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3
213화 부대 창설 (1)
‘얼마 만에 오는 오피스텔이냐!’
대규는 포탈을 통해 자신의 오피스텔로 돌아왔다.
제일 먼저 눈에 보인 것은 방에 있는 푹신한 침대였다.
하지만 침대에 눕는 대신 씻기 위해 욕실로 들어갔다. 욕실로 들어가서 거울에 비친 얼굴을 보고 다시 한 번 놀랐다.
‘신의 육체를 바로 얻었을 때도 보고 놀랐지만, 정말 잘생겼단 말이지.’
거울 안에는 정말로 멋있게 생긴 미남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분명 자신의 얼굴이 맞다.
분명 자신이 맞긴 맞는데 아닌 것 같기도 한, 오묘한 철학적 질문이 절로 떠오르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확실한 건 정말 잘생겼다는 것!
‘이 정도면 연예인이라고 해도 믿겠다.’
게다가 더욱 놀라운 건 신의 육체를 얻기 위한 시련과 급작스럽게 외계인과의 전투까지 치르고 왔는데 대규의 몸은 전혀 피로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확실히 신의 육체가 좋긴 좋구나.’
대규는 씻고 나와서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봤다.
시침은 여전히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판테온의 세계로 갔을 때와 동일한 시각이었다. 판테온의 시간은 현실의 시간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럼 내일 아침 출근할 때까지 뭘 해야 하지? 자고 싶지만, 정신이 너무 쌩쌩하다.’
그때 퍼뜩 든 생각.
‘아침까지 명상을 해 볼까?’
대규는 아스클레피오스가 말해 줬던 플로우 경지를 떠올렸다.
그건 분명 초집중의 상태에 들어가야 들어갈 수 있는 경지라고 했다.
‘아틀라스와 싸울 때는 주먹을 휘두르는 것에 엄청 집중했으니… 아무래도 명상을 해서 집중력을 높이면 플로우 경지에 도달하는 게 쉬워지겠지.’
사실 아틀라스를 쓰러뜨렸을 때 말고는 플로우의 경지에 도달한 적이 없었다.
전투할 때는 항상 이것저것 생각해야 하는 게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전투 전략은 공략집이 다 생각해 준다.
‘앞으론 집중력을 높이는 훈련을 해서 전투 때에도 쉽게 플로우 경지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해야겠어.’
그리고 아테나가 하는 것처럼 자신도 권법이나 검법에 그것을 접목시켜 자신만의 검술을 만들고 싶었다.
스킬로서 휘두르는 검법 아니라, 정말 자신만이 익혀서 휘두를 수 있는 검법을 만드는 거다.
솔직히 판테온의 세계에서 스킬은 스킬북을 획득하면 간단히 얻을 수 있다.
검법류의 스킬 역시 백날 연습을 해서 익히기보다는 스킬북을 획득하면 자연스럽게 얻어진다.
한마디로 스킬북의 스킬은 게임처럼 기계적으로 습득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이 앞으로 익히고자 하는 검법은 달랐다.
스킬북처럼 딱 익히면 누구든 바로 휘두를 수 있는 게 아니라 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독자적인 그런 기술을 익히고 싶었다.
마치 무협지에서 등장하는 문파 내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비기 같은 기술과 비슷한 것 말이다. 엄청나게 훈련을 해야 비로소 익힐 수 있는 경지의 검법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특히 대규는 아테나가 휘둘렀던 그녀의 창술을 보며 아주 감탄을 했었다.
그녀는 무표정한 상태로 푸르게 빛나는 창을 휘둘렀다.
하지만 단순히 기계적으로 휘두르는 것 같아도 그 창술 안에는 그녀가 개발한 독자적인 창의 흐름과 움직임이 있었다.
창술에 문외한인 대규가 봐도 느껴질 정도였다.
‘주구장창 레툼 익투스 스킬에만 의존하지 않고, 나도 그녀처럼 나만의 검법을 만드는 거야.’
제우스 말대로라면 앞으로 닥쳐올 최후의 결전엔 지금보다 더 강력한 적들이 나타날 것이다.
심지어 크로노스와 다른 외계인들이 떼거리로 나타난다면……?
‘그러니까 새로운 검법을 개발해서 적들을 물리친다.’
그러기 위해선 플로우 경지에 쉽게 돌입할 수 있도록 집중력을 높이는 게 선행돼야 한다.
