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6
246화 주샤콘 (5)
“그럼 지영 대장군님, 비행을 시작합시다.”
“네.”
말을 마친 지영과 라이펑은 날개를 퍼덕이며 마지막 구르게스 녀석의 상층부로 올라갔다.
그들에게 양팔을 잡힌 존 역시 하늘 위로 올라갔다.
대규는 그 모습을 만족스럽다는 듯 보고 있다가 고개를 돌리며 생각했다.
‘나 역시 저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팔자 좋게 바라보고만 있어선 안 된다. 혼자라도 와이드 프로텍팅 스킬을 연마해야 한다.’
전투 상황에서도 존에게 도움을 받아서는 안 된다.
대규는 손을 뻗어 평원의 땅을 향해 와이드 프로텍팅 스킬을 써 봤다.
땅바닥에는 크고 작은 돌멩이들이 있었다.
‘아군이 아니라 이런 사물에도 쓸 수 있을까? 내가 의지만 보인다면?’
한번 해 보기로 했다.
그러자 손에서 희미하게 빛줄기가 나왔다.
자신이 스킬을 쓰고 싶다고 아군으로 인식하고 쓰면 그 어떤 대상에게도 쓸 수 있는 것 같았다.
빛줄기가 여러 갈래로 갈라졌고, 각각의 돌멩이들을 둘러싼 방어 결계가 형성됐다.
크기는 작았지만, 이번에도 아까와 똑같은 9개의 결계였다.
돌멩이들이 둥둥 떠오르기 시작했고, 대규는 방어 결계들을 한 마리의 구르게스 근처로 가져갔다.
구르게스 근처에 가자 돌멩이들에 거센 돌풍이 불어닥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돌멩이들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방어 결계의 효과였다.
‘이번엔 잘된 건가?’
하지만 그것도 잠시, 굳건했던 돌멩이들의 방어 결계를 돌풍들이 파고들기 시작했다.
결국 결계들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계가 유지될 수록 대규의 마나가 온몸에서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크윽!”
대규는 다시 한 번 정신을 결계들에 집중했다.
그러자 돌멩이들을 둘러싸고 있던 결계들이 단단해지면서 안정을 되찾았다.
“휴우… 이 정도까지만 하자.”
대규가 스킬을 멈추자마자 방어 결계막이 사라졌고, 돌멩이들은 순식간에 돌풍 안으로 휘말려 들어갔다.
확실히 구르게스의 돌풍은 엄청난 위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저런 돌풍을 막아 낼 수 있는 나의 와이드 프로텍팅 스킬도 엄청나군. 다시 연습해 보자. 이번엔 결계의 개수를 늘려서 10개로 해 보자.’
영웅들이 구르게스 소용돌이 내부 안에서 열심히 전투 훈련을 벌이고 있을 때 대규는 와이드 프로텍팅 스킬을 열심히 연습하기 시작했다.
“헉헉…….”
약 몇시간 후, 323명의 영웅은 10마리의 구르게스를 쓰러뜨렸다.
물론 지영, 라이펑, 존의 팀은 다른 영웅 팀들보다도 훨씬 발리 구르게스를 쓰러뜨리고 쉬는 중이었다.
세 명의 실력은 역시 다른 영웅들에 비해 월등했다.
지영은 전투를 마친 후 놀란 표정으로 존에게 말했다.
“존 님은 실력이 엄청나군요. 놀랐습니다.”
“아닙니다. 황송합니다, 대장군님.”
전투 훈련을 마친 다른 영웅들의 모습은 몹시 피곤해 보였다. 구르게스는 확실히 저번에 훈련했던 아기 바사탄들보다 훨씬 강력한 상대였다.
아기 바사탄을 상대하는 데는 10명 남짓으로 구성된 팀이면 충분했지만, 구르게스는 그의 세 배가 되는 인원이 팀을 이뤄 싸워야만 했다.
하지만 구르게스를 한번 해치우고 나자 영웅들은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대규는 전투 훈련을 마치고 모인 영웅들 앞에 서서 말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앞으로도 훈련에 열심히 임해 주세요. 나도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훈련을 마친 영웅들은 다들 현실로 돌아갔다.
이제 주둔지엔 대규 혼자 남아 있는 상태였다.
대규는 주둔지의 지휘사령부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자신은 이곳에 혼자 남아 할 일이 있었다.
지휘사령부 천막 안은 아무것도 없어서 휑했다.
‘신의 왕좌… 이제 그걸 만들 때야.’
대규는 이 사령부천막 한가운데 자신만의 왕좌를 놓고 싶었다. 이제 계속 미룰 수는 없었다.
‘다음 전투까지도 왕좌가 없다면…….’
만약 다음에 제우스가 찾아왔는데 왕좌가 없어서 저번처럼 서 있게 된다면 정말 민망할 것 같았다.
신들의 아버지를 천막 안에 우두커니 세워 놓다니.
