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2
242화. 주샤콘 (1)
이 녀석마저 제일 먼저 처리하고 제우스에게 가면 마지막 외계인 부대를 해치울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다.
그 마지막 외계인 부대까지 해치우면 대규는 그토록 갖고 싶어했던 판테온 전쟁의 신 칭호를 얻어 낼 수 있었다.
두 번째 양피지를 펴자 다음과 같은 정보가 적혀 있었다.
[주샤콘(Zushakon)]
[검은 소용돌이 형체의 외계인으로 어두운 곳에서만 등장하며 녀석이 등장하면 온도가 뚝 떨어지고 커다란 날개를 퍼덕거리는 듯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곧 소용돌이 형체의 주샤콘이 나타나 주변을 덮친다. 부하들 역시 크고 작은 소용돌이 형체를 지닌 외계인이며, 휘몰아쳐 적들을 단번에 공격한다.]
[주샤콘의 폭풍을 맞으면 모든 생명체는 눈에 엄청난 가려움을 느끼고 자신의 눈을 뽑아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실제로 참지 못하고 자신의 눈을 뽑아 버리는 자들도 있다.]
‘눈을 뽑아 버리고 싶게 만든다고? 이건 또 웬 미친 외계인인가.’
대규는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그러고는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영웅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다들 수고 많았습니다. 이제 현실로 돌아가도 좋습니다. 새로운 훈련은 사흘 후 밤부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막 전투가 끝났는데 사흘 후부터 다시 훈련이라니.
좀 힘든 스케줄인 것 같지만, 대규로선 쉴 틈이 없었다.
빨리 할당된 외계인 부대를 해치워야 전쟁의 신 칭호를 받을 수 있다.
곧 영웅들의 모습이 하나둘 사라졌고, 어느새 주둔지엔 대규 혼자 남아 있었다.이제 제우스에게 받았던 백색 상자의 보상을 확인할 때였다.
‘그리고…….’
대규는 휑하니 비어 있는 지휘사령부의 천막 내부를 바라보았다.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신이 앉아 있을 왕좌도 없었고, 전략을 짜고 계획할 테이블도 없었다. 그냥 빈방과도 같은 공간이었다.
‘신의 왕좌라… 그래도 하나 있어야겠지.’
자신은 없어도 괜찮다 해도 오늘처럼 제우스가 이곳에 찾아왔을 때 그를 막연히 세워 둘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파베르에게 왕좌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해 볼까? 잠깐만…….’
대규는 의식의 대장간을 떠올렸다. 혹시 그 대장간에서 자신의 왕좌도 직접 만들어 형상화할 수 있지 않을까?
의식의 대장간은 모든 걸 만들고 현실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나중에 한번 해 보자. 일단 지금은 백색 상자의 보상부터 확인하자구.’
대규는 보관함에서 제우스가 하사했던 백색 상자를 꺼냈다.
상자를 열자 빛이 뿜어져 나왔고, 그곳에는 스킬 비석이 들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제우스가 여태껏 대규에게 하사했던 보상들은 다 스킬이었다.
몸을 자유자재로 늘릴 수 있는 플렉서블 바디와 회복 스킬 시나티오가 그랬다.
‘왜 스킬들만 보상으로 내리는 걸까? 이유를 알 수 없군.’
비석에는 역시 알아볼 수 없는 고대 언어가 적혀 있었다.
일단 무슨 스킬인지 확인하기 위해선 이 스킬을 먼저 익히는 수밖에 없었다.
스킬을 익히겠다는 의지를 보이자 비석 안쪽에서 빛이 새어 나오면서 비석이 쩌억 갈라졌다.
촤아악-
곧 대규는 새로운 스킬을 익혔다. 보유 스킬란을 확인하니 새로운 스킬이 추가돼 있었다.
와이드 프로텍팅(Wide protecting)-거대한 결계를 쳐서 아군들을 보호하는 실드 스킬. 이동 결계와는 다르다. 결계 속 아군들을 공중에 떠오르게 할 수도 있어 추락하는 아군들을 막아 주며 적군의 공격도 당연히 막을 수 있다. 지속 시간 1초당 마나 소모량 100.
‘이것은……!’
대규는 이번 전투에서 샤우그너 판이 썼던 결계의 모습을 기억했다.
녀석이 발 구르기로 전쟁터의 행성 표면을 박살 내 놨을때 아군 영웅들은 표면의 틈 속으로 추락했지만 쵸쵸들은 샤우그너 판이 만든 결계 안에 들어가 안전히 보호를 받았다.
‘그 결계를 스킬로 만든 거구나!’
이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부대의 영웅들을 위해 쓸 수 있는 스킬이었다. 만약 이 스킬이 있었다면 이번 전투에서 더욱 신속하게 아군들을 추락으로부터 구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마나 소모량이 좀 들긴 하는군.’
