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
202화. 전장의 새 국면 (8)
눈을 감고 있지만, 촉수 괴물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곧 녀석에 대한 공략집이 떠올랐다.
-차원의 틈 공략집-
몬스터 이름: 크아이가(Cyaegha)
보상: 크아이가의 눈
특징: 거인들의 감옥 카르케르에 갇혀 있는 외계인 종족이지만, 다른 외계인들과 사이가 좋지 않다. 크아이가의 촉수들 한가운데 있는 눈동자가 완전히 눈을 뜨면 파괴 신, 혹은 재앙이 내려온다고 한다. 촉수들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촉수들의 생명력이 끈질기다. 크툴루처럼 재생하기 때문에 크툴루처럼 약점을 집중적으로 공략해서 해치워야 한다.
보유 스킬:
재생-촉수가 잘려도 재생한다. 패시브 스킬.
파멸의 눈동자-눈동자가 완전히 떠지고 파괴신이 소환돼 주변을 다 파괴해 버린다. 마나 소모 1,000.
<크아이가에 대한 공략(하급)을 습득했습니다.>
<크아이가에 대한 당신의 공격력이 10% 상승합니다.>
<크아이가로부터 아이템을 습득할 확률이 조금 높아집니다.>
<크아이가의 약점을 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영상을 재생하시겠습니까? Yes/No>
‘파멸의 눈동자라니. 끔찍하군.’
눈을 감은 탓에 시야가 흐릿했지만, 다행히 크아이가의 눈동자는 완전히 뜨인 것 같지 않았다. 반 정도 뜨인 것 같았다. 졸린 것같이 보이는 기괴한 모습이었다.
‘이 녀석도 크툴루처럼 촉수 재생 괴물이로군. 그런데 다른 외계인 종족과 사이가 좋지 않다고?’
그때 공략집의 전략창이 떠올랐다.
<다른 외계인 종족들은 크아이가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크투가나 딥원 부대를 소환해 싸우면 더욱 효과적으로 싸울 수 있습니다.>
마침 헤르메스는 하스터의 드러난 얼굴을 보지 않기 위해 저 멀리 도망간 상태였다.
그리고 하스터의 얼굴이 지닌 석화 효과는 같은 외계인 종족에겐 먹히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 크투가와 딥원 부대를 소환하는 게 낫겠어.’
대규는 우선 인피니투스를 꺼내 가방 문을 열었다. 그러자 그 안에서 딥원 부대가 와르르 튀어나왔다.
하스터와 크아이가는 대규가 딥원을 부리는 모습을 보고 놀란 듯했다.
가방에서 나온 얀슬레이 역시 녀석들을 보고 놀랐다.
얀슬레이는 대규를 바라보며 물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저번에 상대했던 크투가 녀석도 그렇고… 왜 저 녀석들이 카르케르에서 도망쳐 나와 이곳에 있는 거죠?”
대규는 자신을 멀뚱멀뚱 쳐다보는 얀슬레이에게 대답했다.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우린 저 녀석들을 해치워야 해. 얀슬레이, 가능하겠어?”
그러자 그는 믿음직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뒤 말했다.
“물론입니다. 특히 저 크아이가 녀석은 크투가보다도 더욱 악랄하게 우리 종족을 괴롭혔던 녀석이죠. 녀석은 다른 외계인들을 괴롭히는 걸 취미로 삼는 놈입니다.”
“그런데 용케 하스터와는 별 마찰이 없는 것 같군. 저 둘이 저렇게 함께 싸우는 걸 보니 말이야.”
얀슬레이는 경멸하듯 툭 내뱉는 목소리로 말했다.
“끼리끼리 노는 겁니다. 유유상종, 같은 녀석들이니까요. 그런데 주인님은 아까부터 왜 눈을 감고 계십니까? 아, 저 하스터 녀석 때문인가 보군요.”
“그래.”
“눈을 감아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응.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녀석들의 모습이 다 보이긴 보여. 그럼 너희들에게 저 크아이가를 부탁할게. 그리고 크투가를 꺼내도 될까?”
“그 녀석을요?”
크투가의 이름이 나오자 얀슬레이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응, 이제 우리 편이야. 너와 다른 딥원들을 괴롭히진 않을 거야. 내가 약속할게.”
대규가 이렇게 말했지만, 얀슬레이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주인 명령이니 차마 거역하진 못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딥원들과 함께 크아이가를 상대해 줘. 나랑 크투가는 하스터를 상대할 테니까.”
대규가 명령을 내리자 얀슬레이를 포함한 딥원 부대는 크아이가를 향해 날아갔다.
“갸으윽!”
딥원들은 일제히 생선 주둥이를 벌리고 날카로운 이빨을 크아이가의 촉수들을 향해 박아 넣었다.
그런데 그 전보다 딥원들의 민첩성, 공격력 등이 더욱 오른 것 같았다.
‘일전에 먹이를 줘서 충성도가 올라간 덕분인가?’
