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7
247화 주샤콘 (6)
곧 대규가 지휘사령부 천막 한가운데에 만들었던 불길의 왕좌가 떡하니 나타났다. 그리고 그 옆엔 전략 테이블도 생겼다.
자신의 의식 속이 아니라 막상 실제로 형상을 갖춘 왕좌를 보니 놀라웠다.
의식 속에서 봤던 것보다 왕좌는 더욱 멋있어 보였다.
대규는 다시 한 번 왕좌에 앉아 보기로 했다.
실제로 앉았을 때와 의식 속에서 앉았을 때의 느낌이 달랐다.
이것은 단순히 쿠션감이 좋고 편한 느낌에서 끝나지 않았다.
진짜로 자신이 이 왕좌에 앉을 수 있는 자격을 지닌 신이라는 사실이 실감 났다. 자신감과 권위가 차오르는 느낌이랄까.
비록 이 지휘사령부 천막 안엔 자기 혼자 있을 뿐이지만 말이다.
대규는 양팔을 왕좌의 팔걸이에 올리고, 발 디딤판에 두 발을 올린 뒤 사령부 천막 안을 둘러봤다.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엄청난 권력이 자신의 손안에 든 것 같았다.
정말로 이제야 세상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신’이 됐다는 게 실감 났다.
그전까진 자신이 신이란 존재가 됐다는 건 인간, 혹은 세미데우스보다 강력한 육체를 지니고 판테온에서 자신의 부대를 만들어 영웅들을 훈련시킬 수 있는 위치에 오른 자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 신이란 대다수의 사람이 우러러보고 경외감을 느끼는 위치에 있는 존재인데 말이야!’
대규는 텅 빈 천막을 다시 한 번 둘러보며 생각했다.
이것이 나의 왕좌다.
내가 신이다.
천막엔 아무도 없었지만 벅찬 마음이 그의 가슴속에서 차올랐다.
자신의 차오르는 권위를 만끽한 뒤 지휘사령부의 천막에서 나왔다.
현실로 돌아가려고 포탈을 여는데, 갑자기 주둔지의 하늘이 어둑어둑해졌다.
‘무슨 일이지?’
그때 푸른 벼락이 하늘을 수놓았고, 하늘 위에서 제우스의 음성이 커다랗게 들렸다.
[판테온의 신들은 지금 당장 중앙 신전으로 모여 주길 바란다.]
제우스의 소집 명령!
‘긴급한 사안이라도 벌어진 걸까?’
대규는 옵티뭄을 타고 당장 판테온의 중앙 신전으로 향했다.
제우스는 신들의 아버지이자 왕이었다. 그의 명령은 신인 대규로서도 거부할 수 없었다.
‘방금 전까지 왕좌에 앉아 있을 땐 내가 최고의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군.’
뭔가 씁쓸한 기분이 들었지만, 대규는 옵티뭄의 고삐를 몰고 하늘 높이 날았다.
중앙 신전은 여전히 전투 요새의 외관을 하고 있었다.
신전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저번에 앉았던 거대한 원탁이 보였다.
원탁엔 이미 다른 판테온의 신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하지만 몇몇 신들의 표정은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특히 아레스와 아폴론의 얼굴은 몹시 구겨져 있었다.
‘왜 저래?’
대규는 자신의 자리에 가 앉은 뒤 오른편에 앉아 있는 아테나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테나, 저들 표정이 왜 저런 거지?”
그러자 그녀 역시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외계인 부대와의 전투에서 패했다고 한다. 특히 아폴론 부대는 크게 졌다는군. 부대의 손실도 이만저만이 아니고.”
“그래?”
대규는 그 말을 듣고 흘끗 아폴론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순간 그와 눈이 마주쳤다.
대규와 눈을 마주친 아폴론은 눈을 크게 부라리며 고개를 홱 돌려 버렸다.
그 모습을 보자 기분이 나빠졌지만, 대규는 가만히 있었다.
주변에 다른 신들이 있는데 소란을 피울 순 없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아폴론이 크게 패했다니.
대규가 알고 있는 한 아폴론은 전투 실력이 형편없는 신이 아니었다. 기간토마키아 전투에서도 크게 패한 적은 없었다.
아테나에게 그 이유를 묻자 그녀는 더욱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확실하진 않지만, 그의 부대에서 빠져나간 인간 출신 영웅들 때문이란 소문이 들리더군. 그들이 부대를 빠져나간 게 큰 패배의 원인이라고 말이다.”
그러자 대규가 황당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게 대체 무슨 상관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됐다.
분명 아폴론은 자신 부대에 있었던 인간 출신 영웅들을 무시했다.
