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2
222화 귀아스페룸 (3)
뭐 이런 녀석이 다 있냐.
스킬을 복사할 수도 없다니.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역시 드래곤이란 종족은 남다른 종족인 것 같았다.
‘그래. 내가 꼬리를 달고 있는 것도 아니고, 꼬리치기 같은 스킬을 복사해 봤자 어떻게 쓰겠어.’
대규는 좋게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일단 몸부터 키워야 했다. 저 거대한 드래곤과 체급이 맞아야 전투를 할 것이 아닌가.
대규는 패시브 스킬인 플렉서블 바디를 시전했다.
곧 속이 울렁거리는 느낌이 들었고 손, 발 그리고 몸통이 차례로 커졌다. 물론 그가 타고 있는 옵티뭄의 크기도 같이 커졌다.
이놈의 스킬은 처음 쓰는 것도 아닌데 울렁거리는 느낌은 여전히 익숙해지기 힘들었다.
몸이 커지자 이제 좀 드래곤을 상대할 만한 것 같았다.
‘그래도 저 녀석에 비하면 턱없이 작긴 하지만.’
대규의 몸집은 기간테스들과 비슷한 상태였다. 그 말은 곧 드래곤 앞에선 꼬마 아이 크기나 다름없다는 상태였다.
‘정말 어마어마한 몸집이군.’
그때 대규를 발견한 드래곤이 날갯짓을 하며 날아왔다.
날개를 몇 번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돌풍이 형성됐다. 좀 전처럼 몸이 휘청거리며 날아갈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 위협적이었다.
대규는 녀석의 날개에서 발생하는 돌풍을 피해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투명 망토의 투명화 스킬을 발휘했다.
녀석이 투명해진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는 틈을 타 공략영상을 숙지할 계획이었다.
“끼에에엑?”
대규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드래곤은 커다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상한 울음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녀석의 입이 벌어지며 까만 드레곤 브레스가 나오기 시작했다.
브레쓰는 지옥의 연기처럼 뭉게뭉게 퍼져 나왔다. 곧 엄청난 열기가 대규의 몸을 덮쳤다. 방패들과 갑옷의 마법 저항력으로 최대한 막아 봤지만, 입김의 열기는 피부를 녹일 정도로 강력했다.
“히힝!”
옵티뭄이 괴로운 듯 울부짖었다. 자세히 보니 옵티뭄의 등 피부가 시뻘겋게 부어오르고 있었다.
공략집은 전략을 분석 중이라는 메시지창만 띄우고 있었다.
‘제길, 빨리 영상을 봐야 한다.’
영상으로 확인한 바 드래곤의 약점은 눈알이었다. 무조건 그곳을 노려서 공격해야 했다.
드래곤의 몸은 거인의 강철 귀아스페룸으로 뒤덮여 있어서 그 어떤 무기로도 흠집을 낼 수가 없었다.
물론 비늘과 비늘 사이 아주 미세한 틈들이 있었지만, 그곳을 정확히 노려 사슬검으로 찌른다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틈들은 그만큼 너무 작았고 귀아스페룸 비늘들은 너무 촘촘하게 돋아나 있었다.
‘저 귀아스페룸은 정말 단단하고 강력한 금속이군!’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녀석에겐 하스터의 석화 공격도 통하지 않았다.
드래곤이라지만 이 거인들의 지옥에 갇혀 있는 거로 보아 외계인들과 비슷한 피를 공유하고 있는 것 같았다.
결국 녀석의 붉게 빛나는 눈알만이 유일한 약점이었다.
대규는 눈알이 붙어 있는 녀석의 얼굴을 향해 날아들었다.
하지만 눈알을 정확히 공격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눈알 쪽으로 사슬 검날을 휘두르려 할 때면 어김없이 녀석의 강력한 꼬리가 날아오고 있었다.
‘투명해서 보이지 않을 텐데……?’
대규는 녀석의 꼬리를 피하며 생각했다.
그때 공략집의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철혈의 드래곤은 청각과 후각이 몹시 발달해 있어서 가까이선 냄새와 소리만으로 상대방의 기척을 알아챌 수 있습니다.>
이건 뭐 너무 사기적인 몬스터 아닌가.
결국 투명화 스킬은 녀석에게 효과가 없다는 뜻이었다.
사슬검을 다시 휘두르려 했지만, 녀석의 꼬리가 다시 거세게 날아왔다.
꼬리의 피부에도 역시 단단한 귀아스페룸 비늘들이 비죽비죽 돋아나 있었다.
이번에도 피하려 했지만, 꼬리가 한발 빨랐다.
꼬리는 대규의 옆구리를 정확히 노리고 날아 들어왔다.
대규는 방패를 들어 급하게 그것을 막았다.
콰아아아앙!
엄청난 파열음이 허공을 울렸다.
쩌억-
말도 안 돼!
방패에 금이 갔다.
