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
198화. 전장의 새 국면 (4)
와아아-!
주둔지의 영웅들이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고, 곧 이동 결계가 주둔지 전체에 쳐졌다.
그리고 그들은 전쟁터로 이동했다.
이동 결계를 타고 도착한 곳은 암석이 잔뜩 돋아난 평원이었다.
대규는 평원의 모습을 보고 감탄했다.
사막같이 생긴 황량한 모래 평원에 암석이 거대한 버섯처럼 뾰족하게 솟아 있었다.
꼭 영화 스타워즈에서나 볼 법한 풍경이었다.
‘이렇게 암석들이 많이 돋아나 있는데 대체 어떻게 싸워야 하지? 공중전이라 상관없나.’
그때 대규의 전투 감각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쿠궁-
투명한 공기 파장이 대규 몸 주변에 일기 시작했고, 갑자기 오감이 활성화됐다.
대규의 귓가에 커다란 함성이 들렸다.
구어어어-
크워어어-
헤르메스 영웅들의 함성이 아니었다.
‘적군이 오고 있다.’
그런데 세미데우스 시절보다 전투 감각이 훨씬 더 예민해진 것 같았다. 적들의 모습은 아직까지 육안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그토록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소리를 들을 수 있다니.
헤르메스와 아테나 역시 적들의 함성을 들은 것 같았다.
헤르메스가 말했다.
“적들은 약 10km 밖에서 오고 있다. 우리도 준비하자.”
그는 아군 부대의 영웅들에게 명령했다.
“대열을 갖추라!”
척척척-
영웅들은 신속하게 대열을 갖췄다. 그리고 들고 있는 무기를 땅에 팡팡 치면서 외쳤다.
“판테온에 승리의 영광을!”
“판테온에 승리의 영광을!”
헤르메스는 영웅들의 모습을 바라본 뒤 대규와 아테나에게 말했다.
“그럼 우리도 슬슬 준비하도록 하지.”
곧 아테나와 헤르메스의 몸이 커지기 시작했다. 신만이 지니고 있는 패시브 스킬 ‘플렉서블 바디’를 발동한 것 같았다.
대규는 그들을 바라보며 자신 역시 스킬을 발동시켰다.
꿀렁-
뱃속의 위액이 역류하는 것 같은, 살짝 메스꺼운 느낌이 온몸을 감쌌다.
‘이거 제대로 되고 있는 거 맞아?’
대규는 울렁거림을 참으며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그의 손바닥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손바닥뿐만이 아니라 발과 팔, 온몸의 모든 부분이 거대해졌다.
순식간에 그는 땅바닥에 서 있는 영웅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제 그들이 작은 개미처럼 느껴질 정도로 거대한 거인이 돼 버렸다.
몸이 완전히 커질 때까지 뱃속의 메스꺼운 느낌은 계속되었다.
심지어 대규가 타고 있는 말 옵티움도 커진 몸 사이즈에 맞춰 같이 커졌다.
“히히힝!”
옵티뭄이 내지르는 울음소리 역시 우레처럼 크게 들렸다.
‘귀가 터질 것 같군.’
어느새 고개를 돌려보니 같이 커진 헤르메스와 아테나가 보였다. 이제 세 명의 키는 평원에 높게 돋아난 암석들보다 두 배 정도 더 컸다.
헤르메스가 대규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때? 처음이라서 좀 속이 울렁거리진 않는가?”
“응. 좀 불편하군. 대체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건가?”
그러자 헤르메스가 대답했다.
“근육조직과 장기, 뼈를 한 번에 늘려 주는 마법이라 그런 거야. 계속 쓰다 보면 익숙해질 걸세.”
대규는 그의 말을 들으며 넓디넓은 평원을 내려다보았다.
이제 평원을 가득 메운 뾰족한 암석들은 그의 허리 높이에 촘촘히 나 있었다. 암석들의 꼭대기는 창끝처럼 아주 뾰족했다.
그런데 저 멀리서 날아오고 있는 몬스터들이 보였다.
공중을 날아오는 능력을 지닌 걸 보니 적군의 대장, 미마스와 외계 종족 몬스터들인 것 같았다.
외계 몬스터 4마리가 선두를 서고 있었고, 그 뒤를 거인 한 마리가 쫓아왔다.
아무래도 그 거인이 미마스인 것 같았다.
‘기간테스면 거인 중에서도 대장인데 외계 몬스터들 뒤에서 부하처럼 쫓아오다니… 정말 졸개 정도로 전락해 버렸나 보군.’
하지만 미마스보다 더욱 눈길을 끄는 건 앞에서 날아오는 외계인들이었다.
대규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망원경 렌즈를 눈앞에 댄 것처럼 갑자기 시야가 확 늘어나며 외계인들의 모습이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보였다.
4마리의 외계인은 전부 괴상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맨 왼쪽에 있는 녀석은 황색의 두건 달린 망토를 뒤집어쓰고 있었는데 대충 인간의 체형을 지닌 것 같았다. 하지만 망토 두건 안에는 캄캄한 암흑뿐이었다.