크아이가는 자신을 공격해 오는 딥원들을 보며 당황하고 있었다. 그 역시 대규가 자신과 같은 외계인 종족을 부하로 꺼낼 거라곤 상상하지 못한 것 같았다.
‘하지만 딥원이 전부가 아니다!’
대규는 손을 든 뒤 실눈을 뜨고 손가락에 끼워진 소환의 반지를 바라보았다.
분명 이 반지로는 반지 속에 저장된 몬스터들을 ‘자유자재’로 불러낼 수 있다고 했다.
소환 횟수가 엄격하게 제한된 라의 목걸이보다 훨씬 편리한 도구였다.
‘그런데 미마스와 전투를 할 때 크투가가 미마스의 저주로 상당히 부상을 입었는데… 괜찮을까? 일단 불러 보자.’
대규가 반지를 계속 바라보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소환의 반지에 저장된 몬스터를 소환할 수 있습니다. 소환할 몬스터를 선택해 주십시오.]
[크투가 / 미마스]
‘오! 미마스를 해치워서 녀석 역시 반지에 저장이 됐군. 완전히 잊고 있었는데 말이야.’
그러고 보니 어느새 암석에 배를 꿰뚫린 미마스의 시체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잠깐, 미마스 녀석… 저주 계열 스킬들이 엄청 많았잖아. 그럼 미마스를 써서 하스터에게 저주를 거는 편이 나으려나?’
하지만 하스터의 얼굴을 보면 그 미마스도 아테나처럼 몸이 단단히 굳어질 것이다.
미마스는 다음에 부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대규는 결국 다시 한 번 크투가를 선택했다. 선택을 확인하는 창이 떠올랐다.
[크투가를 소환하시겠습니까? Yes/No]
소환을 결심하자 반지에서 빛이 다시 한 번 번쩍였다.
화르륵-
크투가의 불길이 반지에서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전에 소환했을 때만큼의 열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확실히 크투가는 미마스의 공격을 받아 약해진 것 같았다. 손가락엔 열기보다 미지근한 온기가 감돌 뿐이었다.
“#%#!”
소환된 크투가는 입을 벌려 울부짖었다. 하지만 녀석의 울음소리 역시 확연히 줄어든 상태였다.
게다가 악마 형상의 불길 크기는 본래 크기보다 약 10분의 1 정도로 완전히 줄어들어 버렸다.
‘이런! 이대로는 별 도움이 안 되겠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대규는 보관함에서 엘릭서를 한 병 꺼냈다. 그리고 뚜껑을 열어 크투가의 불길을 향해 엘릭서를 부었다.
엘릭서는 생명력과 마나를 풀로 채워 주고 모든 상태 이상을 치료해 주는 영약이다.
분명히 이 효과는 외계인인 크투가에게도 들을 것이다.
촤아악-
대규의 예상이 맞았다.
진분홍빛 액체가 불길에 닿자마자 갑자기 기름이라도 한 바가지 부은 것처럼 크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화르르륵!
불길은 순식간에 맹렬히 타올랐다.
악마 형상의 불길은 매서운 위엄을 뿜어냈다. 크투가는 맨 처음 세계수 나무 꼭대기에서 봤던 그 무시무시한 모습을 되찾았다.
‘좋아, 완전히 회복됐군.’
대규는 보관함을 바라보았다.
이제 엘릭서는 총 6개가 남아 있었다.
시련을 겪으며 아틀라스를 상대할 때 하나 소비했던 걸 빼면 이번 전투에서만 벌써 3개를 사용했다.
확실히 기간테스와 외계인은 만만치 않은 상대들이었다.
‘이거 앞으로는 엘릭서가 필수적으로 필요하겠어.’
대규는 이번 전투가 끝나면 다시 재료를 모아 켄타로우스의 숲으로 찾아가 센텐티아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엘릭서를 제조해 달라고 부탁해 잔뜩 쟁여 놓을 작정이었다.
‘아니면 차라리 그가 갖고 있는 현자의 돌 압축기를 갖게 되면 좋을 텐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중에도 하스터가 달려들고 있었다.
대규는 눈을 질끈 감은 뒤 크투가에게 말했다.
“그럼 크투가! 저 두건 녀석을 해치우자!”
크투가는 대답 대신 자신의 불길은 활활 태우며 하스터에게 달려들었다.
시뻘건 불길이 순식간에 하스터의 몸을 빙 둘러 감쌌다.
“#%^[email protected]!”
하스터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자신을 포위한 불길로부터 도망가려 애썼다.
하지만 불길은 그의 망토 자락을 이미 태우기 시작했다.
그가 도망갈 때마다 크투가의 불길은 빠르고 끈질기게 그를 뒤쫓았다.
곧 하스터의 그 끔찍한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그의 얼굴은 크투가의 불길 때문에 더욱 빨리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때 하스터가 구더기들이 잔뜩 붙은 팔을 척 들었다.
번쩍!
