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4
244화. 주샤콘 (3)
다음 날, 대규는 영등포 본사 사무실에 출근했다.
준섭이 그의 사무실에 들어와 향후 미국 진출에 대해 간략한 브리핑을 했다.
말이 간략한 브리핑이었지 사실 그 안에 담긴 내용은 몹시 많았다.
준섭이 넘긴 파일엔 미국에 대규식품 지사를 세우고 현지 인력을 어떻게 채용할 것인지, 현지 마케팅은 어떤 전략으로 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 수두룩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대규는 그 많은 내용들을 훑어본 뒤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이거 엄청난데요. 일본과 중국에 진출할 때와는 스케일이 완전 다른 것 같습니다.”
그러자 준섭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젠 가까운 아시아가 아니라 저 바다 건너편 미국에 정착하는 것이니까요. 미국은 확실히 스케일도 크지만, 아시아권과 식문화 등이 달라 리스크가 있습니다. 그에 대비해 준비할 것이 많은 것이죠.”
하지만 파일에 적혀 있는 일은 너무 많았다.
이 모든 것을 다 진행하면서 미국 진출을 하려면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대규는 준섭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부사장님, 마침 저에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예? 그게 뭡니까, 사장님?”
대규는 준섭에게 자신의 계획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가 지난밤 열심히 생각한 계획이었다.
대규의 계획을 들은 준섭의 눈동자가 커졌다.
“…정말로 그렇게 하자는 말씀이십니까?”
“네. 제 계획대로 하면 부사장님이 할 일도 줄어들고, 동시에 미국 진출도 훨씬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건 그렇긴 하지만…….”
준섭은 말꼬리를 흐렸다. 대규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제가 야심차게 생각한 방안입니다. 저도 이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물론 이 계획은 미국의 드래곤 익스프레스 측도 찬성해야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좀 있다가 드래곤 익스프레스의 대표 존과 화상 통화를 하려고 합니다. 그쪽이 이 계획에 찬성한다면 진행하려고 하는데요.”
대규의 확고한 눈빛을 본 준섭은 결국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탕꼬와 대규식품에 합류한 이후 대규가 저런 눈빛을 보이며 추진한 사업들은 항상 대박, 아니 초대박을 쳤다.
“알겠습니다. 그럼 사장님께서 일단 존 대표와 이야기해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준섭이 나가자마자 대규는 재빨리 미국의 존에게 화상 통화를 걸었다.
미국과 한국의 시차는 13시간.
지금 전화를 하면 그쪽은 저녁 시간이다.
‘오후에 전화해서 새벽에 존이 전화를 받게 하면 그만큼 민폐가 없다.’
아무리 존이 자신 부대의 부하라지만 그런 민폐는 끼치고 싶지 않았다.
대규가 화상 통화를 걸자 커다란 모니터 화면에 존의 얼굴이 커다랗게 나타났다.
대규는 그에게 손을 흔들며 반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존, 안녕하십니까? 오랜만… 아니 헤어진 지 12시간도 지나지 않았군요.”
화면 너머 인사를 건네자 존은 놀란 얼굴로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대규 님 아니십니까? 대체 어쩐 일로…….”
대규는 화면 너머 보이는 존의 모습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나저나 판테온의 세계에서 봤을 때와는 확연히 다르군.’
판테온의 세계에서 봤던 존은 짧은 머리에 갑옷을 입고 온몸에 자잘한 상처를 지니고 있는 탓에 꼭 과격한 전사 같았다.
현실 세계에서도 군인 같은 직업이 어울릴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화면 너머에 있는 존은 슈트를 멀끔하게 차려입고 짧은 머리도 무스로 단정하게 넘긴 것이 정말 완연한 대기업 CEO의 모습이었다.
‘물론 저 얼굴에 난 수많은 상처는 판테온의 전투에서 얻은 것들이겠지만.’
그리고 저 상처들을 얻은 대신 그만큼 어마어마한 보상을 판테온에서 가져와 자신의 회사 드래곤 익스프레스를 단기간에 빠르게 성장시켰을 것이다.
대규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존이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대규 님, 대체 무슨 일이십니까?”
내 정신 좀 봐. 불러 놓고 이야기를 하나도 안 하다니.
대규는 정신을 차리고 존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저희 쪽 부사장과 일전에 컨택을 한 적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제 회사인 대규식품의 미국 진출 건에 관련된 일 말입니다.”
