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5
215화. 부대 창설 (3)
라이펑의 물음에 대규는 나지막이 대답했다.
“…맞습니다.”
“그럼 이제 그녀를 찾아가실 겁니까?”
“그러려고 합니다. 하지만 좀 떨리기도 합니다. 하하…….”
그런 대규의 모습을 본 라이펑이 놀라서 물었다.
“천하의 대규 님이 다 떨릴 때도 있군요.”
그러자 대규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라이펑 씨, 당신과 달리 저는 그녀를 현실에선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답니다. 현실에선 굳이 만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었으니까요.”
“그랬군요.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네?”
“그녀 역시 분명 대규 님이 부대원을 모집한단 소문을 들었을 겁니다. 그 소문은 모든 영웅 사이에 퍼져 있으니까요. 아마 그녀 쪽에서 먼저 찾아올 겁니다. 제가 장담합니다.”
“그럴까요?”
대규가 묻자 라이펑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네, 그녀는 분명 그럴 겁니다. 그리고 그녀가 먼저 대규 님의 부대에 들어오고 싶다고 말할 것입니다.”
대규는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라이펑에게 물었다.
“대체 뭘 보고 그렇게 확신을 하시는 거죠?”
그러자 라이펑은 대답 대신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이렇게 반문했다.
“대규 님은 정말 모르십니까?”
“뭘 말입니까?”
“히폴리토스와 싸울 때 그녀가 대규 님을 바라보던 얼굴과 몸짓 등을 종합해 봤을 때, 그녀는 대규 님은 좋아합니다.”
그 말을 듣고 대규가 당황하자 라이펑은 이렇게 덧붙였다.
“정확히는 남자로서 사랑한다기보다 존경과 경의가 섞인 것 같습니다.”
“…….”
그의 말에 대규는 대답하지 않았다.
‘지영이 날 좋아한다고?’
그런 건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때 그의 마음이 이렇게 속삭였다.
‘정말 생각해 보지 않았어?’
거짓말이다. 생각해 봤다.
하지만 대규는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남녀 사이이기 이전에 같이 싸우는 전우이고 동지였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이젠 상관과 부대원, 즉 상하관계를 맺으려고 하고 있다.
‘그녀가 날 좋아한다고……. 그런데 그녀를 내 부하로 들여도 되는 걸까?’
가슴속에 고민이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하지만 지영의 실력은 흠잡을 데 없는 일류였다. 솔직히 평가하자면 자신 다음으로 제일가는 인간 출신 영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녀의 실력은 아테나 여신도 인정했다.
아테나 여신 부대의 영웅들은 다들 그녀를 보고 제2의 아테나라고 부를 정도였다.
‘일단 그녀를 먼저 만나 봐야 한다.’
라이펑의 예측은 맞았다.
대규가 중국에서 돌아와 사무실에 출근하자 지영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지영에게 물었다.
“지영 씨, 대체 여길 어떻게 알고 찾아온 겁니까?”
그러자 그녀는 자신의 핸드폰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대규 님은 현실에서도 엄청 유명하시니까요.”
핸드폰 화면에는 SNS에 게시된 탕꼬에 대한 글이 떠올라 있었다.
확실히 대규는 이제 판테온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엄청 유명해졌다.
“그런데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대규 님이 부대원을 모집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찾아왔어요.”
말을 마친 그녀는 대규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대규 앞에 선 뒤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판테온에서처럼 단단한 갑옷을 입고 있는 게 아니라 여대생처럼 발랄한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그런 차림을 한 채 무릎을 꿇으니 상당히 어색했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지영은 고개를 숙인 채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규 님, 저를 부대로 데려가 주십시오.”
“저기… 일단 일어나세요, 지영 씨.”
하지만 지영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규는 당황스러웠지만 조금 엄격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여긴 판테온이 아닙니다. 그리고 신으로서의 명령입니다. 어서 일어나세요.”
그제야 지영은 벌떡 일어났고, 대규는 그녀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현실에서 이렇게 만난 건 처음이라 그런지 되게 어색했다.
‘판테온에선 목숨을 걸 정도로 위험한 전투들을 몇 번이나 헤쳐 온 전우인데 말이지.’
원피스를 차려입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아주 아름다웠다.
본래 판테온에서 갑옷으로도 그 미모를 가릴 수 없는 지영이었지만, 이렇게 차려입으니 정말 아름다움이 만개했다고나 할까.
