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3
233화. 샤우그너 판 (1)
명령을 내리자 영웅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대규는 영웅들이 다 모이자 두 팔을 높게 들었다.
이동 결계를 치고 싶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투명한 이동 결계가 그와 영웅들 주변을 감쌌다. 곧 결계는 그들을 담은 뒤 두둥실 떠올랐다.
팟!
그리고 그들이 순간 이동 한 곳은 거대한 암흑으로 둘러싸인 곳이었다.
‘이, 이곳은…….’
대규는 주변을 바라보았다. 까만 하늘에 둥그런 행성이 여기저기 있는 거로 보아 우주 공간 같았다.
그리고 그들이 서 있는 곳의 바닥엔 울퉁불퉁한 분화구가 있었다.
꼭 행성의 바닥 같았다.
‘뭐 이런 공간이 다 있어?’
하긴, 예전에 제우스가 언젠가 그런 말을 했었다.
이 외계인들은 크로노스가 다른 차원의 우주에서 데려온 것이라고 말이다.
‘이제는 하다 하다 이 우주 공간에 병영을 꾸리고 전투를 해야 한다는 거로군.’
사실 대규는 우주에서 병영을 꾸려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우주에 와 본 적도 없었다.
대규는 일단 이 행성을 둘러보기로 결심했다. 이곳에서 전투가 벌어진다면 분명 적들은 이곳에서 별로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을 것이다.
옵티뭄을 타고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위에서 내려다본 행성의 모습은 더욱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꼭 화성의 표면과 비슷해 보였다. 사막같이 생겼는데 여기저기 메마른 분화구들이 뻥뻥 뚫려 있었다.
‘대체 적진의 본거지는 어디지?’
대규는 옵티뭄을 타고 행성을 한 바퀴 돌기 시작했다.
그런데 저 멀리 이상한 지형이 눈에 띄었다.
황량한 땅들이 검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꼭 맨 처음 상대했던 외계인 촉수 괴물 크툴루가 죽음의 평원에 나타났을 때 주변 땅이 썩어간 것과 비슷했다.
검붉은 땅의 한가운데는 제단이 있었고, 그 주변에는 이상한 녀석들이 우글우글 모여 있었다.
대규는 투명 망토로 몸을 숨기고 가까이 날아가 봤다.
제단 주변의 녀석들은 얼굴이 있고, 사지가 달린 인간들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모두 알몸의 대머리들이었다.
‘인간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아니었다.
그들은 온몸이 팥죽처럼 검붉은색이었고, 알몸이었지만 성별을 구분할 수 있는 녀석들이 아니었다. 생식기가 있어야 하는 곳엔 아무것도 달려 있지 않았다.
그때 공략집이 떠올랐다.
-차원의 틈 공략집-
몬스터 이름: 쵸쵸(Tcho-Tcho)
보상: 희귀한 확률로 골드 등급 젬스톤 드랍
특징: 샤우그너 판이 자신이 만든 양서류들과 납치해 온 인간들을 교배시켜 만든 외계인 종족. 쵸쵸들은 인간들의 고기, 즉 인육을 먹는 걸 좋아한다. 샤우그너 판의 대지 위에 설치된 출생의 제단 위에서 새로운 쵸쵸들이 태어나는 의식이 하루에 한 번씩 벌어지고, 새로운 쵸쵸를 낳은 인간 산모를 잔인하게 잡아먹는다.
보유 스킬: 식인-패시브 스킬로 인간의 고기를 먹어 생명력을 회복한다.
<쵸쵸에 대한 공략(하급)을 습득했습니다.>
<쵸쵸에 대한 당신의 공격력이 10% 상승합니다.>
<쵸쵸로부터 아이템을 습득할 확률이 조금 높아집니다.>
<쵸쵸의 약점을 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영상을 재생하시겠습니까? Yes/No>
설명을 읽은 대규는 다시 한 번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원래 이 이상한 외계인 조무래기들은 보스 몬스터인 샤우그너 판이 인간들을 납치해 만든 종족이란 건 제우스의 양피지를 읽어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제단에서 인간들이 새로운 쵸쵸를 낳고 이들이 그 인간들을 잡아먹는다는 건 금시초문이었다.
‘구역질 나는 녀석들! 잠깐만, 설마 이 녀석들이 제단 주변에 이렇게 몰려 있는 건 그 의식이란 게 지금 벌어질 거란 의미인가?’
대규는 혹시나 해서 가만히 제단을 바라보았다.
얼마 후 날카로운 여성들의 비명이 들렸다.
“꺄아아악!”