그래서 대규가 그들을 자신 부대로 데려간다고 했을 때도 흔쾌히 허락하지 않았던가.
애초에 아폴론은 인간 영웅들에 대해선 크게 신경 쓰지도 않았다. 그리고 인간 영웅들이 아폴론의 부대에서 핵심적인 전력을 담당하고 있던 것도 아니었다.
물론 현재 대규 부대의 장군인 라이펑은 아폴론 부대 소속이었고, 실력도 좋았다. 하지만 아폴론은 대규와 달리 그런 라이펑에게 무관심했다.
‘그런데 외계인과의 전투에서의 패배 원인이 인간 출신 영웅들 때문이라고?’
정말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번엔 대규의 왼편에 앉아 있던 아프로디테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왜냐면 아폴론 부대에선 인간 출신 영웅들이 하잘것없는 역할들을 도맡아 했기 때문이지.”
“응?”
“가장 먼저 적진으로 달려가 싸우는 졸병, 보병의 역할 말이다. 심지어 정령 영웅들의 잔심부름들도 인간 영웅들이 맡아서 해 왔다.”
대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그녀에게 말했다.
“그건 나도 알고 있어. 그런데 그게 왜 패배요인이 된단 말이지? 인간 영웅들이 부대에서 중요한 임무를 맡았던 것도 아니잖아.”
그러자 아프로디테가 혀를 끌끌 차며 말을 이었다.
“당연한 것 아닌가? 그런 하찮은 일을 묵묵히 도맡아 했던 인간들이 빠져나갔으니 이제 그런 일들을 할 영웅들이 부대에 남아 있지 않게 됐지. 그리고 남아 있는 정령 영웅들은 하나같이 인간들이 해 왔던 그런 하찮은 일들을 하기 싫어했다. 그래서 이번 전투 때 부대 내부 차원에서 대규모 분열이 있었다고 들었다.”
그랬던 거군.
그러자 오른편에서 아테나가 이렇게 거들었다.
“그리고 부대 내의 분열 때문에 아폴론 부대는 외계인과의 전투에서 패배하게 됐지. 더 문제는 패배를 하고 난 후 부대원들의 사기도 떨어졌고, 오히려 더욱 분열이 가속화됐다는 것이다.”
완전히 악순환이구나.
아테나는 아폴론을 흘끗 바라본 뒤 이렇게 덧붙였다.
“아마 이번 기간토마키아가 끝나면 제우스 님께 처벌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부대의 기강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패배까지 하게 된 것은 부대의 대장이자 신으로서 어마어마한 실책일 터.”
“그렇구나. 그런데 아폴론이 왜 나를 저렇게 기분 나쁘게 대하는 거지?”
그러자 아테나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폴론은 자신 부대에서 인간 영웅들을 데려간 그대를 속으로 원망하고 있다.”
그 말을 들은 대규는 깜짝 놀라서 이렇게 대꾸했다.
“뭐라고? 하지만 분명 아폴론이 인간들을 데려가도 좋다고 허락했어.”
“그건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아폴론은 보기보다 속이 좁은 소인배다.”
대규는 고개를 돌려 다시 한 번 아폴론을 바라봤다.
그는 여전히 성난 표정으로 뾰로통해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런 그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좀 쌤통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가 그전까지 얼마나 인간 영웅들을 무시해 왔는지 대규는 잘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흥, 꼴좋군.’
그나저나 인간들이 그전까지 도맡았던 하찮은 일들을 하기 싫다고 병역의 의무를 저버리고 부대 내에서 분열을 일으키다니.
저 아폴론 녀석의 부대 영웅들도 참 성격에 문제가 많은 것 같았다.
‘아무리 자존심이 강해도 그렇지, 전시 상황 아닌가! 하긴, 부대를 지휘하고 있는 저 아폴론 녀석의 성격도 그와 비슷하니 필연적인 걸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부대 영웅들의 성격이나 성향은 그들을 지휘하고 있는 신의 모습과 비슷해지는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번엔 아프로디테가 말을 이었다.
“다행히 제우스 님이 지원군을 보내 구해 줬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아폴론은 아마 지금쯤 심연의 결계에 갇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레스는 또 왜 저러는 거야?”
대규는 이번엔 아폴론 옆에서 역시 심통 난 표정을 짓고 있는 아레스를 보며 물었다.
그러자 아프로디테는 경멸하는 듯한 표정으로 흥, 콧방귀를 뀐 뒤 이렇게 말했다.
“뻔하지 않은가. 욱하는 성질에 외계인 부대를 처리하겠다고 나갔다가 된통 당한 거지, 뭐. 정말 머리도 근육으로 이뤄진 멍청한 신이다.”
