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6
236화. 샤우그너 판 (4)
대규와 샤우그너 판이 하늘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을 무렵, 지영과 라이펑, 그리고 다른 300여 명의 영웅은 아주 침착하게 쵸쵸 족과 전투를 하고 있었다.
지영과 라이펑이 선두에 서서 일단 적진을 뚫고 갔다.
지영이 맨 앞에서 쌍검을 휘두르자 쵸쵸들은 단박에 쓰러졌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이제 기간테스와 대규의 소환 반지에 저장된 외계인 보스 몬스터도 쓰러뜨릴 정도의 실력자였다.
그런 그녀가 이깟 조무래기 외계인 몬스터들에게 발목 잡힐 리는 없었다.
휘릭- 서걱!
쌍검이 움직일 때마다 그녀 주변에서 달려들던 쵸쵸 무리는 사정없이 베어졌다.
하지만 녀석들은 끝이 없었다. 베어도 그 뒤에 숨어 있던 다른 무리들이 지영의 등 뒤에서 달려들기 시작했다.
한 쵸쵸가 그녀의 목덜미에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밀었다. 녀석의 눈빛은 탐욕스럽기 그지없었다. 지영의 탐스러운 하얀 속살을 빨리 베어 먹고 싶다는 욕망이 가득한 눈빛이었다.
그 순간 녀석의 정수리에 날카로운 칼날이 정확히 내리꽂혔다.
“#$%!?”
지영의 목덜미를 노리던 쵸쵸는 고통보다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뒤를 돌아보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칼날은 녀석의 정수리부터 명치까지 좌아악 내리 베어 버렸다.
그뿐 아니라 다른 쵸쵸들 역시 몸이 정확히 두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바로 라이펑이 지영 뒤쪽에서 달려드는 녀석들을 처리한 것이었다.
지영은 자신의 뒤를 보호해 준 라이펑에게 말했다.
“고맙습니다, 라이펑 장군님.”
그러자 라이펑이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이 정도는 기본 아닙니까, 대장군님. 우리는 그 빌어먹을 외계인 보스 몬스터 녀석들과도 싸웠는데요, 뭘.”
“그렇죠. 그럼 라이펑 장군님은 제 후방을 맡아 주세요.”
“알겠습니다.”
지영과 라이펑은 영웅들의 선두에 서서 최상의 콤비 플레이를 펼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대규의 훈련 기간 동안 항상 둘이서 함께 기간테스 미마스를 포함한 외계인 보스 몬스터들을 상대해 왔다.
그들의 합은 매우 잘 맞았다. 그리고 이 조무래기 외계인 쵸쵸 족을 상대하는 건 그들에게 애들 장난 수준이었다.
‘그래도 외계인이니까 심한 장난이라고 해 두자.’
지영은 이렇게 생각한 뒤 이를 악물고 적진을 뚫기 시작했다.
단순히 이 녀석들을 해치우기만 해서는 안 됐다. 지영과 라이펑은 다른 영웅들과 달리 대규에게 추가로 받은 명령이 하나 더 있었다.
“지영, 라이펑 장군님, 제가 샤우그너 판을 상대하는 동안 쵸쵸 족을 물리치고 적진에 갇혀 있는 인간들을 구해 주십시오.”
대규가 출산 의식에서 구해 온 아홉 명의 여자의 증언에 따르면, 적진엔 그녀들처럼 현실에서 납치돼 갇혀 있는 여자들이 많이 존재한다고 했다.
단순히 전쟁에서 이기는 것뿐만 아니라 그녀들 역시 구해 내야 했다.
하지만 쵸쵸 족들은 끊임없이 튀어나왔다.
애초에 쵸쵸 족과 대규 부대의 머릿수는 너무 차이가 났다.
지영과 라이펑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쵸쵸 족의 머릿수는 대략 3,000명 정도였다.
이는 아군의 약 10배에 해당하는 숫자였다.
‘하지만 라이펑 장군님과 내가 저 녀석들의 능력보다 몇 배는 위에 있다!’
지영은 이를 악물고 쌍검을 휘두르며 생각했다.
그리고 다른 영웅들 역시 이젠 완연한 세미데우스의 육체를 지닌 영웅이었다.
그들은 예전의 훈련 초반에 팀을 짜서 조무래기 외계인 한 마리를 힘겹게 쓰러뜨리던 실력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제 한 명이 조무래기 외계인 3명을 한꺼번에 상대할 정도의 실력은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전투 전 지영은 그들에게 버프 스킬을 걸어 줬다.
‘차분하게 전투를 진행한다면 우리에게 훨씬 승산이 있다! 빨리 녀석들을 쓰러뜨리고 적진에 갇혀 있는 납치된 인간들을 구해야 해.”
지영과 라이펑은 선두에 서서 열심히 쵸쵸 족을 베었다.
자신들의 뒤에 달려올 영웅들을 위해 선두에서 이 녀석들을 최대한 해치우고 힘을 빼 놔야 했다.
