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5
235화 샤우그너 판 (3)
대규는 자신 부대의 영웅 323명을 내려다봤다.
영웅들은 아직도 대규를 위해 승리를 기원하는 함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저 멀리 적진이 있는 곳의 방향을 바라봤다.
그리고 자신이 지니고 있는 신의 눈을 발동시켰다.
적진의 땅에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새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특히나 검붉은 땅 중에서 유난히 돋보이는 곳은 대규가 방금 전 비산의 결계로 까맣게 태워 버린 곳이었다. 그곳엔 새하얀 잿더미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좀 전에 대규가 벼락검으로 태워 버린 쵸쵸들이 변해 버린 잿더미였다.
나머지 쵸쵸들은 까맣게 태워진 땅 주변에서 잿더미를 두 손으로 들어 올리며 기괴한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잿더미는 행성에 부는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휘날려 갔다.
그들은 자신들의 동료가 죽은 것에 대해 몹시 슬프고 화가 난 것 같았다.
게다가 출산 의식을 위한 제단 역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그 순간 이상한 굉음 소리가 쵸쵸들 근처에서 터져 나왔다.
쿵! 쿵!
행성의 표면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땅 위에 쌓여 있던 잿더미들도 좀 전보다 더욱 격렬하게 휘날렸다.
그것은 거대한 발소리였다.
울부짖던 쵸쵸들은 그 소리를 듣고 하나둘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곧 그 거대한 발소리의 주인공이 대규의 눈에 보였다.
무지막지하게 큰 코끼리의 얼굴에 날카롭고 큰 상아, 그리고 온몸이 촉수로 휘감겨 있는 괴물이었다.
바로 이 외계인 부대의 보스 몬스터인 샤우그너 판이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샤우그너 판은 몹시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대규가 파괴해 놓고 간 제단 자리와 까맣게 변해 버린 땅, 그리고 잿더미가 된 부하를 보고 분노가 치민 것 같았다.
코끼리의 기다란 코가 하늘 높이 들리며 엄청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뿌우우우우-
그 순간 대규 발아래 쪽에 있는 323명 영웅이 일제히 얼굴을 찌푸렸다.
“이게 무슨 소리야?”
“으윽, 고막이 터질 것만 같아.”
대규는 저 멀리 있는 샤우그너 판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엄청난 소리군.’
외계인이지만 나름 보스 몬스터라 그런지 코끼리 주제에 이상한 투구도 둘러쓰고 있었다. 그 투구는 단순히 머리 위에 왕관처럼 쓴 게 아니라 코끼리처럼 생긴 샤우그너 판의 얼굴 전체를 가리고 있었다.
꼭 천보자기를 얼굴에 뒤집어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송곳니인 상아에도 금속으로 만든 철갑이 덧씌워져 있었다.
인간처럼 사지가 달렸다고 해도 그의 두 다리는 코끼리의 다리와 똑같이 생겼다.
샤우그너 판이 두 발을 힘차게 구르자 쵸쵸들이 놀라서 고개를 숙이고 절을 올리기 시작했다.
샤우그너 판은 꽤 화가 난 것 같았다.
그는 쵸쵸 족에게 외계어로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대규는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전투를 시작하자! 우리 형제들을 죽인 녀석을 처참히 찢어발기자!’
쿵! 쿵! 쿵!
샤우그너 판이 두 발을 구를 때마다 쵸쵸들은 기괴한 함성을 내지르며 대열을 갖췄다.
그리고 곧 대규와 영웅들이 있는 병영 쪽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최후의 결전 중 대규가 맡은 첫 전투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대규가 신이 된 이후 처음으로 부대를 갖춰 하는 전투이기도 했다.
대규는 적군들이 다가오는 곳을 본 뒤 발아래 있는 영웅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적들이 쳐들어오기 시작했다. 모두 전열을 갖춰라!”
와아아아-
대규는 부대의 두 장군인 지영과 라이펑에게 명령했다.
“나는 보스인 샤우그너 판과 전투를 벌일 테니 그대들은 영웅들을 지휘해서 부하 외계인인 쵸쵸 족들을 상대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지영과 라이펑은 대규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 뒤 영웅들을 통솔하기 시작했다.
지영이 손을 한번 휙 허공에 휘두르자 영웅들은 각각 훈련 때 자신들이 이뤘던 팀별로 신속히 모이기 시작했다.
지영은 영웅들에게 말했다.
“나와 라이펑 장군이 2인 1조 팀을 이뤄 먼저 적진을 뚫고 들어가겠습니다. 그럼 팀별로 몬스터를 한 마리씩 맡아 차분히 싸워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전투를 하기 전에 여러분께 다들 버프 마법을 걸어 드리겠습니다. 이리로 모여 주십시오.”
