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
201화 전장의 새국면 (7)
대체 저 푸른빛의 정체는 무엇인 걸까.
대규는 궁금해졌다.
하지만 일단은 아테나를 불러서 저 하스터의 얼굴을 보지 말라고 말해 주는 게 우선이었다.
다시 한 번 아테나를 향해 소리쳤다.
“아테나!”
하지만 그녀의 귀엔 들리지 않는 듯했다.
그녀는 여전히 무표정으로 창을 기계처럼 휘두를 뿐이었다.
꼭 세상과 단절됐고, 그녀와 그녀의 창 단둘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푸른 기운을 머금은 창두가 하스터의 두건 끝을 스쳤다. 대규는 열심히 움직이는 그녀의 창두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무래도 지금 아테나의 상태는 내가 시련에서 아틀라스를 상대했을 때 느꼈던 상태와 비슷한 것 같다.’
대규 역시 주먹질에 집중해 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창의 글씨도 읽지 못할 정도였다.
‘어쨌든 아테나에게 하스터의 석화 공격에 대해 빨리 알려 줘야 한다.’
대규는 단전 아래쪽의 힘을 끌어 올려 목청을 다해 소리쳤다.
“아테나!”
확성기를 대고 말하는 것처럼 커다란 목소리가 배 속 깊은 곳에서 장기들, 그리고 머리까지 울렸다.
쿠궁-
출렁-
심지어 목소리 때문에 주변 공기의 흐름이 파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대규의 커다란 목소리를 실은 공기의 파동이 하스터와 아테나를 덮쳤다.
촤아악-
하스터의 황색 망토와 두건이 거센 폭풍이라도 맞은 것처럼 요란하게 휘날렸다. 녀석은 구더기가 잔뜩 낀 팔을 반사적으로 들어 대규의 목소리가 실린 공기의 파동을 막았다.
아테나 역시 그제야 대규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전투를 방해받아 화가 난 표정으로 대규를 보며 외쳤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신의 목청을 서서 나의 전투를 방해하는 건가!”
아테나의 눈빛은 짜증과 분노로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신의 목청’이라니.
아무래도 그 커다란 목소리를 내는 능력 역시 신의 육체가 지닌 기술 중 하나인 것 같았다. 확대경을 댄 것처럼 멀리 있는 사물을 볼 수 있는 눈동자처럼 말이다.
아테나는 여전히 대규를 보며 이를 부득부득 갈고 있었지만, 대규는 그녀에게 다시 한 번 커다란 목소리로 외쳤다.
“아테나! 녀석의 두건이 벗겨지지 않도록 조심해. 녀석의 얼굴을 똑바로 보게 되면 네 몸은…….”
“조용히 해라! 내가 알아서 한다!”
그녀는 대규의 말을 끊으며 소리쳤다. 그리고 창두를 대규에게 위협적으로 휘두르며 말을 이었다.
“그대의 방해 때문에 나의 플로우 창법이 깨져 버렸다. 나는 남자들의 도움을 갈구하고 필요로 하는 연약한 여신이 아니다. 나는 전쟁의 여신이다!”
대규는 도와주려고 조언을 한 것인데 아무래도 그녀는 그 때문에 전쟁의 여신으로서의 자존심이 크게 상한 것 같았다.
도와주려고 한 거란 말을 하고 싶었지만, 대규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여기서 구구절절 그녀에게 설명해 봤자 그녀의 성질을 더 돋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냥 가만히 있어야겠군.’
아테나는 다시 고개를 돌린 뒤 하스터를 향해 창두를 겨누었다.
그녀는 사실 대규에게 빚이 남아 있었다.
지난번 포르피리온과의 재전투 때 대규는 자신과 포르피리온, 토온, 미마스의 전투에 끼어들었다.
다행히 대규가 토온을 해치운 덕분에 아테나는 그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지만, 그 때문에 동시에 그녀의 자존심은 많이 상했다.
전쟁의 여신이 자신이 치르는 전투에서 부하에게 도움을 받아 이기다니!
게다가 이제 대규는 자신과 동등한 신이 됐다.
대규 앞에선 연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는 예전엔 자신의 부하였고, 옛 부하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는 건 그녀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데 벌써 미마스를 해치운 건가?’
아테나는 평원의 아래쪽을 바라봤다.
뾰족한 암석에 배가 꿰뚫려 죽은 미마스의 시체가 보였다.
당연히 대규가 미마스를 해치울 거라곤 생각했지만 저렇게 빨리 해치울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신이 되고 나서 그의 능력은 더욱 빠르게 강해지고 있었다.
‘대체 저자의 능력은 어디까지인 걸까.’
