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5
185화 앨릭서 제조 (3)
그 말에 젊은 켄타로우스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뭐가 또 불길하다는 거예요. 삼촌은 너무 걱정이 많다니까.”
그러자 늙은 켄타로우스는 이렇게 말을 이었다.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뭔가 불길한 기운이 들어. 며칠 전 밤하늘을 봤느냐? 토성의 어둡고 불길한 기운이 달에 전해졌다.”
“불길은 무슨! 삼촌, 이제 제2차 기간토마키아 전쟁도 끝나 간다고요. 안 그래요, 대규 대장군님? 케이른 님의 말에 따르면, 이제 기간토마키아는 최후의 결전만 남겨 두고 있다죠? 대규 대장군님도 거기에 참전하시겠군요. 저도 빨리 대장군님처럼 뛰어난 영웅이 돼서 그런 중요한 전투에 참전하고 싶네요.”
그는 대규에게 이것저것 전쟁에 대해 물어봤다.
대규가 그에게 대답을 해 주는 사이 그들은 케이른의 거처에 도착했다.
“저곳이 바로 케이른 님의 거처랍니다.”
젊은 켄타로우스 영웅이 거대한 버섯을 가리키며 말했다.
버섯은 밝은 빛을 내고 있었으며 앞쪽에는 문이 달려있었다.
저 안에 케이른이 있는 것 같았다. 대규는 켄타로우스의 등에서 내려 그 버섯 집에 달린 문을 노크했다.
똑똑.
그러자 케이른이 문을 열며 말했다.
“대체 누구… 아니, 대장군님 아니십니까! 그런데 여긴 대체 무슨 일로?”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왔습니다.”
대규가 대답하자 케이른은 그를 안쪽으로 안내했다.
“우선 이쪽으로 들어오시지요.”
버섯 집 안에는 별의별 물건들이 다 있었다. 갑옷과 케이른의 주 무기, 뇌염창뿐만 아니라 신기하게 생긴 별의 모형들도 잔뜩 있었다.
‘꼭 점성술 집에 온 것 같은걸.’
그러고 보니 신화에서는 켄타로우스들이 별자리를 볼 줄 안다는 내용이 있었던 것 같았다.
“대체 무슨 일이십니까? 이곳까지 찾아오시다니요.”
케이른이 묻자 대규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영약 앨릭서의 제조 방법에 대해 알고 싶어서 왔습니다.”
“뭐라고요?”
“재료는 이미 저도 알고 있습니다. 인어의 눈물과 현자의 돌, 그리고 세계수의 수액이 필요하다지요.”
그 말을 들은 케이른의 얼굴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대규는 그가 뭐라고 할 틈을 주지 않고 몰아붙였다.
“케이른,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저는 지금 인어의 눈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현자의 돌과 세계수의 수액을 얻고 싶습니다. 그런데 여기 오다 보니 세계수의 수액은 지금 얻을 만한 상황이 아닌 것 같더군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저도 케이른을 도와 세계수 위를 같이 탐사하고 싶습니다.”
그러자 케이른이 황송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굳이 그런 수고를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물론 저야 대장군님이 같이 가 주시면 매우 좋겠지만…….”
“제가 공짜로 수고를 들이겠다는 건 아닙니다.”
“예? 설마 원하시는 거라도?”
“같이 탐사를 가는 조건으로 제가 세계수의 수액을 좀 가져갈 수 있을까 해서요.”
그러자 케이른은 잠깐 고민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얼마 후 그가 입을 열었다.
“수액이 얼마나 필요하신 겁니까?”
“앨릭서를 만들고 싶습니다. 지난번에 본 앨릭서 한 병을 만드는 데 수액은 얼마나 필요합니까?”
그러자 케이른이 대답했다.
“작은 유리병으로 한 병이면 충분합니다. 대규 님이 사시는 세상의 단위로는 약 50ml 정도 되겠군요.”
50ml면 소주 한 잔 정도의 용량이었다.
생각보다 많이 들어가진 않는군.
“그럼 500ml 가능하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케이른의 표정은 밝아졌다.
“그 정도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저 커다란 세계수에서 나는 수액 양치고는 아주 미미하니까요. 사실 세계수의 수액은 재료 중 가장 구하기 쉬운 것이랍니다. 나머지 것이 문제죠.”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올려서 말해 볼 걸 그랬나?’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대규는 말하지 않았다. 그래도 앨릭서 10병이면 시련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충분할 것이다.
그런데 대규는 이토록 거대한 세계수가 말라비틀어지게 된 이유가 궁금해졌다.
