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
191화. 신이 되는 길 (3)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단 한 번 맞았을 뿐인데 맷집 능력이 300을 돌파했다고?’
본래 대규가 지니고 있는 근성 스킬은 특정 행위를 반복하면 그 행위에 대한 숙련도가 조금씩 올라가는 것이다.
처음에는 올리기 쉽지만, 일정 수준을 벗어나면 점점 올리기 힘들어졌다. 그야말로 스킬명 그대로 근성을 발휘해 미친 듯이 반복해야 겨우 1씩 오르곤 했다.
‘하지만 한 번 맞았다고 맷집이 이렇게 쫙 올라?’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혹시 아스클레피오스의 신체 강화 수술의 영향인가?’
분명 아스클레피오스는 신체 강화 수술에 대해 이렇게 말했었다. 이 수술은 신경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경험과 감각을 극대화시켜 그에 따른 경험치를 최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이다.
맷집이란 능력은 외부에서 자신에게 가하는 물리적 충격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물리적 충격 역시 넓게 바라보면 신체의 신경이 받아들이는 경험 혹은 감각에 속한다.
사실 애초에 육체를 움직여서 하는 모든 행위가 신경이 받아들이는 감각에 속할 것이다.
그 말은 신체 강화 수술을 받은 육체에 근성 스킬을 접목하면 모든 스킬을 비약적으로 빠르게 숙련할 수 있다는 것!
‘그렇다면 맷집뿐만 아니라 권법을 빠르게 성장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아무래도 최대한 주먹을 많이 휘두르라고 했던 공략집의 메시지창은 이걸 뜻하는 것 같았다.
주먹을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주먹질 능력, 즉 권법을 비약적으로 빠르게 익힐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이건 엄청난 기회다.
그리고 그토록 빨리 권법을 익힐 수 있다면 이 전투 역시 해볼 만했다.
관건은 전투의 제한 시간 동안 얼마나 빨리 근성 스킬을 이용해 권법 능력을 발전시키느냐다.
‘시간이 없다. 빨리 권법을 익히자.’
대규는 다시 한 번 점프해 아틀라스의 종아리에 달라붙었다. 아직도 그에게 맞은 명치 부분이 욱신거렸다.
녀석의 몸에 달라붙은 뒤 재빨리 허벅지를 지나 옆구리 부근까지 달려 올라갔다.
타타탓!
눈앞에 녀석의 비어 있는 옆구리 부분이 보였다.
대규는 주먹을 들어 있는 힘껏 내질렀다.
빠악!
나름 근력을 최대한 실어서 날린 주먹이 녀석의 옆구리에 정확히 꽂혔다.
하지만 곧이어 아틀라스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하하하! 간지럽군. 모기가 물었나?”
빌어먹을.
명치에 쓰라린 고통을 느꼈던 자신과 달리 녀석은 간지럽다는 듯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하지만 대규는 속으로 이를 갈며 생각했다.
‘마음껏 웃어라. 웃을 수 있는 것도 지금뿐일 것이다.’
마침내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고, 대규의 입가에 씩 미소가 떠올랐다.
[새로운 능력 ‘권법’을 익혔습니다.]
[권법 +30]
주먹을 한 번 휘두른 것만으로 30이나 상승했다.
‘좋았어.’
힘이 솟은 대규는 녀석의 옆구리를 향해 미친 듯이 주먹을 날려 댔다.
빠악! 빠악! 빠악!
녀석을 때리면 때릴수록 권법 능력은 빠르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30.
+60.
+90.
권법 능력이 100을 넘었지만, 아직도 아틀라스에게는 기별도 안 가는 듯했다.
그 증거로 녀석은 대규의 주먹질을 막지도 않았다. 오히려 즐기면서 가만히 놔두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대규의 주먹은 달랐다.
어느새 시뻘겋게 부어올랐고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틀라스의 몸은 철벽처럼 단단했다. 보상으로 주어진다는 녀석의 뼈는 정말로 단단했다. 신의 육체를 만드는 재료로 쓰이기에 충분했다.
아무리 주먹으로 난타해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끈질긴 녀석이군…….”
아틀라스는 이렇게 말하며 손바닥으로 자신의 옆구리에 달라붙어 있는 대규의 등을 세게 후려쳤다.
하지만 대규는 피하지 않았다.
저 손바닥에 맞는 한이 있어도 주먹질을 계속해서 권법의 능력을 올리는 게 급선무였다.
퍼억!
“으윽…….”
척추가 부서지는 듯한 고통이 온몸을 휘감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맷집이 또 한 번 비약적으로 상승했다는 것이다.
대규는 이를 악물고 버텨 내며 계속 주먹을 휘둘렀다.
물론 권법 능력은 상승했지만, 그와 별개로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김대규, 정신 차려. 주먹질에 집중하는 거야.’
