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0
210화 이식 수술 (3)
“그대는… 내가 전에 그대의 몸을 열어 본 뒤 했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습니까?”
이렇게 말을 하는 아스클레피오스의 눈동자엔 두려운 기색이 가득했다.
“기억합니다. 내 몸이 판테온의 흙으로 이뤄졌다는 그 말 아닙니까?”
대규가 대답하자 그가 말을 이었다.
“그렇습니다. 그대의 몸은 예전에 멸종한 청동 인류처럼 판테온의 흙으로 구성돼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그대에게 말하지 않은 게 있소.”
“뭡니까?”
“그때 그대는 아직 세미데우스였고, 그래서 제대로 말하진 않았지만…….”
“않았지만?”
대규는 답답해 죽을 것 같았다. 결국 신의 목청을 이용해 커다란 목소리로 외쳤다.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말하십시오!”
“히익!”
대규가 언성을 높이자 그는 더욱 겁에 질린 표정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대의 심장에도 저 외계인들처럼 고대의 판테온 언어가 적혀 있었습니다!”
“뭐라구요?”
“나도 왜 그게 거기 적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그대의 심장에 새겨진 글자들은 몹시 최근에 새겨진 듯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대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여전히 대규의 시선을 피하며 중얼거리듯 말을 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대는 나를 찾아와서 저 외계인들의 육체를 자유자재로 소환했습니다. 처음엔 횡재다 싶어 좋았지만, 외계인들의 심장에 새겨진 언어를 보니 이건 아무래도 이상한 것 같습니다.”
그는 자신의 눈동자를 들어 마침내 대규를 똑바로 바라본 뒤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대, 대체… 그대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하지만 대규는 그의 물음에 대답해 줄 수가 없었다. 자신도 그 대답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인간 출신의 영웅일 뿐이다.’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멸종한 청동 인류처럼 판테온의 흙으로 자신의 육체가 구성돼 있는 것도 모자라 이젠 타이탄 신족이 썼다는 고대 언어가 자신의 심장에 새겨져 있다니.
도무지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
‘설마 이게 공략집과 연관이 있는 건가?’
물론 확실한 건 아니다. 모든 게 의문투성이였다.
대규는 아스클레피오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으로서 당신에게 명쾌하게 대답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대규는 이곳에 오기 전 중앙 신전에서 제우스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제우스 신께서는 제가 특이한 능력을 지닌 존재라고 하더군요. 그걸로 답이 되겠습니까?”
“…….”
아스클레피오스는 말이 없었다. 대규는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당신을 해치지 않을 겁니다. 그래도 부족하다면 약속의 징표를 걸도록 하죠.”
약속의 징표란 신이 누군가와 한 약속을 100% 지키겠다는 보증과 같은 것이다.
대규는 맨 처음 헤르메스를 봤을 때 그가 약속의 징표를 걸었던 걸 기억했다.
‘이젠 나도 신이니까 그 징표를 걸 수 있겠지.’
아니나 다를까.
약속의 징표를 걸겠단 말에 아스클레피오스의 눈빛이 약간 안도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스클레피오스 님, 아직도 제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실 겁니까?”
아스클레피오스는 잠깐 고민한 끝에 결국 이렇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대신 약속의 징표를 꼭 걸어 주십시오.”
철두철미하군.
그런데 이걸 어떻게 걸어야 하는 걸까.
‘이동 결계 역시 의지만으로 칠 수 있는 거였으니 이것도 의지만으로 걸 수 있는 걸까?’
대규는 아스클레피오스와 약속의 징표를 걸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약속의 징표를 걸기 시작합니다. 약속 내용을 확인한 후 걸어 주십시오.]
[약속 내용: 아스클레피오스가 부탁을 들어주는 동안 그를 절대로 해치지 않는다.]
[약속을 어겨 징표가 깨지면 징표를 건 신은 심연의 결계에 갇히게 됩니다.]
[아스클레피오스와 약속의 징표를 거시겠습니까? Yes/No]
‘이런 식으로 거는 거였군.’
그런데 메시지창의 내용 중 대규의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었다.
‘징표가 깨지면 심연의 결계에 갇히게 된다니…….’
심연의 결계는 분명 신들끼리 전투를 벌여 패배한 신이 가는 곳이었다. 그런데 이걸 보니 징표를 깬 신도 그곳에 가게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 징표의 효과가 그리 강력했던 거군. 이 정도면 웬만한 신이라 해도 자신이 내뱉은 약속을 어길 수 없겠는걸.’