비명이 나는 곳을 바라보자 쵸쵸들이 약 10명의 여성을 강제로 데려오고 있었다. 여성들의 상태는 아주 처참했다. 온몸에 상처가 가득했고, 제대로 씻지 못한 것처럼 더러웠다. 그리고 제대로 몸도 가누지 못했다.
하지만 쵸쵸들은 그녀들의 머리채를 거칠게 붙잡고 제단으로 끌고 갔다.
그녀들은 모두 누더기를 입고 있었는데 배가 남산만큼 불러 있었다.
아무래도 저 배 속에 아기 쵸쵸들이 들어 있는 것 같았다.
쵸쵸들은 그녀들을 제단 위에 내동댕이치듯 패대기쳤다.
그러자 제단 뒤쪽에서 다른 쵸쵸들보다 두 배는 덩치가 큰 녀석이 나타나 제단 위로 올라왔다.
알몸을 하고 있는 다른 쵸쵸들과 달리 녀석은 제사장같이 보이는 옷을 걸치고 있었다.
“@#%!”
외계인 특유의 목소리가 녀석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하지만 대규는 녀석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출산 의식을 시작하도록 하자!’
의식의 시작 신호를 알리자 쵸쵸들이 마구 열광하기 시작했다. 녀석들은 이제 제단 맨 앞에 나동그라져 있는 첫 번째 여자에게 달려들었다.
녀석들은 탐욕에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빠르게 여자의 사지를 붙잡았다.
“꺄아악!”
인간 여자가 자지러질 듯 크게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쵸쵸들은 어느새 인간 여자의 팔과 다리를 뜯어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날카로운 손톱으로 그녀의 부른 배를 사정없이 갈랐다.
그러자 배 속에서 새로운 쵸쵸가 울면서 기어 나왔다.
나머지 여자들은 그 끔찍한 광경을 보고 충격을 받아 기절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여자를 포식한 쵸쵸들은 이제 기절한 두 번째 여자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대규는 더 이상 그 광경을 목도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쵸쵸들이 두 번째 여자의 사지를 붙잡으려는 순간, 대규는 제단을 향해 불카누스의 벼락검을 휘둘렀다.
휘리릭-
그 순간 사슬검 끝에서 화염을 품은 벼락이 뿜어져 나가 제단을 강타했다.
콰지직! 콰콰쾅!
대규는 다시 한 번 검을 휘둘렀다.
이번엔 화염 벼락이 두 번째 여자에게 달려들던 쵸쵸들의 정수리에 정확히 떨어져 꽂혔다.
“##%%#!”
벼락을 맞은 녀석들은 온몸이 순식간에 새카만 재로 변해 버렸다.
대규는 자신이 들고 있는 불카누스의 벼락 사슬검을 얼떨떨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야,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휘두른 거로 이 정도의 위력이라니. 이거 스킬이라도 쓰면 정말 장난 아니겠는걸?’
‘아차, 지금 검의 위력에 대해 감탄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대규는 제단 쪽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기절해 있는 아홉 명의 여자를 재빨리 인피니투스 가방 안에 넣었다.
이제 남은 쵸쵸들이 대규를 향해 달려들었고, 대규는 그들을 똑바로 쳐다보며 이렇게 외쳤다.
“비산의 결계!”
그때 까만 하늘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우르릉.
그리고 짙은 구름이 몰려왔다. 정말 신기한 건 이곳은 우주 공간인데도 구름이 몰려왔다는 것이다.
콰콰쾅! 콰지직!
구름에서 화염을 품은 벼락들이 대규가 서 있는 곳 반명 10m 안에 마구 떨어졌다.
떨어진 벼락에선 불길이 파도처럼 거세게 일기 시작했다.
“#%%[email protected]!”
쵸쵸들은 괴로운 듯 울부짖으며 잿더미가 되기 시작했다.
대규는 옵티뭄에 올라타 재빨리 적진을 벗어났다.
위에서 내려다본 광경은 장관이었다.
비산의 결계가 공격한 땅은 완전 새카맣게 타 버렸다.
아직 전투가 벌어지지 않았음에도 상대편을 공격한 것이 좀 걸렸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녀석들은 이 여자들을 잔인하게 찢어먹으려 했고, 그 꼴을 가만히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대규는 옵티뭄을 타고 부대의 영웅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대규가 적을 염탐하러 간 사이 지영과 라이펑은 영웅들과 함께 대충 병영을 꾸려 놓고 있었다.
병사들은 훈련할 때 구성됐던 팀 위주로 나눠 뭉치게 했다. 그리고 각 팀마다 팀을 지휘하는 리더가 있었다.
지영과 라이펑은 팀마다 외계인 몬스터를 맡아 상대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훈련 때 그렇게 했으니 그편이 훨씬 익숙할 것이다.