그러자 긴장으로 굳었던 존의 얼굴이 살짝 피기 시작했다.
존은 대규에게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건 미스터 전준섭 부사장과 잘 얘기를 했습니다. 저와 우리 회사는 대규 님의 회사와 탕수육 치킨 식당의 미국 진출을 있는 힘을 다해 도울 겁니다.”
“저도 압니다. 준섭 부사장에게 향후 계획과 현재 진행 과정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문제라도……?”
“진행 과정이 너무 복잡한 것 같아서요. 그리고 미국에 처음 진출하려니 이것저것 고려해야 될 게 많더군요.”
“그렇습니까…….”
대규는 존의 얼굴을 똑바로 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나는 존, 당신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 당신에게 이렇게 직접 현실에서 전화한 겁니다.”
존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대규를 바라보며 물었다.
“무슨 제안이신지……?”
대규는 비장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는 당신과 당신의 회사 드래곤 익스프레스에게 저희 대규식품 식당들의 미국 지역 라이선스를 팔고 싶습니다.”
그 말을 들은 존의 눈동자가 커졌다.
존은 입을 떡 벌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대규식품 식당들의 미국 지역 라이선스를 드래곤 익스프레스가 획득한다?
생소해 보이는 일이지만 사실은 국제적 단위의 사업에선 종종 일어나는 일이었다.
한 회사가 타국에 진출할 경우 보통은 그 회사가 타국 현지에 직접 진출을 해 본사 건물을 세우고 관리를 하는 게 일반적이다.
현지에 진출해 장사가 잘될 경우, 훨씬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사가 타국 현지의 경영에 별관심이 없거나 수익에 대한 기대감이 덜할 경우 회사의 브랜드 혹은 상품의 라이선스를 현지 기업에 팔고 모든 경영을 그에 맡기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그 회사의 브랜드 상품과 그에 관련된 사업들은 타국 현지 기업이 총괄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본사는 거의 개입을 하지 않는다.
인력 채용이나 마케팅도 현지 기업이 하고 요식업 식당의 경우 메뉴 개발까지 독자적으로 할 수 있다.
물론 그렇게 되면 현지에서 발생하는 수익은 현지의 기업이 대부분 갖게 된다.
본사는 단순히 라이선스만 파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나름 양측 다 장점이 있다.
요식업 식당의 경우 본사가 타국에 직접 진출할 경우 무조건 본사에 있는 메뉴만 팔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본사의 메뉴들은 타국에서 생소한 음식으로 여겨져 사업 리스크가 커진다.
특히 완전히 문화가 다른 아시아 식당이 서구권 국가에, 혹은 서구 식당이 아시아 국가에 자리 잡을 때엔 그런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현지 기업이 라이선스만 획득해서 사업을 하면 현지 입맛에 맞게 자유롭게 메뉴 개발이 가능해 그러한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옛날 한국에 피자헛이 처음 들어왔을 때가 좋은 예다.
1985년 당시 동신식품이란 국내 회사가 피자헛의 한국 지역 라이선스를 얻어 이태원동에 첫 피자헛 1호점을 개설했다.
당시 피자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매우 생소한 음식이었고, 한국인의 정서와 입맛에 잘 맞지도 않았다.
그래서 동신식품은 피자를 ‘외국의 고급 음식’으로 마케팅을 해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사실 피자는 미국에선 매우 서민적인 음식인데 말이다.
그리고 불고기 피자 등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피자 메뉴도 개발하기 시작하면서 피자헛은 한국에서 엄청나게 히트 치기 시작했다.
이 경우는 상당히 혁신적인 경영 사례였다.
타국에 진출한 회사도 자신들의 식당 브랜드를 널리 알리는 데 성공했고, 현지의 기업 동신식품도 큰 수익을 얻어 성공했다.
대규가 존에게 제안하는 것도 바로 이런 것이었다.
존의 드래곤 익스프레스가 그 옛날 동신식품처럼 대규식품의 식당들에 대한 라이선스를 산 뒤 운영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대규식품에선 미국 현지 진출을 위한 인력 채용, 마케팅 전략, 지사 설립에 드는 비용 등을 줄일 수 있었다.
그리고 드래곤 익스프레스에선 현지인들에게 맞는 기호대로 탕꼬와 기타 메뉴들을 개발해 팔 수 있고, 그에 따른 수익을 가져갈 수 있다.