케이른에게 묻자 그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단기간에 저 거대한 나무가 바싹 말라 버린 일은 전무후무한 일입니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뭐, 최고의 켄타로우스 족 영웅들을 모아 정예군을 꾸려 올라가기로 했으니 큰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만…….”
“조사단은 언제 올라갈 예정입니까?”
“내일 당장 출발합니다. 그런데 때마침 대장군님이 이렇게 와 주신 겁니다.”
“그랬군요.”
케이른은 거처에 있는 빈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방에서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 조사단은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할 예정입니다. 저는 그럼 영웅들에게 내일 일정에 대해 공지하기 위해 잠깐 밖에 다녀오겠습니다.”
아직 궁금한 것에 대해 모든 대답을 듣지 못했다.
집 밖으로 나가려는 케이른을 잡은 뒤 물었다.
“케이른, 앨릭서에 대해 더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수액을 뺀 나머지 재료, 인어의 눈물과 현자의 돌은 어디서 구하는 겁니까?”
그러자 그는 당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인어의 눈물은 저도 얘기로만 들었습니다. 판테온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이 다스리는 에우게(Euge) 바다로 가면 인어가 살고 있다고 합니다. 인어의 눈물은 그들의 눈물방울을 굳힌 것이라더군요. 하지만 그 바다에 들어가는 건 몹시 위험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왜죠?”
“가끔 이상한 이종족이 쳐들어와 인어를 잡아가는 일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소문에 의하면, 그들은 판테온의 존재가 아니라는군요.”
그 이종족은 아무래도 대규가 거느리고 있는 딥원들을 말하는 것 같았다.
“어쨌든 그곳에 가면 인어를 만날 수 있단 말이죠?”
“그렇습니다.”
“그럼 현자의 돌은요?”
그러자 케이른은 난색을 표하며 말했다.
“죄송하지만, 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 저희의 경우 앨릭서의 재료 중 모아 본 건 세계수의 수액밖에 없답니다. 인어의 눈물과 현자의 돌은 앨릭서를 제조하는 저희 종족의 현자만이 갖고 있지요.”
“그렇군요.”
“특히 현자의 돌에 대해서는 현자를 빼고는 아무도 모릅니다.”
“혹시 켄타로우스 현자를 만나 볼 수 있을까요?”
대규가 묻자 케이른은 흔쾌히 허락했다.
“만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대신 이상한 말을 하는 늙은이라 원하시는 대답을 못 들을지도 모릅니다. 저를 따라오시죠.”
대규는 케이른을 따라 그의 거처를 나섰다. 케이른은 숲속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깊숙한 곳으로 들어갈수록 거대한 세계수가 점점 가까워졌다.
“현자는 세계수 아래쪽 밑동에 살고 있습니다.”
가까이서 보니 세계수의 몰골은 더욱 참혹했다. 말라비틀어져 여기저기 쩍쩍 금이 가 있고, 땅에는 푸석푸석한 갈색 낙엽이 수북이 떨어져 있었다.
케이른은 그걸 보며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원래는 울창하고 생명력이 넘치는 나무였는데… 마침 저기 현자가 명상하고 있군요.”
세계수 나무 앞에 앉아서 명상을 하고 있는 켄타로우스 한 마리가 보였다.
케이른은 그를 향해 크게 외쳤다.
“센텐티아! 이리 와 보게!”
대규는 명상을 하는 현자를 바라봤다. 그러자 공략집이 떠올랐다.
-차원의 틈 공략집-
정령 이름: 켄타로우스 족 센텐티아(Sententia)
특징: 켄타로우스 족의 현자이자 점성술사로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예측한다. 명상을 방해받으면 기분이 나빠진다. 현자의 돌을 만드는 법과 켄타로우스 족 대대로 내려오는 전설의 영약 앨릭서를 만드는 법을 알고 있다.
‘현자의 돌은 이자가 만드는 거로군!’
센텐티아는 명상을 방해받아 몹시 짜증이 나는 얼굴이었다.
그는 얼굴을 있는 대로 찌푸리며 자리에 앉은 채 고개만 슬쩍 들며 물었다.
“무슨 일인가?”
케이른은 그에게 대규를 소개하며 말했다.
“이분은 김대규 대장군님이야. 대장군님이 자네에게 물어볼 게 있다고 해서 이리 온 걸세.”
하지만 그는 여전히 자리에 앉은 채 대규를 바라볼 뿐이었다.
