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
200화 전장의 새국면 (6)
화르륵-
악마의 화염이 미마스의 몸에 옮겨붙었다.
그리고 이미 몸에 붙어 있었던 흡혈의 화염 역시 미마스의 생명력을 깎아 먹었다.
“이 개 같은 녀석!”
미마스는 분노를 담아 대규를 향해 울부짖었다. 하지만 대규는 봐주지 않았다.
사슬검을 휘둘러 그의 목에 칼날을 칭칭 휘감았다.
곧 미마스의 목에 악마의 화염이 목걸이처럼 빙 둘러졌다.
“크으으윽!”
화염은 미마스의 목을 조여 오기 시작했다.
미마스는 죽을 것만 같았다. 자신의 생명력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목을 파고드는 뜨거운 악마의 화염에 의식이 흐려져 갔다.
여태껏 단 한 번도 써 본 적 없는 스킬 ‘죽음의 길동무’를 발동해야 할 것 같았다.
이대로 혼자 개죽음당할 수는 없었다.
“끄으으…….”
미마스의 몸이 암흑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역시 죽기 직전 빈사 상태에 돌입하니 저 스킬을 쓰는군.’
대규는 미마스의 모습을 바라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저 스킬에 당하면 답도 없었다. 아무리 대규가 강한 실력자라 하더라도 저 스킬은 발동되는 즉시 상대방 역시 빈사 상태로 만든다.
그야말로 무서운 저주!
‘빌어먹을, 최대한 막아야 해.’
각오는 했지만 대규는 저 스킬이 두려웠다.
최대한 마력 저항력을 지닌 아이템들을 꺼내 막아 보기로 했다. 그렇게 하면 저 스킬의 위력을 조금이나마 상쇄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타타탓.
대규는 미마스와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닥튈로이의 반지 등 모든 마력저항 아이템들의 효과를 발동시켰다.
그리고 아테나가 준 아이기스의 방패도 어깨에서 떼내어 손에 들었다. 이 방패 역시 마력 저항 효과를 상당히 지니고 있었다.
그때였다.
“키이이익!”
아이기스 방패에 새겨진 괴물뱀 아이기스가 눈을 번쩍 뜨며 이상한 울음소리를 냈다.
‘어떻게 된 거지?’
대규는 이 괴물뱀이 울부짖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물론 아테나 여신이 전에 포르피리온과의 전투에서 제우스의 벼락을 불러낼 때도 이 괴물뱀은 울부짖었지만 대규는 그 모습을 직접 보진 못했다.
‘제우스의 벼락을 소환해 빈사 상태의 미마스 녀석을 완벽하게 해치워 버리자. 그런데 벼락을 어떻게 소환해야 하는 거야?’
방패를 이리저리 살펴보는데 마침 미마스의 몸을 둘러싼 암흑들이 사라졌다.
녀석의 몸은 이제 완전히 타버린 것처럼 까맣게 면했다.
“끄어어…….”
녀석은 이제 본래의 거인 모습이 아니라 괴기스러운 괴물처럼 변해 버렸다. 녀석의 주둥이가 벌려졌고 그 안에서 암흑의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연기는 순식간에 대규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냄새도 고약한 것이 꼭 맹독성 가스 같았다.
‘빌어먹을!’
모든 장비로 막아 봤지만, 생명력은 뚝뚝 감소하기 시작했다. 몸이 점점 무거워졌다.
영상에서 봤던 것처럼 대규의 몸에 이상한 고름 딱지 같은 게 돋아나기 시작했다. 꼭 전염병이라도 걸린 것 같은 모습이었다.
‘끔찍하군.’
그리고 몸 이곳저곳이 쑤셔왔다.
그나마 천만다행인 건 대규가 황금 양털 조끼를 입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황금 양털 조끼의 무적 효과는 빈사 상태에 들어가면 발동되기 시작한다.
대규는 빈사 상태에 들어가 황금 양털 조끼의 무적 효과가 발동되면 방패로 제우스의 벼락을 소환해 녀석에게 내리칠 생각이었다.
그리고 무적 효과가 사라지기 전에 얼른 영약 엘릭서를 복용한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벼락을 불러내는 거야?’
방패를 이리저리 쳐다보고 있는 와중에도 생명력은 뚝뚝 떨어졌고 고름 딱지들은 더욱 많이 돋아나고 있었다.
정말 대단한 스킬이었다. 마나를 2,500이나 소모하는 엄청난 저주였다.
이제 대규의 몸은 흐느적거리기 시작했다.
옵티뭄의 등 위에 앉아있을 힘조차도 남지 않았다. 그의 몸이 마구 흔들렸다.
그때 대규의 상체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촤아악-
황금 양털 조끼의 효과가 발동된 것이다.
무적 상태에 돌입하자 거짓말처럼 몸에 활력이 넘쳐흘렀다.
시간이 없다.
