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1
241화. 승리와 보상 (3)
대규는 지영을 제외한 나머지 영웅들에게 보상으로 줄 장비들을 고른 뒤 그가 만든 황금 상자에 채워 넣었다.
하지만 여전히 지영에게 줄 보상이 문제였다.
그녀의 실력은 이미 세미데우스 중에서도 거의 최상급이었다.
전설 등급 무기를 이미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빙의 스킬을 이용해 전투를 했던 그녀의 공적은 이번 전투에서 가장 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대장군으로서 대규의 명을 잘 따라 첫 전투를 훌륭히 완수하고 자신이 없을 때 대신 영웅들을 지휘한 일도 고려해 그녀에겐 정말 좋은 보상을 챙겨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가 지니고 있는 쌍검은 이미 전설 등급 무기야. 갑옷도 그렇고…….’
여기에 있는 무기들로는 그녀의 성에 차지 않을 것 같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그때 대규의 눈에 한 장비가 들어왔다.
그것은 자그마한 날개였다.
총 두 쪽으로 한 쌍의 날개였는데 날개 한 쪽은 대규의 손바닥만 했고 은은한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천사들, 혹은 대규의 말 옵티뭄이 겨드랑이에 달고 있는 깃털 달린 날개의 형태가 아니었다.
대신 숲의 요정이나 정령들이 달고 있을 법한, 투명한 유리같이 생긴 얇은 날개였다.
만지자 바스락거리는 촉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얇다고 해서 쉽사리 찢어지거나 하진 않았다.
대규가 그 날개를 집어 들자 설명 창이 떠올랐다.
[정령의 날개(전설)]
[자유롭게 탈부착이 가능하며 이 날개를 달고 있으면 공중을 자유롭게 날 수 있고 순간 이동도 가능하다. 민첩 +50 상승.]
‘호오, 이거 꽤 쓸 만할지도?’
대규는 지영이 스킬을 써서 공중을 난다는 걸 기억했다.
이 날개를 지니고 있으면 이제 마나를 소모해서 날 필요가 없다.
물론 지영이 현재 쓰고 있는 하늘을 나는 스킬은 예전에 비해 마나 소모량이 그리 위협적이진 않았다. 그녀도 예전에 비해 레벨업을 많이 한 상태니까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전쟁의 축복과 발키리 여신 빙의 스킬이다.
그 두 스킬은 마나 소모량이 엄청나다. 그리고 부대끼리의 대규모 전투에선 필수적으로 필요한 스킬들이었다.
‘그녀가 그 두 스킬들을 쓰는 것에 마나를 집중하는 게 낫다. 하늘을 나는 스킬에 마나를 소비하게 할 수는 없지.’
이 정령의 날개를 그녀가 지니고 있으면 하늘을 날 때 마나를 소모할 일이 없다. 그럼 그만큼 마나 소모의 부담을 줄여 줄 수 있을 것이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상당히 유용할 것이다. 마나란 건 조금씩 조금씩 당연한 듯 쓰다 보면 어느새 텅텅 비어 있기 마련이다.
‘게다가 민첩성도 높여주고 순간 이동도 할 수 있으니.’
대규는 정령의 날개를 마지막 황금 상자에 채워 넣었다.
이로써 10개의 황금 상자에 모두 보상이 들어갔다.
헤르메스의 장화를 이용해 라이펑, 지영이 있는 샤우그너 판의 적진으로 돌아갔다.
적진의 감옥으로 돌아왔을 때 라이펑은 대규가 아스클레피오스의 신전에서 데려온 아홉 명의 산모들의 기억까지도 모두 지운 상태였다.
여자들은 모두 기억을 잃고 잠들어 있었다.
“그럼 이들을 이제 현실 세계로 되돌려 주면 될 것 같군요.”
대규는 말을 마친 뒤 현실 세계로 통하는 포탈을 열었다.
곧 거대한 포탈이 생성됐다. 사람 10명은 한 번에 너끈히 들어갈 법한 크기의 포탈이었다.
“이 포탈로 여성들을 집어 넣으면 그녀들은 각자 살고 있던 곳으로 가게 됩니다. 그녀들을 포탈 안으로 옮겨 주세요.”
대규가 명을 내리자마자 영웅들은 쓰러져 있는 여자들을 포탈 안으로 밀어 넣었다. 곧 그녀들의 몸이 포탈 안으로 빨려가듯 사라졌다.
이제 그녀들이 눈을 뜨면 이곳에서 있었던 끔찍한 기억은 잊어버리고 평소처럼 생활하게 될 것이다.
‘다행이군.’