대규는 다시 한 번 이를 악물고 주먹을 쥐었다.
자신을 방해하는 온갖 잡념을 깡그리 없애고 순수하게 주먹을 날리는 것에 대해서만 생각하기로 했다.
온정신을 주먹질에 집중한다.
그때였다.
오른쪽 주먹이 잠깐 동안 푸르게 빛나 보였던 건 대규만의 착각이었을까?
대규는 다시 한 번 온 힘을 실어 아틀라스의 옆구리를 있는 힘껏 때렸다.
빠아악!
주먹에서 피가 철철 흘러나왔다. 하지만 대규는 더 이상 고통을 느끼지 않았다.
녀석에게 맞은 탓에 비약적으로 상승한 맷집 덕분일 수도 있겠지만, 단순히 그것과는 달랐다.
고통을 느낄 틈도 없이 주먹을 날리는 것에 온몸의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근육과 관절의 움직임, 주먹을 내지르며 가르는 공기의 저항력과 운동에너지…….
대규는 이 모든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를 방해하고 있던 모든 잡념이 사라져 버렸다.
잡념뿐만이 아니다. 그를 지배하고 있던 의식이나 자아(自我)도 모두 사라져 버렸다. 이 시련을 해치고 신의 육체를 꼭 얻고야 말겠다는 그의 욕망도 사라져 버렸다.
대규는 오로지 순수하게 주먹만 휘두를 뿐이었다.
빠아악!
이 광활한 초원엔 자신과 자신이 휘두르는 주먹 말고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심지어 쓰러뜨려야 하는 거인 아틀라스의 존재도 그의 머릿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빠아악!
그 순간 놀라운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온 신경이 초집중 상태로 각성해 플로우(Flow)의 경지가 개방됩니다.]
하지만 대규는 메시지창의 글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 촉각, 후각 모든 감각 신경은 주먹을 내지르는 데 집중돼 있었다.
빠아악!
+240.
+340.
+440.
플로우 경지가 개방되자 아까보다 더욱 빨리 권법의 능력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대규는 몸 깊은 곳에서 희열이 번지기 시작했다.
주먹은 이미 만신창이가 됐고 몸 역시 아틀라스에게 맞은 탓에 엉망이었지만 고통보다는 이상하게 희열과 쾌락의 감정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마라토너들이 한계를 돌파해서 계속 달리게 되면 느낀다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가 이런 기분인 걸까?’
대규는 차오르는 희열을 오롯이 느끼면서 주먹을 다시 한 번 날렸다.
빠아악-!
그 순간 아틀라스의 표정이 변했다. 실실 웃던 그의 입가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으윽…….”
대규의 권법 능력이 정확히 1,000을 넘기 시작했을 때였다.
‘됐다. 이제 녀석과 호각으로 싸울 수 있게 됐어.’
대규는 정신을 차린 뒤 멀찌감치 녀석과 떨어졌다.
온몸이 쿡쿡 쑤셨고, 주먹은 처절할 정도로 피범벅에 만신창이가 됐다. 심지어 뼈마저도 부러진 것 같았다.
생명력을 보니 거의 10%도 남지 않았다.
‘위험할 뻔했군.’
아틀라스는 방금 대규에게 맞은 옆구리를 부여잡은 채 외쳤다.
“크윽… 건방진 자식! 대체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모르겠다만……. 하지만 네 녀석 몸 꼴을 보아하니 금방 죽어 버리겠군! 하하하!”
“웃기지 마라, 멍청한 거인 자식아.”
대규는 씩 웃으며 보관함에서 준비해 온 엘릭서 10병 중 1병을 꺼내 마셨다.
꿀꺽 꿀꺽.
진분홍빛의 엘릭서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게 느껴졌다.
그 순간 고통이 눈 녹듯 사라졌고, 엉망으로 망가진 주먹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온몸에 힘이 차올랐고, 상쾌한 기분이 됐다. 생명력과 마나 역시 가득 찼다.
대규는 빈 엘릭서 병을 던져버린 뒤 아틀라스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제 녀석과 진짜 전투를 벌일 때다.
“흐아압!”
대규는 기합을 외치며 녀석에게 달려들었다. 앞쪽에서 녀석의 발이 허공을 가르며 맹렬하게 날아왔다. 녀석의 발은 정확히 대규의 머리를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민첩하게 녀석의 발을 딛고 점프!
탓!
점프 한 번에 녀석의 배꼽 아래까지 올라갔다.
배꼽 아랫부분에 위치한 녀석의 단전이 보였다. 그곳은 아틀라스의 단단한 갈비뼈가 보호하지 못하는 부분으로 녀석의 약점 중 한 곳이었다.