네메시스의 방패는 여태까지 수없이 많은 몬스터의 공격을 막아내 왔다. 게다가 아이기스의 방패와 합쳐 업그레이드를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쉽게 금이 가다니…….’
금이 간 지점은 정확히 괴물뱀 아이기스의 이마 한가운데였다.
아이기스는 얼굴을 찡그리며 날카로운 비명을 냈다.
“끼에엑!”
일단 이 방패는 전투 후 귀아스페룸을 갖고 초월자 등급 무기를 만들러 헤파이스토스 찾아갔을 때 함께 수리를 맡기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러려면 우선 저 녀석을 이겨야 하는데… 그럴 수 있을까?’
저 정도로 강력한 녀석인데 과연 녀석을 이기고 귀아스페룸을 가져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아니, 살아서 이곳을 벗어날 수 있을까?’
오랜만에 느껴 보는 나약한 감정이 스멀스멀 가슴속에서 기어 올라왔다.
대규는 마음을 다잡으며 생각했다.
‘약한 생각은 하지 말자. 어쨌든 앞으론 저 녀석의 공격을 방패로 똑바로 막아 내는 무모한 짓은 하면 안 된다!’
공격을 막지도 못한다면 더욱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녀석의 눈알을 찌르고 들어갈 틈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드래곤은 방패에 금이 가 살짝 당황한 대규의 태도를 알아챈 것 같았다. 그 이후 녀석의 공격은 더욱 거세졌다.
‘빌어먹을!’
그때 공략집의 메시지창이 구세주처럼 떠올랐다.
<공략집이 최적의 전략을 분석해 제공합니다.>
이제야 분석을 마쳤냐? 빠르기도 하지.
그것보다 분석할 게 뭐가 있을까? 분명 저 눈만 집중적으로 공격하면 된다고 말할 텐데.
하지만 공략집은 대규의 예상과 달리 이런 전략을 세웠다.
<소환의 반지로 하스터를 불러내십시오.>
대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좀 전에 영상으로 확인한바 드래곤에겐 하스터의 석화공격도 소용이 없었다.
그때 드래곤이 다시 입을 벌려 대규를 향해 브레쓰를 뿜어내기 시작했고 옵티뭄은 괴로운 듯 울부짖으며 휘청거렸다.
대규는 최대한 브레쓰를 피해 도망가며 소환의 반지로 하스터를 불러냈다.
‘공략집이 말하는 전략이니 뭔가 수가 있겠지.’
반지를 바라보니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소환의 반지에 저장된 몬스터를 소환할 수 있습니다. 소환할 몬스터를 선택해 주십시오.]
[크투가 / 미마스 / 하스터 / 크아이가]
대규는 망설일 틈 없이 하스터를 선택했다.
곧 눈앞에 황색 두건을 뒤집어쓴 하스터가 나타났다.
하스터는 드래곤 쪽을 바라보았다. 곧 그가 뒤집어쓰고 있는 황색 두건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외계인도 드래곤은 두려워하는 건가? 그것보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공략집의 전략창이 빠르게 올라왔다.
<하스터는 온몸이 구더기로 구성된 외계인입니다. 그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구더기들을 해체하면 구더기들이 드래곤의 비늘과 비늘 사이 틈으로 들어가 공격을 할 수 있습니다.>
<비늘 틈을 공격당해 드래곤이 당황하는 사이 드래곤의 약점인 눈을 공격하면 해치울 수 있습니다.>
<단, 드래곤의 눈알은 몹시 단단해서 웬만한 무기와 공격으론 쉽게 파괴되지 않습니다.>
‘그렇구나.’
하스터의 몸은 수백, 아니 수천 마리의 구더기들로 구성돼 있었다. 구더기들이 모이고 모여서 신체의 형상을 이루고 있는 외계인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 구더기들의 크기는 아주 작았다. 녀석들을 해체해서 드래곤의 몸에 쏟아붓는다면 분명 비늘과 비늘 사이의 작은 틈으로 기어 들어가 효과적으로 공격할 수 있을 것이다.
‘신박한 전략인걸.’
물론 전략창의 마지막 내용이 좀 걸리긴 했다.
하지만 대규는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아무리 단단해 봤자 파괴가 안 되겠어? 정 안되면 스킬과 검법으로 박살 내 주마!’
대규는 하스터를 향해 이렇게 명령했다.
“하스터! 드래곤에게 날아가서 네 몸을 구성하고 있는 구더기들을 해체시켜라!”
하스터는 몸을 떨 정도로 드래곤을 두려워했지만, 주인인 대규의 명령은 충실히 이행했다.
곧 그는 황색 두건을 휘날리며 철혈의 드래곤을 향해 날아갔다.
드래곤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하스터를 보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곧 그 육중한 꼬리를 있는 힘껏 휘둘러 하스터의 몸을 정확히 때렸다.
파아앙!
굉장한 파열음과 함께 하스터의 몸은 산산조각이 났다.
‘됐다!’