결심한 대규는 오피스텔의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이곳에 온 건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옥상 위엔 예전에 처음 근성 스킬을 얻게 됐을 때 설치했던 온갖 운동 기구들이 놓여 있었다.
요즘엔 잘 사용하지 않아 운동 기구들엔 먼지들이 쌓여 있었다.
대규는 그 당시 민첩성과 맷집을 높이기 위해 샀던 피칭 머신과 모래주머니를 발견했다.
피칭 머신의 경우 야구공이 최대 시속 200km로 날아오는 기구였다.
‘오랜만에 한번 해 볼까.’
피칭 머신을 가동시켰고, 곧 펑! 소리와 함께 야구공이 날아왔다.
그런데 대규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뭐 이렇게 느려?’
야구공은 마치 슬로모션이 재생되는 것처럼 날아왔다. 저걸 못 피하면 정말 운동신경에 문제가 있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기구가 고장 났나 싶어 다가가 봤지만 분명 속도는 시속 200km로 맞춰져 있었다.
‘신의 육체에게 이런 건 이제 껌 수준도 안 된다는 건가.’
솔직히 말하면 껌 수준이 아니라 껌에 붙어 있는 미세먼지 수준도 되지 않았다.
대규는 피칭 머신을 끄고, 이번엔 그 옆에 설치된 무거운 모래주머니로 향했다.
모래주머니는 거대한 틀에 매달려 있었다.
차마 주먹으론 치지 못하고 그냥 한 번 손가락으로 툭 건드려 봤다.
파아아앙!
“으앗!”
엄청난 파열음과 함께 모래주머니가 터져 버렸다. 그 바람에 옥상 바닥에 모래들이 수북이 쌓였다.
“손가락으로 살짝 쳤을 뿐인데… 무슨 내 손가락 끝에서 도동파가 나간 것도 아니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신의 육체가 지닌 능력은 정말 상상 이상이었다.
이 정도라면 손뼉 한 번만으로 이 오피스텔의 건물도 산산조각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니까 등골이 서늘해졌다.
‘자자, 이럴 때가 아니지. 어디 한번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명상을 해보자.’
대규는 아스팔트 옥상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척추를 똑바로 새우고 어깨를 편 뒤 양손을 허벅지에 올려놓았다.
‘이런 자세를 하니 꼭 부처님이 된 것 같은 기분인걸. 아니, 잡념을 비워야지…….’
눈을 감고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었다 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머리에 잡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리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라니.’
신이 돼도 잡념을 컨트롤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렇게 된 거 숨 쉬는 행위에 집중해 보기로 했다.
아틀라스와 싸울 때 집중했던 경험을 최대한 떠올리기로 했다.
들이마시는 숨이 자신의 온몸 구석구석의 혈관들과 근육, 신경세포에 전달되는 기분을 상상했다.
쓰으읍- 후아아-
나는 지금 내 혈관을 따라 흐르고 있는 산소다.
쓰으읍- 후아아-
숨을 들이쉴수록 복부와 가슴이 팽창되고, 쇄골까지 공기가 차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숨을 내뱉을수록 등과 배가 맞닿으면서 나쁜 기운이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짧았던 호흡이 점점 길어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들이쉬고 내쉰다.
단지 그뿐이었다.
그때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새로운 능력 ‘집중’을 얻었습니다.]
[집중 +50]
[집중 +100]
…….
하지만 어느새 집중해 버린 대규에겐 메시지창의 글자가 들어오지 않았다.
집중력은 점점 더 오르기 시작했다.
그때 대규의 단전 부근에서 푸른빛이 아주 미약하게 발생했다.
‘됐다! 푸른빛이 생겼다!’
하지만 그 푸른빛을 인지한 순간 빛은 빠르게 달아나듯 사라져 버렸다.
플로우 경지에 들어섰다는 메시지창은 떠오르지도 않았다.
‘이런! 조금만 더 했으면 됐을 텐데……. 그런데 플로우의 경지는 정말 까다롭군.’
성공이나 성취를 의식조차 하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런 의식조차도 잡념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아틀라스를 상대할 때보다 더 빨리 푸른빛이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다시 해 볼까.’
하지만 그때부터 하늘에 서서히 동이 트기 시작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앞으로 명상은 틈날 때마다 하자.’
그렇다면 이제 사무실로 출근을 할 때였다.
대규는 영등포 본사 빌딩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분명 어제 왔던 사무실인데, 몹시 오랜만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기분 탓일까?
‘그도 그럴 것이 판테온의 세계에서 많은 일이 있었으니…….’
