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8
208화 이식 수술 (1)
제우스는 웃으며 대규에게 선물 상자를 하나 하사했다. 그건 플렉서블 바디 스킬이 들어 있던 상자와 동일하게 생긴 백색의 상자였다.
대규는 백색의 상자를 열어 봤다.
촤아악-
상자 안에서 무지갯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플렉서블 바디 스킬처럼 알 수 없는 고대 글자가 새겨진 비석 덩어리 하나가 나왔다.
‘이건 뭐지? 또 스킬인가?’
아무래도 플렉서블 바디 스킬과 비슷하게 생긴 것이 신들만이 가질 수 있는 스킬인 것 같았다.
곧 비석 안쪽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며 비석은 산산조각이 났다. 그리고 대규의 몸속으로 빛들이 빠르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유 스킬란엔 새로운 스킬이 하나 새롭게 추가됐다.
<사나티오(Sanatio)-회복 마법 스킬로 육체에 입은 부상, 상처 등을 말끔하게 치유하며, 깎인 생명력을 높인다. 자신에게 쓸 수도 있고 다른 상대에게 걸어 줄 수도 있다. 이 스킬이 있으면 생명력 포션이나 영약이 이제는 필요하지 않게 된다. 마나 소모 200.>
헤르메스가 썼던 그 회복 마법이다.
‘그런데 효과에 비해 마나 소모량이 그렇게 많지 않은걸?’
그리고 앞으론 생명력 포션을 마실 필요가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영약 엘릭서는 필요하겠지.’
이 사나티오 스킬은 생명력과 육체의 상처는 치유해 줘도 떨어진 마나까지 채워 주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때 대규는 헤르메스가 자신을 흘끗 바라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와 동시에 그의 속마음도 들렸다.
‘지금 제우스 님께 대규, 저 녀석의 수상한 점을 말하는 게 좋지 않을까?’
대규가 그의 입을 막을 틈도 없이 헤르메스는 입을 열기 시작했다.
“…신들의 아버지 제우스시여.”
“왜 그러느냐?”
헤르메스는 대규를 다시 한번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대규에 대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우스는 팔을 들어 헤르메스의 말을 저지해 버렸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헤르메스여,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나는 아주 잘 알고 있다. 나는 이곳에서 다른 판테온의 신들과 함께 너희들이 전투하는 모습을 속속들이 지켜봤다.”
그리고 제우스는 이제 대규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당연히 나는 대규의 전투도 아주 잘 지켜봤다. 특히 유독가스 안에서 차토구아를 상대로 벌였던 싸움이 가장 흥미로웠지.”
아뿔사.
완전히 잊고 있었다.
제우스는 언제 어디서든 신들의 전투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지.
‘이거 상당히 귀찮게 됐다. 어떻게 해야 하지?’
대규는 난처해 하며 고개를 들어 제우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제우스의 얼굴엔 근엄한 눈빛 말고는 어떤 감정도 나타나 있지 않았다.
마음을 읽을 수 없는 포커페이스.
대규는 혹시나 싶어 공략집으로 제우스의 속마음을 읽어 보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왜 이래?’
그때 공략집의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정신 방어 마법을 쓰고 있는 상대의 속마음은 읽을 수 없습니다.>
속마음을 엿듣게 하지 못 하는 정신 방어 마법이라니. 그런 스킬이 있단 말인가?
‘제우스가 괜히 신들의 왕이 된 건 아니었군.’
그래도 같은 신인데 속마음을 읽을 수 없다니.
대규는 다시 한 번 제우스의 얼굴을 흘끗 바라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얼굴에 담긴 감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얼마 후 제우스가 입을 열었다.
“대규, 그대는 참 특이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존재다.”
“감사합니다.”
제우스는 뜸을 들인 뒤 묘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널 더욱 주목하겠다. 내가 할 말은 여기까지다.”
헤르메스가 뭔가 더 말하려 했지만, 제우스는 다시 한 번 팔을 들어 그의 입을 막아 버렸다.
그리고 제우스는 더 이상 대규에게 캐묻지 않았다.
한편으론 안도감이 들었지만 다른 한편으론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이 정도 선에서 끝났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그때 아테나가 제우스에게 물었다.
“그런데 아버지, 향후 우리 판테온 신들의 일정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러자 제우스는 근엄하고 우렁찬 목소리로 신전의 신들에게 말했다.
“곧 대대적인 전투가 있을 예정이다. 크로노스는 분명 나머지 외계인들과 거인들을 동원해 우리와 대규모 전투를 벌이려고 할 것이다. 그 전투를 대비해서 신들은 각자의 부대를 훈련시켜 놓도록 하라. 참, 잊고 있었군.”
