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9
229화 부대 창설과 훈련 (5)
그는 살짝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알고 있습니다. 여태까진 제 신념을 지켜왔지만, 상관인 대규 님께서 원하신다면 어쩔 수 없이 시련에 들어 인간의 육체를 저버려야 하겠지요.”
그러자 대규는 그를 바라보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버린다고 표현하지 마십시오. 나 역시 세미데우스를 거쳐 신까지 왔지만 단 한 번도 인간임을 버린 적이 없다고 자부합니다.”
“죄, 죄송합니다.”
“반신반인, 혹인 신이 돼서도 인간임을 잊지 않으면 됩니다. 인간이 지닌 인간성은 꼭 자신이 지닌 육체에서 발현되는 게 아닙니다. 인간 출신임을 잊지 않고 긍지를 지닌 채 전투에 임한다면 당신은 세미데우스, 혹은 신이더라도 영원히 인간입니다.”
그 말을 들은 존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존을 보며 대규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난 당신의 전투와 당신이 지닌 마인드에서 아주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건 내가 특별히 당신에게 내리는 보상입니다. 받으십시오.”
대규는 자신이 허리 품에 차고 있던 칼인 크리티컬 소드를 그에게 건넸다.
존은 크리티컬 소드의 설명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이렇게 귀한 걸… 저는 받을 수 없습니다.”
“받으세요. 신의 명령입니다.”
명령이란 말에 존은 크리티컬 소드를 받아 들었다.
대규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판테온의 시련도 통과하고 더더욱 강해지세요. 또한 인간임을 잊지 마시고요. 그게 당신이 영원한 인간으로서 사는 길입니다.”
그리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덧붙였다.
“나는 당신처럼 인간임을 사랑하는 사람이 내 부대에 와 줘서 너무 기쁩니다.”
그 순간 저쪽에서 쿠궁! 하는 굉음이 들렸고, 기간테스 미마스가 쓰러지는 모습이 보였다.
곧 미마스 역시 대규가 낀 소환의 반지 안으로 돌아왔다.
일렁이는 흙먼지 사이로 라이펑과 지영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들은 약간 지쳐 보였고, 몸엔 잔상처가 나 있었다. 하지만 치명적인 부상을 입진 않았다.
어쨌든 그들이 미마스를 쓰러뜨린 것이다.
“수고하셨습니다.”
대규는 지영과 라이펑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이윽고 다른 영웅들 팀에 맡겼던 아기 바사탄들도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했다.
아기 바사탄들이 소환의 반지 속으로 차례로 들어왔다.
첫 훈련은 그렇게 끝났고, 여기저기서 인간 영웅들의 몸에 하얀빛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엄청나게 레벨 업을 했다.
다른 세미데우스 들도 나름 레벨을 올렸다.
세미데우스는 레벨 한 단계도 올리기 쉽지 않은데 외계인 몬스터를 쓰러뜨리니 그들의 레벨도 인간 영웅들만큼은 아니지만 조금씩 상승했다.
그리고 미마스를 쓰러뜨린 지영과 라이펑 역시 레벨이 각각 두 단계씩 상승했다.
대규는 훈련을 마친 영웅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일도 똑같은 훈련이 있을 예정입니다. 그리고 한계 레벨에 도달한 영웅들은 내일 당장 판테온의 시련을 치르러 가게 하겠습니다.”
대규의 말을 들은 영웅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다들 돌아가도 좋습니다.”
말을 마친 대규는 가장 먼저 포탈을 열어 현실의 오피스텔로 돌아왔다.
대규는 오피스텔로 돌아오자마자 옥상으로 향했다.
자신의 부대에 속한 영웅들은 열심히 훈련해야 했다. 그리고 이건 대규 자신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규는 옥상으로 올라가 빠르게 집중 상태에 들어가는 법을 연습한 뒤 플로우 검법을 수련하기로 했다.
플로우 검법에서 가장 중요한 관건은 빠른 시간 내에 초집중 상태로 돌입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집중의 상태를 깨뜨리지 않는 것이다.
이놈의 초집중 상태란 것은 몹시 섬세한 상태여서 조금이라도 다른 의식이나 잡념이 비집고 들어오면 팍 깨져 버리기 일쑤였다.
그렇기에 정신력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 집중 상태를 단단히 유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대규는 옥상으로 올라가 명상을 하기 시작했다.
콘크리트 바닥에 결과부좌를 틀고 앉은 뒤 척추를 꼿꼿이 세우고는 눈을 감았다.
스읍, 후우-
여태껏 열심히 명상해온 탓인지 순식간에 초집중 상태에 도달했다.
온몸에서 푸른빛이 은은히 뿜어져 나오는 게 느껴졌다.