하지만 현실에 왔다고 해서 넋 놓고 있을 수는 없다. 먼저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었으니 말이다.
사업보다도 우선은 자신의 부대를 꾸리는 것이 우선이었다.
우선적으로 스카우트하고 싶은 영웅이 2명 있었다.
바로 라이펑과 지영.
라이펑은 아폴론 부대의 영웅이고, 아직 세미데우스는 아니었지만, 그 능력이 아주 출중했다.
그라면 곧 세미데우스 시련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앞으로 더욱 뛰어난 영웅이 될 것이다.
‘나중엔 한 부대의 대장군감으로도 손색이 없다.’
성격도 야비하거나 이기적이지 않았고, 그렇다고 쓸데없이 정이 많아 일을 그르치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굳이 구분하자면 철두철미하고 현실적인 전략가 타입이었다.
하지만 대규는 판테온에서는 헤르메스와 치렀던 히폴리토스 필멸자 전투 이후 그를 본 적이 없었다.
왜냐면 그는 다른 부대의 영웅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현실로 돌아와 라이펑을 끌어들이기로 결심했다. 현실에선 그의 연락처를 알고 있었고, 그와 컨택하기가 훨씬 쉬웠다.
‘그리고 지영 씨…….’
생각해 보니 대규는 차원의 틈 시절부터 그녀와 함께 다녔으면서도 현실에선 그녀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물론 공략집의 지도창을 이용하면 그녀의 위치 정도는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여태까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들의 유대관계나 우정은 판테온의 세계에 속해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규는 판테온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과 관계를 굳이 이 현실로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어쨌든 그들은 같은 아테나 여신 부대 소속이었기 때문에 얼굴을 보는 게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대규는 더 이상 아테나 여신 부대 소속 영웅이 아니고 새로운 부대를 꾸려야 하는 신이 됐다.
그는 지영과 꼭 같이 싸우고 싶었다.
그녀의 실력은 오랫동안 봐 온 자신이 가장 잘 알았다. 어떻게 해서든 영입하고 싶었다.
그리고 대규는 다른 부대원들을 웬만하면 인간 출신 영웅들로 구성하고 싶었다.
그 이유는 모르겠다.
사실 인간보다는 오크나 고블린, 혹은 다른 정령 종족이 능력적인 측면에서 보면 훨씬 뛰어났다.
‘하지만 나 역시 인간 출신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같은 세미데우스라도 인간 출신 세미데우스에게 더욱 동질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물론 애초에 인간 출신 세미데우스는 그리 많진 않았지만.
‘우선 라이펑에게 연락을 해서 그를 끌어들인다. 그리고 지영 씨는 그다음에…….’
대규는 중국에 있을 라이펑에게 연락을 하려고 사무실의 전화기를 들었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고, 준섭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사장님 안녕하십… 헉!”
준섭은 대규의 얼굴을 보고 몹시 놀라는 듯했다.
저 남자가 진짜 김대규가 맞는가? 그런데 엄청나게 잘생겨졌잖아!
하지만 분명 눈앞의 남자는 대규가 맞긴 맞았다.
그보다 더욱 이상한 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준섭의 고개가 마치 보이지 않는 힘에 제압당한 것처럼 숙여졌다는 것이다.
절대 강제로 고개가 숙여진 건 아니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탄과 경이로움이 한데 뒤섞인 감정이 차오르면서 준섭은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고개를 푹 숙였다.
“아, 안녕하십니까…….”
심지어 준섭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아, 오셨나요? 좋은 아침입니다, 부사장님.”
대규는 그를 보며 밝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대규의 목소리 한 마디, 한 마디가 준섭의 머릿속을 맑게 울리기 시작했다. 그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몸 안에선 이상한 황홀감마저 들었다.
‘이게 대체 뭐지?’
준섭은 이제 대규의 머리 뒤에 비치는 후광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 눈의 착각인가?’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남자는 더 이상 평범한 대규식품의 사장님이 아니었다.
신.
바로 신 그 자체였다.
준섭은 지금 눈앞에서 신을 영접하고 있었다.
저도 모르게 두 손을 마주치며 기도하려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었다. 심지어 준섭은 종교도 없는 무신론자인데 말이다.
“부사장님, 괜찮으십니까?”
대규의 말에 정신을 차린 준섭은 여전히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 일본 오픈 관련해서 왔습니다. 하나… 아니, 사장님.”
심지어 말도 헛나오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