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1
231화 전쟁의 신 (1)
물론 그동안 대규는 차근차근 영웅들을 훈련시켰고, 판테온의 시련을 충분히 이겨 낼 수 있는 상태로 만들었다.
물론 대규는 자신의 부대가 판테온의 신들로부터 주목당하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훈련만 했다.
이제 세미데우스가 된 대규 부대의 영웅들은 아기 바사탄쯤은 능숙하게 해치울 수 있게 됐다. 팀당 세 마리의 아기 바사탄을 배정해도 거뜬했다.
게다가 라이펑과 지영의 실력도 엄청나게 늘었다.
그들은 이제 세미데우스의 레벨 40을 넘었다.
그 정도면 전 판테온의 부대를 통틀어 봐도 손꼽히는 실력자였다.
이제 그들은 기간테스를 거뜬히 해치우는 것뿐만 아니라 대규의 소환 반지 안에 저장된 외계인 보스 몬스터도 해치울 정도의 실력이었다.
물론 대규는 외계인 몬스터들에게 전력을 다하지 말고 힘의 80% 정도만 쓰라고 당부하긴 했다.
지영과 라이펑은 힘들게 외계인 보스 몬스터와 싸웠지만 결국 몬스터를 이겼다.
‘이 정도면 다른 부대의 대장군, 장군들과 비교해도 넘사벽 실력이다.’
훈련을 모두 마친 대규는 영웅들에게 말했다.
“다들 수고 많았습니다.”
“아닙니다, 대규 님.”
대규는 자신 앞에 고개를 숙이고 있는 수많은 세미데우스 영웅들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이제 마지막 판테온의 시련을 겪으러 간 영웅들이 돌아오면 우리 부대는 정말로 판테온의 정예 부대가 됩니다.”
그 말에 모든 영웅의 표정이 밝아졌다.
이 정도면 축하연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닐까?
대규도 그렇고 모두 들떠 있는 분위기였다.
그때 평원 위의 하늘이 어둑어둑해졌다.
‘뭐지?’
우르릉-
그릉거리는 천둥소리와 구름이 심상치 않게 몰려오기 시작했다. 곧 하늘 위에서 굉음과도 가까운 천둥이 쳤다.
콰콰쾅!
‘푸른 벼락! 저건 분명 제우스 님의 벼락인데.’
대규가 이렇게 생각하자마자 하늘에서 제우스의 웅장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판테온의 모든 신에게 고하노라! 지금 당장 신들은 판테온의 중앙 신전으로 오길 바란다.”
제우스의 목소리를 듣고 모든 영웅은 어찌할 줄 몰라서 당황하기 시작했다. 모두 고개는 숙이고 있지만, 표정에는 경이로움 반, 두려움 반 떠올라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이들은 현재 세미데우스 영웅이라 하더라도 얼마 전까진 고작 인간 영웅이었던 자들이었다. 인간 영웅의 몸으론 제우스를 보거나 그의 목소리를 감히 들을 일이 거의 없었다.
심지어 대장군인 지영의 얼굴에도 두려움이 떠올라 있었다. 그녀는 아테나 부대에 있을 때 제우스의 모습을 한 번 본 적이 있는데도 말이다.
곧 하늘에 울려 퍼졌던 제우스의 목소리는 사그라졌고, 푸른 벼락과 어둑어둑한 구름도 사라졌다.
대규는 부대의 영웅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저는 판테온의 중앙 신전에 다녀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고는 라이펑과 지영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그들에게 덧붙였다.
“내가 중앙 신전에 다녀올 동안 지영과 라이펑 장군님이 부대를 맡아서 관리해 주세요.”
그러자 지영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혹시 최후의 결전이……?”
“그렇겠죠. 아마도 그에 관련된 것일 겁니다.”
대규는 비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도 짐작은 하고 있었다. 왜냐면 제우스가 이런 식으로 신들을 급하게 소집한 적은 대규가 아는 한 여태껏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렇게 신들을 소집한다면 분명 급박한 사안일 것이다.
그리고 현재로서 급박한 사안이라면, 마지막으로 남은 기간토마키아 전투인 최후의 결전밖에 없을 것이다.
대규는 비장한 목소리로 영웅들에게 말했다.
“그럼 저는 다녀오겠습니다.”
곧 눈앞에 포탈이 열렸고 대규는 옵티뭄의 등 위에 올라탄 뒤 그 안으로 들어갔다.
포탈을 통과하자마자 눈앞에 판테온의 중앙 신전이 보였다.
그런데 중앙 신전의 모습이 그전에 비해 좀 달라졌다.