대규는 지영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사실 죄송합니다. 제가 먼저 지영 씨를 찾아갔어야 하는데……. 저는 항상 지영 씨를 부대원 섭외 1순위로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게 정말인가요?”
지영이 놀라서 물었고 대규가 대답했다.
“네. 당신의 실력은 현재 최고니까요. 저는 당신을 부대원으로 당연히 받아들일 생각입니다. 그리고…….”
대규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저는 당신에게 우리 부대 대장군의 지위를 맡기고 싶습니다.”
대장군, 이란 말을 들은 지영은 살짝 당황한 것 같았다. 곧 그녀는 손을 내저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아니, 대규 님… 전 그 정도의 인재가 아니라서…….”
“아니에요, 그 정도의 인재 맞습니다. 당신은 인간 출신 영웅 중에선 실력이 아주 월등합니다. 나 다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죠.”
그건 사실이다.
사실 인간 출신 중 세미데우스가 된 자는 판테온 신들의 전 부대를 통틀어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벌써 신이 돼 버린 대규를 제외하면 지영은 그중에서 가장 강했다.
당장 공략집으로 봐도 그녀의 레벨은 20 언저리였다.
20 언저리라고 하면 적어 보이지만, 세미데우스는 인간 영웅보다 훨씬 레벨을 올리기 힘들다.
‘그리고 그녀가 지니고 있는 아군 버프 스킬…….’
일정 시간 동안 아군의 능력을 높여 주는 전쟁의 축복 스킬은 아군들을 통솔하며 지휘하고 사기 진작을 하기에 유리한 스킬이었다.
대규는 지영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솔직하게 말할게요. 사실 당신보다 뛰어난 정령 출신 영웅들은 얼마든지 있어요. 하지만 나는 당신을 높게 삽니다. 그리고 나는 인간 출신 영웅들로만 부대를 구성하고 싶습니다.”
“왜죠?”
지영이 물었고, 대규는 생각에 잠긴 채 말했다.
“글쎄요…….”
솔직히 말하자면, 인간을 차별하는 신들에 대한 반감이 컸지만, 대규는 지영에게 그걸 말하진 않았다.
하지만 지영은 여전히 당황스러워하며 대장군 제의를 거절했다.
“하지만 전 대장군을 맡을 재목이 아닙니다. 저는…….”
“대장군이 아니면 당신을 스카우트하지 않겠습니다.”
대규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영은 대규의 눈을 가만히 쳐다봤다. 한 치의 흔들림 없는 눈동자는 차원의 틈 시절부터 그녀가 봐 왔던 것이었다.
아마도 이 남자는 자신의 결정을 철회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대규 씨라면… 괜찮을 거야.’
지영은 잠깐 동안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대답을 했다.
“당신의 뜻이 정 그러시다고 하면… 알겠습니다. 받아들일게요.”
그 말을 들은 대규는 기뻐서 그녀의 두 손을 꼭 붙잡으며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지영 씨, 고맙습니다!”
그 순간 지영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대규와 오랫동안 알고 지냈지만 이렇게 서로 손을 잡거나 한 적은 없었다.
그녀는 황급히 두 손을 빼고 고개를 살짝 돌렸다.
대규는 그런 지영에게 말했다.
“그럼 이렇게 여기까지 오셨는데, 제가 식사라도 대접하도록 하죠. 그리고 지영 씨는 이제 우리 부대의 대장군님이시니까요. 혹시 양갈비 스테이크 좋아하시나요?”
“네? 아, 좋아합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대규는 준섭에게 자동차를 준비해 놓으라고 지시한 뒤 이렇게 말했다.
“우리 부대의 대장군님에게 지금부터라도 잘 보여야 할 것 아닙니까! 하하.”
얼마 후, 준섭이 차를 준비해 놨다고 말했고, 그들은 사무실을 나섰다.
대규는 결국 지영과 라이펑을 성공적으로 영입했다.
게다가 라이펑은 아폴론 부대에 있는 100명의 인간 영웅까지 끌고 오겠다고 했다.
이렇듯 부대를 꾸리는 일은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준섭은 이제 일본 지역의 탕꼬와 레스토랑 굴라의 오픈일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일본에 가서 오픈 행사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규는 알았다고 했고, 그들은 도쿄로 날아갔다.
대망의 오픈 당일.
