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
196화. 전장의 새 국면 (2)
의문은 그뿐이 아니었다.
대규는 항상 카르케르의 괴물들을 볼 때마다 이상한 위화감이 들었다.
‘대체 그토록 강력한 외계인들을 거인들이 애초에 어떻게 자신들의 지하 감옥에 가둘 수 있었던 걸까?’
항상 외계인 보스들과 싸울 때마다 느꼈던 것이지만, 외계인 괴물의 역량은 거인 대장 기간테스들과 동등하거나 그들을 능가하면 능가했지 절대 꿇리지는 않았다.
그런 녀석들을 감옥에 집어넣으려면 분명 녀석들보다 힘에서 우위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을 컨트롤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대체 외계인과 거인의 관계는 무슨 관계인 거지? 그리고 그 외계인들은 어디에서 온 존재인 걸까?’
어쩌면 그 대답을 헤르메스와 아테나가 지금 해 줄 수 있을지도 몰랐다.
대규는 궁금한 마음을 안고 그들에게 물었다.
“그런데 대체 그 외계인들은 어쩌다가 거인들의 감옥 카르케르에 갇히게 된 것이지?”
그러자 헤르메스가 대규를 보며 대답했다.
“아, 자네는 이제 막 신이 돼서 잘 모르겠군. 옛날에 있었던 최초의 전쟁과 다른 일들을 말이야.”
“최초의 전쟁이라고?”
“그래, 아주 옛날에 있었던 일이지. 나랑 아테나가 태어나기도 전에… 아니, 신들의 아버지 제우스 님께서도 태어나시기 전의 일이다.”
“제우스가 태어나기 전의 일? 그거라면 나도 대충 알고 있어.”
대규는 현실 세계에서 대략적인 신화 지식을 쌓아서 그때 일을 대강 알고 있었다.
태초의 세상에는 혼돈, 즉 카오스(Chaos)만이 존재했다. 얼마 후 카오스 속에서 하늘의 신 우라노스(Uranus)와 대지의 여신 가이아(Gaia)가 생겨났고, 그들은 서로 결합해 최초의 거인족 자식을 낳기 시작했다.
대규가 이 이야기를 헤르메스에게 하자 그는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대체 자네는 인간 출신이면서 어떻게 그 모든 걸 알고 있는 거지?”
“인간 세상에는 이 모든 걸 기록한 책들이 있네.”
헤르메스는 그 말을 듣고 혀를 내두르며 감탄한 듯 말했다.
“역시 인간들은 대단한 종족이야. 대규, 자네 말이 맞아. 그때 우라노스와 가이아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들은 바로 지금 우리가 전투를 벌이는 거인족의 조상들이다. 그리고 그 거인족 조상 중엔 제우스 님의 아버지 크로노스도 있었다.”
헤르메스는 말을 이었다.
“자식을 낳고 나서 우라노스는 점점 더 난폭해졌지. 그래서 자신이 낳은 자식들을 지하에 가두고 핍박하기 시작했다. 이에 어머니 가이아는 노해서 자신의 아들 크로노스와 공모해 우라노스를 무찌르기로 결심했다.”
여기까진 대규도 신화 책을 읽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우라노스는 아들 크로노스에게 패해 그 대가로 남근을 잘리고 크로노스는 그의 권력을 물려받아 신들 세계의 왕이 된다.
그런데 헤르메스가 처음 듣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때 그 전투에서 우라노스는 이상한 외계인 종족을 끌어들였어.”
헤르메스의 설명은 이러했다.
우라노스는 하늘의 신으로 모든 세상의 허공을 자유롭게 떠돌 수 있었다.
심지어 높디높은 하늘을 넘어서서 우주의 공간도 떠돌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하늘이 높아지면 우주 공간이 시작되지. 하늘과 우주는 맞닿아 있거든.”
헤르메스가 말했다.
어쨌든 우라노스는 우주 공간의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 현재 카르케르에 갇혀 있는 외계인 종족을 불러왔고, 그들을 전투에 이용했다고 했다.
“그 외계인 종족의 자세한 정체는 우리도 잘 모르네. 우리도 그들에 관한 이야기만 전해 듣다가 제1차 기간토마키아 전투에서 처음으로 녀석들의 모습을 봤지. 그때만 해도 외계인들이 지금만큼 자주 전투에 출몰하진 않았지만…….”
여하튼 우라노스는 그 이상한 외계인 종족까지 전투에 끌어들였지만 결국 크로노스에게 패했다고 했다.
“패해서 ‘그 결계’에 영원히 봉인됐지. 신들은 불로불사의 몸이니까 죽지 않았고.”
‘그 결계?’