대규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분명 여태까지 봤던 판테온의 중앙 신전은 일반 신들의 신전처럼 하얀 대리석으로 이뤄진 신전이었는데, 지금의 중앙신전은 짙은 회색빛의 성 같았다.
‘내가 잘못 찾아왔나?’
공략집의 지도창을 켜서 확인해 봤지만 분명 이곳은 본래의 중앙 신전이 맞았다.
대규는 완전히 변해 버린 중앙 신전 앞을 기웃거렸다.
그때 신전의 거대한 성문이 열렸고 한 영웅 병사가 대규를 맞이했다.
“오셨습니까? 대규 님이시군요.”
“여기가 중앙 신전 맞습니까?”
대규가 묻자 병사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네, 맞습니다. 그런데 왜 그러시죠?”
“외관이 좀 변한 것 같은데…….”
그러자 병사가 친절하게 설명을 해줬다.
“아하, 지금은 급박한 전시(戰時) 상태이기 때문에 신전의 모습이 전시 모드로 변한 것뿐입니다.”
“전시 모드 말입니까?”
“네. 이 모드로 변하면 신들께서 전투 회의나 전쟁에 관련된 일을 하기 용이해지거든요.”
“그렇군요.”
“그럼 이쪽으로 들어오시지요.”
영웅 병사는 성문을 열고 대규를 신전 안쪽으로 안내했다.
신전은 내부마저도 싹 변했다.
항상 연회석과 테이블이 있던 자리에는 커다란 원탁이 놓여 있었다.
원탁의 한가운데엔 신들의 아버지이자 왕인 제우스가 앉아 있었고, 그 주위론 다른 판테온의 신들이 쭉 둘러앉아 있었다.
제우스를 제외한 신들은 모두 갑옷, 장비 등으로 똘똘 무장한 상태였고, 그들이 각자 앉아 있는 자리의 테이블엔 각자가 쓰는 무기들이 놓여 있었다.
‘아서 왕과 원탁의 기사들 같군.’
제우스는 막 신전 안으로 들어온 대규에게 말했다.
“자네의 자리에 가서 앉게. 테이블 위엔 자네의 무기를 내려놓고.”
“알겠습니다.”
대규는 말을 마친 뒤 빈자리에 가서 앉는다. 그의 양옆에는 아테나와 아프로디테가 각각 앉아 있었다.
허리춤에서 새로 만든 불카누스의 벼락검을 꺼내려는 순간이었다.
번쩍!
대규가 손으로 검을 꺼내자 검 자루에서 황금빛이 눈부시게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든 판테온의 신들이 대규와 그의 검에 주목했다.
신들은 속으로 불카누스의 벼락검을 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저것이 초월자 등급의 무기!’
‘엄청난 빛이군. 얼마나 강력할까…….’
‘제길! 나도 징표를 얻어서 초월자 등급 무기를 제작하고 싶다…….’
신들의 부러워하는 속마음이 공략집을 통해 대규의 귓가에 들려왔다.
대규는 황금빛이 나는 벼락검을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제우스 역시 흥미롭다는 듯 대규의 검을 바라보았다.
물론 그의 속마음은 대규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그것이 그대가 제작한 초월자 등급 무기인가?”
“네, 그렇습니다.”
“귀아스페룸이라… 좋아 보이는구나. 부디 그 무기와 공명을 잘 이루길 바라네.”
“감사합니다.”
이제 제우스는 원탁에 둘러앉은 다른 신들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내가 그대들을 급히 모은 건 이제 최후의 결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운명의 여신에게 나는 최후의 결전에 대한 예언을 듣고 왔다.”
운명의 여신이라면, 일전에 판테온의 시련을 겪을 때 대규의 징표를 운명의 천에 새겨준 여신이었다.
“최후의 결전은 이제 곧 근 시일 내에 벌어질 것이다. 그래서 그대들과 곧 닥칠 최후의 결전에 대한 작전을 준비하기 위해 이렇게 부른 것이다.”
신들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고, 제우스는 말을 이었다.
“그대들도 이번 기간토마키아의 배후에 있는 자가 어떤 자들인지 알 것이다. 바로 크로노스와 티탄 신족이지. 아마 이번 결전은 생각했던 것보다 대규모 전투가 될 것이다. 그리고…….”
제우스는 모든 신의 눈을 바라보며 심각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만약 지게 되면, 지는 쪽은 몇천 년 동안 심연의 결계에 갇힐 것이다. 바로 내가 먼 옛날 전쟁에서 이겨 그들을 심연의 결계에 가뒀던 것처럼 말이다.”
심연의 결계란 말이 나오자 신들의 표정이 어두워졌고, 불안하게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특히 디오니소스는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때 제우스의 바로 옆에 앉아 있는, 그의 동생뻘 되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이렇게 물었다.