대규는 드래곤 익스프레스의 메뉴 개발 실력에 대해선 의심치 않았다.
이미 드래곤 익스프레스는 중국 요리를 미국식으로 개발해 큰 히트를 이뤄 낸 바가 있다.
‘그러니까 탕수육 치킨과 양꼬치, 양갈비 등도 미국인들 입맛에 맞게 잘 개발하겠지.’
그리고 대규식품 역시 여러 수고와 비용을 줄이는 것과 별개로 엄청난 성공을 이룰 수 있다.
수익은 물론 덜하겠지만 드래곤 익스프레스 덕분에 미국에서 탕꼬와 신지 양꼬치 등이 잘 자리 잡고 미국인들 머릿속에 이 식당들에 대한 인식이 잘 박힌다면?
그땐 다른 서구권 나라에 본사 진출을 할 수 있는 기반이 잡히게 된다.
현재 서구권에선 탕꼬를 비롯한 대규식품의 식당들이 잘 먹힐지 아직 모르는 상태다. 한마디로 사업 리스크가 크다는 뜻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드래곤 익스프레스의 도움(?)을 받아 서구권 사람들에게 대규식품의 식당들을 널리 알려 사업 리스크를 줄인 뒤 그 뒤에 다른 나라들에 직접 지사를 세워 진출하면 된다.
‘그편이 훨씬 리스크가 줄어. 그리고 아직 진출할 국가들은 많이 남았다!’
이러한 대규의 제안을 들은 존은 화면 너머에서 얼떨떨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아… 그렇게 해주신다면 저는 좋습니다. 하지만 대규님…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저는 미래를 보고 투자를 하는 겁니다.”
그러자 존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미국에서 잘 자리 잡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자 대규는 엄격한 목소리로 존에게 말했다.
“그런 약한 소리 하지 마세요. 저는 당신을 믿습니다. 사실 존, 당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드래곤 익스프레스의 오너였다면 이런 제안을 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네?”
“나는 이번 샤우그너 판 전투에서 당신이 보여 줬던 능력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군을 살리기 위해 힘썼던 그 마음도요. 그 마음을 우리 대규식품의 미국 진출에서도 잘 보여 줄 거라 믿고 있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존이 고개를 숙이며 제안을 받아들이자 대규가 말을 이었다.
“그럼 이제 그쪽은 밤이 다 됐겠군요. 모쪼록 푹 쉬십시오. 그래야 곧 있을 훈련에 잘 참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군요.”
그리고 대규는 존을 보며 이렇게 덧붙였다.
“참, 그리고 당신의 염동력 스킬은 잘 개발해 두시길 바랍니다. 아무래도 이번 훈련부턴 당신의 염동력 스킬이 꼭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러자 존은 대규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체 이번엔 무슨 훈련이길래……?”
그러자 대규는 씨익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건 이따가 훈련 장소에 와 보면 알게 될 겁니다. 그럼 이따가 뵙겠습니다.”
말을 마친 뒤 화상 통화를 끊었다.
존에게 성공적으로 제안이 먹혔다. 이제 이걸로 미국 진출은 한결 더 수월해졌다.
‘그나저나 미국 현지에 맞는 음식 메뉴 개발이라면… 뭐가 있지?’
대규는 자신의 탕수육 치킨과 양갈비, 양꼬치가 미국식 음식으로 바뀌는 걸 상상해 봤다.
‘흐음, 탕꼬 피자? 탕꼬 햄버거? 에이, 너무 1차원적인 생각이야. 그래도 존은 나름 미국식이지만 중화요리 음식점 프랜차이즈의 대표인데… 알아서 잘 개발해 주겠지.’
생각을 마친 대규는 준섭을 불러 방금 전 존과의 화상 통화 내용을 알려 줬다. 존이 대규의 제안을 수락했다고 말하자 준섭은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습니까? 그럼 계약을 맺으러 당장 미국으로 떠나겠습니다!”
“그렇게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부사장님.”
준섭은 신난 표정으로 대규의 사무실을 나섰다.
이로써 대규식품의 미국 진출이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대규는 이제 사흘 후부터 있을 주둔지의 훈련 장소에서 실시할 훈련에 대해 생각하기로 했다.
‘이번 훈련은 영웅들뿐만 아니라 나 역시도 약간 고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