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
190화. 신이 되는 길 (2)
어느새 대규의 몸에는 신들이 입는 것 같은 얇은 토가만이 걸쳐져 있을 뿐이었다.
‘혹시 장비뿐만이 아니라 아이템도 사용하지 못하는 건가?’
그렇다면 엘릭서를 10개나 공들여 만들어 온 보람이 없다.
대규는 재빨리 보관함을 확인해 봤다. 다행히 무기, 혹은 물리 방어력과 마법 저항력을 올려 주는 장비 아이템이 아닌 것들은 보관함에 보관돼 있었다.
보관함엔 영약 엘릭서와 생명력 포션, 그리고 젬스톤이 전부였다.
‘기껏 만들었는데 뺏기지 않아 다행이군. 이 정도면 되겠지?’
대규는 보관함을 확인한 후 제우스에게 물었다.
“그런데 신의 육체를 구성하는 재료들이 대체 무엇입니까?”
그러자 제우스는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내가 알려 줄 수 없다. 그대가 시련을 완수하면 알게 될 것이다. 그럼 행운을 빈다.”
말을 마친 그는 팔을 들어 허공에 손뼉을 쳤다.
짝!
청명한 소리가 신전 안에 울려 퍼졌고 대규의 몸은 다시 한번 암흑 속에 휩싸였다.
대규가 도착한 곳은 광활한 초원이었다.
‘이곳은 어디지?’
사방을 둘러봐도 수풀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초원에는 그 어떤 생물체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초원 위의 하늘은 시릴 정도로 푸르렀다.
‘이곳이 첫 번째 시련을 치르는 장소인가?’
평화롭고 목가적인 초원이었지만 대규는 살짝 긴장됐다. 어디서 어떤 것이 갑자기 튀어나올지 몰랐기 때문이다.
‘일단 지도 창부터 켜자.’
무기나 장비는 없지만, 다행히 공략집은 무사하다. 공략집은 장비에 속하는 물건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신들도 이 공략집의 존재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지도 창을 켜자 초원 저 끝 쪽에서 붉은 점 하나가 반짝였다.
붉은 점이 있다는 건 해치워야 하는 적이 존재한다는 얘기.
‘저 녀석을 해치우는 게 첫 번째 시련인가 보군.’
대규는 붉은 점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헤르메스의 장화가 없어져서 몹시 느렸다. 게다가 맨발로 초원 땅을 달리려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동안 아이템 덕을 많이 보고 있었구나.’
대규는 한참 동안 초원을 달렸다. 하지만 숨이 차오르거나 힘들지는 않았다. 이미 대규는 반신반인의 육체를 지녔기 때문이다.
얼마나 달렸을까.
저 멀리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한다.
‘저게 뭐야!’
그곳엔 거대한 거인 한 명이 서 있었다.
그런데 그가 취하고 있는 자세는 희한했다. 그는 벌을 서는 것처럼 두 팔을 위로 든 채였다.
‘왜 저러고 있는 거지?’
거인을 바라본 대규의 눈동자가 곧 커졌다.
거인이 뻗은 두 손을 경계로 파란 하늘이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설마 저 녀석이 이 하늘을 통째로 이고 있단 말이야?’
그때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신의 육체를 얻기 위한 첫 번째 시련이 시작됐습니다.]
[하늘을 떠받들고 있는 거인 아틀라스를 맨몸으로 해치우십시오.]
[보상: 아틀라스의 뼈]
아무래도 보상에 적힌 아틀라스의 뼈는 제우스가 말했던, 신의 육체를 구성하는 재료 중 하나인 것 같았다.
‘그런데 맨몸으로 싸우라고?’
난감했다.
대규는 여태껏 항상 무기를 가지고 전투를 해 왔다. 심지어 안내인 여자를 따라 처음 차원의 틈으로 들어왔을 때부터 말이다. 기초적인 검을 얻기 전에는 식당 탕꼬에서 쓰던 웍과 중식도를 들고 전투를 했었다.
물론 오랜 전투 경험으로 대충 권법의 기본 정도는 할 줄 알았다. 하지만 검술에 비하면 부끄러울 정도로 미숙한 실력이었다.
그런 실력으로 저 거인을 쓰러뜨려야 한다니. 순간적으로 눈앞이 막막해졌다.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히는군. 이럴 줄 알았으면 권법이라도 익혀서 올걸!’
하지만 후회해 봐도 늦었다. 시련은 이미 시작됐다.
한 가지 희망적인 것은 권법 자체는 약해도 적의 공격을 피하는 민첩성이나 공격의 파워를 좌우하는 근력은 수준급이란 사실이다.
‘이럴 게 아니라, 스탯 포인트를 지금 당장 사용해서 스탯을 전부 올려 두는 게 좋겠어.’
스탯은 장비가 아니라 대규가 지니고 있는 능력 그 자체였다.
