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1
211화 이식 수술 (4)
대규는 공략집의 옵티뭄의 정보를 봤다.
<비야키의 꼬리 줄기세포를 이식한 옵티뭄>
<빠른 비행 속도와 광속으로 날 수 있는 스킬 쾌속 비행을 익혔다. 하지만 쾌속 비행 스킬은 본래 비야키의 능력이기 때문에 이 스킬을 쓰려면 사용자가 황금의 벌꿀 술을 마셔야 한다.>
벌꿀 술은 이럴 때 쓰는 거였군.
대규는 만족한 표정으로 아스클레피오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주 좋습니다.”
참고로 옵티뭄의 외관은 그전과 별다를 게 없었다.
흉측한 붉은 소시지 꼬리를 직접 달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때 아스클레피오스가 대규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그럼 이제 당신 차례로군요.”
왠지 떨려 온다. 대규는 라식 수술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해서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물었다.
“아스클레피오스, 당신은 의술의 신이니 의료 사고… 같은 걸 낸 적은 없죠?”
“그런 적은 절대 없습니다.”
그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뭐, 저 정도면 큰 걱정을 할 필요는 없겠지.
대규는 그의 지시에 따라 수술대 위에 누웠다.
곧 아스클레피오스가 그에게 마취 주사를 놓았다. 그런데 저번에 해부를 당했을 때와 달리 이번엔 의식이 몹시 또렷했다.
“어떻게 된 거죠?”
“부분 마취입니다. 눈동자 이식을 하는데 전신마취까지 할 필요는 없죠.”
‘그런가?’
그때 아스클레피오스가 무시무시하게 생긴 집게를 가져왔다.
‘뭐, 뭐야, 저게?’
대규가 뭐라고 항변할 새도 없이 집게가 오른쪽 눈 안으로 들어왔다.
“으아악!”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이제 집게는 눈 안쪽을 뒤적뒤적하고 있었다.
액체를 휘젓는 것 같은 이상한 소리가 귓가에 파고들었다.
그리고 금속성의 물체가 눈 안쪽에 닿는 감촉이 느껴졌다.
차갑거나, 고통스럽거나 한 느낌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지만, 몹시 불쾌했다.
얼마 후 오른쪽 눈 안쪽에서 뭔가가 당겨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설마…….’
자신의 오른쪽 눈동자가 눈 안에서 빠져나오고 있었다.
눈동자 뒤쪽에는 가느다란 신경들이 촘촘히 연결돼 있었는데 눈동자를 잡아당기니 그것들이 팽팽하게 늘어났다.
말 그대로 눈알이 빠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얼마 후.
투툭-
뭔가가 끊어지는 소리가 오른쪽 눈가에서 들렸다. 물론 부분 마취를 한 탓에 고통은 전혀 없었다.
다만 배 속에서 역겨운 기분이 올라오긴 했지만 말이다.
곧 눈알이 완전히 빠져나왔고, 어느새 대규는 아스클레피오스의 집게에 달린 자신의 오른 눈동자를 보고 있었다.
“으, 으으…….”
낮은 신음만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오른쪽 눈이 없어서 그런지 시야가 한결 줄어들었다.
아스클레피오스는 대규의 눈동자를 든 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신의 눈동자라서 그런지 뽑는 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이제 이 외계인의 눈을 이식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집게로 대규의 눈을 유리병 안에 놓아두고 이번엔 크아이가의 눈동자를 집어 들었다.
백내장 걸린 것처럼 생긴 크아이가의 눈을 든 뒤 대규의 오른쪽 눈꺼풀을 위아래로 크게 잡아당겼다.
얼마 후, 크아이가의 눈이 눈꺼풀 안쪽으로 들어왔다.
쑤욱-
“눈을 깜빡여 보시죠.”
대규는 아스클레피오스의 명령대로 열심히 눈을 깜빡였다.
시야가 흐릿했다. 꼭 눈앞에 기름을 부은 것 같았다. 하지만 열심히 눈동자를 깜짝이고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니 곧 시야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다 됐습니다.”
“정말입니까? 이게 끝입니까?”
“네. 뜯어진 신경들은 새로운 눈동자에 붙어 다시 빠르게 재생했습니다. 신의 육체가 지닌 장점이죠.”
‘그렇군.’
“거울을 보시겠습니까?”
그는 대규에게 손거울을 건넸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본 대규는 깜짝 놀랐다. 분명 크아이가의 눈은 백내장 걸린 눈동자처럼 홍채와 동공이 회백색이었는데 지금 자신의 오른쪽 눈은 아름다운 갈색빛이었다.
정확히는 보랏빛이 아주 약간 섞인 갈색빛이었는데 그 색이 아주 오묘하고 아름다웠다.
‘외계인의 눈동자라곤 상상할 수 없군.’
아스클레피오스가 대규를 보며 입을 열었다.