제우스는 대규를 바라본 뒤 이렇게 덧붙였다.
“그대는 이제 막 신이 됐으니 자신만의 부대를 꾸려야 한다. 그대가 원하는 영웅들을 데려가서 부대를 꾸리도록 하라. 그대는 이번 전투에서 아주 큰 공을 세웠으니 다른 신 소속 영웅 중 그대가 원하는 자를 데려가도 좋다. 내가 특별히 허락하마.”
제우스의 그 말을 들은 나머지 신들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하지만 그는 이런 조건을 붙였다.
“단, 그 영웅들이 너의 부대에 들어가는 걸 원할 경우에 한해서 말이다. 일방적으로 그대가 원하기만 한다고 해선 그들을 데려갈 수 없다.”
“…알겠습니다.”
“이미 그대의 주둔지는 만들어 뒀다. 이동 결계를 치고 주문을 외우면 주둔지로 이동할 수 있을 것이다.”
대규는 제우스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이동 결계는 대체 어떻게 치는 겁니까?”
“그건 너의 의지로 칠 수 있다.”
그런 것이었군.
대규는 속으로 이동 결계를 치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주둔지로 이동하고 싶다!’
곧 대규와 옵티뭄의 주변에 투명한 막이 펼쳐졌다.
막은 그들의 몸을 감쌌다.
그리고 제우스는 다른 신들에게도 명령했다.
“다들 자신의 부대로 돌아가도록 하라”
대규는 곧 이동 결계를 타고 자신의 주둔지에 도착했다.
“히야아~”
대규의 주둔지는 여태껏 봤던 다른 신들의 주둔지와 별다를 게 없었다. 한가운데 있는 지휘사령부 천막과 병사들이 거주하는 천막과 마구간은 다른 주둔지와 동일했다.
다른 게 있다면 영웅들과 병사들이 북적북적한 다른 신들의 주둔지와 달리 대규의 주둔지는 아주 휑하니 비어 있었다.
“썰렁하구만. 그럼 이제 뭘 해야 하지?”
영웅들을 모아 부대를 꾸리는 것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대규는 우선 비야키의 꼬리 기관에 있는 세포와 자신의 말 옵티뭄을 합체시키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를 만나러 가야 했다.
‘그런데 그는 어디에 있지? 헤르메스의 주둔지에 있나?’
공략집의 지도창을 켜고 아스클레피오스의 위치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예상과 달리 아스클레피오스는 헤르메스의 주둔지에 있지 않았다. 그는 판테온 도시 외곽의 한 신전에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곳이 그의 거처인 듯싶었다.
헤르메스 부대에 있었던 건 전투 직전 병사들의 신체 개조 시술을 위해 잠깐 들렀던 것 같았다.
‘그럼 저 신전으로 가야겠다.’
대규는 옵티뭄을 탄 뒤 보관함에서 차원의 열쇠를 꺼내 판테온의 도시 광장으로 향했다.
포탈을 건너 도시 광장에 도착한 대규는 뭔가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광장에 있는 모든 정령과 신들이 옵티뭄을 타고 있는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대규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판테온의 신 대규 장군님이시다!”
“외계인을 물리치신 장군님이야!”
이번 전투에 대한 소문이 판테온 광장에 다 퍼졌는지 광장의 모든 존재는 대규를 보고 환호성을 질렀다.
몇몇은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기도 했다.
게다가 아리따운 여자 정령들은 꼭 멋있는 왕자님을 보는 것처럼 그윽한 눈빛으로 대규를 바라보았다.
‘날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뭇 남성이 보면 혹할 눈빛이지만 대규는 솔직히 그들의 그런 눈빛이 부담스러울 뿐이었다.
‘그 정도로 내 존재가 엄청나게 돼 버린 건가?’
심지어 대규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정령 중엔 낯익은 얼굴도 보였다.
바로 맨 처음 판테온에 왔을 때 상점가에서 대규에게 사기를 치려 했던 차이니즈 오크 녀석이었다.
차이니즈 오크는 대규가 타고 있는 옵티뭄 앞으로 다가와 길을 막고 큰절을 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아이고! 대규신님!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 모습이 어이가 없으면서도 뭔가 씁쓸했다.
처음에 인간이었을 때, 이곳에 왔을 때는 자신에게 사기를 치려 했는데 이젠 신이란 이유만으로 이렇게 태도가 돌변하다니.
‘뭐… 어쩔 수 없는 건가.’
대규는 옵티뭄의 고삐를 당겨 아스클레피오스가 있는 신전 쪽으로 천천히 향했다.