대규는 온 신경을 주먹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잡념과 의식이 모조리 사라져 버렸고, 또다시 이 세상에 주먹과 자신만이 남게 됐다.
주먹이 다시 한 번 푸르스름하게 빛나면서 아틀라스의 단전을 향해 날아갔다.
빠아아악!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졌고, 대규의 주먹은 녀석의 뱃살 안쪽으로 가차 없이 파고들었다.
배 안쪽에 위치한 단단한 무언가를 때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권법 +1,340]
“크허헉!”
아틀라스는 커다란 신음을 내뱉으며 주춤거렸다.
하지만 대규는 틈을 놓치지 않고 이번엔 녀석의 뱃살을 딛고 다시 한 번 껑충 점프했다.
그리고 배꼽 위쪽에 있는 녀석의 명치를 있는 힘껏 가격했다.
명치 역시 갈비뼈가 보호해 주지 못하는 녀석의 치명적인 약점 포인트였다.
빠아악!
상쾌한 소리 좋고.
주먹이 아까보다 더욱 세게 들어갔다. 그도 그럴 것이 방금 전 단전 공격으로 권법 능력이 또 한 번 상승했으니까 말이다.
명치까지 얻어맞은 아틀라스의 동공이 확장됐다.
“끄으으…….”
녀석은 결국 뒤로 고꾸라져 넘어져 버렸다.
“마, 말도 안 돼…….”
“돼!”
대규는 다시 한번 주먹을 허공으로 쳐들며 외쳤다.
“이게 마지막이다!”
빠아악!
다시 한 번 주먹이 명치를 노리고 들어갔고 아틀라스는 신음을 내며 쓰러져 버렸다.
대규가 아틀라스를 쓰러뜨리자마자 줄어들던 제단의 시간은 멈춰 버렸다.
제한 시간을 약 5분 정도 남기고 아틀라스를 쓰러뜨렸다.
아틀라스의 명치 부근에는 보랏빛의 거대한 멍이 번져 있었다. 멍의 크기는 대규의 주먹보다 10배는 더 컸다.
‘내장이 파열돼서 내출혈이라도 일어난 건가?’
그때 메시지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맨몸으로 아틀라스를 쓰러뜨렸습니다. 첫 번째 시련을 무사히 통과했습니다.]
[보상으로 아틀라스의 뼈가 주어집니다. 가져갈 뼈의 부위를 선택하십시오.]
아틀라스의 뼈를 얻게 됐다.
‘그런데 가져갈 부위를 선택하라니. 혹시 뼈의 부위마다 단단함이나 위력이 다른 걸까?’
‘그렇다면 어딜 골라야 하지?’
하지만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게 공략집 아니겠는가.
대규는 공략집을 발동했다.
그러자 공략집의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아틀라스의 뼈는 총 206개로 이뤄져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단단한 곳은 갈비뼈입니다. 아틀라스의 갈비뼈는 모든 뼈 중에서도 매우 탁월한 재생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줄기세포처럼 골막 조직이 있어 스스로 뼈를 만들어 내고 영양을 공급합니다.>
‘재생 능력에 스스로 뼈까지 만들어 낸다니. 거의 초인적인 능력인데?’
이런 뼈로 신의 육체를 만드니 신의 육체가 불로불사가 될 만도 했다.
대규는 망설임 없이 아틀라스의 갈비뼈를 선택했다.
[갈비뼈를 선택하셨습니다. 곧 뼈가 떠오릅니다.]
메시지창이 사라지자마자 쓰러진 아틀라스의 상체에서 갈비뼈 한 대가 톡 튀어나와 떠올랐다.
녀석의 뼈는 하얗지 않고 투명했다. 꼭 투명한 유리로 만든 장식품처럼 생겼다.
‘특이하군.’
대규는 녀석의 갈비뼈를 보관함에 넣어 챙겼다.
“후우…….”
이렇게 첫 번째 시련을 통과한 것인가.
대규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생각했다.
맨몸으로 전투한다는 건 생각보다 까다로운 일이었다. 그나마 아스클레피오스에게 신체 강화 수술을 받아 권법을 비약적으로 빠르게 성장시킬 수 있었으니 망정이지, 만약 그 수술을 받지 않고 왔다면 얼마나 고생했을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어쩌면 실패하고 망자가 됐을지도 모른다. 아니, 애초에 한계 레벨까지 도달하지 못해서 시련에 도전하는 것도 힘들었겠구나.’
그럼 이제 두 번째 시련에 도전할 차례였다.
하지만 대규의 마음속에선 이상한 의문점이 하나 떠올랐다.
그는 자신의 오른 주먹을 내려다보았다.
분명 전투를 하며 아틀라스에게 휘둘렀을 때 주먹이 푸르스름하게 빛났던 것이 기억났다.
하지만 지금은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아와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