하지만 10배가 넘는 머릿수는 무시할 게 못 됐다.
지영은 라이펑을 돌아보며 외쳤다.
“라이펑 씨, 잠깐 뒤로 빠져 계세요!”
그러자 그는 단박에 그녀의 말을 알아들었다.
저건 그녀가 자신이 지닌 ‘그 어마어마한 스킬’을 사용하겠다는 신호였다.
“알겠습니다.”
라이펑은 군말 없이 하늘 위로 올라갔다.
그러자 그와 전투를 벌이던 쵸쵸 족들이 마구 하늘을 향해 점프하며 라이펑을 잡으려 했다.
녀석들은 맛있는 인간 고기를 놓치게 돼서 아쉽다는 듯 입맛을 쩝쩝 다시고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쵸쵸들은 비행 능력이 없어 라이펑을 붙잡지 못했다.
이제 녀석들은 땅에 서 있는 지영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인간 여자!
그들이 제일 좋아하는 식사 메뉴였다.
쵸쵸들은 지영을 향해 탐욕스럽게 침까지 질질 흘리며 달려들었다.
앞으로 자신들에게 닥칠 끔찍한 운명은 전혀 예견하지 못한 채로 말이다.
지영은 쵸쵸들이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걸 봤지만, 쌍검을 휘두르지 않았다.
단지 두 눈을 감고 서 있을 뿐이었다.
번쩍-
파아앙!
그때 눈부신 섬광이 그녀의 몸으로부터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세미데우스의 육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은백색 빛보다 10배는 찬란한 빛이었다.
“#[email protected]%!”
그 모습을 본 쵸쵸들은 놀라서 다가오다가 주춤했다.
그리고 눈이 부셨는지 양팔로 두 눈을 가리기 시작했다.
엄청난 기운이 지영으로부터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 순간 지영이 서 있는 곳 위의 컴컴한 하늘에서 뭔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빛으로 만들어진 한 여성의 모습이었다.
여성은 마차를 타고 지영의 몸을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특이하게도 고양이들이 마차를 끌고 있었으며, 마차에 탄 여성은 단단한 갑옷에 날개가 달린 투구를 쓰고 기다란 장검을 오른손에 들고 있었다.
곧 마차를 탄 빛의 여성은 하늘 아래 있는 지영의 몸으로 다가가 흡수가 됐다.
번쩍!
섬광이 사라졌고, 지영이 두 눈을 천천히 떴다.
그녀의 눈동자는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쵸쵸들은 이제 눈부신 빛이 사라지자 다시금 탐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지영에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맨 앞쪽에서 선두로 달려가던 쵸쵸가 걸음을 멈췄다.
흠칫.
뭔가 이상했다.
좀 전까지만 해도 눈앞의 여자는 분명 맛있는 인간의 육체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저 여자는 달랐다.
저건 인간의 육체가 아니었다.
그 순간 지영의 입가에 매혹적인 미소가 감돌았다.
매혹적이지만 잔인한 미소였다.
평소 그녀의 모습이 아니었다.
쵸쵸들이 멈칫하는 틈을 타 지영은 그들에게 달려가 쌍검을 무자비하게 휘둘렀다.
휘릭- 휘리릭-
그 순간 그녀의 두 쌍검으로부터 원형의 파장이 거세게 뿜어져 나왔다.
“@#@$!”
파장 안에 휩쓸린 쵸쵸들은 기괴한 신음을 내뱉으며 단번에 쓰러져 버렸다.
지영은 쓰러진 녀석들의 모습을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녀의 얼굴엔 거부할 수 없는 색기(色氣)가 흐르고 있었다.
할짝.
그녀는 붉은 입술 틈으로 혀를 내밀어 자신의 쌍검날을 요염하게 핥았다.
확실히 평소의 그녀라면 보이지 않을 법한 모습이었다.
라이펑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다시 봐도 정말 무시무시하군. 빙의형 스킬이라니…….’
라이펑은 그녀의 저 스킬을 마지막으로 주둔지에서 훈련할 때 봤다.
그때 그녀와 자신은 대규가 풀어놓은 외계인 보스 몬스터 때문에 고생하고 있었다.
외계인 보스 몬스터는 신의 육체를 지닌 대규도 나름 힘들게 전투를 해야 하는 몬스터였다. 그러니 고작 세미데우스인 지영과 라이펑이 쉽게 잡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훈련 마지막 날 지영은 새로운 스킬을 익혀 주둔지에 나타났다.
좀 전에 나타난 빛의 여성이 지영의 몸속으로 흡수되자마자 그녀는 확연히 달라져 외계인 보스 몬스터를 맹렬히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쌍검을 휘두를 때마다 방금 전의 파장이 펑펑 뿜어져 나왔다.
‘바로 저것이 전쟁의 여제 발키리(Valkyrja) 빙의 스킬이다!’
발키리란 신들의 왕을 모시는 처녀 전사, 혹은 처녀 신들이었다.