“신의 눈이 지닌 능력은 그전처럼 쓸 수 있습니다. 왼쪽 눈이 남아 있으니까요. 대신 그대는 이 외계인 눈동자 덕분에 새로운 능력을 얻게 되겠지요.”
“그건 나도 알고 있습니다.”
얼마 후, 대규와 아스클레피오스의 손목에 새겨져 있던 황금빛 징표가 빛을 내며 빠르게 사라졌다.
모든 약속이 완벽히 이행됐고 징표가 사라진 것이다.
“그럼, 고맙습니다.”
대규는 아스클레피오스에게 인사를 한 뒤 그의 신전을 빠져나왔다.
신전을 빠져나오는 순간까지도 아스클레피오스의 얼굴엔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
대규는 그가 자신에게 했던 말들이 마음에 걸렸다.
‘크로노스와 그의 형제들인 타이탄 신족이 쓴다는 고대 언어가 내 육체 안에 새겨져 있다니… 이건 대체 무슨 뜻일까?’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공략집도 묵묵부답이었다.
맨 처음 아스클레피오스가 자신의 몸을 해부했을 때는 이 모든 것들이 대규의 월등하게 뛰어난 능력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었다.
‘그럼 정말로 공략집과 연관이 있는 걸까? 아, 몰라. 머리가 너무 복잡해진다.’
그보다도 대규는 수술의 결과를 확인해 보고 싶었다.
“옵티뭄!”
대규는 자신의 말을 부른 뒤 그의 등 위에 올라탔다.
그러고는 고삐를 있는 힘껏 잡아당기며 외쳤다.
“가잣!”
옵티뭄이 날개를 푸득거리며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대규는 깜짝 놀랐다. 옵티뭄의 속도가 그전보다 확연히 빨라진 것이다.
‘엄청난데!’
헤르메스의 장화를 신고 최대치의 속력을 냈을 때보다 더 빠른 것 같았다.
심지어 등 위에 타고 있는 자신의 몸이 못 따라갈 지경이었다.
대규는 평소보다 더욱 하체에 힘을 주고 옵티뭄의 몸 위에서 균형을 잡았다.
[승마 +200]
…….
덕분에 승마 스킬이 빠르게 오르기 시작했다.
‘그럼 이번엔 쾌속 비행을 한번 써 볼까?’
광속의 속도로 날아갈 수 있다니. 정말 궁금했다.
그런데 그 스킬은 어떻게 써야 할까? 옵티뭄은 자신처럼 보유 스킬란을 갖고 있는 것 같진 않았다.
그때 공략집의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비야키의 스킬 쾌속 비행을 사용하기 위해선 황금의 벌꿀 술을 마셔야 합니다.>
본래는 비야키가 지닌 스킬이니 그 벌꿀 술을 마셔야 사용할 수 있나 보군.
대규는 보관함에서 황금의 벌꿀 술을 꺼냈다.
벌꿀 술은 엘릭서처럼 작은 유리병에 가득 들어차 있었다.
‘이거 한 번 마시면 끝나는 양 같은데… 그래도 일단 아껴서 마셔 보자.’
대규는 황금빛의 에테르체를 들이켰다. 술이라서 그런지, 톡 쏘는 맛과 쓰디쓴 맛이 섞여 있었다.
그런데 신기한 건 그것을 마시자마자 마신 만큼 다시 술이 차올랐다.
마법이라도 걸려 있는 것 같았다.
‘다행히 일회용이 아니었군.’
그런데 벌꿀 술도 마셨겠다, 쾌속 비행은 어떻게 쓰는 걸까?
<비야키의 스킬 쾌속 비행이 보유 스킬란에 생성됐습니다. 탈것에서 내리면 이 스킬은 자동으로 없어집니다.>
대규는 공략집의 메시지창을 읽자마자 자신의 보유 스킬란을 확인했다.
확실히 맨 아래 칸에 쾌속 비행 스킬이 들어가 있었다.
[쾌속 비행-비행 속도를 급격하게 끌어올려 광속으로 날아오르는 스킬. 도망에 요긴하며 대기의 흐름을 엉망으로 만들어 적에게 간접적이지만 강력한 공격을 가한다. 마나 소모 5,000]
그제야 대규는 이 스킬의 마나 소모량이 엄청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나 소모량 5,000이면 현재 대규의 마나량으론 쓸 수가 없었다.
신이 되고 나서 몇 번의 레벨 업을 했지만 지금 대규가 지닌 마나 한계량은 3,000 남짓이었다.
‘빌어먹을! 좋다 말았잖아.’
갑자기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마나만 확 증폭시켜 줄 방법 없나? 있으면 좋을 텐데.’
쾌속 비행을 쓸 수 없더라도 비야키의 세포를 이식한 덕분에 옵티뭄의 속도는 그전에 비해 몹시 빨라졌다.
‘이것만으로도 큰 성과이려나.’
대규는 한숨을 쉬며 생각했다.
뭐, 계속 레벨 업을 하다 보면 마나량이 5,000을 넘는 때가 오겠지.
