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0
240화. 승리와 보상 (2)
그러고 보니 아테나 여신은 항상 보상으로 황금 선물 상자에 아이템이나 장비들을 담아서 줬었다.
‘그렇다면 황금 선물 상자도 만들어야 하나?’
난생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보상을 내릴 생각을 하니 고려할 것이 많았다.
‘으으. 이런 건 공략집이 안 알려 주나?’
그때 마침 공략집의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영웅들에게 보상으로 내릴 장비나 아이템들은 판테온의 대장간에 있는 수석 대장장이 파베르로부터 구할 수 있습니다.>
<영웅들에게 보상으로 내릴 장비나 아이템이 담긴 황금 상자의 제작법 역시 수석 대장장이 파베르에게 배울 수 있습니다.>
그렇구나.
이런 건 전투 시작하기 전에 미리미리 준비했어야 하는 건데.
주둔지에 돌아가자마자 공적을 세운 영웅들에게 보상을 내려야 했다.
‘그럼 시간이 없다. 지금이라도 빨리 판테온의 대장간에 가서 보상을 내릴 아이템과 황금 상자 제작법을 알아와야겠어.’
대규는 대장군인 지영에게 말했다.
“지영 장군님, 저는 잠깐 판테온 광장에 다녀오겠습니다. 볼일이 있어서요. 제가 다녀올 때까지 다른 영웅들과 함께 이곳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럼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말을 마친 대규는 판테온의 광장으로 향했다.
…….
대규는 판테온의 상업 지역에 있는 대장간에 다가가며 생각했다.
‘후우, 신이 된다는 건 이런 복잡한 일들도 다 해야 한다는 거구나.’
단순히 전투에서만 이기는 게 전부가 아니었다. 영웅들의 사기도 진작시켜야 했고 그들이 세운 공적에 맞는 보상도 준비해 놔야 했다.
‘리더라도 다 마냥 편한 게 아니었어. 어쩌면 리더가 제일 힘든 직책일지도 몰라.’
대규는 헤파이스토스의 오픈 대장간 안으로 들어섰다.
오늘도 수석 대장장이인 파베르는 멋진 근육을 뽐내면서 망치질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대규가 다가가자 그는 망치질을 멈추고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대규 님? 설마 벌써 첫 번째 전투를 끝마치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대규 님 실력으론 분명 승리하셨을 것이 분명하고… 그렇다면… 하아! 영웅들에게 보상으로 내릴 아이템과 황금 상자 제작법 때문에 오셨겠군요.”
“그걸 어떻게?”
그러자 파베르는 씨익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번 전투는 대규님이 신이 되고 처음으로 치르는 부대 전투 아닙니까? 따라서 대규님은 당연히 보상을 담을 황금 상자 제작법을 모를 수밖에요.”
“맞습니다.”
대규가 고개를 끄덕이자 파베르는 대장간 한쪽에 있는 창고를 가리키며 말했다.
“흐음… 영웅들에게 보상으로 줄 아이템은 저쪽 창고에서 골라 가시면 될 겁니다. 저곳에는 영웅들에게 줄 보상용으로 만든 무기들이 쌓여 있지요. 무기가 아니라 다른 아이템으로 보상을 줄 수도 있지만 역시 영웅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보상은 뭐니 뭐니 해도 강력한 무기지요!”
호오. 보상으로 줄 장비들 역시 대장간에서 만들고 있었구나.
대규는 창고에 가기 전 황금 상자부터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창고에 가는 대신 파베르에게 물었다.
“그것보다 파베르, 황금 상자를 만드는 법을 알고 있습니까? 그것부터 배우고 싶군요.”
“아하, 알겠습니다. 저를 따라오세요.”
대규는 파베르를 따라갔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대장간 뒤의 공터였다.
예전에 대규가 불카누스의 사슬검을 처음으로 만들고 칼의 위력을 시험해 봤던 그 공터였다.
하지만 공터엔 아무것도 없었다.
“뭡니까? 상자를 만들 재료나 도구 같은 것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러자 파베르가 대규에게 말했다.
“에이. 신께서 어떻게 그런 방법으로 상자를 만들려고 하십니까? 신께서는 황금 상자를 고도의 집중력으로 만드셔야 합니다.”
“집중력이요? 아니, 그래도 재료랑 도구는 있어야…….”
“집중력을 발휘하면 대규 님의 의식 속에서 황금 상자를 만들 황금이 천천히 형성되기 시작합니다. 제가 알려 드릴 수 있는 건 의식 속에서 상자를 만드는 순서랍니다.”
“순서요?”