대규는 그 상태에서 일어나 옛날에 훈련할 때 썼던 목검을 손에 쥐었다.
‘사슬검이 없으니 이걸로라도 훈련해야지.’
그리고 목검을 세차게 휘둘렀다.
휙, 휘릭, 휘리릭!
빠르게 몸을 움직이며 참파를 쉴 새 없이 쳐냈다. 검을 휘두르는 모습은 꼭 멀리서 보면 빠른 템포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대규는 검을 휘두르며 점점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른 뒤 대규는 플로우 검법을 중단한 뒤 한숨을 내쉬었다.
그 전보다 덜 힘든 것 같았다. 초집중의 상태에서 그렇게 미친 듯이 검을 휘둘러댔는데도 숨만 살짝 가빠졌을 뿐이다.
‘확실히 실력이 늘은 건가? 그것보다 얼마나 휘두른 거지? 한 1분 휘둘렀나?’
하지만 시계를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말도 안 돼! 한 시간이나?’
초집중 상태에 들어서니 한 시간이 1분처럼 느껴질 정도로 짧아졌다.
처음에 검법을 연습했을 때는 5분도 연속해서 검을 휘두르기가 벅찼다. 하지만 이제 한 시간이라니. 비약적인 발전이었다.
‘그래야지. 부대의 다른 영웅들도 열심히 훈련하고 있는데 나만 게으름을 피울 수는 없지.’
대규는 숨을 고르며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내 부대를 판테온 최정예 부대로 만들 것이다. 다른 그 어떤 판테온의 신들 부대보다 훨씬 더 강력한 부대로 만들 거야.’
대규는 다시 눈을 감고 집중을 하기 시작했다.
곧 그의 오른팔과 목검이 푸르스름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휙, 휘릭!
목검이 날카롭게 허공을 갈랐다.
대규는 그다음 날 밤에도 판테온으로 건너가 열심히 영웅들을 훈련시키고 있었다.
오늘은 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존과 다른 한계 레벨 도달자들은 오늘 당장 판테온의 시련을 치르러 갔다.
대규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확신했다.
어제 훈련에서 존을 비롯한 시련 참가자들 눈빛에 어렸던 기백과 그들의 뛰어난 실력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제보다 영웅들 훈련은 수월하게 진행됐다. 영웅들이 아기 바사탄들과 한번 싸워 봐서 익숙해진 것일 수도 있고, 레벨 업을 해서 그들의 능력이 오른 탓일 수도 있었다.
지영과 라이펑 역시 저 한쪽에서 열심히 수련하고 있었다.
대규는 오늘 미마스에게 마법을 쓰는 걸 허락했다.
지영과 라이펑은 미마스의 여러 스킬들을 맞으며 당황했지만 결국 슬기롭게 버텨 내면서 싸우고 있었다.
라이펑이 갑옷의 날개를 퍼덕이며 지영에게 외쳤다.
“지영 씨, 제가 녀석의 마법을 막겠습니다!”
그가 주문을 외우자 선홍빛 결계가 미마스의 거대한 몸 주변에 쳐졌다.
“마법 무효 결계 지속 시간은 3분 남짓입니다! 그사이 빠르게 해치웁시다!”
“알겠어요, 라이펑 씨!”
마법 무효 결계가 쳐지자마자 이번엔 지영이 하늘 높이 날아오른 뒤 자기 자신에게 전쟁의 축복 버프를 걸었다.
버프를 건 그녀는 이제 쌍검을 높게 쳐든 뒤 미마스의 몸을 철저하게 난도질했다.
샥, 샥, 샥!
“그으윽!”
미마스의 피부가 벗겨져 나갔고, 살점이 뭉텅뭉텅 떨어졌다. 이제 그녀는 미마스의 울룩불룩한 어깨를 딛고 다시 한 번 가볍게 점프한 뒤 능숙하게 공중제비를 돌았다.
미마스가 있는 힘을 다해 그녀에게 지팡이를 휘둘렀지만 가볍게 피한 뒤,
“흐압!”
검기가 무시무시하게 실린 쌍검을 미마스를 향해 사정없이 내리쳤다.
파지직! 콰콰쾅!
검기는 미마스의 정수리를 향해 정확히 내리꽂혔다.
“그르르…….”
미마스는 결국 쓰러졌고, 곧 대규의 소환의 반지 안으로 들어갔다.
라이펑은 지영의 공격을 보며 외쳤다.
“나이스 어택!”
“라이펑 씨도 수고하셨어요.”
그들은 땅에 내려와 웃으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대장군과 장군의 팀워크는 아주 잘 맞는 것 같았다.
대규는 그들을 향해 다가가며 말했다.