현재 대규가 지닌 마나량은 4,000 남짓. 초당 마나 소모량이 100이면 초작 40초 안팎으로밖에 유지할 수 없는 스킬이었다.
‘그래도 그게 어디야!’
전시 상황이란 1초, 혹은 찰나의 순간에 목숨이 왔다 갔다 할 정도로 절체절명의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40초는 몹시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나저나…….’
대규는 스킬을 완전히 익힌 후 다시 한 번 양피지에 적인 몬스터의 정보를 바라보았다.
주샤콘이란 녀석은 설명이 아주 끔찍했다. 소용돌이 형체에 자신의 눈알을 뽑아 버리고 싶은 충동을 들게 하는 몬스터는 여태껏 본 것도 없었다.
‘소용돌이라면 특정한 신체가 없다는 것인데, 크투가랑 비슷한 유형의 외계인일까?’
세계수 나무 꼭대기에서 처음 맞닥뜨렸던 외계인 크투가 역시 인간형, 짐승형 외계인이 아닌 불꽃으로 이뤄진 외계인이었다.
‘흐음… 하지만 이런 녀석들을 대비해서 영웅들을 어떻게 훈련시켜야 할까?’
이 소용돌이 외계인 주샤콘이 부하들 역시 소용돌이 형태의 몬스터라고 했다.
하지만 대규가 지닌 소환의 반지에 녀석들과 그나마 비슷한 유형은 크투가뿐이었다.
크투가는 나름 외계인 보스 몬스터였다. 지영과 라이펑이 힘을 합쳐야 겨우 쓰러뜨릴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녀석이다.
‘그런 보스 몬스터를 영웅들에게 훈련용으로 내놓을 순 없지. 그리고…….’
대규는 양피지에 적혀 있는 내용을 보며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여기에 적혀 있는 내용들은 너무 부실하다. 약점이나 뭐 그런 것들도 나와 있지 않아.’
물론 대규처럼 공략집을 지니고 있지 않은 다른 판테온의 신들에겐 이 양피지의 정보 내용만으로도 감지덕지할 수준이었다.
하지만 대규는 그 수준이 달랐다.
그에겐 차원의 틈 시절부터 함께해 온 공략집이 있었다.
공략집은 양피지보다도 더욱 세세한 정보를 제공했다. 몬스터의 특징과 보유 스킬, 그리고 공략 영상과 약점까지 자세히 보여 줬다. 심지어 해치우면 나오는 보상마저도 알려 줬다.
‘차라리 이럴 거면 적진에 홀로 몰래 침투해 주샤콘의 공략 정보를 습득하고 올까?’
그리고 간 김에 녀석의 부하 몬스터들을 조금만 잡아 와서 영웅들을 훈련시킬 용도로 이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럼 영웅들 역시 전투를 할 때 처음 보는 몬스터라고 당황하지 않고 더욱 잘 싸울 수 있겠지.’
그리고 자신은 미리 상대할 보스 몬스터의 공략 정보를 습득해 오니 당연히 보스전 역시 수월할 것이었다.
실로 완벽한 계획이었다.
대규는 양피지 아래쪽을 봤다. 그곳엔 주샤콘의 부대가 어디에 있는지, 주둔지의 장소가 어딘지 판테온의 언어로 적혀 있었다.
현실로 돌아가기 전 지금 당장 이곳에 잠깐 들르기로 했다.
곧 포탈이 눈앞에 열렸고, 대규는 옵티뭄과 함께 그 안으로 들어갔다.
대규가 도착한 곳은 황량한 벌판이었다.
휘이이잉-
바람이 거세게 불어닥쳤고, 땅은 메말라 있었다. 메마르다 못해 군데군데 가뭄이 난 듯 쩍쩍 갈라져 있었다.
땅 위엔 썩은 나뭇가지들과 나뭇잎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꼭 죽은 땅 같군. 그런데 여기가 주둔지라고?’
대규는 일단 옵티뭄을 타고 하늘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투명 망토로 자신의 모습을 감춘 뒤 지상의 풍경을 관찰했다.
하늘 위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더욱 황량했다.
‘잠깐, 저게 뭐지……?’
썩은 나뭇가지와 나뭇잎 말고 다른 것들도 보였다.
그것은 뼈다귀들이었다!
뼈다귀들이 수북이 쌓여 벌판 위에서 거대한 언덕을 이루고 있었다.
자세히 바라보니 인간의 것으로 추정되는 해골들이 쌓여 있었다.
‘기분 나쁜 적진이군.’
대규는 한참 동안 옵티뭄을 몰고 벌판 위를 날아다녔다. 하지만 허허벌판만 펼쳐져 있을 뿐 적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분명 적들은 소용돌이 형체의 외계인이라 했는데, 어딜 봐도 소용돌이 폭풍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흐음, 대체 어디 있는 거지?’
