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6
186화 세계수 탐사 (1)
대규는 떨고 있는 센텐티아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별거 없습니다. 단지 현자의 돌 제조 방법과 영약 앨릭서의 제조 방법을 알고 싶어서 온 것입니다.”
그러자 센텐티아는 고개를 연신 숙여 대며 절박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목숨만은 살려 주십시오!”
그 광경을 본 케이른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일갈했다.
“이봐,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왜 대장군님이 자네를 죽이겠나?”
그러자 센텐티아는 겁에 질린 목소리로 외쳤다.
“케이른! 자네는 저분의 몸 주변에서 발산되는 기운이 보이지 않는 건가?”
그는 무서운 괴물이라도 본 것처럼 여전히 겁에 질린 표정으로 대규를 바라보았다.
짜증이 난 대규는 센텐티아에게 말했다.
“이봐요. 나에겐 인어의 눈물이 있습니다. 그리고 내일 케이른과 저 세계수 꼭대기로 조사를 나가서 저 위의 문제점을 해결한 후 세계수의 수액을 얻어 올 거구요. 나는 앨릭서가 필요합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말입니다.”
그리고는 센텐티아를 향해 고개를 쭉 내밀고 단호한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현자의 돌과 앨릭서 제조 방법을 알려 주실 겁니까? 아니면 지금처럼 계속 딴소리만 하실 겁니까?”
“으으… 알려 드리겠습니다!”
센텐티아는 겁에 질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세계수의 수액을 먼저 얻어 오셔야 합니다. 현자의 돌은 인어의 눈물과 세계수의 수액을 배합해야 만들 수 있습니다. 그 후엔 앨릭서를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현자의 돌이란 건 그 두 재료로 만드는 아이템이었군.
대규는 그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습니다. 나에겐 인어의 눈물이 있으니 내일 조사가 끝나고 수액을 얻게 되면 바로 이곳으로 달려오도록 하지요.”
말을 마친 대규는 케이른과 함께 센텐티아의 움막을 나섰다.
궁금했던 것도 알아냈고 센텐티아가 앨릭서를 만들어 준다고도 했지만, 기분이 아주 찜찜했다.
바로 자신을 귀신 보듯 했던 센텐티아의 태도가 몹시 걸렸다.
‘그리고 그 멸종한 인류의 육체를 지니고 있다는 표현도 말이야. 대체 그 인류가 뭐기에 저토록 두려워하는 거지? 아스클레피오스도 내 신체를 보고 엄청 놀랐었지.’
대규가 생각에 잠겨 있자 케이른이 이렇게 말했다.
“대장군님, 센텐티아의 말은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늙은이가 노망이라도 났나 봅니다. 뭐, 점은 잘 치는 녀석이지만…….”
대규는 말없이 세계수 나무를 올려다봤다.
바싹 마른 밑동의 윗부분은 구름 속에 감춰져 있어서 보이지 않았다.
늙은 켄타로우스도 그렇고 저 센텐티아도 그렇고 계속 불길한 기운이 오고 있다는 소리만 했다.
대체 저 위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그래도 내가 케이른과 함께 가면 그 기운을 쉽게 물리칠 수 있다고 했으니…….’
생각에 잠긴 채 걷다 보니 어느새 케이른의 거처에 도착했다.
케이른은 빈방으로 대규를 안내하며 말했다.
“그럼 내일까지 푹 쉬도록 하십시오. 내일 아침 동틀 무렵 세계수 나무 밑동 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저는 영웅들을 모아 마지막으로 공지를 내리러 잠깐 다녀오겠습니다.”
말을 마친 케이른은 방에서 나갔다.
대규는 방에 있는 푹신한 침대에 앉았다.
그러고 보니 연회에서 돌아온 후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
심지어 연회에서도 한계 레벨을 돌파하겠다고 카르케르에 들어가 수련을 했다. 그리고 현실로 돌아가자마자 현자의 돌 제조법을 알기 위해 이곳 켄타로우스의 부락으로 부랴부랴 향했다.
‘그나저나 딥원 녀석들… 엄청 굶주려 있는 거 아니야?’
대규는 배에서 꼬르륵 소리를 냈던 얀슬레이의 모습을 떠올렸다.
혹시나 해 인피니투스를 꺼내 가방을 열었다.
가방을 열자 딥원들은 기대에 찬 표정으로 주둥이를 내밀고 뻐끔거렸다. 마치 먹이를 받아먹으려는 물고기들을 보는 것 같았다.
‘급한 대로 다른 걸 먹이로 줄 수 없을까?’