“두 분은 훈련을 아주 잘하고 계시는군요.”
“아… 이 모든 게 대규 님 덕분입니다.”
지영과 라이펑은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그것보다 판테온의 시련에 든 영웅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라이펑이 묻자 대규가 대답했다.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제 곧 돌아올 겁니다.”
다른 영웅들의 훈련도 서서히 끝나 가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아기 바사탄들이 쓰러졌고, 영웅들의 몸에서 하얀빛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라이펑은 훈련을 마치고 레벨 업 하는 인간 영웅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정도 페이스라면 조만간 모두 인간 영웅 한계 레벨에 도달하겠군요.”
“그렇겠죠? 확실히 인간 영웅들이 외계인을 쓰러뜨리면 엄청난 양의 경험치를 얻게 되니까요. 아, 마침 저기 판테온의 시련을 마친 영웅들이 돌아왔군요.”
그들은 평원 한쪽을 바라보았다.
곧 그곳에 포탈이 생겨나면서 대규 부대의 영웅들이 차례차례 나오기 시작했다.
존과 한계 레벨에 도달한 다른 영웅들이었다.
판테온의 시련을 치르러 갔던 자들은 총 23명이었는데 무사히 다들 잘 돌아온 것 같았다.
존의 몸에서는 은빛의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대규는 그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했다.
“더욱 늠름해진 것 같습니다. 세미데우스가 된 걸 축하합니다.”
그러자 존은 얼굴을 붉히며 이렇게 말했다.
“대규 님 덕분입니다. 이 새로운 육체… 엄청나군요. 자가 회복 능력도 있고…….”
“맞습니다. 그 육체로 우리 부대를 위해 더욱 열심히 싸워 주십시오. 물론 자신이 인간임을 잊지 말고요.”
“알겠습니다.”
대규는 싱긋 웃어 보인 뒤 훈련을 마친 영웅들에게 다가가 말했다.
“다들 수고 많았습니다. 이제 훈련에 익숙해진 것 같군요. 그럼 내일부턴 팀당 아기 바사탄 두 마리씩 풀겠습니다.”
그렇게 한 달이 흘렀다.
이제 300여명의 영웅 중 약 60명 정도가 세미데우스가 됐다.
이 정도 페이스라면 최후의 결전까지 부대의 모든 영웅이 세미데우스가 되는 데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다행히 시련에 들었다가 망자가 돼 버린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지영과 라이펑도 훨씬 강해졌다.
뿐만 아니라 대규의 플로우 검법도 더욱 날카로워지고 위력적으로 변했다.
자신의 레벨이 오르진 않았지만 플로우 검법이 익숙해져서 이젠 2시간 동안 플로우 상태에 있어도 괜찮을 정도로 발전했다.
이제 최후의 결전까진 두 달 남짓한 기간만 남겨 두고 있었다.
하지만 대규는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헤파이스토스에게 맡긴 무기를 돌려받을 때가 됐다.
대규는 떨리는 마음을 안고 헤파이스토스의 작업장으로 향했다.
도착하자 헤파이스토스가 밝은 얼굴로 그를 맞이했다.
‘오오, 왔는가! 마침 무기들이 다 완성이 됐다네.”
헤파이스토스는 사슬검과 방패, 그리고 황금 갑옷을 건넸다. 방패와 갑옷은 그대로였는데 사슬검은 검은 벨벳 천으로 덮여 있었다.
‘으응?’
대규는 그가 건넨 방패와 갑옷을 보고 살짝 놀랐다.
방패와 갑옷은 그 전과 달리 짙은 회색빛을 띠고 있었다.
“이거 왜 이럽니까?”
그러자 헤파이스토스가 이렇게 말했다.
“귀아스페룸을 입혀서 그런 거야. 장비의 기능들을 한번 확인해 보게. 실망하지 않을 걸세.”
그는 흐흐, 웃으며 대규를 바라본 뒤 갑옷과 방패를 향해 힐끗 눈짓했다.
대규는 방패와 갑옷을 바라보았다.
아이템 설명창을 읽어 봤지만, 방패와 갑옷이 지닌 효과들은 그전과 똑같았다.
하지만 딱 한 가지가 달랐다.
단단한 거인들의 강철로 업그레이드한 탓인지, 방패와 갑옷의 물리 방어력은 말도 안 될 정도로 높아졌다.
[귀아스페룸의 강화 효과 덕분에 방패의 물리 방어력이 999 추가 상승했습니다.]
[귀아스페룸의 강화 효과 덕분에 갑옷의 물리 방어력이 999 추가 상승했습니다.]
999라는 숫자 앞에서 대규는 할 말을 잃었다.
‘대체 이놈의 강철은 정체가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