뚫고 다시 태풍의 눈을 공격하러 달려갔다.
눈동자는 열기 때문에 눈을 급하게 끔뻑거리고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해치워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