문득 아테나는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그전까지는 대규가 아무리 강해도 세미데우스였고, 자신의 부하여서 그렇게 위협적으로 느껴지진 않았지만, 그가 신이 되고 난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아직 신이 된 지 얼마 안 됐지만, 시간이 흐르면 곧 다른 판테온의 신들을 빠르게 넘어서기 시작할 것이다.
‘헤르메스는 농담식으로 말했지만 근시일내에 정말 아레스를 제치고 전쟁의 신이 될 것이다.’
아테나는 확신했다.
욱하는 성정, 그리고 당장 눈앞의 욕망에 눈이 어두운 아레스보다 냉정하고 차분한 대규가 훨씬 전쟁의 신에 잘 어울렸다.
‘그리고 나를 제칠지도 모르지…….’
그런 생각을 하니 두렵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동시에 가슴이 이상하게 두근거렸다.
강한 적과 전투를 벌여 쓰러뜨리는 대규의 모습을 생각하니 설렘에 가까운 묘한 감정이 여신의 마음에서 일어났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전투에 집중해야 한다.’
어느새 창두의 푸른 기운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그녀의 집중이 완벽하게 깨졌다는 표시였다.
그녀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초집중 상태에 돌입하기 시작했다.
얼굴에 드러난 감정들이 서서히 사라졌고, 머릿속을 지배하던 대규에 대한 생각들도 싹 가셨다.
곧 창과 그녀만이 세상에 남게 됐다. 창두에 푸른빛이 다시 생성되기 시작했다.
주변의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대규의 모습도 어느새 사라졌다.
하스터는 황색 두건을 쓴 모습이 아니라 붉은색을 띠고 있는 거대한 형체로만 인식될 뿐이었다. 덩쿠리 촉수 괴물도 그러했다.
그들은 이제 아테나에게 적이라기보다 창으로 맞혀야 할 하나의 목표, 혹은 과녁 정도로 인식될 뿐이었다.
창두가 하스터를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휙-
창두가 하스터를 스치자 녀석의 팔을 구성하고 있는 구더기 수십 마리가 단번에 잘려 나갔다.
“#[email protected]$…….”
하스터는 부상입은 팔을 잡고 낮은 신음을 흘렸다.
하지만 아테나의 창두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 옆에 있는 촉수괴물 외계인을 향해서도 날아갔다.
서걱-
촉수들 역시 단번에 힘없이 잘려 나갔다.
아테나는 전쟁의 여신답게 두 마리의 외계인 보스들을 상대로 선전하고 있었다.
촉수 괴물 몬스터가 다시 한 번 촉수들을 아테나에게 뻗쳤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후두둑-
그녀를 향해 뻗어 오는 촉수들은 그녀의 몸에 닿기도 전에 다시 한 번 힘없이 잘려 떨어졌다.
하스터가 두건을 벗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녀석의 멀쩡한 팔이 황색 두건을 서서히 걷어 올리고 있었다.
전투를 지켜보던 대규는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안 돼! 아테나, 눈을 감아!”
하지만 플로우 경지의 초집중 상태에 도달한 아테나는 대규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아테나는 눈앞에 보이는 하스터를 향해 있는 힘껏 창두를 휘둘렀다.
그 순간,
“……?!”
창두가 흔들리며 멈췄다.
아테나의 표정이 흠칫, 하고 굳어졌다.
여태껏 그녀의 시야에서 붉은 형체로만 보였던 하스터의 모습이 달라지고 있었다.
“우욱…….”
그녀는 저도 모르게 오른팔을 들어 입을 막았다.
여태껏 두건 아래쪽에 숨겨져 있었던 하스터의 얼굴이 천천히 드러났다.
두건의 아래쪽엔 인간의 얼굴 같은 것이 달려 있었다.
하지만 그 얼굴은 구더기들과 고름딱지 들로 잔뜩 뒤덮여 있었고, 살점은 액체처럼 끊임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눈이 있어야 할 곳에는 텅 빈 구멍들만이 있었다.
그 끔찍한 몰골에 아테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다. 그 몰골 때문에 놀라서 말이 안 나오는 게 아니었다.
하스터의 얼굴을 본 순간, 그녀의 성대 근육이 순식간에 굳어져 버렸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성대뿐이 아니었다. 그녀의 팔도 굳어져 버렸다.
그녀는 들고 있던 자신의 창을 떨어뜨렸다.
아테나는 있는 힘을 다해 팔을 들어 자신의 어깨에 붙어있는 아이기스의 방패를 들려고 했다.
아이기스 방패의 마력저항 효과를 이용해 녀석이 부리는 이 이상한 마법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방패가 달린 어깨에 손이 닿기도 전에 그녀의 두 팔은 완전히 굳어 버렸다.
“히이잉!”
그녀가 타고 있는 말 페가수스가 괴롭게 울부짖었다.
그녀는 대규가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대규가 자신을 향해 옵티뭄을 타고 날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 아…….”