“제우스 님, 적의 병력은 어느 정도 됩니까?”
그러자 제우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외계인 보스 몬스터는 약 15마리 정도 나왔고, 티탄 신족은 나의 아버지였던 크로노스를 포함해 총 6명이다. 물론 외계인 보스들은 따로 자신들의 조무래기 부하들을 이용해 부대를 꾸리고 있다.”
“그래도 외계인들은 티탄 신족의 지배를 받는 것 아닙니까?”
“맞다.”
제우스의 말을 다 들은 대규는 원탁에 앉아 있는 신들을 둘러보았다.
원탁에 앉아 있는 판테온의 신들은 다음과 같았다.
제우스, 포세이돈, 하데스, 그리고 자식 세대의 2세대의 신은 아폴론, 아레스, 아프로디테, 헤르메스, 아테나, 디오니소스, 그리고 대규였다.
총 10명의 신이 원탁에 앉아 있었다.
헤파이스토스같이 전투에 특화되지 않은 신들은 이 전투 회의에 소집되지 않은 것 같았다.
제우스가 2세대 신들을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2세대의 신들이여, 우선 그대들은 아직 크로노스와 티탄 신족을 상대할 만한 실력이 아니다. 그대들은 15마리의 외계인 보스 몬스터의 부대를 나눠서 처리해 줬으면 좋겠다.”
2세대 신은 대규를 포함해 7명이었다.
그리고 남은 외계인 보스는 15마리.
각 2마리씩 처리하고 나머지 한 명의 신이 3마리를 처리하면 될 것 같았다.
그때 아폴론이 2세대 신들을 바라보며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
“누가 1마리를 더 처리할지는 전투 상황과 전적을 지켜보고 결정합시다.”
다른 신들은 아폴론의 말에 동의하는 것 같았다.
단 한 명 아레스만 빼고 말이다.
“내가 할 것이다! 이제야 출전 금지 명령이 겨우 풀렸다. 몸이 근질근질하던 차에 잘됐지.”
그러자 아프로디테가 아레스를 보고 피식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레스, 자기, 외계인 몬스터 상대는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 나를 무시하는 건가?”
아레스가 발끈했고, 대규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폴론 말대로 일단 전투 상황을 지켜보고 결정합시다.”
“내가 한다니까!”
“거인 대장들의 항아리에 갇혀 있던 주제에 말이 많군. 게다가 외계인과 한 번도 싸워 본 적 없으면서. 이번엔 외계인들의 배 속에 갇혀 있을 셈인가?”
대규가 이렇게 쏘아붙이자 아레스는 얼굴이 굳어져다.
“뭐, 뭣이?”
하지만 대규는 그런 아레스를 싹 무시하며 다른 신들에게 말했다.
“난 아폴론의 의견에 찬성입니다. 다들 이의 있습니까?”
그때 디오니소스와 눈이 마주쳤고, 그는 황급히 손을 들고 이렇게 외쳤다.
“나, 나는 대규 신의 의견에 찬성이오!”
곧 다른 신들도 연이어 이렇게 말했다.
“나도 찬성이오!”
“찬성이오!”
그들은 일전에 모두 디오니소스와 대규의 전투를 지켜봤었다. 자칫 대규의 심기를 거슬렀다가 나중에 힘든 일에 휘말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저자는 분명 디오니소스보다 실력이 한 수 위였다. 괜히 반목했다가 좋을 것 없다. 게다가 이렇게 중요한 전투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대규는 순순히 자신의 말을 따르는 신들의 모습을 보고 내심 깜짝 놀랐다.
신들이 자신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믿을 수 없군. 이런 날이 올 줄이야.’
하지만 당황할 필요는 없다.
대규는 아레스를 바라보며 씩 웃어 보인 뒤 입을 열었다.
“어떻소? 당신 빼고 다 찬성이라는데.”
아레스는 원탁에 앉은 주변 신들을 둘러봤다.
“이익… 대체 다들 어떻게 된 거야! 어이!”
하지만 대규는 아레스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아레스는 대규의 눈빛을 보자 저도 모르게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왜 이런 기분이 들지? 같은 신인데! 그것도 나는 전쟁의 신이란 말이다!’
자신을 바라보는 대규가 두려웠지만, 여기서 물러나는 건 전쟁의 신으로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너무나도 굴욕적이었다.
아레스는 밀려오는 두려움을 무시하며 꿋꿋하게 대규를 맞서 노려보았다.
‘호오, 이것 봐라?’
대규 역시 그런 아레스를 계속 쳐다봤다.
두 신 사이에 심상치 않은 공기가 흐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