어차피 현재 자신은 세미데우스 한계 레벨에 다다른 상태. 더 이상 스탯이나 레벨이 올라갈 일은 없었다.
그러니 차라리 지금 그간 쌓아둔 사용 가능한 스탯 포인트를 모두 써 버리는 게 이득이었다.
‘아껴 뒀다가 신의 육체를 얻게 되면 다시 레벨 1로 돌아가 초기화될지도 모르잖아?’
아꼈다가 똥이 되는 꼴을 보느니 차라리 지금 사용한다.
대규는 상태창을 불러와 사용 가능한 스탯 포인트를 확인했다.
현재 사용 가능한 포인트는 86.
대규는 그걸로 근력, 민첩, 지능을 골고루 올리기로 했다. 이번 전투에서 어떤 능력이 더 중요하게 다뤄질지는 아직 알지 못했다. 그러니까 모든 걸 골고루 올리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그럼 세 스탯을 각각 28씩 올릴 수 있고, 나머지 포인트는 2가 남는다.
‘맨몸으로 싸워야 한다니까 근력이 높은 게 낫겠지?’
나머지 2는 근력에 투자하기로 했다.
[스탯 포인트를 사용하시겠습니까? Yes/No]
‘사용한다.’
[스탯 포인트로 올릴 능력치와 그 수치를 선택해 주십시오.]
‘근력 30, 민첩 28, 지능 28, 로 분배할 거다.’
그렇게 생각하자 곧 메시지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86의 스탯 포인트를 근력에 30, 민첩에 28, 지능에 28로 배분해 상승시켰습니다. 남은 스탯 포인트는 0입니다.]
[상태창을 확인해 주십시오.]
대규는 상태창을 확인해 봤다. 확실히 스탯이 올라가 있었다.
김대규(세미데우스)(징표 모두 획득)
Lv. 50(100.00%)(Max)
생명력 5,540/5,540
마나 1,320/1,320
근력 226
민첩 212
지능 212
운 10(+5)
권위 28(+3)
사용 가능한 스탯 포인트: 0
이제 모든 스탯이 200을 넘었다.
이 정도라면 저 거인 녀석과 맨몸으로 싸워도 해볼 만하지 않을까
어쨌든 이제 자신이 할 수 있는 준비는 모두 마친 상태였다. 대규는 하늘을 이고 있는 거인 아틀라스를 향해 다가갔다.
그러자 공략집이 떴다.
-차원의 틈 공략집-
몬스터 이름: 아틀라스(Atlas)
보상: 아틀라스의 뼈
특징: 거인족이었지만 1차 기간토마키아때 패해 이곳에서 영원히 하늘을 떠받드는 형벌을 받게 됐다. 무기는 사용하지 않고 별다른 스킬도 없지만 몇천 년 동안 무거운 하늘을 이고 있을 정도로 온몸의 근력과 힘이 강하다. 그가 지닌 뼈는 몹시 단단하고 그 어떤 물리적 충격에도 부서지지 않을 정도로 굳건하다.
<아틀라스에 대한 공략(하급)을 습득했습니다.>
<아틀라스에 대한 당신의 공격력이 10% 상승합니다.>
<아틀라스로부터 아이템을 습득할 확률이 조금 높아집니다.>
<아틀라스의 약점을 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영상을 재생하시겠습니까? Yes/No>
저런 뼈로 육체를 얻게 된다면 엄청나겠군.
갑옷을 입지 않아도 그 자체만으로 뼈가 갑옷 역할을 해 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난 저런 단단한 뼈를 지닌 녀석을 주먹으로 싸워 쓰러뜨려야 한다는 거잖아?’
만만치 않은 시련이 될 것 같았다.
가까이서 보니 아틀라스가 하늘을 이고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물론 그의 표정이 썩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힘들어서 오만상을 쓰고 있었고 그의 얼굴은 땀범벅이었다.
아틀라스는 마침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대규를 발견하고는 입을 열었다.
“세미데우스… 아니, 근본은 인간 영웅이로군. 설마 신의 육체를 얻는 시련에 도전하러 온 것이냐?”
“그렇다.”
그러자 그는 측은하다는 듯 말했다.
“인간의 욕심은 정말이지 끝이 없군. 이렇게 제 발로 죽을 길을 찾아오다니.”
“내가 죽을지, 죽지 않을지는 아직 알 수 없지. 나와 겨루자.”
대규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하자 아틀라스는 입가에 비틀린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패기가 넘쳐흐르다 못해 감당이 안 될 정도의 녀석이군. 뭐, 나야 좋다. 이거 간만에 쉴 수 있게 되었는걸?”
그리고 아틀라스는 대규를 쳐다보는 대신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며 외쳤다.
“이봐! 이 녀석과 겨루겠다. 그러니까 빨리 이 빌어먹을 하늘을 놓게 해 달라고!”
그가 말을 마치자 그 앞에 새까만 제단 하나가 형성됐다.
제단의 높이는 약 10미터 정도에 너비는 20미터 정도였다.