지영은 두 팔을 들어 아군에게 전쟁의 축복 스킬을 걸어 주기 시작했다.
323명의 영웅 몸에 무지갯빛이 스며들었다.
쏴아아-
“그럼 출전!”
지영이 우렁차게 외친 뒤 자신의 무기인 쌍검을 들고 선두에서 파바밧, 날아가기 시작했다.
용맹한 그녀의 모습은 꼭 전쟁의 여신 같았다.
대규는 그녀의 모습을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제2의 아테나란 칭호가 아깝지 않을 정도다.’
라이펑 역시 그녀를 뒤따라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가 입은 갑옷의 견갑골 사이에서 투명한 날개가 돋아났다.
두 장군은 적진을 향해 제일 먼저 날아갔다.
나머지 영웅들도 각각의 팀을 이룬 채 그 두 명의 뒤를 따랐다.
다들 세미데우스가 돼서 그런지, 그전보다 훨씬 이동 속도가 빨라졌다.
대규는 내심 자신의 부대 영웅들이 적진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내가 여태껏 전투를 많이 참여해 봤지만, 부대의 모든 영웅이 이렇게 신속하고 빠른 곳은 없었다. 내 부대라서 더 좋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객관적으로 봐도 우리 부대는 다른 부대에 비해 뛰어나다. 역시 정예 부대를 만들길 잘했어.’
그럼 이제 자신도 전투를 시작할 때였다.
대규는 옵티뭄의 말고삐를 잡아당기며 외쳤다.
“가자, 옵티뭄! 누구보다도 빠르게 달려가서 저 외계인 녀석을 해치우자.”
말을 마치고는 보관함에서 황금의 벌꿀 술이 든 유리병을 꺼내 마셨다.
꿀꺽-
그러자 옵티뭄의 몸에 심은 비야키 세포가 발동됐고, 옵티뭄은 말도 안 될 정도로 빠르게 날아가기 시작했다.
지영과 라이펑은 순식간에 자신들을 앞서 날아가는 대규의 모습을 보며 놀랐다.
‘어떻게 저런 스피드가… 역시 대규 님은 남다르다.’
대규는 눈 깜짝할 사이에 적군의 병사들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하늘 위에 떠 있는 거대한 대규를 발견한 쵸쵸들이 그를 보고 분노에 찬 함성을 내질렀다.
“@#$#$%!”
자신의 동료들을 죽인 자에 대한 분노와 절규가 가득한 함성이었다.
하지만 대규는 쵸쵸들을 싸늘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너희는 관심 없다. 대장을 불러와라.”
그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거대한 발소리가 들렸다.
쿵! 쿵! 쿵!
검붉은 행성의 표면 위에서 짙은 흙먼지가 휘날렸고, 그 뒤로 코끼리 형태의 외계인 샤우그너 판이 나타났다.
녀석은 신의 눈이 아닌 육안으로 가까이서 보니 더욱더 끔찍한 몰골이었다.
분명 코끼리와 닮았지만, 녀석은 외계인이었다.
온몸엔 크툴루처럼 촉수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잠깐, 저거 촉수 맞아?’
분명 크툴루의 몸에 돋아난 촉수들과 비슷했는데, 그것들은 끈적끈적한 피부나 비늘로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대신 새하얀 빛으로 이뤄져 있었다.
‘빛줄기로 이뤄진 촉수라니.’
샤우그너 판은 대규를 보자 다시 한 번 기다란 코를 치켜들고 적의에 찬 울음소리를 냈다.
뿌우우우우-
그 울음소리만으로 행성의 표면에 돋아난 분화구들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곧 녀석에 대한 공략집이 떠올랐다.
-차원의 틈 공략집-
몬스터 이름: 샤우그너 판(Chaugnar Faugn)
보상: 샤우그너 판의 상아(象牙)
특징: 크로노스가 거인들의 지하감옥 카르케르에 가두기 전 광활한 우주를 떠돌던 코끼리 형상의 몬스터. 인간들을 납치해 자신들의 부하 외계인 쵸쵸들을 만들어 부대를 창설했다. 샤우그너 판은 검이나 다른 무기를 지니지 않았지만, 자신의 어금니, 즉 상아를 무기로 싸운다.
보유 스킬:
발 구르기-두 발을 쿵쿵 굴러 굉음과 돌풍을 부른다. 쿵쿵 구를 때마다 땅바닥이 갈라지며 지진이 일어남. 마나 소모량 100.
상아의 일격-상아에 기를 모아 검기 비슷한, 외계 에너지로 만든 채 적을 공격한다. 마나 소모량 200.
빛의 촉수-빛줄기로 이뤄진 촉수들이 평소 속도보다 매우 빠르게 적들을 공격한다. 마나 소모량 50.