대규는 울부짖고 있는 아이기스 방패를 바라보았다.
그때 괴물뱀 아이기스가 대규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아이기스와 아이컨택을 이루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제우스의 벼락을 소환하시겠습니까?]
아이 컨택이 답이었군.
당연히 소환한다.
그 순간 아이기스의 입이 떡 벌어졌고 대규의 몸으로부터 무언가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상태창에 표시된 마나의 양이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뭐지? 내 마나를 흡수해서 벼락을 소환하는 건가?’
그때 공략집의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아이기스가 마나를 많이 흡수할수록 벼락의 위력이 강해집니다.>
‘그럼 쭉쭉쭉 많이 흡수해라! 마나야 나중에 엘릭서로 회복하면 되니까!’
아이기스는 대규의 마나를 80% 이상 흡수한 뒤 벌렸던 입을 닫았다. 곧 빠르게 하늘이 어두워졌고 심상치 않은 검은 구름이 순식간에 몰려왔다.
우르릉, 쾅쾅!
곧 푸른 벼락이 아이기스의 몸을 향해 내리쳤다.
콰콰쾅! 번쩍!
“크아아아……!”
까맣게 변해 버린 빈사 상태의 미마스는 더 이상 저항할 힘이 남아 있지 않은 듯했다.
벼락에 맞자마자 녀석의 몸은 빠르게 평원 아래쪽으로 추락했다.
그의 몸이 평원에 돋아난 뾰족한 암석 위로 떨어졌다.
푸우욱-!
암석은 추락한 그의 몸을 여지없이 꿰뚫었다.
“끄으으…….”
미마스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암석을 붉게 물들이자마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미마스를 해치웠습니다.]
[많은 양의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마나 2,500을 흡수하였습니다.]
얼마나 많은 양의 경험치를 흡수했나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곧 황금 양털 조끼의 무적 효과는 사라진다.
이제 고름 딱지들은 완전히 대규의 몸을 뒤덮었다.
몸의 움직임이 서서히 둔해졌다.
대규는 보관함을 뒤져 있는 힘을 다해 엘릭서를 꺼내 마셨다.
뚜껑을 열고 입안에 콸콸 액체를 들이부었다. 진홍빛 액체가 대규의 몸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꿀꺽꿀꺽-
그러자 온몸을 뒤덮고 있던 끔찍한 고름들이 싹 사라져 버렸다.
어느새 황금 양털 조끼의 효과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다행이다.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했다.’
정신을 차린 대규는 암석에 배가 뚫린 미마스를 바라보았다.
‘휴우, 해치운 건가.’
미마스는 배가 암석에 꿰뚫린 채 입을 벌리고 죽어 있었다.
복부에선 아직도 피가 철철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때 녀석의 몸에서 골드 등급 젬스톤 2개가 두둥실 떠올랐다. 하지만 곧 팟, 하고 사라졌다. 주둔지로 전송된 것 같았다.
‘그런데 기간테스를 해치웠는데도 레벨 업을 하지 않다니…….’
대규는 자신의 상태창을 불러 레벨을 확인했다.
아직도 레벨이 1이었다. 그리고 경험치는 60% 남짓 찼을 뿐이었다.
‘많은 양의 경험치를 획득했다더니… 고작 이거란 말이야?’
솔직히 레벨이 한 단계 정도는 오를 거라고 기대했었다. 그토록 레벨을 올리기 힘들었던 세미데우스 시절에도 기간테스를 하나 해치우면 레벨이 2~3단계는 뛰었었다.
게다가 자신은 신체강화 수술을 받은 몸이 아니었던가!
‘아니지. 새로운 육체를 얻게 됐으니 그 수술은 이제 무효가 된 건가?’
잘 모르겠다.
나중에 아스클레피오스를 만나게 되면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확실한 건 신의 육체는 세미데우스완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레벨을 올리기 힘들다는 것이다.
‘뭐, 그만큼 신의 육체가 강력하기도 하니까…….’
대규는 좀 전에 당했던 미마스의 스킬 죽음의 길동무를 떠올렸다.
모든 마력 저항 장비들을 끌어들여 막았는데도 신의 육체에도 이상한 고름 딱지들이 피어올랐다.
‘아마 세미데우스의 육체였다면 견디지 못하고 더욱 빨리 무너졌겠지. 미마스 녀석… 죽긴 했지만 정말 대단한 스킬을 지닌 놈이야.’
대규는 미마스의 시체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런데 녀석의 몸 주변에서 뭔가가 번쩍하고 빛났다.
‘뭐지?’
대규는 옵티뭄의 고삐를 당겨 녀석의 시체 근처로 다가갔다.
번쩍였던 것은 미마스가 들고 있던 지팡이에 달린 까만 돌이었다.
까만 돌을 자세히 살펴봤다.
돌 안에선 이상한 기운들이 연신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곧 아이템 설명창이 떠올랐다.