여태까지 그를 깍듯이 대했던 다른 켄타로우스들과는 사뭇 다른 태도였다. 센텐티아는 케이른에게 물었다.
“대체 여기 왜 온 거야?”
“장군님이 물어볼 것도 있고 나 역시 내일 조사단 임무 때문에 점 좀 치려고 왔네. 자네도 알고 있지 않은가? 저 세계수 위를 탐사하러 가는 조사 임무 말일세.”
그러자 센텐티아는 다시 명상하려는 듯 눈을 감으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불길한 기운이 몰려오고 있어…….”
“이봐! 당장 눈 뜨지 못해? 대장군님 앞에서 이게 무슨 불경한 짓인가!”
그러자 센텐티아는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나며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흥! 정말 너무하는군. 일단 이쪽으로 들어오게.”
그는 대규와 케이른을 자신의 거처인 작은 움막으로 안내했다.
움막 안에는 별의별 물건들이 다 있었다. 별자리 지도와 수정 구슬, 그리고 기분이 몽롱해지는 향기를 풍기는 향초도 있었다.
센텐티아는 원형 테이블에 앉아 케이른에게 말했다.
“우선 케이른, 자네의 점부터 봐주겠네.”
그는 케이른을 빤히 바라보며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흐음… 쯔쯧, 이런 이런. 결국 자네의 그 아름다운 여자 친구랑은 헤어졌나 보군!”
“그런 건 묻지 않았네!”
케이른이 얼굴이 붉어진 채 소리쳤다.
여자 친구라면 그 아프로디테 부대 소속 영웅인 실비아를 말하는 것 같았다.
‘벌써 헤어졌어?’
이제 케이른의 얼굴은 침울해 보였다. 그는 양팔로 머리를 싸매며 중얼거렸다.
“여자의 마음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특히 실비아는 더더욱 말이야. 내가 좋다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나를 만나 주려 하지도 않아. 갑자기 토라져 버렸단 말일세… 그녀의 마음을 돌릴 수는 없을까?”
하지만 센텐티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쯔쯧, 나처럼 여자를 멀리하게. 날 봐. 수백 년 동안 이곳에서 홀로 지내니까 어느새 이렇게 신묘한 능력을 얻게 되지 않았나.”
“여자를 멀리하면 현자가 되는 능력이 생긴다는 건가?”
“그렇다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대규는 그들의 대화를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한참 동안 케이른에게 모태솔로의 장점에 대해 어필한 센텐티아는 수정 구슬을 가져오며 말했다.
“그럼 내일 조사 임무에 대해 점을 쳐주겠네.”
그는 수정 구슬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불길해… 아주 불길하군. 토성의 어두운 기운이 잔뜩 끼어 있어.”
“정말인가?”
“그래.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말게. 자네 옆에 서 있는 저 대장군이란 사람이 같이 가면 그 어두운 기운을 단번에 몰아내 줄 것 같아.”
그 말에 케이른의 얼굴이 환해졌다.
“역시 대장군님하고 같이 가면 좋다는 거군! 대장군님, 이렇게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대장군님도 어서 궁금했던 걸 물어보시죠.”
대규는 센텐티아가 앉아있는 원형 테이블로 다가갔다.
그를 본 현자가 물었다.
“자네가 대장군인가? 잠깐만…….”
그는 거북이처럼 고개를 쭉 뺀 뒤 대규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그저 살펴보기만 할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내 얼굴에 뭐가 묻었나?’
흠칫!
센텐티아의 표정이 한순간에 굳어졌다.
그는 화들짝 놀라며 몸을 뒤로 빼 버렸다. 마치 엄청나게 무서운 걸 보기라도 한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는 몸을 떨기 시작하며 대규에게 물었다.
“대, 대체…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러자 케이른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이봐, 아까 소개했잖아. 우리 아테나 여신 부대의 김대규 대장군님이라니까!”
“아니야… 말도 안 돼…….”
센텐티아는 이렇게 중얼거린 뒤 다시 대규를 바라봤다.
그의 눈동자엔 두려움이 가득했다.
“대체 왜 그러십니까?”
답답해진 대규가 묻자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당신께서는 이미 수천 년 전 멸종한 인류의 육체를 지니고 계십니다. 이것은 저주인가, 아니면 기적인가!”
‘멸종한 인류의 육체라고?’
분명 헤르메스의 주둔지에서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가 대규의 몸을 살펴본 뒤 했던 말과 비슷했다.
센텐티아는 이제 몸을 덜덜 떨면서 고개를 숙인 채 대규에게 물었다.
“대, 대체… 이 늙은이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