폭언을 퍼붓는 아프로디테를 보고 대규는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잠깐, 아프로디테, 그렇게 말해도 괜찮은 거야? 아레스는 너의 애인 아닌가?”
그 말에 그녀는 표독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차갑게 툭 내뱉었다.
“저 머저리는 더 이상 내 애인이 아니다. 이번 전투에서 패한 걸 보고 너무 한심해서 내가 뻥 차 버렸다.”
아프로디테는 일부러 큰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아레스가 들으라고 그렇게 말한 것 같았다.
그 말을 들은 아레스의 표정은 사정없이 굳어졌지만,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아프로디테는 대규를 향해 생글생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저런 무식한 남자는 싫다. ‘누구’처럼 싸움도 잘하고, 냉철한 남자가 좋다고나 할까…….”
그러면서 야릇한 눈빛을 지어 보이는 게 아닌가!
지영이 빙의됐었던 발키리 처녀 전사보다 더욱 도발적인 눈빛이었다. 그 모습을 본 아테나가 참을 수 없다는 듯 주먹으로 테이블을 쾅, 내려치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신성한 중앙 신전에서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가.”
그때 타이밍 좋게 제우스가 등장했고, 원탁에 둘러앉은 신들은 모두 고개를 숙여 그를 맞이했다.
제우스는 원탁의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첫 번째 전투는 다들 끝낸 것 같구나. 나와 나의 아우들인 하데스, 포세이돈도 크로노스의 부하들로 구성된 티탄 신족들을 상대하느라 애를 먹었다. 물론 티탄 신족들을 완전히 박멸하려면 아직도 몇 번의 전투가 남아 있지만 말이다.”
그 말을 들은 대규는 티탄 신족과의 전투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대규는 고개를 슬쩍 들어 제우스를 바라보았다.
신들의 왕 제우스가 티탄 신족을 상대로 전투하는 광경을 보고 싶었다. 과연 신들의 왕인 제우스의 전투력은 얼마나 될까?
‘신들의 왕이니까 어마어마하겠지.’
제우스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전투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둔 신도 있었고… 실망스러운 결과를 보여 준 신도 있었다.”
그는 뛰어난 성과란 말을 하면서 대규를 바라보았다.
반명 실망스러운 결과란 말을 하자 아폴론은 고개를 푹 숙였고, 아레스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어쨌든 다음 전투에서도 좋은 결과가 있길 바란다. 특히 그대들이 징표를 걸고 했던 내기는 나와 포세이돈, 하데스도 눈여겨보고 있다.”
그러자 제우스의 옆에 앉은 저승의 신 하데스가 검은 머리를 찰랑거리며 껄껄 웃었다.
“허허! 새로운 전쟁의 신이 태어나면 이 하데스가 보상을 주도록 하겠다. 저승 세계에는 신기한 아이템들이 아주 많다는 걸 그대들도 잘 알고 있을 터이니.”
그 말에 아레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 외쳤다.
“그만하십시오! 새로운 전쟁의 신이라니요!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그러자 하데스는 싸늘한 목소리로 아레스에게 말했다.
“전투에서 패배한 녀석이 꼴에 전쟁의 신이라고 자존심은 부리는군. 그대는 그대의 아버지인 제우스 님께 부끄럽지도 않느냐!”
그 말에 할 말을 잃은 아레스는 다시 자리에 앉아 고개를 숙였다.
대규는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통쾌해했다.
‘키야, 완전 팩트 폭행이군!’
그때 제우스가 모든 2세대 신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하나 덧붙일 것이 있다. 그 내기에서 최종적으로 이긴 자는 전쟁의 신 칭호만 받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 말에 모든 신의 귀가 솔깃해지기 시작했다.
전쟁의 신 칭호만 받게 되는 게 아니다?
제우스는 2세대 신들의 눈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을 이었다.
“그렇다. 이건 나와 포세이돈, 하데스가 공동으로 상의해 결정한 것이다. 자신에게 할당된 외계인 부대를 누구보다도 빨리 섬멸하고, 나머지 한 외계인 부대까지 먼저 섬멸하는 자는 전쟁의 신 칭호뿐만 아니라 방금 하데스가 말한 대로 저승의 진귀한 아이템을 선물 받을 것이다. 그리고…….”
‘그리고?’
“그 신에겐 최후에 벌어질, 나와 하데스와 포세이돈이 함께 싸우는 티탄 신족과의 최후 전투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그 말을 들은 2세대 신들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리고 그 최후의 전투엔… 바로 이 기간토마키아의 모든 원흉이자 나의 아버지인 크로노스가 참여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