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7
237화. 샤우그너 판 (5)
콰콰쾅!
쩌저적!
샤우그너 판의 두 발이 행성 표면에 닿는 순간 엄청난 굉음과 함께 돌풍이 몰아쳤다.
그리고 행성의 표면은 강한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순식간에 쩌억 갈라졌다.
행성 전체가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잘 싸우고 있던 대규 부대의 영웅들은 몸의 균형을 잃고 넘어지기 시작했다.
“으아악!”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행성의 표면은 이미 극심한 가뭄이 난 것처럼 쩌억 갈라져 버렸고, 땅의 갈라진 틈으로 추락하는 영웅들도 있었다.
샤우그너 판은 자신의 부하들인 쵸쵸 족들은 갈라진 땅의 틈 사이로 떨어지지 않도록 대규의 투명 이동 결계와 비슷하게 생긴 결계를 쳐서 그들을 무사하게 대피시켰다.
대규는 샤우그너 판을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이 자식…….”
녀석은 그런 대규를 바라보며 기분 나쁘게 히죽 웃었다.
이대로 부대의 영웅들을 추락해 죽게 만들 순 없었다.
안 그래도 대규의 부대는 정예부대로 구성한 만큼 영웅들의 머릿수가 많지 않았다.
여기서 영웅들이 추락사하게 되면 치명적이었다.
‘그리고 내 부대 영웅들은 단 한 명이라도 죽게 만들고 싶지 않아!’
대규는 이를 악물고 땅속으로 빠져 버린 영웅들을 향해 날아갔다.
쩌적!
행성의 표면이 갈라지자마자 팀을 이뤄 싸우던 영웅들은 깜짝 놀랐다.
곧 거센 돌풍이 불었고, 영웅들은 틈으로 추락했다.
“으아악!”
실력이 상위권인 영웅들은 하늘을 나는 스킬을 지니고 있어서 괜찮았지만, 대다수의 영웅은 그렇지 않았다.
영웅들이 땅속으로 추락하는 동안 이동 결계 안에서 안전하게 둥둥 떠다니는 쵸쵸 족은 그런 영웅들의 모습을 만족스럽다는 듯 쳐다봤다.
쵸쵸 족으로선 몹시 잘된 일이었다.
저 인간 영웅들이 땅속으로 떨어지면 나중에 그 안으로 기어 들어가 인간들의 고기를 마음껏 포식하면 될 테니까 말이다.
쵸쵸들은 벌써부터 인간 영웅들의 고기를 포식하는 상상을 하며 입가에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정신 똑바로 차려라! 영웅들이여!”
우렁찬 남성의 목소리가 전쟁터를 가득 메웠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세미데우스 영웅 존이었다.
존은 하늘을 나는 스킬을 갖고 있지 않았지만, 다행히도 땅속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쩍 갈라져서 바위처럼 솟아오른 좁은 땅에 간신히 균형을 잡고 서 있었다.
“흐아압!”
존은 양팔을 들어 앞쪽으로 뻗었다.
그러자 그의 눈동자가 짙은 회색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눈동자의 회색빛은 곧 그의 눈에서 그의 얼굴, 목, 그리고 팔을 따라 그의 손가락 마디마디까지 흘러들어 갔다.
번쩍!
두둥실-
존의 양손에서 뻗어 나간 회색빛이 땅속으로 추락하던 영웅들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곧 추락하던 영웅들의 몸은 추락을 멈추고 갈라진 땅의 틈에 둥둥 떠 있었다.
이것은 바로 존이 지닌 스킬 ‘염동력’의 효과였다.
하지만 이 스킬은 단점이 있었다.
바로 마나 소모량이 어마무시하다는 것이다.
이대로 이 모든 영웅의 추락을 막고 허공에 두둥실 떠 있게 하는 건 대략 30초 정도만 가능했다.
‘아니다. 내 생명력까지 끌어모아서 마나를 다 쏟아부으면 1분은 가능할 것이다. 크으으…….’
존은 힘겹게 염동력을 유지하며 캄캄한 하늘 위를 올려다봤다.
저 멀리에서 번쩍이는 섬광과 요란한 굉음이 들렸다.
바로 샤우그너 판과 자신의 상관 대규가 전투를 벌이고 있는 광경이었다.
곧 섬광이 가시자 저 멀리 말을 타고 있는 대규의 모습이 보였다.
존은 대규를 향해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도와주십시오! 신이시여! 제발 도와주십시오!”
존의 팔뚝이 후들후들 떨렸고, 두 다리의 힘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이제 그의 육체는 한계에 도달한 것이었다.
“끄으으…….”
눈동자에서 흘러나온 회색빛이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고, 그가 허공에 붙잡아 둔 영웅들의 몸은 서서히 아래쪽으로 다시 추락하기 시작했다.
‘이제 끝인 건가…….’