말을 타고 다그닥, 다그닥 움직일 때마다 모든 정령과 신들은 고개를 숙였다.
‘크흠, 이런 대접은 익숙하지 않은데…….’
어색해 죽겠다. 빨리 아스클레피오스가 있는 곳으로 가는 게 좋겠다.
“이럇!”
대규는 있는 힘껏 옵티뭄의 고삐를 당겼다.
그러자 옵티뭄은 힘차게 울은 뒤 아스클레피오스의 신전을 향해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아스클레피오스가 있는 신전은 꽤 허름한 신전이었다.
헤르메스 부대에 있을 때는 천막 하나가 그의 연구실&수술 공간이었지만 이곳 신전은 신전 전체가 그 공간인 것 같았다.
신전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지만, 그 내부에는 수술대와 알 수 없는 이상한 기구들, 그리고 물약들과 약초들이 들어서 있었다.
대규가 신전 안쪽으로 들어서자 빼빼 마른 몸에 토가를 걸친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가 그를 맞이했다.
“이게 누구야! 이젠 신이 됐군요.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이 누추한 곳엔 무슨 일로 찾아오신 것인지?”
그의 말투가 변했다.
대규가 세미데우스였을 땐 아랫사람 대하듯 하는 말투였는데, 지금은 존댓말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눈빛에선 약간의 두려움이 엿보였다.
솔직히 말하면 아스클레피오스는 대규가 예전에 멸종한 청동 인류라는 걸 알게 된 이후 이상하게 그를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대규는 그에게 말했다.
“부탁이 있어서 왔습니다.”
“뭡니까?”
대규는 보관함에서 비야키의 꼬리를 꺼냈다.
“이, 이건!”
비야키의 꼬리를 본 아스클레피오스의 눈동자가 커졌다.
“외계 종족 신체의 일부죠. 이 꼬리 안엔 특수한 스킬이 담겨 있습니다. 이 꼬리의 세포 일부를 추출해서 제 말의 몸에 심고 싶습니다.”
그러자 아스클레피오스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생화학적인 이식 수술을 원하시는 겁니까?”
“바로 그겁니다.”
“제가 그 꼬리를 좀 살펴봐도 될까요?”
대규는 흔쾌히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비야키의 꼬리를 넘겼다. 그는 딱딱한 소시지 같은 꼬리를 요모조모 살펴봤다. 그리고 혼잣말로 감탄하기도 했다.
“이런 건 처음이군! 역시 외계인들의 신체 기관은 특이하다니까!”
그는 대규가 있다는 것도 까먹은 채 열심히 꼬리를 관찰했다. 대규는 그런 아스클레피오스를 관찰하며 생각했다.
‘일에 열중하는 건 좋지만, 저렇게 흉측한 걸 보고도 흥분하며 좋아하다니. 왠지 기분이 나쁜 신이란 말이지.’
아스클레피오스는 한참 동안 꼬리를 살펴본 뒤 대규에게 물었다.
“그 이식 수술만 원하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그러자 아스클레피오스는 눈을 반짝이며 대규에게 말해다.
“혹시… 다른 외계 물건들이나 외계 종족의 신체 기관을 갖고 있으십니까? 만약 있다면 그것들도 좀 살펴보고 싶은데…….”
그의 눈빛은 기대감으로 초롱초롱 빛났다.
“뭐, 어려운 일은 아니죠.”
대규는 보관함에서 크아이가의 눈동자를 꺼냈다. 그러자 아스클레피오스는 역시 흥미롭다는 듯 그 눈동자를 살펴봤다.
“이거 정말 특이하게 생긴 눈동자로군.”
그때 공략집의 메시지창이 대규의 눈앞에 떠올랐다.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의술을 이용하면 크아이가의 눈동자를 눈에 이식할 수 있습니다.>
‘뭐라고?’
<크아이가의 눈동자를 이식하면 파괴신을 소환하는 것 말고도 더욱 유용한 외계의 능력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 유용한 외계의 능력들은 랜덤하게 얻게 됩니다.>
유용한 외계의 능력이라니.
대규는 외계인들이 지닌 스킬의 위력을 지난 전투에서 실감했다. 분명 위력적일 테지.
하지만 저 끔찍한 눈동자를 자신의 눈에 이식할 상상을 하니 토할 것 같았다.
‘꼭 백내장 걸린 눈동자처럼 생겼잖아!’
그때 아스클레피오스가 대규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물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 겁니까?”
대규는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흐음… 아스클레피오스 님.”
“네?”
“…혹시 이 눈을 제 눈에 이식하는 게 가능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