게다가 녀석의 팔다리는 아주 가느다란 뱀과 구더기 수백 마리로 이뤄져 있었다.
‘아름다운 외모의 소유자는 아니군.’
그 바로 옆에 보이는 외계인 역시 이상하게 생겼다. 그 녀석은 꼭 불에 바싹 타 버린 고목같이 생겼다.
까만색 나무껍질 사이엔 동그란 구멍이 나 있었는데 그 구멍 안에서 피처럼 시뻘건 빛이 새어 나왔다.
자세히 보니 그 시뻘건 빛은 눈동자였다.
시뻘건 눈동자엔 동공이 세로로 쭉 찢어져 있었고, 몸통에 돋아난 나뭇가지들은 꼭 크툴루의 촉수처럼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었다.
세 번째 녀석 역시 심상치 않았다.
짧은 털이 온몸에 북슬북슬하게 난 거대 두꺼비였는데, 피부는 썩은 흙탕물 색깔이었고 보랏빛으로 변색된 혀를 내밀고 있었다.
‘꼭 두꺼비 좀비처럼 생겼군.’
그리고 마지막 오른쪽 끝에서 날아오는 녀석은 셀 수 없이 많은 촉수가 덩굴 뭉치처럼 원형으로 말려 있는 외관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촉수들 한가운데 거대한 눈동자 하나가 떡하니 박혀 있었다.
포켓몬스터 만화에 나오는 포켓몬 덩쿠리를 닮았다. 물론 덩쿠리가 훨씬 더 귀엽게 생겼지만 말이다.
저 멀리에서 날아오고 있는 외계인 4인방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순 있지만, 녀석들의 공략집은 아직 떠오르지 않았다.
‘공략집은 직접 가까이서 봐야 뜨는 것 같군.’
그리고 외계인 4인방 뒤를 쫓아 날아오는 미마스가 보였다.
미마스는 앞서 날아가는 외계인들에게 기세가 눌려 살짝 어두운 얼굴이었다.
마법사 계열 거인답게 녀석의 외관은 대규가 여태껏 봐 왔던 다른 기간테스들과 달랐다.
녀석은 같은 기간테스지만 뚱보였던 토온, 그리고 다른 근육질 일반 기간테스와 달리 몸집이 아주 호리호리하고 말랐다.
물론 그의 외형은 지난번 포르피리온 전투에서 본 적이 있어서 알고 있긴 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녀석이 걸치고 있는 옷이나 장비들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미마스의 목에는 해골들이 주렁주렁 달린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그리고 오른팔에는 칼이나 곤봉, 철퇴 같은 무기 대신 이상하게 생긴 지팡이가 들려 있었다.
꼭 동물의 뼈다귀로 만든 지팡이 같았는데, 위쪽에는 흉측하게 생긴 검은 돌이 달려 있었다.
해골 목걸이에 지팡이까지 들고 있으니 영락없는 흑마법 주술사의 느낌이었다.
헤르메스와 아테나 역시 자신의 눈을 이용해 외계인 4인방과 미마스를 보고 있었다.
“윽, 정말 끔찍하게 생긴 녀석들이군.”
헤르메스가 구역질 나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아테나, 내가 저 두꺼비 좀비와 불탄 나무를 맡을 테니 그대가 황색 두건과 촉수 덩굴 뭉치를 맡는 게 어떻겠는가?”
“알겠다.”
“그럼 대규, 미마스를 부탁하네.”
대규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그들은 적을 향해 날아갔다.
대규의 말 옵티뭄은 옆구리에 돋아난 커다란 날개를 퍼덕이며 빠르게 하늘을 가로질렀다.
헤르메스의 장화만큼은 아니지만, 꽤 빠른 스피드였다.
문제는 옵티뭄이 날개를 퍼덕일 때마다 대규의 몸이 엄청나게 흔들린다는 것.
‘땅에서 말을 탈 때와는 또 다르군.’
대규는 허벅지 사이에 힘을 줬다. 균형을 잃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하며 허리춤의 사슬검을 꺼내 들었다. 눈앞에 승마 실력이 올랐다는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승마 +15]
저 앞쪽에서 날아오는 미마스가 보였다.
빨리 공략집을 보고 녀석의 공격 패턴과 약점을 영상으로 익혀야 한다.
아테나에게 들어보니 저 녀석이 구사하는 마법 스킬은 아주 성가실 것 같았다. 따라서 영상을 숙지하지 않고 급하게 덤벼들었다간 난처한 상황이 발생할지도 몰랐다.
곧 미마스에 대한 공략집이 떠올랐다.
-차원의 틈 공략집-
몬스터 이름: 미마스(Mimas)
보상: 골드 등급 젬스톤 2개
특징: 거인 대장 기간테스 중 한 명인데, 특이하게 마법을 구사하는 마법사 계열 거인이다. 물리적 공격은 하지 않고 오로지 마법으로 공격한다. 특히 저주 계열의 흑마법에 용하다.