존은 두 눈을 감았다.
그가 체념하듯 눈을 감고 바닥에 무너지듯 주저앉으려는 순간이었다.
“히이잉!”
우렁찬 말 울음소리가 그의 귓가에 파고들었다.
그리고 곧 대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존이여, 그대의 기도는 잘 들었습니다. 제가 올 때까지 힘써 줘서 고맙습니다.”
“신이시여…….”
존은 감명받은 표정으로 대규를 바라봤다. 하지만 대규는 그를 바라보는 대신 재빨리 오른쪽 손목에서 아라크네의 거미줄을 발사했다.
스르르륵-
촤자작-
아라크네의 거미줄은 갈라진 행성의 표면 틈으로 군데군데 스며들어 갔다.
그리고 틈에 떨어진 영웅들의 몸을 놓치지 않고 붙잡았다.
스르륵-
대규의 손목에선 계속해서 거미줄이 발사됐다.
얼마 후 거미줄은 모든 영웅을 붙잡은 뒤 한데 엉키기 시작했다. 거대한 거미줄 뭉치를 형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흐라압!”
대규는 땅의 갈라진 틈 쪽에 있는 거대한 거미줄 뭉치를 들어 올렸다.
거미줄 뭉치가 포물선을 그리며 공중에 튀어 오른 뒤 대규와 존이 서 있는 행성 바닥에 떨어졌다.
쿵!
존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거대한 고치를 보고 입을 떡 벌렸다.
“저 안에 추락한 영웅들이 빠짐없이 들어 있습니다. 한 명도 놓치진 않았습니다.”
대규가 이렇게 말하자 존은 여전히 땅바닥에 주저앉은 채 고개를 숙이고 이렇게 말했다.
“신이시여,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저를 벌하여 주십시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그러자 존이 이렇게 말했다.
“제가 감히 불경하게 대규 님께 도와달라고 요구한 것 말입니다.”
그러자 대규는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 난 또 뭐라고요. 그건 전혀 불경한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는 아군을 살리기 위한 그대의 의지를 잘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대의 염동력 스킬은 정말 대단하더군요.”
대규의 칭찬에 존은 몸 둘 바를 몰랐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대규는 말을 이었다.
“그대가 그 스킬로 영웅들의 추락을 막지 않았다면 나도 손을 쓸 수 없었을 겁니다. 조금이라도 염동력이 빨리 끊겼다면 위험할 뻔했습니다.”
말을 마친 대규는 존의 어깨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
위이잉-
번쩍!
대규의 손에서 하얀빛이 일어났고, 회복 스킬 시나티오가 발동되기 시작했다.
이 스킬은 자신 말고 다른 상대방의 몸도 회복시킬 수 있었다.
덕분에 다 소진됐던 존의 마나와 생명력이 서서히 차오르기 시작했다.
“오, 오오… 감사합니다!”
존은 서서히 채워지는 마나와 생명력을 확인한 뒤 대규에게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그러자 대규는 미소 지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다시 일어나서 싸워 주세요. 저 불경한 코끼리 괴물이 그대들의 전투에 끼어들게 만든 것이야말로 내 불찰입니다. 다시는 저 녀석이 그대들의 전투에 끼어들지 못하게 만들겠습니다.”
어느새 대규가 땅에 강림한 걸 알고 대장군인 지영과 장군 라이펑도 대규가 있는 곳으로 왔다.
라이펑은 대규가 만든 거대한 거미줄 덩어리를 보고 놀라서 물었다.
“대규 님, 이게 뭡니까?”
“방금 전 샤우그너 판이 일으킨 지진으로 땅속에 추락할 뻔한 영웅들을 구한 겁니다. 여기 있는 존이 염동력을 발휘하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부대가 반 이상 전멸할 뻔했어요.”
“…그랬군요.”
대규는 지영과 라이펑에게 이렇게 지시를 내렸다.
“라이펑, 그대는 지영 대장군과 함께 이 거미줄 덩어리를 안전한 곳에 옮긴 뒤 그 안에다 영웅들을 꺼내 주세요. 그리고 전투를 재개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라이펑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깍듯이 숙였다.
그런데 라이펑과 달리 지영은 가만있을 뿐이었다.
대규는 그런 지영의 모습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다.
‘뭐지?’
그러고 보니 평소엔 칠흑같이 검은 그녀의 눈동자가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저 표정은…….’
꼭 아프로디테와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정말 자신이 알고 있는, 그 냉정하고 조용한 대장군 지영이 맞는 걸까?
그러자 라이펑이 대규에게 황급히 말했다.
“대규 님, 지영 장군님은 지금… 빙의 스킬을 쓰고 있으신 상태입니다. 그러니 대규 님께서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빙의 스킬이요?”
“네. 처녀신 발키리 전사 중 하나가 빙의된 상태이지요.”
