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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집을 습득하셨습니다-216화 (216/294)

# 216

216화 디오니소스 (1)

더군다나 본인이 직접 말하지 않고 아래에 있는 인간 영웅을 시켜서 전하라고 했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마도 본인이 직접 말하면 제우스의 명령을 어기는 게 되어 버릴 테니 그랬을 테지. 그러니까 이렇게 인간 영웅을 시켜서 판테온의 세계가 아닌 현실 세계에서 전하라고 한 것일 거다.

영웅의 말을 듣고 대규가 자신의 부대 영웅들을 건드리지 않게 된다면 엄밀히 따져 봤을 때 디오니소스는 제우스의 명령을 어긴 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규는 기분이 몹시 나빠졌다.

여태껏 디오니소스와 한 번도 갈등을 일으킨 적은 없었지만, 이 전언으로 마음이 완전히 상했다.

대규는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채 아키야마에게 말했다.

“그 전언 아주 잘 들었습니다. 하지만 듣기만 하겠죠.”

“예?”

대규의 얼굴을 본 아키야마의 표정이 더욱 긴장됐다.

이제 그의 얼굴에 두려운 기색마저 엿보였다.

대규는 그를 보며 딱딱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다른 신들의 부대에서 내 부대원을 모집하는 건 제우스 님이 지난번 전투에서 내가 공을 세운 대가로 특별히 배려해 주신 겁니다. 만약 당신의 상관이 이에 불만이 있다면 직접 제우스 님, 혹은 나에게 와서 제기하라고 하세요. 이렇게 현실 세계에서 부하를 통해 전하지 말고.”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그렇게 안 봤는데, 당신의 상관은 정말 비겁한 신이로군요. 그럼 식사 맛있게 하시오.”

말을 마친 대규는 그의 테이블을 떠났다.

대규는 일본의 식당 오픈 기념식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기분은 좋지 않았다.

일본의 굴라 레스토랑에서 있었던 일이 그의 심기를 심각하게 거슬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막상 같은 신이 돼 보니 판테온의 신들은 예전에 봤던 것만큼 그리 완벽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라이펑에게 들었던 아폴론의 모습도 그랬고, 자신의 부하를 시켜 대규를 견제한 디오니소스의 모습도 그랬다.

‘헤르메스와 아테나와 전투를 하면서 대충 느끼긴 했지만,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헤르메스와 아테나의 모습은 뭐랄까, 친근감이 느껴지는 인간적인 모습이었지만 아폴론과 디오니소스의 경우는 좀 달랐다.

인간 세상에서 질리도록 봤던 졸렬하고 치사한 모습들에 가까웠다.

친근감은커녕 기분이 나빠졌다.

대규는 그 두 명의 신들에 대해 조사해 보기로 했다.

물론 지니고 있는 신화 지식 덕분에 두 신의 대략적인 정보를 얻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래도 대규는 더욱 자세히 알아봤다.

특히 그중에서 디오니소스에 대해서 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폴론이야 본래 성격이 그렇다는 걸 미리 알고 있긴 했다.

처음 그를 보고 공략집이 떴을 때 그가 신을 인간보다 우월하다고 느낀다는 걸 인지했기 때문이다.

라이펑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좀 어이없고 황당하긴 해도 이해 가능한 범주였다.

하지만 디오니소스의 경우는 달랐다.

자신 부대 영웅들을 건드리지 말라는 말은 아폴론처럼 인간 자체를 경시해서 나온 게 아니라 특별히 대규를 겨냥해서 한 것이었다.

이건 본래 지닌 성정의 문제라기보다 대규를 콕 집어서 적대시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대규는 디오니소스에 대해 더욱 자세히 알아보기로 했다. 기본적인 신화 지식을 넘어서서 세세한 것까지 조사해야 자신에 대한 적개심의 근원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알아냈다.

본래 디오니소스는 다른 판테온의 신들과 달리 애초부터 신의 육체를 지니고 태어난 신이 아니었다.

그의 아버지는 신들의 아버지인 제우스였지만 그의 어머니는 인간이었다.

한마디로 반신반인, 세미데우스 출신이라는 것이다.

물론 나중에 아버지 제우스에 의해 신의 육체를 얻게 됐지만 말이다.

또한, 공략집이 중요한 정보도 알려줬다.