보유 스킬:
투명 무효화-적이 지닌 투명화 능력을 일정 시간 동안 무효화시킴. 마나 소모 50.
혼란의 빛-순간적으로 암흑의 기운이 담긴 섬광을 내뿜어 상대방을 혼란 상태에 빠지게 함. 마나 소모 300.
스킬 봉쇄-적이 시전한 스킬 중 하나를 전투 중 사용하지 못하게 봉쇄해 버림. 마나 소모 800.
다운그레이드-자신의 생명력을 절반 깎아 상대방의 모든 능력치를 77% 감소시켜 버리는 저주. 마나 소모 1,000.
죽음의 길동무-자신이 빈사 상태에 돌입하면 상대방 역시 빈사 상태로 만들어 버리는 저주. 마나 소모 2,500.
<미마스에 대한 공략(하급)을 습득했습니다.>
<미마스에 대한 당신의 공격력이 10% 상승합니다.>
<미마스로부터 아이템을 습득할 확률이 조금 높아집니다.>
<미마스의 약점을 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영상을 재생하시겠습니까? Yes/No>
‘뭔 보유스킬이 저렇게 많아.’
여태껏 봤던 거인들에 비해 스킬이 좌르륵 나열돼 있는 게 과연 마법사다웠다.
하지만 그 스킬들은 다 기분 나쁘고 음침한 것들이었다.
자신의 생명력을 깎아 상대방의 능력을 감소시키는 저주도 있고, 심지어 저 죽음의 길동무란 스킬은 본인이 죽게 될 경우 상대방까지 물고 늘어지겠다는 악질적인 물귀신 스킬이었다.
‘기분 나쁜 녀석이다.’
게다가 투명화를 무효로 하는 스킬까지 지니고 있었다.
‘그래도 투명화는 한다.’
녀석이 투명화를 눈치 채고 무효화하기 전에 공략집의 영상을 숙지하기로 했다.
나중에 무효화 된다고 해도 투명화를 아예 안 하는 것보단 낫다.
미마스는 저 멀리서 날아오던 대규가 갑자기 사라져 버리자 당황했다.
다행히 타고 있는 말 옵티뭄까지 투명해졌다.
‘다행이다. 내 몸만 투명화가 될까 봐 사실 걱정했는데…….’
대규는 그 상태에서 녀석의 공격 패턴과 약점을 파악했다.
녀석이 지니고 있는 보유 스킬은 하나같이 성가신 것들이었다.
공략집에서 글로 읽는 것 말고 실제 영상으로 보니 더욱 심각했다.
특히 저 다운그레이드라는 스킬은 대규가 라의 목걸이로 불러낼 수 있는 마신의 스킬 중 파라오의 저주와 비슷한 것 같았지만, 그것과 다르게 단순히 스탯을 감소시키는 게 끝이 아니었다.
저 저주에 걸리면 스탯 감소뿐만 아니라 신체가 미라처럼 말라 들어가기 시작한다.
죽음의 길동무 역시 녀석이 빈사 상태에 들어서면 상대방의 생명력이 단번에 확 줄어드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그 저주에 걸린 상대방은 꼭 이상한 전염병에 걸린 것처럼 온몸이 고름투성이로 변하며 빈사 상태에 돌입한다.
게다가 마나를 2500이나 소모하는 스킬이어서 대규가 지닌 스킬 복제술 ‘아시믈로’로 복제할 수도 없었다. 현재 대규가 지니고 있는 마나한계량은 2,320이었으니 말이다.
대신 녀석에게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마법사다보니 마법 스킬을 쓸 때 지팡이를 쳐들고 주문을 외우며 준비를 하는데, 그 틈엔 방어력이 몹시 취약했다.
주문을 외우지 않는 평소엔 저 지팡이의 까만 돌이 녀석에게 기본적으로 실드를 쳐 줘서 공격하기가 쉽지 않은데, 마법 스킬을 쓸 땐 돌의 실드가 순간적으로 약해졌다.
‘녀석이 마법 스킬을 쓸 때를 노려 공격해야 해. 그리고 스킬 중에서 다운그레이드와 죽음의 길동무는 무조건 조심해야 한다.’
스킬 봉쇄에 걸린다 해도 성가실 뿐이지 위 두 스킬만큼 치명적이진 않다. 레툼익투스를 못 쓰게 된다 해도 다른 공격기가 많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위의 저 두 스킬은 달랐다.
잘못하면 정말 죽을지도 몰랐다.
그럼 이제 싸울 때다.
공략집이 서서히 발동되기 시작했다. 가장 적합한 전략을 준비하고 있다는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된다.
그때였다.
“이제 작당은 다 한 것이냐? 어디로 사라졌나 했는데 투명화를 썼군!”
미마스는 대규 앞에서 기분 나쁘게 웃으며 소리쳤다.
그의 눈빛이 붉은빛으로 빛났고 지팡이의 까만 돌이 반짝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