저 멀리 대규가 옵티뭄을 타고 날아오는 모습이 보였고, 지영과 라이펑은 그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옵티뭄에서 내리는 대규의 표정이 심상치 않음을 눈치채고 이렇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대규는 인피니투스를 열어 아홉 명의 여자를 꺼냈다. 그녀들은 여전히 기절해 있는 상태였다.
처참할 정도로 후줄근한 여자들의 모습을 본 지영이 대규에게 물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이들은 인간 아닙니까?”
“맞습니다.”
“왜 아무런 힘도 없는 인간들이, 그것도 여자들이 어떻게 이 공간에 있는 거죠?”
“외계인 몬스터가 자신의 부하를 생산하기 위해 이들을 납치해 와서 교배를 시킨 것입니다.”
대규는 그녀들의 남산만 한 배를 향해 눈짓하며 말했다.
지영은 오른손으로 입을 부여잡으며 안 좋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으윽… 그런 일이. 끔찍하군요.”
기절해 있던 여자 중 한 명이 눈을 떴다.
“여, 여긴? 히익!”
칼과 갑옷을 입은 영웅들을 본 여자가 두려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대규는 그녀에게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안심하세요. 그 괴물 녀석들로부터 당신들을 구해 왔습니다. 그런데 당신들은 대체 어떻게 이곳에 끌려오게 된 겁니까?”
그러자 그녀는 여전히 겁에 질린 표정을 한 채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말을 이었다.
“모, 몰라요……. 그냥 평범하게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하늘이 갈라지더니 그 외계인들이 나와서… 절 납치해 갔어요…….”
그녀는 납치된 후의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았다.
“저, 저희 말고도… 녀석들의 본거지엔 훨씬 많은 인간이 잡혀 있어요…….”
그녀의 말을 들은 대규는 깜짝 놀랐다.
‘저 외계인 녀석들이 현실 세계에 나타났다고?’
말도 안 된다.
‘판테온과 현실세계는 완벽하게 분리된 것 아니었나?’
지영과 라이펑 역시 여자의 말을 듣고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때 갑자기 공략집의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티탄 신족 크로노스는 최후의 결전에서 이기기 위해 현실 세계까지 침투해 그것을 이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크로노스가 본격적으로 움직여 최후의 결전에서 승리하면 판테온의 신들이 심연의 결계에 갇히게 되는 것뿐만 아니라 현실 세계까지 그의 지배를 받기 시작합니다.>
이런 말은 없었잖아.
‘최후의 결전…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중요한 전투였잖아.’
패배하면 단순히 아, 나 졌네, 하는 수준이 아니라 진짜 큰일이 날 것 같았다.
대규가 당황스러워하고 있는데 지영이 옆에서 그를 불렀다.
“대규 님!”
“아, 예, 말하세요.”
“그런데 이분들을 어떻게 해야 하죠?”
그녀는 아홉 명의 여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특히 지영의 시선은 남산만큼 부풀어 있는 그녀들의 배에 고정돼 있었다.
‘저 안에선 외계인들이 자라나고 있다.’
대규는 생각에 잠긴다. 어떻게 해야 하지? 그녀들이 출산하게 되면 적군인 외계인을 이곳에서 낳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일이 복잡해진다.
‘혹시 판테온 최고의 의술 신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데려가면 무슨 수가 있지 않을까?’
대규는 지영에게 명령했다.
“지영 대장군 님, 일단 병영을 완벽히 세우고 영웅들을 통솔해 주십시오. 나는 잠깐 아스클레피오스 님에게 다녀오겠습니다.”
대규는 아홉 명의 여자를 다시 인피니투스 안에 넣었다.
그리고 판테온에 있는 아스클레피오스의 신전으로 향했다.
전에 한번 가 본 적이 있어서 헤르메스의 신발을 신고 단번에 이동했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오늘도 수술실같이 생긴 신전의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대규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스클레피오스는 깜짝 놀라서 말했다.
“헛, 깜짝이야! 대규 님이로군요.”
아스클레피오스는 여전히 대규를 보고 두려워하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여긴 대체 왜……?”
“이 여성들을 구해 주시오.”
대규는 인피니투스에서 아홉 명의 인간 여자를 꺼냈다.
이제 여자들은 기절 상태에서 깨어나 있었는데, 그녀들의 표정엔 고통이 역력했다.
“왜 그럽니까?”
대규가 묻자 한 여성이 겨우 대답했다.
“배, 배가 아파요……. 아악! 배 속의 것이 나올 것 같아요.”
지금 이곳에서 외계인이 태어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