헤르메스가 말한 그 단어를 듣자 대규의 눈동자가 커졌다.
공략집으로 신들을 볼 때마다 마지막에 적혀 있던 메시지가 떠올랐다.
신들은 불로불사의 몸이라서 죽일 수 없고, 대신 심연의 결계에 가둘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아무래도 헤르메스가 말한 결계는 심연의 결계를 말하는 것 같았다.
대규는 헤르메스를 쳐다보며 물었다.
“헤르메스, 심연의 결계가 뭐지?”
그 단어를 듣자 헤르메스와 아테나의 표정이 싹 굳었다.
헤르메스는 몸을 떨며 말했다.
“제발 그 결계의 이름을 부르지 말게. 듣기만 해도 몸서리가 쳐져.”
아테나 역시 창백한 표정으로 대규를 바라봤다.
그들은 결계에 대해 듣기만 해도 몸서리가 처진다는 반응이었다.
헤르메스가 대규에게 말했다.
“우리도 그 결계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몰라. 하지만 신이 전투에서 패하고 생명력이 다하면 들어가는 곳이다. 그리고 다신 바깥세상으로 나올 수도 없다. 심지어 제우스 신조차도 말일세. 한마디로 신들이 갈 수 있는 지옥이랄까…….”
결과적으로 우라노스는 패해 심연의 결계에 갇혔고, 크로노스는 우라노스가 데려온 외계인 종족을 거인족의 감옥 카르케르에 처넣었다. 그리고 감옥을 자유롭게 들락날락하며 외계인들을 수하에 두고 왕좌를 지켜 나갔다.
그리고 그는 누나인 여성 거인 레아와 결합해 많은 자식을 낳았다.
그 자식들이 바로 지금 현재 판테온을 주름잡고 있는 판테온 신들이었다.
하지만 크로노스는 자식 중 누군가가 자신을 해치지 않을까 항상 두려웠다.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그가 자신의 아버지 우라노스에게 했던 짓이 항상 떠오른 것이다.
그래서 크노로스는 자식이 태어나는 족족 통째로 잡아먹었다.
하지만 어머니 레아는 꾀를 써서 마지막 아이 제우스를 낳았을 때 크로노스를 속여 아기 제우스 대신 커다란 바위를 삼키게 했고 제우스를 몰래 외딴섬에 가서 키웠다.
이후 성장한 제우스가 크로노스를 공격했고 또다시 2차 부자(父子) 전쟁이 벌어졌다.
그것이 최초의 전쟁, 티타노마키아(Titanomachia)였지. 제1차 기간토마키아가 시작되기도 전에, 그리고 나와 아테나 같은 자식 세대 신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뤄진 판테온 최초의 전투일세. 기록의 신전에도 그 전쟁에 관한 모든 게 기록돼 있지.”
“그랬군.”
“하지만 그때만 해도 외계인의 종류는 지금처럼 많지 않았어. 그래서 제우스 신과 다른 아버지 신들이 고생은 해도 쉽게 물리쳤지. 하지만 크로노스는 결계에 넣지 못했어. 생명력이 다 소진되기 직전 비겁하게 도망쳐 버렸지.”
“그럼 그 이후 크로노스는 어떻게 됐나?”
대규가 묻자 헤르메스는 난처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으음… 솔직히 잘 몰라. 그는 완벽하게 자취를 감춰 버렸거든. 우주 공간을 정처 없이 떠돌아다닌다는 소문을 듣긴 했네만. 어쨌든 그 최초의 전쟁 이후 판테온의 신들이 지금처럼 판테온을 지배하게 된 걸세.”
“그런데 제우스를 비롯한 판테온의 신들은 거인의 감옥 카르케르에 접근하지 못하는 건가?”
대규가 묻자 헤르메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네. 그곳은 거인족만이 들어갈 수 있는 감옥이야. 판테온의 신은 접근할 수가 없어.”
그 말에 대규의 마음속에서 진한 의구심이 피어올랐다.
‘그런데 대체 인간인 나는 어떻게 들어갈 수 있었던 거지?’
분명 공략집의 수련 장소 중 카르케르가 떠올라 있었고, 대규는 분명 그곳에 들어갈 수 있었다.
가상현실로 들어가거나 한 것이 아니었다.
‘이상하다. 내가 거인이 아니더라도 공략집은 그곳에 들어갈 수 있게 해 주는 능력을 지닌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대규는 일단 그것이 공략집의 위대한 능력 때문일 거라고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문제는…….”
헤르메스가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전까지는 외계인 종족들이 이렇게까지 자주 출몰한 적이 없었다는 거야. 심지어 자네가 봤다는, 켄타로우스 숲의 세계수 꼭대기에 나타난 외계인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이건 심각한 상황인 걸세. 누군가 강력한 존재가 판테온에 녀석들을 소환했다는 거니까.”