공략집으로 지도창을 열어 봐도 붉은 점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어두워?’
대규는 주변을 둘러보며 생각했다. 물론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도 이곳은 좀 어두운, 퀴퀴한 분위기의 벌판이었다.
그런데 옵티뭄을 타고 날면 날수록 자신의 주변이 더욱 어두워지고 있었다.
단순히 하늘만 어두워지는 게 아니었다.
땅과 하늘, 이곳의 공간 그 자체가 어두워지는 느낌이었다. 누군가가 이 공간에 까만 페인트를 들이붓기 시작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냥 내 느낌 탓인가? 아니다. 분명…….’
이대로 가면 정말 먹물처럼 컴컴해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것만 같았다.
‘할 수 없지.’
대규는 허리춤을 더듬어 불카누스의 벼락검을 꺼냈다. 악마의 화염을 불러내 눈앞을 밝히기 위해서였다.
화르륵-
벼락검을 꺼내 화염을 일으켜 앞을 밝히는 순간,
휘이이이이잉-!
“으왓!”
거센 돌풍이 전방에서 불어오기 시작했고, 대규는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뭐야, 갑자기?’
거센 돌풍에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그때 지도창에 붉은 점 수십 개가 생성되기 시작했다.
저 앞쪽에서 크고 작은 소용들이들이 대규를 향해 접근해 오고 있었다.
‘여태까진 가만히 있더니 갑자기 왜 저래? 설마…….’
대규는 여전히 불길을 발하고 있는 자신의 벼락검을 바라봤다.
이 불길을 보고 달려드는 것인가?
휘이이잉-
소용돌이들은 맹렬한 기세로 대규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저게 뭐야?’
소용돌이들의 돌풍 표면에 빼빼 마른 영웅들의 얼굴이 돋아나 있었다. 인간 영웅뿐만 아니라 다른 정령 종족 영웅들의 얼굴도 보였다. 그 얼굴들은 빼빼 마르고 해골에 회반죽을 칠해 놓은 것처럼 퀭한 느낌이었다. 살아 있다기보단 죽어 있는 미라 같은 느낌이었다.
‘설마 저 소용돌이 외계인이 잡아먹은 것일까?’
곧 공략집이 떠올랐다.
-차원의 틈 공략집-
몬스터 이름: 구르게스(Gurges)
보상: 태풍의 눈
특징: 주샤콘이 부하로 두고 있는 새끼 소용돌이들. 평소엔 어둠 속에 형체를 숨기고 있다가 빛을 발견하면 바로 공격을 가하기 시작한다. 상대방을 돌풍에 휩쓸리게 해 소용돌이에 가두고 죽을 때까지 기력을 쪽쪽 빨아먹는다.
보유 스킬: 돌풍-강력한 돌풍을 일으켜 단번에 상대방을 소용돌이 안쪽으로 끌어들인다. 마나 소모 300.
<구르게스에 대한 공략(하급)을 습득했습니다.>
<구르게스에 대한 당신의 공격력이 10% 상승합니다.>
<구르게스로부터 아이템을 습득할 확률이 조금 높아집니다.>
<구르게스의 약점을 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영상을 재생하시겠습니까? Yes/No>
이런.
공략집에 적힌 내용을 보아하니 정말 대규의 벼락검 불길을 보고 녀석들이 공격을 가하기 시작한 것 같았다.
대규는 재빨리 불카누스의 벼락검을 허리춤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벼락검의 불길이 사라지며 다시 새카만 암흑이 찾아왔고, 구르게스의 모습도 보이지 않게 됐다.
심지어 좀 전까지 들렸던 맹렬한 돌풍 소리도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녀석들의 공략 영상을 봐야겠다.’
이곳에서 적어도 저 녀석들을 열 마리 이상은 해치우고 소환의 반지에 담아 가서 영웅들의 훈련용으로 써야 할 테니까 말이다.
대규는 구르게스의 공략 영상을 눈앞에서 재생시켰다.
녀석들은 인간형, 혹은 짐승형 몬스터가 아니었으므로 약점 역시 머리나 경추, 심장 부위가 아니었다.
약점은 바로 태풍의 눈, 이라는 부위였다.
‘태풍의 눈이면 분명 녀석들을 해치우면 나오는 보상 아닌가?’
아무래도 그 약점이 곧 보상과 같은 것 같았다.
태풍의 눈이란 태풍이나 허리케인 등 열대성 저기압의 중심부에 나타나는 맑게 갠 무풍지대를 뜻하는 말이었다.
한마디로 저 구르게스 녀석의 소용돌이 안쪽, 한가운데 부위를 말한다.
공략집에 따르면, 그곳은 전혀 돌풍도 불지 않고 평화로운 곳이라 했다.
‘그 무풍지대를 공격하면 녀석은 쓰러진다. 하지만 저 무시무시한 돌풍을 뚫고 들어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