어쨌든 대규는 망설임 없이 Yes를 선택했다.
아스클레피오스를 뒤통수 쳐서 그를 해치거나 하고 싶지 않았다. 당장 그에게서 수술들을 치러야 했다.
곧 메시지창이 사라졌고, 대규의 손목과 아스클레피오스의 손목이 빛났다.
그리고 황금빛의 희한한 무늬가 각자의 손목에 새겨졌다.
그런데 무늬는 좀 특이했다.
작은 불꽃 같은 모양이 새겨져 있었다.
대규는 그 불꽃 인장을 바라보며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물었다.
“이게 뭐죠?”
그러자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대규에게 말했다.
“당신의 징표 아닙니까? 그걸 왜 저한테 물어봅니까?”
나의 인장!
대규는 세미데우스 시절 제우스가 자신의 운명의 천에 수놓았던 번개 모양의 징표를 떠올렸다.
‘생각해 보니 신들마다 징표의 이미지는 달랐지. 그럼 이 불꽃이 나의 징표로구나.’
대규는 손목을 들어 불꽃 모양의 징표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빛이 일렁일 때마다 작은 불꽃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불카누스의 사슬검으로 악마의 화염을 줄기차게 뿜어내 공격하는 데서 착안한 것 같군.’
불꽃의 신이 된 것 같고, 왠지 간지 나는 게 몹시 마음에 들었다.
곧 일렁이던 불꽃은 손목 안으로 흡수돼서 사라졌다. 곧 메시지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징표가 성공적으로 각인됐습니다. 약속을 완벽하게 지키면 징표는 사라집니다.]
그 말은 수술들이 끝날 때까지 아스클레피오스를 무사히 내버려 두기만 하면 된다는 거다.
“그럼 어떤 수술부터 시작할까요?”
대규가 묻자 아스클레피오스가 손에 얇은 장갑을 끼며 말했다.
“옵티뭄에게 비야키의 꼬리 세포를 이식하는 것부터 합시다. 당신의 눈알 이식 수술은 간단히 할 수 있지만, 이 세포 이식 수술은 세포를 추출하는 과정이 몹시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수술이죠.”
“알겠습니다.”
“일단 비야키의 꼬리로부터 세포를 추출해야 합니다. 그 꼬리를 수술대에 올려놓으시오.”
대규는 비야키의 꼬리를 수술대에 올려놓았다.
붉은 소시지 같은 거대한 꼬리가 놓였고, 아스클레피오스는 날카로운 메스를 들고 꼬리의 한 부분을 갈랐다. 그리고 옆에 놓인 가느다란 핀셋을 집어 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대규는 아스클레피오스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이상한 푸른빛을 감지했다.
푸른빛은 정확히 그의 몸 전체가 아니라 핀셋을 들고 있는 그의 오른손 부근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저건 분명……!’
자신이 신이 되기 위한 시련에서 거인 아틀라스를 쓰러뜨릴 때 오른쪽 주먹에서 피어나왔던, 그 푸른빛과 똑같았다.
그리고 아테나가 저번 전투에서 적을 향해 창을 휘두를 때 창두에서 피어올랐던 그 빛과도 동일했다.
“이봐요.”
대규가 아스클레피오스를 불렀지만, 그는 귀머거리라도 된 듯 반응하지 않았다.
오직 핀셋을 이용해 꼬리 안쪽에서 무언가를 집어내는 행동을 할 뿐이었다.
그는 꼬리 안쪽에서 핀셋을 집어 올렸다. 하지만 핀셋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아스클레피오스는 그 핀셋의 집게 끝부분을 옆에 놓인 유리판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핀셋을 꼬리 안쪽으로 가져갔다.
그동안 푸른빛은 여전히 그의 손에 머물러 있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저 푸른빛의 정체는 대체 뭐란 말인가.’
이후 아스클레피오스는 똑같은 행동을 몇 번 반복했다.
얼마 후 푸른빛이 사라졌고, 그는 대규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 아까 뭐라고 했소? 분명 말소리가 들린 것 같긴 했는데…….”
“지금 뭘 한 겁니까?”
그러자 아스클레피오스는 유리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방금 막 비야키의 꼬리에서 줄기세포(stem cell)를 추출했소. 작아서 보이지 않는 것뿐입니다.”
“줄기세포요?”
대규는 유리판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신의 눈을 사용해서 바라보자 겨우 쥐톨만 한 세포핵이 보였다.