<디오니소스는 자신의 출생에 대해 다른 판테온의 신들에게 열등감을 갖고 있고 질투심이 심합니다. 따라서 자신의 출신을 이야기하는 걸 극도로 싫어하며 다른 정령과 부하들에게 자신의 출신을 절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아랫사람이나 부하들에겐 차별 없이 잘해 주지만, 인간, 혹은 세미데우스 출신이 자신보다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위에 서는 걸 극도로 질투합니다.>

마지막 내용을 읽은 대규는 저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 말이 사실이라면 자신을 싫어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사실 대규는 헤라클레스 이후 인간 출신으론 최초로 신이 된 자였다.

다른 판테온의 신들처럼 태어날 때부터 신이 아니라 저 밑바닥 차원의 틈부터 시작해서 차례차례 성장해 신이 된 존재다.

디오니소스는 그런 대규가 신이 돼서 자신을 뛰어넘을지도 모른다 생각한 것 같다. 특히 제우스 신이 부대원을 모을 때 특별히 다른 신들의 부대에서 영웅을 모집하는 걸 허락해 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질투심이 폭발할 수밖에.

승전 파티에서 봤을 때는 대규는 신이 아니라 세미데우스였으니 지금처럼 적대감을 가질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때는 누가 봐도 확연한 아랫사람이니까.

어쨌든 아폴론과 달리 자신의 아랫사람들에겐 차별 없이 잘해 주는 것 같았다.

일본에서 봤던 아키야마만 봐도 그 얼굴에서 디오니소스에 대한 불만이나 뭐 그런 건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충성스러운 느낌이 들면 들었지.

하지만 대규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단순히 대규를 질투하면서 부대원을 모집하는 데 방해하는 건 공평한 처사가 아니었다.

디오니소스를 직접 찾아가서 따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젠 나도 그와 같은 신이기 때문에 그에게 가서 따지는 건 전혀 무례한 행동이 아니었다.

‘제우스 신이 명령을 내린 건데 내가 직접 가서 따지면 그도 무슨 말을 못 하겠지.’

말 나온 김에 지금 가는 게 좋겠다.

대규는 차원의 틈 열쇠를 쥐고 판테온 광장으로 향했다.

판테온 광장에 도착한 대규는 인피니투스에서 옵티뭄을 꺼냈다.

가방 안은 구역이 나뉘어 있어서 딥원들과 옵티뭄은 따로 보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선 투명 망토의 효과를 일으켰다. 정령들이 다가와 시끄럽게 구는 건 이제 귀찮았다.

스르륵-

온몸이 투명해진 걸 확인한 후 대규는 공략집의 지도창으로 디오니소스 신의 위치를 확인했다.

판테온에 있는 자신의 신전에 있을 거로 생각했던 대규의 예상과 달리 디오니소스는 숲속에 있었다.

그곳은 헤라클레스와 만났던 오두막 신전 근처의 숲이었다. 켄타로우스들이 사는 숲과는 정반대에 있는 곳이다.

‘그런데 왜 숲에 있는 거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대규는 옵티뭄을 타고 디오니소스가 있는 숲으로 달려갔다.

숲 입구에 도착하자 그곳에서부터 왁자지껄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간간이 악기를 연주하는 것 같은 음악 소리도 들렸다.

저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디오니소스가 위치한 점에 점점 다가갈수록 소리는 점점 커졌다.

얼마 후 눈앞의 광경을 본 대규는 깜짝 놀랐다.

고약한 술 냄새가 진동했으며, 그곳엔 술판이 흐드러지게 벌어져 있었다.

“크헬헬헬~”

“꺄르르~”

염소 인간 정령들과 아리따운 여자 정령들이 술에 취해 서로 나뒹굴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다른 영웅들도 술에 얼큰하게 취해 정신없이 연회를 즐기고 있었다.

그들의 눈은 다들 풀려 있었고, 얼굴은 취기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대규는 자신이 와도 열심히 짝을 지어 나뒹굴고 있는 정령들을 보며 생각했다.

‘꼭 예전 하데스의 저승에서 봤던 애욕의 지옥 같군.’

그런 광경이 이 신성한 판테온의 숲 한복판에서 벌어지고 있다니.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난장판 한가운데 포도 넝쿨을 왕관 대신 둘러쓴 디오니소스 신이 누워 있다는 거다.

그는 악기를 들고 있는 정령들을 바라보며 외쳤다.

“풍악을 울려라!”

그때 대규는 옵티뭄을 몰고 연회장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으응?”

술에 취해 있던 정령들과 영웅들이 고개를 들어 다들 대규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대규의 몸에서 발하는 황금빛을 보더니 다들 취한 와중에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아무리 취해도 신을 공경할 줄은 아는군.’

그때 디오니소스 역시 대규를 발견했다.

그는 연회를 방해받아 아주 불쾌하단 표정으로 대규를 바라보며 말했다.