이번에도 대규는 사실 당황스럽고 부끄러웠다.
그리고 자신도 이제 왕좌에 앉아서 신답게 영웅들을 호령하고 싶기도 했다.
‘지난번에 생각했던 것처럼, 의식의 대장간에서 왕좌도 만들 수 있을까?’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무슨 재료로 어떻게 만들어야 하지?
왕좌를 만드는 건 황금 상자를 만드는 것과 달랐다.
황금 상자는 단순히 신이 영웅에게 주는 보상을 담는 상자에 불과했지만, 왕좌는 신의 인장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아이템 중 하나였다.
대규는 최대한 개성 있게 만들고 싶었다.
‘인장은 내가 직접 선택해서 만든 게 아니었다. 하지만 이것은 그럴 수 있어.’
마음 같아선 특이한 재료를 구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재료는 어떻게 구해야 할까?’
지난번 황금 상자를 만들었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 상자를 만들었던 재료는 동그란 황금 구체, 신의 황금이었다.
‘의식 속에서 황금 상자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니까 신의 황금이 나타났지. 이번에 왕좌를 만들 재료도 의식 속에서 상상하면 나타나려나?’
대규는 일단 눈을 감고 의식의 대장간에 들어갔다.
[의식의 대장간에 입장하셨습니다.]
눈앞에 메시지창이 떴고, 대규는 전에 황금 상자를 만들었던 곳에 도착해 있었다.
하지만 의식의 대장간은 텅텅 비어 있었다.
망치나 도구, 작업대는 있었지만 왕좌를 만들 수 있는 재료들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신의 황금을 머릿속에 떠올렸던 것처럼 의식을 집중해서 재료를 부르면 재료가 나타날까?
그렇다면 어떤 재료로 왕좌를 만들고 싶은지부터 생각해야 했다.
대규는 다른 신들의 왕좌를 떠올려 봤다.
헤르메스의 왕좌는 번쩍이는 황금이었고 아테나의 왕좌는 올리브 나무 열매가 그 재료였다.
‘그리고 아레스의 왕좌는 고약한 시취(屍臭)를 풍기는 해골들이었지… 그건 별로 따라 하고 싶지 않다.’
우선 자신의 인장을 떠올려 봤다.
검붉은 작은 불길이 찍혀 있었다.
‘불길이라… 그래, 그것이 나를 상징하는 것이지. 그렇다면 왕좌를 불길로 제작해 보면 어떨까?’
불타오르는 왕좌!
상당히 멋있을 것 같았다.
대규는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검붉은 불길을 떠올렸다.
타탁.
곧 불씨가 타오르는 소리가 들렸고, 작업대 한가운데서 검붉은 불길이 서서히 피어올랐다.
눈을 뜨고 대장간의 작업대를 보니 검붉은 불길이 타탁거리는 소리를 내며 타고 있었다.
대규는 그 불길에 손을 대 봤다. 하지만 전혀 뜨겁지 않았다.
‘이곳은 현실이 아니라 의식 속의 세계니까, 이 불길 역시 의식일 뿐이다. 그래서 뜨겁게 느껴지지 않는 것일지도 몰라.’
오히려 뜨뜻미지근한 느낌이었다.
잘됐다. 이러면 불길을 이용해 도구로 왕좌를 조형하기 쉬워진다.
곧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신의 의식 속에서 형상화된 신의 불길(Fire of god)입니다. 신만이 오직 이 불길을 가공하고 만질 수 있습니다.]
‘이 불길로 왕좌를 만들 수 있을까?’
황금 같은 금속과 달리 불길은 단단한 형체를 지니고 있지 않다. 눈앞에서 일렁일 뿐이다.
‘하지만 메시지창에선 신만이 불길을 가공하고 만질 수 있다고 했다. 분명 방법이 있을 거야.’
그리고 대규는 불길로 이뤄진 외계인 크투가를 떠올렸다.
녀석도 분명 불길이지만, 어쨌든 팔다리와 머리가 달린 생명체 비스름한 형태를 지니고 있긴 했다.
우선 대장간에 있는 도구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저번에 황금 상자를 만들면서 질리도록 두들겨 댔던 망치였다.
대규는 정신을 집중한 뒤 단 한 가지만 생각했다.
나는 나만의 왕좌를 만들고 싶다.
나는 나만의 왕좌를 만들고 싶다.
그러자 망치를 든 손이 푸른빛을 띠기 시작했다. 플로우 상태에 진입한 것이다.
눈앞의 불길을 망치로 두들겨 왕좌로 만들어야 된다는 생각만이 대규의 뇌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작업대 위에서 일렁이던 불길이 단단하게 응집되기 시작했다.
꼭 불길이 고체로 굳어지는 것 같았다.
불길은 얼마 후 정육면체의 단단한 물질 형체로 압축됐다.
정육면체의 주사위 형태로 일렁이는 불길은 그전보다 훨씬 색도 짙어졌고, 타오르는 기세도 맹렬했다.