그러자 여태까지 가만히 있던 아테나가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어쩌면…….”
“어쩌면?”
헤르메스가 그녀의 말을 따라 하며 반문하자 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크로노스가 다시 나타난 것일지도…….”
그러자 헤르메스가 놀란 얼굴로 외쳤다.
“말도 안 돼, 아테나! 크로노스는 그 영겁의 시간이 흐를 동안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어. 심지어 몇천 년 동안 우리도 본 적이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헤르메스의 얼굴에도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대규는 그들을 보며 물었다.
“만약 크로노스가 다시 나타나면 어떻게 되는 건가?”
그러자 헤르메스가 두려운 기색을 보이며 말했다.
“…그건 나로서도 잘 상상이 가지 않아. 외계인 종족이 옛날보다 더 불어난 걸 보면 어쩌면 제우스님이 싸워도 고전을 면치 못할지도 몰라. 이 기간토마키아 전쟁은 사상 최악의 전쟁이 돼 버릴지도 모르지.”
‘그토록 크로노스의 존재가 위협적이란 건가?’
대규는 두려운 얼굴을 하고 있는 헤르메스를 보며 말했다.
“알겠어.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자네의 주둔지를 향해 다가오는 적들을 해치우는 일 아닌가. 이제 아테나와 나에게 적의 전력을 좀 알려 주게.”
좀 전에 헤르메스가 말한 것처럼 적군의 보스는 한 명 남은 기간테스 미마스와 외계인 괴물 종족 대장 네 마리였다.
“일단 대규, 자네는 신이 된 지 얼마 안 됐으니… 상대적으로 저 중에서 약한 기간테스 미마스를 상대해 주게. 자네는 세미데우스 상태에서도 기간테스 토온과 히폴리토스를 물리쳤으니 미마스라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걸세.”
“알겠어.”
“아테나와 나는 저 외계인 괴물 대장들을 두 마리씩 맡아서 처리하겠어. 그리고 내 부대의 영웅들이 거인족 조무래기들과 외계인 졸개들을 상대할 거야. 솔직히 말하면 우리 부대의 병력은 녀석들에게 못 미치고 있어. 하지만 우리 셋이 잘 싸워서 적군의 대장급 녀석들을 쓰러뜨린다면 졸개 자식들은 전의를 잃고 항복할 걸세.”
그건 헤르메스의 말이 맞다.
아무리 이쪽 병력이 밀린다 해도 우두머리의 목을 치면 전세는 역전될 가능성이 크다.
본래 우두머리가 당하면 그 밑의 졸개들은 사기를 잃고 급격하게 힘이 시들어 버린다.
헤르메스는 다시 한 번 이렇게 강조했다.
“우리 셋이 잘해야 해. 최대한 빨리 미마스와 외계인 대장들을 해치워야 해.”
아테나와 대규는 고개를 끄덕거린 뒤 지휘 사령부 천막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런데 헤르메스가 대규의 어깨를 바라본 뒤 크게 외쳤다.
“대규, 잠깐만!”
“무슨 일이지?”
좀 전까지 심각했던 것과 달리 이제 그의 얼굴엔 묘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아까까진 전투 이야기 때문에 눈치채지 못했는데… 자네 왼쪽 어깨에 달려 있는 그것! 아테나의 아이기스 방패 아닌가?”
“그래, 아테나가 줬어.”
이렇게 대답하고 나서 대규는 아차 싶었다.
아테나가 얼굴이 붉어진 상태로 대규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왜 쓸데없는 말을 하는 거냐!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헤르메스는 재밌다는 듯 실실 웃으며 아테나를 보며 말했다.
“정말이잖아? 아테나의 왼쪽 어깨가 비어 있군. 설마 둘이 사이좋게 방패를 나눠 가진 건가? 잠깐만… 아테나! 설마 지난번에 선물을 줄 사람이 있다고 한 게 대규였는가?”
아테나는 얼굴이 붉어진 채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헤르메스는 더더욱 호들갑을 떨며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럴 수가! 나를 비롯한 다른 판테온의 신들은 자네가 남신에게 선물을 준다고 해서 평소 자네가 좋아하고 존경하던 제우스 신에게 주는 선물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아하, 그래서 아프로디테가 그때 그대를 보며 그렇게 음흉한 미소를 지었던 것이로군. 이거 정말 흥미로운 일인…….”
그 순간 아테나가 헤르메스의 말꼬리를 확 자르며 소리쳤다.
“만약 판테온의 신에게 소문을 낸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자네 부대를 전멸시키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