하스터의 몸이 산산조각이 남과 동시에 몸을 구성하고 있던 수천 마리의 구더기들이 드래곤의 등 위로 우수수 떨어졌다.
하스터가 걸치고 있던 황색 두건은 허망하게 공중에서 휘날리고 있었다.
수천 마리의 구더기는 곧 드래곤의 비늘과 비늘 사이 미세한 틈 속으로 가차 없이 파고들었다.
대규는 신의 눈을 이용하여 드래곤의 비늘 틈을 바라보았다.
현미경을 댄 것처럼 비늘 사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비늘 사이엔 드래곤의 속살이 드러나 있었는데 구더기들은 이빨을 드러낸 채 그 속살을 열심히 파먹고 있었다.
곧 따끔따끔한 고통이 드래곤의 온몸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드래곤은 이제 중심을 잃고 공중에서 휘청거리며 날갯짓을 하기 시작했다.
빈틈이 생겼다.
대규는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녀석의 눈알을 공격하기 위해 날아갔다.
얼굴에 붙어 있는 눈알은 피처럼 붉었다. 대규는 그 눈알에 사슬검을 박아 넣었다.
챙!
응?
당연히 쑤욱, 하고 눈알 안으로 박혀 들어갈 줄 알았던 사슬검의 검날은 퉁겨져 나왔다.
믿기 힘들겠지만, 녀석의 눈알 역시 강철로 만들어진 것처럼 단단했다.
대규는 스킬을 써서 눈알을 공격했다.
“레툼 익투스!”
화염구를 품은 검광들이 눈알을 공격했다.
팅! 팅! 팅!
눈알은 검광들은 다 반사해 버렸다.
‘제기랄, 이런 눈알이 약점이라고?’
정말 드래곤이란 종족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 같았다.
그때 공략집의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철혈의 드래곤 눈알은 이식한 크아이가의 눈으로 파괴신을 불러 공격할 수 있습니다.>
대규는 자신의 오른쪽 눈을 의식하며 생각했다.
‘그래, 이 눈동자로 파괴신을 부를 수 있다고 했지.’
솔직히 그놈의 파괴신의 정체가 궁금하긴 했다. 이름도 그렇고 꽤나 심상치 않은 녀석일 것 같았다.
‘한번 불러 보자.’
분명히 이 눈을 이식하고 파괴신을 한 번 이상 불러내서 다른 존재를 해치우면 랜덤으로 외계인의 유용한 능력까지 얻게 된다고 했다.
적도 해치우고 랜덤으로 유용한 능력도 얻고, 일석이조의 상황 아닐까?
‘아니, 이렇게 태평하게 일석이조를 논하기 전에 빨리 이 눈알을 파괴해야 한다!’
철혈의 드래곤은 이제 점점 더 과격하게 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하스터의 구더기들이 확실히 잘 공격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녀석이 몸을 비틀어대는 바람에 녀석의 눈알을 공격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그런데 이 눈으로 파괴신을 어떻게 소환해야 하지?’
대규는 일단 눈을 커다랗게 떴다.
그러자 오른쪽 눈이 시린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곧 이상한 메시지이 떠올랐다.
[파괴신, 심연의 거주자를 부르시겠습니까? Yes/No]
심연의 거주자라면 파괴신의 다른 이름인가? 왠지 멋있어 보이는걸.
대규는 망설임없이 Yes를 선택했다.
그 순간 입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튀어나왔다.
“으아악!”
오른쪽 눈이 빠질듯이 아파 왔다. 대규의 오른쪽 눈에선 시뻘건 핏줄들이 잔뜩 올라왔다. 꼭 심각한 눈병에 걸린 것 같은 모습이었다.
눈이 아프면서 뜨거웠다.
‘불덩이 같아!’
그때 대규의 눈앞에 포탈이 하나 열렸다.
그리고 이상하게 생긴 존재가 포탈 안에서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거대한 거북이 같이 생겼는데 촉수처럼 생긴 꼬리들이 잔뜩 달려 있었고. 피부는 주름져서 축축 늘어져 있었다.
‘저게 파괴신? 심연의 거주자?’
그런데 더욱 이상한 건 그 파괴신이란 거북이 괴물 녀석은 눈이 없었다.
눈이 있어야 할 곳은 텅 비어 있었고, 눈꺼풀만이 축 처져 있었다. 원래 눈알이 그곳에 있었는데 빠져 버린 것 같은 형상이었다.
그때 거북이가 대규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고 공략집의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파괴신 심연의 거주자(Dweller of gulf)를 불러냈습니다. 심연의 거주자에게 크아이가의 눈동자를 내줘야 그가 싸우기 시작합니다.>
설마, 설마!
거북이 괴물의 촉수 꼬리들이 대규를 향해 슬금슬금 날아왔다. 촉수 꼬리들은 대규의 다리와 몸을 지나쳐 오른쪽 눈으로 다가왔다.
저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입에서 비명이 튀어나왔다.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