<샤우그너 판에 대한 공략(하급)을 습득했습니다.>
<샤우그너 판에 대한 당신의 공격력이 10% 상승합니다.>
<샤우그너 판으로부터 아이템을 습득할 확률이 조금 높아집니다.>
<샤우그너 판의 약점을 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영상을 재생하시겠습니까? Yes/No>
대규는 황급히 녀석의 약점 영상을 보았다.
저 녀석의 약점은 바로 저 기다란 코였다.
녀석의 코는 다른 피부조직보다 예민해서 조금이라도 상처를 입으면 고통을 주체하지 못하고 바로 난동을 피운다고 했다.
그런데 녀석의 보유스킬 중 이상한 스킬이 있었다.
바로 발 구르기 스킬이었다.
보통 보스급 외계인 몬스터는 하늘로 날아올라 자신을 상대하는 판테온의 신과 공중 보스전을 벌인다.
하지만 저 발구르기 스킬은 땅에서만 쓸 수 있는 스킬이다.
‘굳이 보스전에서는 저 스킬을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샤우그너 판이 날아올랐다.
녀석의 얼굴 양옆에 달린 귀가 몇 배는 거대해지더니 펄렁펄렁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귀가 날갯짓을 하더니 녀석의 거대한 몸이 하늘 위로 비상하기 시작했다.
꼭 옛날 만화 영화에서 나왔던 아기 코끼리 덤보를 보는 것 같았다.
‘물론 덤보는 귀엽기라도 했지. 이 녀석은…….’
대규는 어느새 자신의 앞까지 날아온 녀석을 향해 불카누스의 벼락검을 휘둘렀다.
“받아라, 레툼 익투스!”
콰지직! 콰쾅!
예전엔 불타는 화염구를 품은 검광들이 날아갔지만, 초월자 등급으로 업그레이드한 사슬검은 그전과 달랐다.
검광 하나하나가 거대한 벼락을 품고 샤우그너 판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붉은 화염 벼락이 사방에서 녀석을 노리고 날아가는 순간,
뿌우우우-
녀석이 코를 쳐들고 다시 한 번 울부짖었다.
그러자 녀석의 양옆 어금니, 상아에서 이상한 기운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파파팟!
‘저 괴물 녀석은 무기가 검 대신 저 어금니랬지. 그럼 저걸 검기로 봐도 무방한 걸까?’
형성된 검기(?)는 샤우그너 판에게 다가오는 대규의 불카누스 화염 벼락을 향해 날아갔다.
콰콰쾅!
녀석의 검기는 불카누스의 화염 벼락을 막상막하로 막아 냈다.
하지만 모두 막아 내진 못했다. 몇 개의 벼락들은 다행히 녀석의 검기 공격을 뚫고 녀석의 얼굴 쪽으로 날아갔다.
그때 녀석이 고개를 돌려 검기를 품은 어금니로 직접 벼락을 막아 냈다.
어금니와 벼락이 맞부딪히며 엄청난 충격의 파장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그의 어금니는 화염 벼락에 전혀 밀리지 않았다.
‘저 벼락은 이 행성의 땅을 초토화시켰는데!’
녀석은 이를 악물고 얼굴을 찌푸리기 시작했다.
콰콰쾅!
굉음과 함께 결국 녀석의 어금니 검기가 이겼다. 불카누스의 화염 벼락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대규는 당황하는 대신 입가에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흠, 그래, 이 정도는 돼야 싸울 맛이 나지.’
물론 이쪽도 아직 완전한 실력을 다 보여 준 상태는 아니었다.
대규는 심지어 초집중 몰입 상태인 플로우 상태에 아직 들어가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 상태에서 레툼 익투스를 날린 이유는 단순했다.
우선 초월자 등급으로 업그레이드한 이 벼락검의 위력과 녀석이 지니고 있는 기본적인 실력을 테스트해 보고 싶었다.
결론적으로 벼락검의 위력도 훌륭했고, 녀석의 실력도 만만치는 않았다.
‘그럼 전투는 지금부터다!’
대규는 정신을 집중해 플로우 상태로 돌입하기 시작했다.
고오오오-
불카누스의 벼락검을 들고 있는 그의 오른팔과 벼락검의 검신 전체가 푸른빛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플로우 상태에 돌입했다는 메시지창이 눈앞에 떴지만, 그것을 의식조차 못 했다.
대규는 옵티뭄을 몰고 빠르게 녀석의 뒤로 돌아갔다.
비야키의 비행 능력을 발휘해 평소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
녀석이 눈치채기도 전에 녀석의 등 뒤로 돌아가 불카누스의 벼락검을 휘둘렀다.
콰지직!
좀 전보다 10배는 강렬한 화염 벼락이 샤우그너 판의 거대한 등을 향해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