시간 관계상 대규는 롯뽄기에 오픈하는 굴라 레스토랑의 오픈 기념식에만 참석하기로 했다.
오픈 기념식에는 일본의 관계자들과 대규식품 본사 주요 스태프들, 그리고 대규와 준석이 참석했다.
관계자들과 스태프들은 다들 대규를 우러러보고 있었다.
확실히 세미데우스일 때와는 또 달랐다.
하지만 대규는 그들의 우러러보는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미칠 지경이었다.
경탄과 감탄도 한두 번이지.
‘차라리 투명 망토를 뒤집어쓰고 다니고 싶다.’
가게의 리본을 커팅한 뒤 관계자들에게 간단한 식사를 대접하기로 했다.
대규는 관계자들을 레스토랑으로 불러 양갈비 코스 요리를 대접했다.
그런데 일본 측 관계자 중 낯익은 얼굴 하나가 보였다.
‘저 사람은?’
그는 30대 중반의 젊은 남자였는데, 분명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다.
대규는 그 일본 남자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며 생각했다.
‘대체 어디서 봤더라? 아, 생각났다.’
필멸자 히폴리토스 전투 때 참여했던 인간 영웅 중 한 명이었다.
공략집으로 보니 그의 이름은 아키야마. 세미데우스였지만, 이제 막 레벨 5를 달성한 상태였다.
‘그래도 인간 출신 영웅 중에서 저 정도면 꽤 실력자지. 그런데 어느 신 부대 소속이었더라?’
우선 대규는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어 보기로 했다.
“안녕하십니까, 아키야마 씨? 이곳에서 만나게 되다니, 정말 놀라울 따름이군요.”
“아, 대규 님 아닙니까.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그런데 당신의 소속 부대가…….”
그러자 아키야마는 상당히 긴장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디오니소스 신 부대였습니다.”
“그렇군요. 판테온의 영웅이 제 식당 오픈 관계자였을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하하, 정말 세상이 좁긴 좁네요.”
대규는 웃으면서 그를 쳐다봤지만, 그의 표정은 여전히 긴장돼 있었고, 딱딱했다.
그는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였다가 이내 다시 입을 꾹 닫아 버렸다.
그 행동을 몇 번이나 반복하자 대규는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저에게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는 겁니까?”
그러자 그는 불편한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네… 꼭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굴라 레스토랑에 관계된 건가요?”
“아니, 아닙니다.”
그리고 그는 목소리를 한 단계 낮춘 뒤 말했다.
“판테온 세계에 관련한 일입니다.”
“뭡니까? 말해 보세요.”
대규가 묻자 그는 더욱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실 이건 저의 상관 디오니소스 님의 전언입니다.”
디오니소스의 전언?
대규는 머리를 갸우뚱거렸다.
디오니소스 신과 자신은 여태껏 얽힌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사실 그를 본 기억은 판테온 중앙 신전에서 처음 열렸던 승전 기원 파티에서밖에 없었다.
‘아니지. 내가 신의 육체를 얻었을 때랑 이번 전투에서 아테나, 헤르메스와 함께 돌아왔을 때도 있었다.’
그래도 그땐 판테온의 모든 신과 다 같이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대규는 딱히 디오니소스를 의식하진 않았다.
그런데 그가 자신에게 뜬금없이 전할 말이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나저나 왜 본인이 직접 하지 않고 인간 영웅을 시키지? 같은 신이면 직접 전하는 게 훨씬 수월할 텐데.’
이상한 점들이 있었지만 대규는 아키야마에게 웃으며 물었다.
“대체 무슨 전언입니까?”
그러자 아키야마는 아까보다 더욱 긴장한 표정을 지은 뒤 이렇게 말했다.
“디오니소스 님이 이렇게 전하라 하셨습니다. 대규 님이 부대를 꾸리기 위해서 영웅들을 모을 때 자신의 부대에 있는 영웅들은 건들지 말라고 말입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대규의 얼굴이 사정없이 찌푸려졌다.
애초에 대규의 타 부대 영웅 섭외 건은 저번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대가로 제우스가 특별히 허락해 준 것이었다.
그리고 제우스가 그 말을 할 때 거기 있던 다른 판테온의 신들은 그 누구도 반대 의사를 내비치지 않았다.
아무래도 반대 의사를 내비치진 않았어도 디오니소스는 그 건이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는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이렇게 나오신다?
‘허, 어이가 없구만. 지가 무슨 상관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