“넌 뭐지?”

대규는 옵티뭄의 등에서 내린 뒤 그에게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왔습니다.”

하지만 그는 대규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몹시 짜증스럽다는 얼굴로 이렇게 툭 쏘아붙이는 게 아닌가.

“흥! 너 때문에 흥이 다 깨져 버렸으니까 책임져.”

뭘 책임지란 말인가, 어이가 없군.

하지만 더 어이가 없는 건 술판을 벌이고 있던 정령들이었다. 디오니소스가 저렇게 내뱉자마자 그들은 갑자기 환호성을 지르며 대규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와아아! 새로운 신이 오셨다.”

“노래해 주십시오! 노래!”

이런 분위기 파악 못 하는 녀석들을 봤나.

대규는 눈치 없이 흥을 돋우는 정령들을 향해 눈을 있는 힘껏 부라렸다.

그러자 정령들은 흠칫하며 다시 고개를 숙이고 벌벌 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디오니소스가 몸을 일으킨 뒤 엄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런 무엄한 녀석을 봤나!”

그러자 대규 역시 지지 않고 받아쳤다.

“무엄한 녀석이라니, 나도 당신과 같은 신입니다!”

디오니소스는 콧방귀를 뀌면서 거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흥! 이제 갓 신이 된 애송이 녀석 주제에 건방지군. 주변에서 다들 잘했다고 오냐오냐해 주니까 아주 신이 났구만그래.”

그 말을 들은 대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이성을 잃고 흥분하면 안 된다.

그는 더욱 차가운 목소리로 디오니소스에게 이렇게 맞받아쳤다.

“신이 나다뇨. 여기서 술판을 벌이고 있는 당신만 하겠습니까?”

“뭐라고? 이 녀석이…….”

디오니소스는 화가 나서 대규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대규는 몸을 슬쩍 틀어 옆으로 살짝 피했다.

그러면서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대체 왜 나에게 반감을 갖고 있는 겁니까?”

그러자 디오니소스는 그를 노려보며 씨근덕댔다.

“반감은 무슨 놈의 반감! 난 그냥 네 녀석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뿐이다. 예전부터 말이다.”

“나를 마음에 안 들어 하는 건 좋습니다. 마음껏 싫어하시죠. 하지만 내가 부대를 꾸리는 걸 방해하진 마십시오.”

대규가 또박또박 말했지만, 그는 여전히 비아냥거릴 뿐이었다.

“허이구, 신이 되더니 아주 눈에 뵈는 게 없나 보군. 아테나가 아주 오냐오냐해 주면서 다 망쳐 놨구만. 하여튼 아테나는 강한 남자만 나타나면 정신을 못 차리지. 아주 아이기스 방패까지 내주고… 열녀가 다 됐어! 허!”

아무래도 아테나가 대규에게 아이기스 방패를 줬다는 건 판테온 신들 사이에 다 소문이 난 것 같았다.

‘헤르메스가 결국 소문을 냈나?’

역시 소문은 빠르게 퍼진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대규는 디오니소스의 폭언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자신만 욕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상관이었던 아테나까지 욕하니 견딜 수 없었다.

대규는 차가운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당신의 뜻을 아주 잘 알겠소. 큰 갈등은 여기서 일으키기 싫으니 제우스 님께 이야기하도록 하겠소. 그럼 술독에 빠져서 잘 지내시죠.”

“뭐라고? 치사하게 일러바치기냐? 하여튼 인간 출신에서 신이 된 녀석이라서 속도 좁고, 아량도 없다니까.”

어이가 없군.

대규는 입가에 조소를 띠면서 말했다.

“…치사한 건 그쪽입니다. 역시 태생이 신이 아니라 반신반인이라 그런지 졸렬함과 치사함도 남다르군요.”

그 순간 정령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뭐라고? 지금 그게 무슨 소리야?”

“디오니소스 님이 반신반인이었다고?”

“그럼 우리 정령들하고 똑같은 존재였단 말인가?”

웅성웅성.

결국 디오니소스는 폭발하기 시작했다. 그가 가장 기피하는 약점을 건드린 것이다.

“네 이놈!”

그는 허리춤에서 자신의 무기인 가느다란 검을 꺼내 든 뒤 대규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의 눈빛은 분노로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그래, 덤벼라. 나도 상대해 주마.’

자신이 잘못한 건 없다. 그리고 이젠 자신도 같은 신이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대드는 하극상도 아니었다.

대규 역시 불카누스의 검을 쳐들었다.

화르륵-

칼날 끝에서 악마의 화염이 거세게 치솟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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