“네. 기억하셔야 할 건 망치질 다음엔 담금질이란 겁니다.”
“망치질 다음엔 담금질이요?”
대규가 파베르에게 물었다. 그건 대장장이들의 기술 아닌가?
파베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맞아요. 저희 대장장이들의 기술이지요. 망치질이란 뜨거운 금속을 망치로 두들겨서 얇게 펴거나 원하는 모습으로 조형하는 걸 뜻하고 담금질은 그 뜨거운 금속을 차가운 물이나 냉기, 저온에 넣어 급랭(急冷)해 금속의 변화를 막는 처리 과정입니다.”
“그런데 그걸 왜 알려 주는 겁니까?”
“신께서 두 눈을 감고 집중 상태에 들어가시면 알게 될 겁니다.”
이야기를 들어도 대체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어진 대규는 파베르에게 말했다.
“파베르, 당신이 시범 좀 보여 주세요. 뭔 소린지 모르겠어요.”
그러자 파베르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죄송하지만 황금 상자는 오직 신만이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상자의 보상이 그토록 권위를 가진 거구요. 전 시범을 보여 드리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답니다.”
대규는 일단 파베르의 지시대로 두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 캄캄한 암흑뿐이었다.
금방 정신을 집중해 초 집중 상태로 돌입했다. 매일 같이 명상 훈련을 한 게 많은 도움이 됐다.
‘이 정도는 껌이지. 플로우 검법도 개발했는데.’
얼마 후 초 집중 상태에 돌입한 느낌이 들었고 대규는 자신의 의지를 발휘했다.
나는 황금 상자를 만들고 싶다.
나는 황금 상자를 만들고 싶다.
그 순간 눈앞의 암흑 속에서 이상한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분명 눈을 감고 있는데……?’
그것은 황금빛의 커다란 구체였다. 꼭 거대한 황금 공 같았다.
곧 공략집의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신의 의식 속에서 형상화된 신의 황금(Gold of God)입니다. 신만이 그 황금을 가공할 수 있습니다.>
신의 황금?
‘지금 이건 내 의식 속에서만 구현된 것 아닌가? 이 황금으로 황금 상자를 만든다고?’
의식에서만 존재하는 비물질적인 것을 현실 세계의 물질로 형상화한다?
한마디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게 만드는 능력이었다.
‘이게 가능해? 이건 완전 신적인 능력이잖아! 아, 맞다. 나 신이었지…….’
대규는 새삼 자신의 능력에 놀랐다.
‘신의 육체는 단순히 남들보다 힘이 더 세고 단단한 강골을 지닌 게 전부가 아니었어.’
어느새 캄캄한 암흑의 시야가 변하기 시작했다.
대규는 처음 보는 공간에 서 있었다. 눈앞에는 망치와 집게 등의 도구들과 거대한 화로가 있는 것으로 보아 대장간인 듯했다.
<이곳은 신만이 입장할 수 있는 ‘의식 속의 대장간’입니다.>
<신은 이곳에서 자신의 부하들에게 하사할 수 있는 황금 상자를 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대장간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규의 의식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었다.
의식 속에서 구현된 공간치고 상당히 사실적이었다.
‘신기하군. 이게 현실이 아니라 내 머릿속에서 구현된 공간이라니.’
대규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의식 속을 이렇게 거닐어 본 적이 없었다. 예전에 아프로디테가 준 스킬로 남의 무의식 속에 침투한 적은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 뭐부터 해야 하지?’
단 한 번도 대장장이 일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때 파베르가 몇 번이고 강조했던 말이 떠올랐다.
‘기억하셔야 할 건 망치질 다음엔 담금질이란 겁니다.’
망치질 다음엔 담금질.
일단 작업대 위에 보이는 망치로 신의 황금을 두들겨 황금상자 모양으로 조형하면 되는 것 같았다.
신의 황금은 작업대 위에 놓여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황금으로부터 뜨거운 열기가 훅 끼쳤다.
‘망치질하기 좋은 상태인 것 같군.’
분명 파베르는 금속이 뜨거울 때 망치질을 해야 한다고 했다.
대규는 오른손으로 망치를 집어 들었다. 망치는 이상하리만치 가벼웠다.
‘현실의 망치가 아니라서 그런가?’
곧 대규는 망치로 신의 황금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깡깡깡!
황금이 모습이 망치질할 때마다 변형되기 시작했다. 대규는 최대한 공을 들여 상자 형태를 만들었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휴…….”
대규는 숨을 내쉬며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닦았다.
자신이 조형한 황금 상자를 집게로 집어 차가운 물이 담긴 단지에 집어넣었다 뺐다.