아틀라스는 들고 있던 하늘을 제단 위에 내려놓았다.
쿵!
이젠 그 새까만 제단이 하늘을 떠받치게 됐다.
아틀라스는 한숨을 쉰 뒤 어깨관절을 뚜두둑 소리 나게 꺾으며 말했다.
“후우~ 562년 만에 찾아온 휴식 시간이군. 그럼 인간, 어디 너의 실력을 보도록 하지.”
그때 대규의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거인 아틀라스가 당신의 도전을 받아들였습니다. 제단이 무너지기 전에 아틀라스를 맨몸으로 해치우십시오.]
[제단이 무너지거나 사용자가 패하면 시련은 그 즉시 종료됩니다.]
[29:59…….]
저 제단은 그러니까 제한 시간이로군.
이제 30분 안에 녀석을 해치워야 한다. 아니, 정확히는 29분 57초다.
아틀라스의 입가에는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562년 만에 저 무거운 하늘을 이는 고통에서 벗어나 꿀 같은 30분의 자유를 얻을 수 있게 됐으니 그럴 만도 했다. 첫 외출을 나온 군인보다 100배는 행복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이봐, 웬만하면 빨리 죽지 말라고. 30분 가득 채운 뒤에 죽어 달라고. 내 부탁이야.”
이미 대규가 패할 것을 전제로 두고 하는 말이다.
재수 없는 자식.
하지만 아틀라스의 주먹은 대규의 몸통만 했다. 저런 녀석과 맨몸으로 싸워야 한다니 가슴이 살짝 답답해진다.
게다가 투명 망토나 그런 것들도 사라진 탓에 투명화를 발동해 공략 영상을 볼 틈도 없다.
이미 아틀라스는 대규를 향해 덤벼들고 있었다.
대규는 있는 힘을 다해 녀석의 공격을 피했다.
평소라면 헤르메스의 장화로 여유롭게 피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퍽!
녀석의 거대한 주먹이 아슬아슬하게 대규의 몸을 스치며 초원 바닥을 강타했다.
쩌어억-
초원의 땅이 갈라져 버렸다. 무식할 정도로 힘이 센 녀석이다.
그는 기분 나쁘게 웃으며 말한다.
“일부러 살살 간 거야. 30분 안에 죽으면 곤란하다고. 흐흐.”
대규는 공략집이 빨리 전략을 제시해 주길 바랐다.
무기도 장비도 없는 지금 상황에선 공략집의 전략이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공략집에 떠오른 전략은 다음과 같았다.
<최대한 많이 주먹을 휘둘러 아틀라스와 맞서 싸우십시오.>
‘엥, 이게 전부야? 이걸 누가 모르냐?’
대규는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믿었던 공략집에 배신당한 기분이 들었다. 혹시 오류라도 난 걸까?
‘아니야. 여태까지 공략집이 허튼소리를 한 적은 없다. 한번 해보자.’
대규는 주먹을 쥐고 높게 점프하려고 발을 굴렀다. 바로 점프해 녀석의 재수 없는 얼굴로 날아가 바로 주먹을 냅다 꽂아 줄 계획이었다.
하지만 점프를 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아, 맞다! 나 장화 벗은 상태였지.’
평소처럼 몇십 미터를 껑충 뛰는 게 아니라 고작 3미터 정도가 한계였다.
물론 3미터도 일반적인 인간의 능력을 벗어나는 초인 수준이었지만 저 거대한 아틀라스와 자웅을 겨루기엔 무리가 있었다.
3미터면 고작 녀석의 종아리 부분밖에 안 된다.
‘빌어먹을… 장비와 아이템이 없으니까 엄청 불편하잖아.’
그사이 눈앞에서 아틀라스의 거대한 발이 날아들어 왔다. 눈앞이 아찔했다.
휘익-
대규는 있는 힘껏 몸을 틀어 녀석의 발길질을 피했다. 하지만 때를 놓치지 않고 대규의 명치에 녀석의 반대편 발이 날아들었다.
퍼어억!
“으윽! 컥!”
고통도 고통이지만 명치가 울렁거리면서 입안에 있던 침이 사정없이 튀어나왔다.
대규는 초원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아틀라스는 낄낄거리며 대규에게 말했다.
“이봐, 벌써 쓰러진 거야? 30분은 버텨야 한다니까.”
“으으…….”
한 번의 발길질로 생명력이 절반으로 줄었다.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항상 몸을 지켜 줬던 갑옷과 닥튈로이의 반지, 방패 등이 없으니 정말 죽을 것 같았다.
장비가 없으니 한없이 나약해진 기분이 들었다.
“크하하! 역시 보잘것없는 인간 녀석이군. 너같이 약한 녀석이 신의 육체를 얻는 시련에 도전해? 도전자 수준이 아주 심각하군!”
그런데 그때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근성 스킬이 발동합니다.]
[맷집 능력이 상승합니다.]
[맷집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