강렬한 섬광이 팔 끝에서 튀어나왔다. 그는 입으로 추정되는 얇게 째진 틈(?) 사이로 구더기가 붙은 손가락을 넣고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쉬이익-!
휘파람이라기 보단 쇠 긁는 소리 같은 기분 나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무래도 뭔가를 부르는 신호 같은데…….’
그때 저 멀리서 이상한 새 떼가 날아오기 시작했다.
새들은 철새들처럼 대형을 갖춰서 날아오고 있었다.
대규는 새 떼를 향해 고개를 돌린 뒤 신의 눈을 사용해 바라봤다.
‘저것들은 새 떼가 아니잖아!’
신의 눈으로 확대해서 바라본 그것들은 새가 아니라 날개 달린 괴상한 생물들이었다. 언뜻 보면 날개 달린 드래곤처럼 생겼는데, 자세히 보니 드래곤이 아니라 벌레와 박쥐를 합친 것같이 생겼다.
녀석들의 양팔은 꼭 전갈의 독침처럼 생겼고, 입 주변에는 이빨들이 사방으로 돋아나 있었다. 그리고 몸은 붉은 갑각류의 껍질로 온통 뒤덮여 있었다.
그리고 녀석들의 비행 속도는 무지막지하게 빨랐다.
대규가 헤르메스의 장화를 이용해 최대 스피드를 낼 때만큼 빠른 것 같았다.
그 녀석들은 곧 신의 눈을 쓰지 않아도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날아왔다.
하스터는 녀석들이 있는 곳으로 도망친 뒤 그중에서 제일 앞에서 날아오는 녀석의 등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반대편으로 돌아 자신을 뒤쫓아 오는 크투가의 불길로부터 빠르게 도망쳤다.
나머지 녀석들은 대규와 크투가를 향해 맹렬히 날아왔다.
대규는 날아오는 것들 중 한 마리를 바라보았다. 하스터가 멀리 도망친 참이라 이젠 눈을 뜰 수 있었다.
그러자 공략집이 떠올랐다.
-차원의 틈 공략집-
몬스터 이름: 비야키(Byakhee)
보상: 광속의 꼬리
특징: 하스터의 심복이자 탈것. 황금의 벌꿀 술을 마시면 이 비야키를 타고 조종할 수 있다. 카르케르의 외계인들이 살았던 우주 공간을 비행할 수 있으며, 스킬을 사용하면 최대 광속(光速)의 속도로 날아갈 수 있다.
빠르게 움직이는 속도 때문에 뒤틀리는 대기의 흐름만으로도 일반 사람들은 목숨을 잃을 수 있다. 저렇게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는 건 꼬리에 달린 특수한 기관 때문인데, 그곳이 비야키의 약점이기도 하다.
보유 스킬: 쾌속 비행-비행 속도를 급격하게 끌어 올려 광속으로 날아오름. 도망에 요긴하고 대기의 흐름을 엉망으로 만들어 적에게 간접적으로 공격을 가한다. 마나 소모 5,000.
<비야키에 대한 공략(하급)을 습득했습니다.>
<비야키에 대한 당신의 공격력이 10% 상승합니다.>
<비야키로부터 아이템을 습득할 확률이 조금 높아집니다.>
<비야키의 약점을 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영상을 재생하시겠습니까? Yes/No>
‘하스터 자식, 추악한 외모의 소유자답게 탈것도 추악한 것만 골라서 타고 다니는군.’
그나저나 광속의 속도라면 빛과 동일한 속도다.
빛의 속도는 초속 약 30만 킬로미터를 이동한다고 한다. 그 말인즉슨 저 비야키가 쾌속 비행 스킬을 쓰면 1초 만에 지구 7바퀴 반을 돌 수 있단 말이다.
‘미친 거 아니야? 그 정도로 날아다니면 그 곁에 있기만 해도 대기의 흐름 때문에 몸이 산산조각이 나겠다.’
물론 그런 어마어마한 스킬이니 마나 소모량이 5,000이나 되는 거겠지만.
하지만 광속의 속도로 날지 않는다 해도 비야키의 본래 비행 속도 역시 엄청났다. 벌써 하스터는 몹시 빠르게 도망쳤고, 크투가의 불길은 차마 따라잡지 못하고 있었다.
‘비겁한 자식…….’
하지만 대규는 공략집의 내용을 다시 한 번 읽었다.
내용 중 나와 있는 황금의 벌꿀 술은 분명 하스터에 대한 공략집 정보의 보상란에 적혀 있던 아이템이었다.
아무래도 녀석을 해치우고 벌꿀 술을 얻으면 저 비야키를 탈 수 있는 것 같았다.
‘물론 비야키가 몹시 빨라서 좋긴 하지만, 저 녀석들은 너무 기분 나쁘게 생겼어. 차라리 옵티뭄이 저 스킬과 속도를 얻으면 좋을 텐데…….’
키이잉-
그 순간 날카로운 공기의 흐름이 대규의 얼굴을 스쳤다. 얼굴 피부가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어느새 비야키들은 대열을 이루며 크투가와 대규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