대규는 정육면체의 불길을 향해 망치질했다.
깡!
망치가 불길을 통과하는 대신 부딪히며 굉음을 냈다.
‘됐다! 이렇게 되면 왕좌를 만들 수 있다. 정말 신기한걸!’
깡! 깡! 깡!
대규는 플로우 상태를 유지하며 망치질을 열심히 해 댔다.
정육면체였던 불길은 이제 대규의 망치질이 이끄는 대로 그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휴…….”
대규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그의 눈앞에는 목욕탕 의자같이 생긴 낮은 의자가 하나 만들어져 있었다.
‘물론 검붉은 불길이 타오르는 목욕탕 의자지만…….’
대규는 못마땅하다는 듯 의자를 바라봤다.
‘흐음, 이건 왕좌치고 너무 높이가 낮지 않나?’
게다가 표면은 울퉁불퉁 튀어나와 있었고, 높낮이도 일정치 않았다.
잠깐 앉아 보니 자세도 불편했고, 엉덩이도 아팠다.
대실패였다.
‘뭐… 이 정도는 예상했다. 황금 상자를 처음 만들었을 때도 만만치 않게 괴작을 만들었지.’
대규는 목욕탕 의자를 작업대 옆 한편에 놔뒀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집중해 신의 불길을 불러냈다.
아무래도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았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이 의식의 대장간에서 아무리 시간을 흘려보내도 판테온의 세계와 현실의 시간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대규의 망치질이 의식의 대장간에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기나긴 노력 끝에 대규의 왕좌가 만들어졌다.
“됐다!”
대규는 만족한 얼굴로 자신이 만든 왕좌를 흡족하게 바라봤다.
화르르륵-
그것은 손잡이가 달린 거대한 왕좌였다. 등받이엔 검붉은 화염이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발을 디딜 수 있는 발 디딤판도 존재했다.
왕좌 전체를 감사고 있는 불길은 꼭 고급스러운 레드 벨벳 같았다.
대규는 자신이 만든 왕좌에 앉아 봤다.
자세도 편했고, 심지어 붉은 불길들이 엉덩이를 부드럽게 감싸는 느낌이 아주 좋았다.
“이 정도면 됐다. 하지만 뭔가 아쉬운 것 같은데…….”
분명 만족스럽긴 했는데 2% 부족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정확히 무엇이 부족한진 알 수 없었다.
대규는 찝찝한 기분을 안고 작업대에 자신이 들고 있는 망치를 내려놓았다.
망치를 내려놓자마자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신의 왕좌가 완성됐습니다. 신의 징표를 왕좌에 부여합니다.]
그 순간,
콰쾅!
굉음과 함께 왕좌의 등받이 한가운데 인장이 찍혔다.
붉은 불길을 품고 있는 그 인장은 바로 대규의 것이었다.
등받이에 황금빛으로 찍힌 대규의 인장은 불길 속에서 환한 황금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대규는 그제야 만족했다.
이제 정말로 자신만의 왕좌가 완성됐다는 실감이 났다. 부족했던 2%가 채워진 것은 물론이었다.
‘아니, 10%… 20%는 더 채워진 것 같다! 저 불길과 불길 속에서 빛나는 내 인장이라니!’
대규는 이 기세를 몰아 전략을 짜거나 계획할 테이블도 만들기 시작했다.
전략 테이블은 다른 신들의 주둔지 지휘사령부 천막에 가면 항상 있었다.
테이블 역시 자신이 만든 신의 불길로 만들었다.
왕좌를 만들며 별의별 시행착오를 겪은 탓인지 테이블을 만드는 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젠 망치질을 하는 데도 익숙해졌고, 테이블의 형태를 잡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대규는 그렇게 전략 테이블을 만들었다.
널따란 직사각형에 단단한 다리를 지닌 테이블이었는데, 그곳에 라이펑, 지영과 둘러앉아 전략을 짜면 좋을 것 같았다.
‘지영과 라이펑뿐만 아니라 다른 영웅 중 뛰어난 사람들을 장군으로 뽑아 다 같이 모여 전략을 짜면 좋겠어.’
대규는 지난번 판테온 중앙 신전에서 원탁에 둘러 모여 앉아 있었던 제우스와 신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꼭 아서 왕과 원탁의 기사들 같고 좋잖아. 그럼 이제 왕좌랑 테이블도 완성됐겠다, 의식의 대장간에서 나가자.’
눈을 번쩍 뜨자 방금 전까지만 해도 분명 대장간에 있었는데 이제 그는 홀로 주둔지 지휘사령부 천막 안에 있었다.
지휘사령부 천막 한가운데로 다가간 뒤 자신이 만든 물건들을 불러냈다.
[의식의 대장간에서 만든 신의 왕좌와 테이블을 물질화하겠습니까? Yes/No]
Yes.
화르르륵-
엄청난 불길이 지휘사령부 천막 안을 휩싸고 돌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