[마(魔)의 돌(신화)]
[이 돌을 지닌 채 저주 계열 스킬을 사용하면 그 위력이 랜덤하게 몇 배 이상 강해진다. 또한 이 돌을 지니고 있으면 그 어떤 상급 저주도 효과적으로 막아낼 수 있다. 저주 스킬에 대한 마력 저항력 +100]
이 돌 때문에 미마스의 저주 스킬들이 그토록 강력했던 거였군.
‘그런데 상급 저주도 효과적으로 막아 준다고?’
더군다나 그냥 마력 저항이 아니라 저주 스킬에 대한 마력저항력을 100이나 올려 주는 돌이었다.
‘상당히 끌리는걸.’
이 돌을 지니고 있다면 죽음의 길동무 같은 극악한 저주라도 그럭저럭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 돌은 왜 공략집에서 보상으로 떠오르지 않은 거지?’
아마도 녀석이 지니고 있는 무기의 일부여서 그런 것 같았다.
‘내가 저주 스킬을 갖고 있지 않아서 그 위력을 끌어 올릴 순 없겠지만… 일단 챙겨 두자. 게다가 이 돌은 신화 등급 아이템이니 분명 쓸모가 있을 거야.’
대규는 미마스의 지팡이에서 마의 돌을 뽑아내 보관함에 챙겨 뒀다.
‘그런데 헤르메스와 아테나의 전투는 잘돼 가고 있는 걸까?’
궁금증이 일어 그들이 전투를 벌이고 있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싸우는 곳에선 엄청난 굉음이 들려왔다.
콰콰쾅! 파지직!
허공에서 기류의 파동이 심하게 일었고 번쩍이는 빛들이 서로 맞부딪히며 터졌다.
가까이에 다가가기만 해도 그 충격 때문에 몸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헤르메스는 외계인들을 상대로 그럭저럭 잘 싸우고 있었다. 두꺼비 좀비와 불탄 나무를 상대로 자신의 황금 검을 휘두르며 실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아테나 역시 황색 두건과 덩쿠리를 닮은 촉수 괴물을 상대로 열심히 창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런데 저 황색 두건 녀석은 정말 이상하게 생겼단 말이지.’
대규는 황색 두건을 두른 외계인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나머지 외계인들은 솔직히 딱 봐도 외계인 몬스터처럼 생겼는데 저 황색 두건은 팔다리도 있고 두건까지 걸치고 있는 게 꼭 인간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팔다리가 가느다란 구더기들로 만들어져서 좀 역겹긴 하지만 말이다.
게다가 녀석은 지팡이같이 생긴 막대기를 들고 있었는데 녀석이 막대기를 휘두를 때마다 엄청난 기(氣)가 뻗어져 나왔다.
대규는 문득 황색 두건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심지어 녀석의 얼굴은 두건에 가려져 있어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도 공략집으로 녀석의 정보에 대해 알 수 있겠지.’
대규는 아테나와 황색 두건이 싸우고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얼마 후 녀석의 공략집이 떠올랐다.
-차원의 틈 공략집-
몬스터 이름 : 하스터(Hastur)
보상: 황금의 벌꿀 술
특징: 우주의 한 은하를 지배하고 있는 외계 종족. 황색 두건을 쓰고 있어서 일명 황색의 왕(Yellow king)이라고 불린다. 황색 두건을 벗으면 그 힘과 능력이 증대된다. 외계인 종족이 아닌 존재가 두건을 벗은 그의 얼굴을 똑바로 보면 온몸이 돌처럼 단단하게 굳어진다.
보유 스킬: 비야키 소환-자신의 부하이자 탈것인 괴수 비야키들을 소환한다. 마나 소모 500.
<하스터에 대한 공략(하급)을 습득했습니다.>
<하스터에 대한 당신의 공격력이 10% 상승합니다.>
<하스터로부터 아이템을 습득할 확률이 조금 높아집니다.>
<하스터의 약점을 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영상을 재생하시겠습니까? Yes/No>
‘얼굴을 똑바로 보면 몸이 굳어 버린다니. 메두사 같은 녀석인 건가.’
어쨌든 이 사실을 아테나에게 빨리 알려 줘야 한다.
그래야 그에 대비해서 잘 싸울 수 있을 테니까.
“아테나!”
대규는 있는 힘껏 목청을 높여 그녀를 불렀다.
하지만 그녀는 창을 휘두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그녀의 창두가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게 보였다.
‘원래 창날이 푸른색이었나?’
대규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신의 눈을 사용해 그녀의 창두 끝을 확대해 자세히 살펴봤다.
푸른 기운은 창날 끝에서 은은하게 퍼져 나오고 있었다.
‘잠깐만, 저 기운은……!’
저 푸른 기운은 자신도 분명 본 적이 있었다.
시련에서 아틀라스를 상대할 때, 열심히 주먹질에 집중했을 때 자신의 오른손을 물들였던 푸른빛과 동일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