대규는 마지막 여자가 포탈 안으로 들어가는 걸 확인한 뒤 포탈을 닫았다. 그리고 323명의 영웅에게 말했다.
“그럼 이걸로 모든 전투가 끝났군요. 이제 주둔지로 돌아갑시다. 돌아가면 전공에 따른 보상 수여가 있을 겁니다.”
보상이란 말에 영웅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대규가 팔을 휘두르자 323명의 영웅을 둘러싼 투명 이동 결계가 형성됐다.
두둥실- 팟!
곧 이동 결계는 영웅들을 주둔지로 이동시켰다.
결계가 사라졌고 대규는 자신의 지휘 사령부 천막을 향해 걸어갔다. 그런데 익숙한 실루엣이 천막 앞에 서 있었다.
바로 제우스가 기르는 애완 독수리였다.
독수리는 날카로운 발톱을 주둔지 흙바닥에 콱, 박아 넣은 뒤 부리를 움직이며 말했다.
“오셨습니까? 축하드립니다. 가장 먼저 외계인 부대를 물리친 것 말입니다. 제우스 님께서 천막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제우스가 기다리고 있단 말에 대규는 헐레벌떡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제우스가 천막 한가운데 서 있었다.
그는 대규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대는 이곳에 아직 권좌를 만들지 않았구나.”
대규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권좌란 지휘 사령부 천막에 있는 신들이 앉는 의자였다. 아테나의 권좌는 올리브 나무로 이뤄져 있었고 헤르메스의 권좌는 황금으로 이뤄져 있었다.
‘그리고 아레스는 해골들이 주렁주렁 달린 시체 썩은 내가 나는 의자였지.’
하지만 대규는 영웅들을 모아 부대를 창설한 뒤 권좌를 만들 틈이 없었다. 주둔지에 오고 영웅들을 모으자마자 그들을 훈련시키기 바빴다.
지휘사령부 천막 안에서 팔자 좋게 앉아 있을 틈이 없었다.
대규는 여전히 고개 숙인 채 제우스에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 불찰입니다.”
그러자 그는 미소를 지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다. 그건 그대가 이곳에 엉덩이 붙일 시간도 없을 만큼 열심히 훈련했기 때문이겠지. 나는 그대의 훈련을 지켜봤다. 그리고 그대의 전투도.”
“감사합니다.”
“희한한 훈련이었다. 외계인 몬스터들을 구해 올 줄이야. 자세한 건 묻지 않겠다.”
그 말에 대규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맞아, 제우스가 모든 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할 수 있다는 걸 왜 까먹고 있었을까.
제우스는 분명 대규의 반지에서 나온 아기 바사탄들을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대규는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제우스의 눈을 보자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제우스는 대규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부드러운 목소리와 달리 눈빛은 몹시 엄격했다.
그는 대규를 향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어쨌든 그대의 전투는 아주 훌륭했다. 그대 부대의 영웅들은 내 별이 내린 축복을 받았을 터.”
대규는 전투가 끝나자마자 하늘의 별에서 빛줄기가 내려왔던 걸 기억했다. 그리고 분명 메시지 창에서 제우스가 축복을 내렸다고 했던 것도 기억했다.
“그대가 신 중 제일 먼저 할당된 외계인 부대를 섬멸했다. 다음 전투에서도 제일 먼저 섬멸해 주길 바란다. 그럼 이제 전투를 치른 것에 대한 보상이 있어야겠지.”
제우스가 손가락을 딱 튕기자 백색의 상자가 허공에 둥둥 떠올랐다.
그전까진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대규는 이제 그 상자를 유심히 살펴봤다.
‘제우스 신도 이 상자를 자신의 의식의 대장간에서 직접 망치질해 만든 걸까?’
그의 백색 상자는 상당히 정교했고 훌륭한 퀄리티였다. 인장도 상자 한가운데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자신이 만든 삐뚤빼뚤 황금 상자보다 월등하게 나았다.
대규가 백색의 상자를 받아들자마자 제우스는 대규 바로 뒤에 서 있는 지영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대의 전투도 아주 감명 깊게 잘 봤다. 세미데우스에 여성 영웅이지만 실력은 엄청나더군. 그대 역시 판테온의 신들이 주목하고 있다. 더욱 열심히 전투해 주길 바란다.”
“화, 황송합니다…….”
지영은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했다. 대규와 달리 그녀는 신들의 왕 제우스와 이렇게 둘만의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저렇게 떨릴 만도 했다.
제우스는 지휘 사령부 천막 밖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그럼 다음 전투에서도 수고해 주길 바란다. 나는 하데스와 포세이돈을 도와 티탄 신족들을 막으러 가야 해서 이만.”