이번엔 크아이가의 눈동자를 시험해 보고 싶었다.
눈을 이식하면 랜덤하게 준다는 유용한 외계 능력이 뭔지 궁금했다.
하지만 크아이가의 눈은 몹시 잠잠했다.
‘뭐야, 수술이 잘못된 건가? 왜 이래?’
곧 공략집의 메시지창이 떴다.
<크아이가의 눈이 지닌 외계 능력은 특정 조건을 충족시켜야 얻을 수 있습니다.>
<눈이 지닌 파괴 신을 최소 1번 이상 소환해 다른 외계 몬스터를 물리치십시오. 그럼 깨어난 파괴 신이 감탄하고 사용자에게 능력을 랜덤하게 물려줍니다.>
흐음, 그렇군.
이거 뭐 착착 진행되는 게 없군.
‘그래도 다음번 전투 때 파괴 신이란 녀석을 소환해서 물리치기만 하면 되니까…….’
마나 한계량이 모자라서 스킬을 못 쓰는 것보단 덜 억울한 것 같았다.
‘그럼 이제 장비들을 업그레이드할 때다.’
대규는 옵티뭄의 몸 위에서 이렇게 생각했다.
현재 대규가 지닌 무기와 장비들은 좀 비효율적인 측면이 있었다.
일단 방패를 두 개나 갖고 있었다.
네메시스의 방패와 아이기스의 방패.
물론 그 두 방패는 우열을 가릴 수 없이 모두 유용한 장비였다. 하지만 두 개를 동시에 들고 있자니 전투할 때마다 몹시 비효율적이었다.
대규는 그 두 방패를 하나로 합치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기스 방패가 신화 등급 아이템이라 자신이 지닌 헤파이스토스의 모루로는 합칠 수가 없었다.
그 방패들을 합치기 위해선 판테온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을 찾아가야 했다.
대규는 옵티뭄의 말머리를 돌려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으로 향했다.
오늘도 판테온의 상업 지역에 위치한 헤파이스토스의 오픈 대장간은 인기가 많았다.
구릿빛 근육을 지닌 동물 정령들은 열심히 망치를 두들기며 무기를 만들고 있었다.
대장장이 정령들을 구경하는 아리따운 여자 정령들은 꺄악, 꺄악, 환호성을 질러 댔다.
그중에서도 수석 대장장이인 파베르를 바라보는 여자 정령들이 가장 많았다.
수석 대장장이인 파베르는 자신을 바라보는 여자 정령들을 의식하며 일부러 고개로 45도 얼짱 각도로 숙인 채 망치질을 하고 있었다.
그가 취하고 있는 자세 역시 자신의 멋진 이두박근이 가장 잘 돋보이는 자세였다.
깡! 깡! 깡!
“꺄악! 파베르!”
그의 망치 소리가 울려 퍼질 때마다 코러스처럼 여자 정령들의 환호성도 울려 퍼졌다.
파베르는 환호성에 도취해 열심히 망치를 두들기고 있었다.
깡! 깡! 깡!
“꺄악! 대규 님!”
‘응? 방금 건 환호성이 좀 이상한데?’
파베르는 망치를 치다 말고 고개를 살짝 들었다.
여자 정령들은 이제 자신이 아니라 대장간 앞에 나타난, 말을 타고 있는 한 녀석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 녀석,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그 순간 파베르는 흠칫하며 고개를 숙였다.
녀석이 아니다. 몸에서 황금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는 거로 보아 어엿한 신이었다.
“고개를 드세요.”
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고, 파베르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곧 파베르의 눈동자가 커졌다.
“다, 당신은!”
“파베르, 오랜만입니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대규는 옵티뭄에서 내린 뒤 자신의 사슬검을 꺼내며 말을 이었다.
“당신이 만들어 준 불카누스의 사슬검은 아주 잘 쓰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여, 여긴 대체 어떤 일로…….”
“두 개의 방패를 합치려구요. 그리고 간만에 불카누스의 사슬검의 날도 갈 겸 왔습니다.”
파베르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에게 사슬검 의뢰를 맡겼던 이 남자는 막 세미데우스가 된 상태였다. 그런데 벌써 신이 됐다고?
믿기 힘들지만 사실이었다. 저 몸에서 나는 황금빛을 속일 방법은 없다.
사실 파베르는 대규가 최근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걸 판테온의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대규가 이 대규인지 몰랐지!’
그는 감탄 어린 목소리로 대규를 향해 외쳤다.
“그 대규가 당신이었단 말입니까? 이리 오십시오, 나리! 방패를 합치시고 싶으시다구요. 그럼 이곳에 방패를 내려놔 주십시오.”
“신화 등급 무기를 합치기 위해 이곳으로 온 겁니다. 나는 이제 신이니까 신의 허가증이 필요하지 않겠죠?”
“당연한 말씀입니다.”
파베르의 말을 들은 대규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허가증 없이 프리 패쓰!
신이 되니 정말 좋은 점이 많은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