파배르가 강조했던 담금질이었다.
취이이익-
연기가 피어오르며 뜨거웠던 황금이 식기 시작했다.
하지만 눈앞의 결과물은 처참했다.
“이게 상자야? 으으…….”
나름 황금 상자를 만든다고 만들었는데 그가 완성한 건 삐뚤빼뚤하고 여기저기 툭 튀어나온 이상한 세숫대야 형태였다.
가장자리는 울퉁불퉁하고 거칠었다.
“제길, 이런 상자에 보상을 담아 줄 수는 없잖아. 다시 한 번 만들어 보자.”
대규는 의식을 집중해 다시 한 번 신의 황금을 불러낸 뒤 망치질을 하기 시작했다.
…….
의식의 대장간에서 하루 종일 황금만 두들긴 것 같았다.
대규의 눈앞에는 처음 만들었던 엉망진창 황금 대야를 포함해 10개의 상자가 놓여 있었다.
만들면 만들수록 점점 그럴듯한 상자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되겠지?’
대규는 자신의 인장을 불러내 상자 한가운데를 찍었다.
이것이 바로 신이 내리는 보상이라는 징표!
‘휴우. 이제 완성됐다. 잠깐만! 시간이 얼마나 흘렀지? 거의 하루는 흐른 것 같은데…….’
샤우그너 판의 적진 감옥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영웅들을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두 눈을 뜨자 파베르의 오픈 대장간 공터였다.
대규는 황급히 파베르를 돌아보며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파베르,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거지요?”
그러자 파베르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신께서 눈을 감으신 지 1분도 흐르지 않았는데요?”
“뭐라구요?”
믿을 수가 없었다. 적어도 하루는 꼬박 흘렀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보통 판테온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현실의 시간은 정지해 있다. 그런데 대규의 의식 속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엔 그 판테온의 시간마저 정지해 있거나 매우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정말 신기한 일이군. 그나저나 내가 만든 황금 상자들은 어디 있는 거지?’
그때 눈앞에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의식의 대장간에서 만든 황금상자들을 물질화 하겠습니까? Yes/No]
의식에서 만든 것을 정말로 불러낼 수 있구나.
대규가 Yes를 선택하자 눈앞에서 빛이 일기 시작했다.
고오오-
곧 눈앞에 자신이 만든 황금 상자들이 떠 있었다.
대규는 황금 상자들을 자세히 살펴봤다.
‘정말 내가 의식 속에서 만든 것들이잖아.’
심지어 처음 만든 삐뚤빼뚤한 실패작마저도 그 모양이 똑같았다.
‘이건 정말 사기적인 능력이다. 의식 속에서 만드는 대로 다 물질화시킬 수 있다니…’
그때 옆에서 킥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파베르가 입을 틀어막고 억지로 웃음을 참고 있는 게 보였다.
“왜 그래요, 파베르?”
“흐, 흐흐… 죄송합니다. 대규 님, 하지만 저 황금 상자는… 흐흐…….”
그는 찌그러진 대야처럼 엉망진창인 첫 번째 상자를 보고 웃는 것이었다.
대규는 그의 반응에 살짝 기분이 상해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부터 잘할 순 없잖아요. 파베르가 처음부터 수석 대장장이가 아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저건… 푸흐흐… 대규 님은 싸움엔 엄청난 소질이 있어도 대장장이 일엔…….”
째릿-
대규가 날카롭게 쳐다보자 파베르는 황급히 고개를 숙인 채 입을 다물어 버렸다.
대규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럼 이제 이 상자들에 담을, 영웅들에게 보상으로 줄 아이템들을 가지러 창고에 가 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저희 대장간에 있는 영웅 보상용 무기들을 보관해 둔 창고에 가셔서 골라 가시면 됩니다. 하지만 그 창고에는 전설 등급 무기들밖에 없답니다.”
“그래요?”
“예. 신화 등급 무기를 영웅들의 보상으로 줄 수는 없으니까요. 신화 등급 장비는 신들의 허가가 있어야 특별히 제작할 수 있는 장비이니까요. 그 점을 유의하시고 한번 골라 보십시오.”
“알겠습니다.”
뭐, 어차피 대부분 세미데우스 상태의 영웅들이었다. 전설 등급 무기면 보상으로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지영 대장군은?’
그녀가 지니고 있는 무기와 장비들은 이미 전설 등급 아이템들이었다.
‘적어도 그녀가 지니고 있는 장비보다는 좋은 것으로 보상을 줘야 할 텐데 과연 그런 장비가 저 창고 안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