그는 천막을 벗어난 뒤 자신의 애완 독수리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대규는 일단 제우스가 자신에게 하사한 백색 상자를 열어보지 않기로 했다.
아테나 여신과 다른 신들도 그랬다. 그들은 백색 상자를 받았지만, 부하들이 보는 곳에서 그 상자를 열어 보지 않았다.
부하들에게 먼저 보상을 내리고 부하들을 현실 세계 혹은 판테온의 세계로 돌려보낸 뒤 열었던 것 같았다.
‘왜냐면 백색 상자 안의 내용은 신이 아닌 다른 존재들은 볼 수 없기 때문이지.’
그것이 아무래도 판테온의 법도인 것 같았다.
대규는 일단 제우스에게 받은 백색 상자를 보관함에 넣어 뒀다.
그리고 영웅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대들은 아주 훌륭하게 잘 싸워 줬습니다. 이것은 그대들이 쵸쵸족을 물리치고 얻어낸 각자의 보상입니다.”
대규가 손을 휘두르자 골드 등급 젬스톤들이 각각 영웅들의 손안에 떨어졌다.
그것은 그들이 해치운 만큼 할당된 양이었다.
영웅들이 쵸쵸족을 해치우고 얻은 젬스톤은 바로 이곳 주둔지로 전송됐다. 그리고 전투가 끝난 후 이렇게 배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골드 등급 젬스톤을 본 영웅들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인간 영웅에서 단기간의 훈련을 거쳐 세미데우스가 된 자들이었다. 따라서 골드 등급 젬스톤은 그전의 인간 영웅 시절엔 본 적도 없었다.
기껏해야 블랙 등급 젬스톤을 본 게 전부였다.
“히야아! 젬스톤이 금색이야! 이런 건 처음이다.”
“흐어억! 이게 대체 현금으로 환산하면 얼마야…….”
여기저기서 감탄하고 있는 영웅들을 바라보며 대규가 말을 이었다.
“그럼 이제 이번 전투에서 특별히 공적을 많이 세운 영웅들에게 내리는 특별 보상이 있겠습니다. 총 10명을 뽑았습니다. 호명하는 영웅들은 앞으로 나와주길 바랍니다.”
대규는 10명의 영웅 이름을 차례로 불렀다. 그들은 대규 앞으로 나왔다.
우선 존을 포함한 8명의 세미데우스들에게 대규는 자신이 의식의 대장간에서 공들여 만든 황금 상자를 건넸다.
그들은 각자 상자 속의 무기를 확인하고는 뛸 듯이 기뻐했다.
“전설 등급이잖아!”
“감, 감사합니다. 신이시여…….”
8명은 무기를 받고 자리로 돌아갔다. 이제 지영과 라이펑의 차례였다.
라이펑 역시 황금 상자 속에 들어있는 날카로운 장검을 보고 매우 만족스러워 했다.
마지막으로 지영의 차례였다.
대규는 지영을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포장이 좀 부끄럽습니다. 이해해 주세요, 지영 대장군님.”
지영에게 할당된 상자는 자신이 맨 처음 만든 찌그러진 황금 상자였다. 솔직히 상자라기보단 울퉁불퉁한 대야에 가까웠지만 말이다.
그 상자를 본 지영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푸훗!”
그녀는 기분 좋게 실소를 터뜨렸다. 그러다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린 걸 깨닫고는 대규 앞에서 엄청난 불찰을 저질렀다고 생각해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상자 속에 든 날개를 본 그녀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녀는 넋이 나간 듯 빛을 발하고 있는 투명 날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우와아… 아름답다.”
대규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
“앞으론 마나 소모 없이 하늘을 날 수 있을 겁니다. 한번 등 뒤에 달아 보세요.”
대규의 명령에 지영은 정령의 날개를 자신의 등 뒤에 달았다.
푸득- 푸드득-
날개가 경쾌한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투명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정령의 날개를 단 그녀의 모습은 그야말로 아름다운 정령 그 자체였다.
대부분의 남자 영웅들은 넋 놓고 그녀의 모습을 바라봤다.
라이펑 역시 입을 떡 벌린 채 지영에게 중얼거리듯 말했다.
“대장군님, 아름답습니다…….”
그 말을 들은 지영은 부끄러운지 고개를 돌려 버렸다.
대규는 영웅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자, 이제 보상 수여는 끝났습니다. 그럼 다음번 전투까지 열심히 훈련해야겠지요. 다음번 전투에서 상대할 외계인이 아직도 남아 있으니까요.”
훈련이란 말에 영웅들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대규는 제우스로1부터 받은 두 번째 양피지를 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