여러 처녀 여성 전사들로 구성된 집단이었는데, 지영에게 빙의한 발키리는 그중에서도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여전사 프레이야(Freyja)였다.
그 위력을 처음 본 라이펑은 입을 떡 벌린 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훈련 후 대체 저런 스킬을 어디서 구한 겨나고 지영에게 묻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판테온의 시련을 겪고 세미데우스의 육체를 얻자마자 운명의 여신들이 줬어요. 내가 인간 여성으로선 최초로 세미데우스가 된 영웅이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이 스킬은 마나 소모량이 엄청나서 지금까지 쓸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첫 여성 인간 출신 세미데우스가 돼서 신들의 눈에 들었고, 그 보상으로 저런 초특급 스킬을 받은 것 같았다.
지영의 말에 따르면, 이 스킬은 여성 영웅밖에 쓸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하긴, 저렇게 요염한 여신이 빙의되는 스킬이니 당연하겠지…….’
하지만 저 스킬이 더욱 무서운 건 프레이야가 빙의된 순간 지영의 인격이 싹 사라지고 완전히 프레이야의 모습이 돼 버린다는 점이었다.
단순히 눈동자만 황금빛으로 변하는 게 아니었다. 저 묘하게 색기가 흐르는 표정과 섹시하다 못해 잔인함이 엿보이는 미소 역시 지영의 것이 아니라 처녀신 전사 프레이야의 것이었다.
라이펑은 항상 겸손하고 조용한 지영이 저런 표정을 지을 때마다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전투력은 최강이니까, 뭐.’
칼날을 혀로 할짝 핥은 지영은 다시 적진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파앙! 팡!
파장이 쌍검날 끝에서 일 때마다 수십 마리의 쵸쵸가 목숨을 잃었다.
그녀가 가는 곳마다 쵸쵸들의 신음이 터져 나왔고, 녀석들의 시체가 산처럼 수북이 쌓였다.
역시 정예 부대 대장군의 실력다웠다.
지영의 쌍검날을 겨우 피해 비틀거리는 나머지 녀석들은 뒤쪽에서 라이펑이 깔끔하게 처리했다.
그리고 정말 꼬랑지에 남은 나머지 녀석들은 뒤에서 쫓아오는 영웅들이 처리할 것이다.
3,000 대 300이라서 머릿수로 밀릴 거라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었다.
대규의 부대는 정말 판테온 제일의 정예 부대가 됐다.
라이펑은 고개를 들어 어두운 하늘 위를 바라보았다.
쿠르릉! 쾅쾅!
벼락과 빛의 섬광이 번쩍였다.
분명 자신의 상관이자 이 부대의 신인 대규가 보스 몬스터 샤우그너 판과 전투를 벌이는 광경일 것이다.
그는 대규가 있는 곳을 향해 감사한 표정으로 고개를 꾸벅 숙였다.
대규가 아니었다면 자신 역시 이렇게 강해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 이렇게 농땡이 피울 때가 아니다. 나도 열심히 싸워야 한다.’
라이펑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쵸쵸들을 향해 검을 빠르게 휘둘렀다.
“@##$!”
쵸쵸들의 몸이 정확히 칼날의 움직임을 따라 두 갈래로 갈라져 버렸다.
대규와 전투를 벌이고 있던 샤우그너 판은 땅 아래에 있는 부하들의 모습을 보고 몹시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안 그래도 하늘 위에서 이 애송이 신 녀석과 싸우는 것도 잘되지 않아 열 받는데 부하들도 저 모양이라니.
심지어 그는 오늘의 전투를 위해 특별히 현실 세계까지 침투해 많은 인간을 납치해 와 쵸쵸들을 대량으로 생산했다.
그런데도 저렇게 바보같이 밀리다니.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뿌우우우-
그의 분노에 찬 콧소리가 우주 공간을 가득 메웠다.
한편, 반대로 대규는 땅 아래쪽의 전투모습을 보자 매우 만족스러웠다.
‘내 부대가 저 정도로 강해졌을 줄이야. 역시 훈련의 효과가 있군! 그럼 나도 이 망할 코끼리 괴물 자식을 쓰러뜨려야겠다.’
대규는 다시 한 번 불카누스의 벼락검을 휘두르려고 했다.
그런데 샤우그너 판의 모습이 이상했다.
녀석은 대규에게 날아와 어금니를 휘두르는 대신 땅 아래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바로 쵸쵸 족과 대규 부대의 영웅들이 혈전을 벌이는 곳이었다.
순간 불길한 기분이 들어 대규는 옵티뭄의 고삐를 당겨 녀석의 뒤를 쫓았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샤우그너 판은 자신의 두 말에 있는 힘을 다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코끼리 다리에 근육이 울룩불룩 올라왔고, 핏줄도 우두둑 솟아올랐다.
녀석은 있는 힘을 다해 행성의 표면을 두 발로 꽝 내리쳤다.
발구르기 스킬을 시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