‘이렇게 작은 세포를 고작 핀셋으로 추출했다고?’
유리판의 작은 세포핵을 신기하게 바라보자 아스클레피오스가 말을 이었다.
“줄기세포는 여러 종류의 신체 조직으로 분화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세포요. 심지어 다른 조직의 세포로도 분화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피부에 있는 줄기세포가 신경 세포, 근육 세포, 지방 세포 등으로 분화할 수 있다는 거죠. 나는 이 비야키의 꼬리에서 추출한 줄기세포를 당신이 지닌 말의 날갯죽지 근육에 이식할 예정입니다.”
“날갯죽지 근육이요?”
“그렇습니다. 보니까, 이 비야키란 녀석의 꼬리 세포에 담겨진 능력은 빨리 나는 비행 능력인 것 같은데요. 비행할 거면 말의 날갯죽지에 심는 게 좋겠죠.”
“그렇군요.”
대규는 다시 한 번 유리판을 바라보았다.
쥐톨만 한 세포핵이 숨을 쉬듯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신의 눈을 사용해도 이렇게 작게 보이는 세포를 당신은 어떻게 그토록 간단히 추출해 낸 겁니까?”
대규가 묻자 아스클레피오스는 살짝 자부심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의술의 신이오. 그리고 고도의 집중력을 끌어 올려 잠깐 동안 플로우의 상태를 각성한 것이지. 오랜만에 플로우 상태를 각성하니 몸이 좀 피곤합니다.”
플로우 상태!
분명 아틀라스를 해치울 때 눈앞에 떴던 공략집의 메시지창에도 그 글자가 적혀 있었다.
대규는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대체 그 플로우라는 게 뭡니까? 나도 한 번 그 경지에 들어간 적이 있습니다만.”
그러자 아스클레피오스가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당신이 벌써? 당신은 이제 막 신이 된 것 아니었소?”
대규는 신의 육체를 얻기 위한 시련을 통과할 때 겪었던 일을 그에게 얘기했다.
그러자 아스클레피오스가 이렇게 말했다.
“플로우란 집중을 고도로 끌어 올려 들어가는 일종의 초(超)집중의 경지입니다. 그 상태에서 특정 행동을 하면 행동의 위력이 몇 배는 높아지죠.”
한마디로 버프 스킬 같은 거로군.
“본인의 집중력에 따라 플로우 상태가 유지되는 기간은 달라집니다. 그리고 다른 신들은 이 상태를 개발해 각각 본인만의 스킬을 만들었죠.”
“예를 들면?”
“당신이 모셨던 아테나 여신의 경우, 자신의 창법과 접목해 플로우 창법을 발전시켰고, 나는 까다로운 수술을 할 때마다 플로우 상태를 이용합니다. 그런데 정말 당신은 신이 되기도 전에 그걸 개방시켰단 말이오? 정말 대단하군…….”
감탄하는 말과 달리 대규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엔 다시금 두려운 기색이 감돌았다.
대규는 그의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플로우의 경지가 그런 것이었구나. 잠깐만, 그럼 나도 그 경지를 발전시켜서 아테나처럼 검법에 적용한다면…….’
꽤 쓸 만할 것이다.
대규는 앞으로 근성 스킬을 이용해 집중력 능력을 높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플로우 경지에 도달하기 더욱 쉬워지겠지.’
그때 아스클레피오스가 대규에게 말했다.
“이제 세포 이식을 합시다. 당신의 말을 이리로 데려오시오.”
대규는 옵티뭄을 수술대 근처로 끌고 왔다.
끌고 오는 데 살짝 애를 먹었다. 수술대 근처에서 나는 약품 냄새 때문인지, 아니면 수술실의 음산한 분위기 때문인지 옵티뭄은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끌려오기 싫어했다.
대규는 억지로 옵티뭄을 끌고 왔고, 아스클레피오스가 마취 주사를 갖고 와서 옵티뭄의 몸속에 찔러 넣었다.
마취 주사를 맞자 녀석은 히힝, 거리다가 빠르게 쓰러져 버렸다.
아스클레피오스는 능숙하게 녀석의 양 날갯죽지 안쪽을 메스로 갈랐다. 그리고 비야키의 꼬리 기관으로부터 추출한 줄기세포를 핀셋으로 집어 이식하기 시작했다.
얼마 후, 그가 수술용 장갑을 벗으며 대규에게 말했다.
“다 됐습니다. 한번 확인해 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