입을 움직여 봤지만, 그녀의 입에선 신음 말고는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대규는 오직 아테나만을 똑바로 바라보며 날아가고 있었다.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입술을 달싹이는 것이 그녀는 그에게 뭔가를 말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입술은 달싹이며 미세한 경련을 일으키기만 할 뿐, 뭐라고 말을 하진 못했다.
곧 그녀는 완전히 돌처럼 굳어져 버렸다.
그녀뿐 아니라 그녀가 타고 있는 말 페가수스 역시 온몸이 굳어져 버렸다.
그녀와 페가수스는 결국 빠른 속도로 평원을 향해 추락하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저 밑엔 암석투성이인데.’
대규는 추락하고 있는 아테나를 향해 옵티뭄을 몰고 빠르게 날아갔다.
그리고 전술장갑을 낀 오른손을 뻗었다.
스르륵-
장갑의 오른쪽 손목 쪽에서 끈끈한 아라크네의 거미줄이 뿜어져 나왔다.
거미줄은 페가수스와 아테나를 칭칭 감기 시작했다. 대규는 거미줄로 그들을 최대한 두껍게 감아 거대한 고치처럼 만들었다.
그리고 솟아오른 암석을 피해 최대한 살살 평원 바닥에 내려놓았다.
쿵!
살살 내려놓는다고 했는데도 고치의 크기가 워낙 커서 커다란 소리가 평원에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놀란 헤르메스가 하늘 위에서 대규를 내려다보며 외쳤다.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건가?”
대규는 헤르메스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아테나가 당했다.”
“뭐라고?”
전쟁의 여신이 적에게 당했다는 말을 듣자 헤르메스는 꽤 충격을 받은 듯했다.
하지만 그럴 틈이 없었다. 저 멀리서 두건을 벗어젖힌 하스터가 헤르메스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대규는 헤르메스를 바라보며 신의 목청을 사용해 크게 외쳤다.
“헤르메스! 눈 감아라! 저 황색 두건 녀석의 얼굴을 보지 마!”
“뭐? 다짜고짜 그게 무슨…….”
“아테나는 녀석의 얼굴을 봐서 몸이 돌처럼 단단히 굳어졌다. 녀석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도망가서 전투를 벌여라.”
그 말을 들은 헤르메스는 더욱 놀라서 중얼거렸다.
“신의 육체에 석화 공격이 먹히다니… 신의 육체는 보통 그런 공격이 먹히지 않는데…….”
“저 녀석은 판테온의 괴물이 아니다. 외계인이라구!”
그 말을 듣고 헤르메스는 자신의 말을 고삐를 잡아당기며 대규에게 소리쳤다.
“알겠다! 그럼 이쪽은 대규 너에게 일단 맡기겠다!”
“그래.”
그는 말머리를 돌려 하스터로부터 최대한 멀리 달아났다.
헤르메스 뒤로 그가 상대했던 두 마리의 외계인이 쫓아갔다.
‘일단 헤르메스는 무사하고. 그럼 이제 내가 저 녀석들을 해치워야 할 텐데…….’
대규는 옵티뭄의 등 위에서 내렸다.
그리고 아테나와 페가수스가 들어 있는 거미줄 고치 옆에 녀석을 세워 두며 말했다.
“너는 여기 있어. 아까처럼 위험해질지도 몰라. 좀 답답하겠지만 참아 줘.”
대규는 오른손을 옵티뭄의 눈가에 갖다 댔다.
그러자 아라크네의 거미줄이 옵티뭄의 눈을 안대처럼 칭칭 휘감았다.
옵티뭄은 답답하다는 듯 앞다리를 구르며 울었다.
“히이잉!”
“곧 돌아올게.”
말을 마친 대규는 눈을 감았다. 하스터를 쳐다봤다가 몸이 굳어져 버리면 큰일 난다.
어차피 눈을 감아도 자신은 공략집 덕분에 하스터와 저 덩쿠리 촉수 괴물의 위치를 알 수 있었다.
게다가 비록 흐릿하긴 하지만 그들의 모습을 대략적으로 볼 수도 있었다.
타타탓.
대규는 헤르메스의 장화를 이용해 하스터와 다른 촉수 괴물이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정말 끔찍한 몰골이군.’
눈을 감고 있어서 흐릿한 해상도였지만 하스터의 얼굴은 추악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덩쿠리 괴물 역시 멀리서 봤을 땐 포켓몬스터의 덩쿠리, 혹은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지만 가까이서 보니 전혀 아니었다.
‘덩쿠리는 귀엽기라도 하지. 이 자식은 그냥 추악한 촉수 괴물 외계인이잖아!’
그때 촉수 괴물이 대규를 향해 빠르게 날아오기 시작했다.
촉수 한가운데 박힌 녀석의 눈동자가 희번덕거리고 있었다.
대규는 허리춤의 사슬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