그때 공략집의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딥원들은 판테온의 인어뿐 아니라 판테온에서 나는 어류들을 먹기도 합니다.>
<판테온의 어류는 인어만큼은 아니지만 딥원들의 배고픔을 어느 정도 해소해 줍니다.>
좀 이따가 케이른이 돌아오면 어류를 좀 구할 수 있냐고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선같이 생긴 녀석들이 어류를 먹는다니. 동족을 잡아먹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대규는 인피니투스를 닫은 후 침대에 누워 앨릭서에 대해 생각했다.
세계수의 수액 500ml를 얻으면 10개의 앨릭서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대규가 가진 인어의 눈물은 3개뿐.
앨릭서 1개에 인어의 눈물은 1개가 들어간다. 따라서 수액을 얻은 뒤 인어의 눈물 7개를 추가로 얻어 와서 센텐티아에게 앨릭서 10개를 만들어 달라고 해야 한다.
그리고 신의 육체를 얻을 수 있는 시련에 도전하는 거다.
‘그런데 앨릭서 10개면 충분하겠지?’
신의 육체를 얻을 수 있는 시련이 어떤 시련일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보다도 신의 육체를 얻게 되면 대체 어떤 기분일까?’
공략집에 따르면 신은 불로불사의 몸을 지닌다고 했다. 그럼 정말 죽지 않는 걸까?
하지만 대규는 신들을 볼 때마다 떠올랐던 공략집의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메시지 창에 따르면 신을 죽이는 건 불가능하지만, 심연의 결계엔 봉인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신화 등급 이상의 무기 아이템을 써야 봉인이 가능하다고 했다.
‘여태까진 감히 신들과 싸움을 벌일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서 그냥 넘겼는데 대체 심연의 결계라는 건 뭘까?’
궁금해졌지만 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자신이 신들과 싸움을 벌일 일이 있을까? 판테온의 신들은 현재 대규의 상관이기도 했지만, 그 이전에 아군, 즉 같은 편이었다.
‘내가 신의 육체를 지닌다 해도 아군인 신들과 전투를 할 일이 없겠지.’
하지만 심연의 결계에 대해 내심 호기심이 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에이, 일단은 쉬자. 내일 당장 세계수 나무를 조사하고 수액을 얻는 게 우선이니까.’
그때 방 밖에서 덜커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케이른이 영웅들에게 공지하고 돌아온 것 같았다.
마침 대규는 딥원들에게 먹일 어류가 있는지 물어보기로 했다.
방으로 나가 케이른에게 물었다.
“케이른, 혹시 집에 어류들이 있나요?”
“생선이나 뭐 그런 것들 말씀이십니까? 있습니다. 그런데 그건 왜 찾으시는 겁니까?”
대규는 대충 둘러댔다. 케이른에게 자신의 외계인 부대 딥원들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기가 좀 그랬다.
케이른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대규의 말대로 어류들을 생으로 가져왔다. 대규는 그의 상관이니 명령을 거절할 수 없었던 것이다.
‘대장군이란 지위가 이럴 땐 아주 편리하군.’
그릇에는 생선 몇 종류와 오징어, 그리고 거대 플랑크톤처럼 생긴 희한한 생물들이 있었다.
고개를 가까이 대자 싱그러운 바다의 내음이 올라왔다.
딥원 녀석들이 아주 좋아할 것 같았다.
케이른이 방에서 나가자 대규는 인피니투스를 열고 그릇 안의 내용물들을 그 안에 쏟아부었다.
“캬르륵! 캬륵!”
딥원들은 먹이를 발견한 물고기들마냥 일제히 모여들기 시작했다.
뻐끔뻐끔-
그들은 행복한 표정으로 주둥이를 움직이며 열심히 어류를 먹기 시작했다.
<딥원들의 기분이 아주 좋아졌습니다. 사용자에 대한 충성도가 아주 많이 상승했습니다.>
녀석들의 기분이 좋아졌다니까 대규는 자신도 기분이 좋아졌다.
꼭 자식을 키우는 어미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먹이를 다 먹은 딥원들은 대규를 향해 공손하게 인사를 한 뒤 물갈퀴를 첨벙이며 물속으로 사라졌다.
대규는 인피니투스를 닫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그리고 곧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다.
* * *
다음 날 아침.
켄타로우스의 숲에는 새벽의 푸르스름한 빛이 내려앉았다.
대규는 약속한 장소인 세계수 나무의 밑동 앞에 도착했다. 그곳엔 벌써 케이른과 다른 젊은 켄타로우스 영웅들이 모여 있었다.
그중 몇몇은 아테나 부대의 소속 영웅들이라 낯이 익었다. 그들은 대규를 발견하고는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그곳에 모인 켄타로우스 영웅들의 숫자는 도합 25명, 케이른과 대규까지 합하면 총 27명이었다.