대규는 그 말을 듣고 다시 지영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제 도발적인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며 붉은 입술 사이로 혀를 살짝 내밀고 있었다.
‘대체 어떤 처녀신 전사이길래 저런 짓을 하는 거야?’
아무래도 만만치 않은 성격의 처녀신 전사인 것 같았다.
대규는 황급히 그녀로부터 고개를 돌린 뒤 라이펑과 존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샤우그너 판을 상대하러 가겠습니다. 여러분도 잘 싸워 주세요. 가자, 옵티뭄!”
“히이잉!”
대규는 말고삐를 당겼고, 곧 옵티뭄은 하늘로 날아올랐다.
한편, 샤우그너 판은 몹시 열이 받은 상태였다.
자신이 발 구르기 스킬까지 썼는데도 적군은 용케 살아남았다. 정확히는 저 빌어먹을 애송이 신 녀석이 이상한 거미줄을 발사해 구해 낸 것이지만 말이다.
열이 오를 대로 오른 그는 자신이 만든 방어 결계 안에 안전하게 있는 쵸쵸 족들을 향해 성을 내기 시작했다.
뿌우우우우-!
샤우그너 판의 노기가 쵸쵸들의 머릿속에 전해졌다.
‘이 멍청한 녀석들! 뭘 잘했다고 결계 안에서 침이나 흘리면서 노닥거리고 있는 거냐!’
노기를 주체하지 못한 그는 자신이 만든 방어 결계를 단번에 깨뜨려 버렸다.
그 바람에 쵸쵸 족은 당황한 표정으로 행성의 표면 바닥에 우수수 떨어졌다.
“#%#!”
놀란 쵸쵸 족이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녀석들은 갈라진 땅에 착착 거미처럼 달라붙었다. 쵸쵸들은 여전히 당황한 표정으로 하늘에 있는 자신들의 상관 샤우그너 판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는 화를 낼 뿐이었다.
‘인간들의 피가 섞여 있어서 그런지, 쓸모없는 녀석들이군! 빌어먹을… 다음번엔 인간 말고 더욱 강력한 종족을 납치해서 부하를 생산해야겠어!’
한편 대규는 이런 샤우그너 판의 속마음을 다 듣고 있었다.
공략집은 판테온의 존재들뿐 아니라 외계인들의 속마음도 다 들려줬다.
‘굳이 듣고 싶진 않았는데… 하지만 정말 이기적인 녀석이군.’
대규는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저 코끼리 괴물 자식은 자신의 편의를 위해 인간들을 납치해 와 쵸쵸들을 생산했다.
그런데 쵸쵸들이 자신의 기대만큼 잘 싸우지 못하자 저렇게 성을 내고 있다.
‘그래도 자신의 부하들인데 저렇게 막말을 하다니. 부하들이 저 말을 듣고 전투에서 잘도 충성을 다하겠군그래.’
군주, 상관으로서 자질이 완전 꽝인 녀석이었다.
그리고 대규는 샤우그너 판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다.
본래 전투에선 보스끼리 싸우는 보스전과 부하끼리 싸우는 전투가 엄격하게 나뉘어 있었다.
보스는 부하들의 전투에 끼어들 수 없는 게 본래의 원칙이었다.
하지만 녀석은 자신의 부하들이 불리해 보인다고 부하들의 전투에 일방적으로 끼어들어 발 구르기 스킬을 시전했다.
그건 룰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저 자식을 이길 것이다. 그리고 적진에 갇혀 있는 인간들도 모두 풀어 주겠어.’
대규는 다시 한 번 플로우 상태에 돌입했다.
곧 오른팔과 불카누스의 벼락검이 푸르게 빛났다.
“레툼 익투스!”
콰직! 콰지직!
화염 벼락을 품은 검광들이 샤우그너 판을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녀석은 예의 어금니를 들이대며 벼락을 막아 냈다. 물론 대규는 쉬지 않고 벼락검을 휘둘렀다.
이제야 그간 홀로 열심히 훈련해 온 플로우 참파 검법이 빛을 발하기 시작할 때였다.
영웅들이 주둔지에서 피똥 싸는 훈련을 할 동안 대규 역시 놀고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그 역시 현실세계에서 매일같이 플로우 검법을 발전시켰다.
그리고 이제야 그 검법을 제대로 써볼 기회가 온 것이다.
“하아압!”
휘리릭! 휘릭!
콰직! 콰지직!
평소 대규는 플로우 검법을 목검으로 연습했다. 헤파이스토스에게 검을 맡겼기도 했지만 현실에서 플로우 상태인데 진검을 휘두르면 세상이 무너질지도 몰랐다.
목검으로 연습한 탓에 여태까진 플로우 검법, 참파의 제대로 된 위력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대규 역시 최초로 자신이 개발한 플로우 참파 검법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