모두들 나이가 젊고 패기가 넘치는 영웅들이었다. 어제 늙은 켄타로우스와 함께 대규를 케이른의 거처로 안내했던 젊은 켄타로우스 영웅도 있었다.
공략집으로 살펴보니 그의 이름은 피가로(Figaro)였다.
레벨이나 능력, 기타 스탯 등은 케이른에 비해 한참 떨어졌지만, 지능은 유난히 높았다.
“다 모인 것 같으니 올라가도록 하자.”
케이른이 영웅들에게 말했다.
대규와 케이른이 선두에 서서 먼저 세계수 나무를 올라가기로 했다.
나무는 일반적인 나무처럼 몸통이 일직선으로 곧게 뻗어 있는 형태가 아니었다. 꼭 잭과 콩나무 동화책에 나오는 거대 콩나무처럼 덩굴 모양의 굵은 가지들이 이리저리 얽혀서 하늘 위쪽으로 솟아오른 형상이었다.
물론 그 가지들은 시커멓게 변색됐고 빼빼 말라 비틀어졌다.
대규가 발을 디딜 때마다 나무껍질이 우수수 떨어졌다.
타타탓!
한시라도 빨리 저 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확인하고 그 문제를 해결해 수액을 얻고 싶었다. 하지만 케이른과 보조를 맞추느라 속도를 내지 못했다.
얼마나 올랐을까.
눈앞에 희뿌연 구름이 보였다. 높은 곳에 올라와서 그런지 귀도 먹먹했다.
아래쪽을 내려다보니 땅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대체 얼마나 오른 거지?’
대규는 고개를 들어 위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꼭대기는커녕 구름만 빼곡했다.
‘엄청나구만.’
대규는 공략집의 지도창을 가동시켰다. 나무의 꼭대기쯤으로 보이는 곳이 떴는데 그곳엔 몹시 커다란 붉은 점이 반짝이고 있었다.
여태까지 상대했던 괴물 중 강력한 축에 속했던 거인대장 기간테스들보다도 더욱 커다란 점이었다.
‘점이 아니라 꼭 붉은 잉크를 들이부은 것 같잖아.’
점은 거의 나무 꼭대기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게다가 더욱 이상한 점이 있었다.
꼭대기부터 세계수 나무의 몸통으로 내려오는 부분이 살짝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설마 저 위에 있는 게 나무 속으로 침투한 건가?’
일단 빨리 올라가서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았다. 대규는 케이른에게 자신이 먼저 가겠다고 한 뒤, 나무 꼭대기를 향해 빠르게 달려 올라갔다. 어느새 붉게 물들기 시작한 나뭇가지에 도착했다.
발을 디디고 있는 나무껍질은 저 밑쪽의 껍질보다 더 새카만 것 같았다. 거의 숯검댕이 수준이었다.
게다가 아까부터 발밑이 좀 이상했다.
‘뜨거운 것 같은데… 내 착각인가?’
아니었다.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묘한 열기가 나무 전체에서 풍겨 나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저 위에 도사리고 있는 붉은 점과 연관이 있는 것 같았다.
대규는 황금 눈물 갑옷의 표면에 난 비늘을 작동시켰다.
파스스-
비늘이 꼿꼿이 서기 시작하자 느껴지는 열기가 좀 덜한 것 같았다. 아까까진 찜통 속에 있는 것 같았다면 이젠 후끈한 사우나에 온 것 같달까.
본래 이 비늘들은 이전의 갑옷인 흑린갑의 것이었다. 물리 공격과 다른 마법 공격으로부터 저항력을 높여 주는 비늘이었는데 황금 눈물이 흑린갑을 흡수하면서 이 비늘들의 효과도 고스란히 가져온 것이었다.
‘뜨거운 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냐.’
대규는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열심히 꼭대기를 향해 올라갔다.
* * *
세계수의 맨 꼭대기.
시뻘겋고 거대한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냥 불꽃이 아니었다. 불꽃은 악마와 같은 형상을 지니고 있었다.
그건 산양의 두 뿔에 거대한 박쥐의 날개를 한 악마의 형상이었다.
악마 형상을 한 불꽃은 세계수 나무 꼭대기를 완전히 태우고 있었다.
타탁- 타탁-
불꽃들이 나무를 태우자 그 안에 흐르는 수액이 바싹 마르기 시작했다.
그때 불꽃이 이상한 소리를 내며 울부짖었다.
“#$%%!!”
그건 외계인인 크툴루와 다곤, 이호트가 내는 소리와 아주 비슷한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