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4
184화 앨릭서 제조 (2)
대규가 1시간 동안 자리를 비웠지만, 연회는 아직도 한창이었다.
주변을 둘러본 후 자연스럽게 자리로 다가가 앉았다. 아무도 그런 대규의 모습에 주목하지 않았다.
단 한 명, 지영을 빼고는 말이다.
지영은 대규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대체 어디를 다녀온 거지?’
그녀는 대규가 1시간 전 주둔지 구석으로 몰래 나가서 사라졌던 걸 떠올렸다. 갑자기 땅 위에서 포탈이 열렸고, 대규가 그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포탈은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1시간이 지나자 그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아마 물어봐도 분명 대답해 주지 않을 거야’
하지만 궁금했다.
혹시 그가 차원의 틈 시절부터 남들보다 월등히 뛰어날 수 있었던 그 능력과 연관이 있는 걸까?
‘그렇다면 더더욱 대답해 주지 않겠지.’
지영은 그에게 그 어떤 말도 걸지 않았다. 하지만 묘한 눈빛으로 바라만 봤다.
한편, 대규는 연회장으로 돌아온 이후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수련하고 돌아와서 그런지 더욱 꿀맛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아쉽게도 딥원들에게 줄 물은 보이지 않았다. 판테온의 식탁에 놓인 건 오직 포도주 같은 술뿐이었다.
‘술 속에서 녀석들을 헤엄치게 만들 수는 없지.’
대규는 상석에 앉은 헤르메스를 바라보았다. 그는 연회의 분위기에 얼큰히 취한 것 같았다. 신의 육체이니 술을 마시고 취할 일은 없을 테니까.
그는 미소를 지으며 영웅들에게 말했다.
“정말 기분이 좋구나……. 그럼 최후의 결전을 위해 다들 만반의 준비를 하도록 하라. 이제 각자의 세계로 돌아가도 좋다.”
그가 팔을 허공에 들어 손뼉을 짝, 치자 배경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리자 어느새 오피스텔로 돌아와 있었다.
대규는 일단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로 가서 인피니투스 가방의 입구를 벌린 뒤 수도꼭지를 틀었다.
콸콸콸.
수도꼭지에서 물이 시원하게 흘러나와 가방 안으로 들어갔다. 한참 동안 틀어 놓았는데도 가방에서는 물이 넘치지 않았다.
약 5분 정도 물을 받은 후 대규는 수도꼭지를 잠근 뒤 가방 안을 들여다봤다.
“오호~”
가방 안쪽은 여러 구획으로 공간이 나뉘어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딥원들이 있는 한 구획에만 자연스럽게 물이 차올라 있었다. 나머지 구획은 전혀 물이 차지 않았다.
딥원들은 자신들의 구획에 물이 차오르자 여유롭게 수영을 하면서 지내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전보다 아주 행복해 보였다.
그러자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딥원들의 기분이 매우 좋아졌습니다. 딥원들의 충성도가 상승했습니다.>
귀여운 녀석들.
대규는 신이 나서 물살을 가로지르는 딥원들을 보며 생각했다.
꼭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녀석들의 모습을 보자 대규는 좀 전에 이들을 죽이고 인어의 눈물을 갈취하려 했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미안해졌다.
‘아차, 인어의 눈물! 그것에 관해 물어봐야지.’
대규는 가방 속을 바라보며 얀슬레이를 불렀다. 그러자 얀슬레이는 수영을 하다 말고 가방에서 튀어나왔다.
물갈퀴에서 물이 뚝뚝 떨어져 오피스텔 바닥을 적셨다.
“부르셨습니까, 주인님.”
얀슬레이는 주둥이를 뻐끔거리며 말했다.
이제 그는 대규를 보고 주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가방 안에 물을 채워 주니 태도가 그전보다 더욱 깍듯해진 것 같았다.
대규는 얀슬레이에게 물었다.
“얀슬레이, 너희 딥원이 갖고 있는 인어의 눈물 말인데… 그건 대체 어디서 얻어 온 거지?”
그러자 얀슬레이가 대답했다.
“저희 딥원들은 가끔 판테온에 가서 인어를 사냥합니다. 판테온의 인어는 저희의 훌륭한 주식이기 때문입니다.”
그 말을 하며 얀슬레이는 입맛을 다시기 시작했다.
“인어의 고기는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고, 그들이 지닌 눈물은 빼앗아서 일종의 부적처럼 지니고 다닙니다. 별 뜻은 없습니다.”
아무래도 얀슬레이를 비롯한 딥원들은 인어의 눈물이 영약 앨릭서의 재료가 된다는 걸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역시 인어의 눈물은 인어가 지닌 것이었어. 그런데 판테온의 인어라면 판테온의 세계에 존재하는 거 같은데. 이거 좋은 기회다.’
대규는 속으로 기뻐하며 얀슬레이에게 말했다.
“알겠다. 알려줘서 고마워. 이제 들어가서 쉬어도 좋아.”
“그런데 주인님…….”
얀슬레이가 머뭇거리며 말꼬리를 흐렸다.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는 거야?”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얀슬레이의 몸에서 곧 요란한 소리가 퍼져 나왔다.
꼬르르륵-
“배가 고픈 거냐?”
대규가 묻자 얀슬레이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부끄럽지만… 그렇습니다.”
그의 아가미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대규는 그 모습을 보며 미소 지은 뒤 얀슬레이에게 말했다.
“너희들의 주식은 인어라고 했지? 알았다. 내가 구해 주도록 하지. 조금만 기다리고 있거라.”
그러자 그는 생선 눈동자를 반짝이며 외쳤다.
“가, 감사합니다!”
<당신을 향한 얀슬레이의 충성도가 상승했습니다.>
물과 일용할 양식을 주면 충성도가 상승한다니, 꽤 단순한 녀석들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만큼 단순해서 좋았다. 쓸데없이 머리를 굴리며 계산하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
‘어쨌든 인어를 만나러 가야겠군. 신의 육체를 얻는 시련을 치르기 전에 앨릭서도 만들어야 하고 겸사겸사 딥원들에게 먹이도 줄 겸.’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인어의 눈물은 앨릭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 중 하나일 뿐이었다. 분명 앨릭서를 만드는 데는 현자의 돌과 세계수의 수액이라는 재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나머지 재료들은 대체 어디서 구해야 하는 건지 감이 안 잡혔다.
‘혹시 케이른은 알고 있을까?’
케이른의 말에 따르면, 앨릭서는 켄타로우스 족 사이에서 내려오는 전설의 영약이라고 했다. 분명 그는 다른 재료에 대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인어가 살고 있는 곳도.
‘케이른을 만나 봐야겠군.’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대규는 말 나온 김에 케이른을 만나러 가기로 했다.
보관함에서 판테온의 열쇠를 꺼냈다.
막 전투를 마치고 와서 쉬고 싶었지만 그럴 틈이 없었다.
‘나는 해야 할 일이 많다!’
최후의 결전 전에 신의 육체를 얻기 위한 시련도 겪어야 했다.
대규는 황금빛 열쇠를 손에 쥐었다. 그러자 눈앞에 판테온으로 가는 포탈이 지잉 거리며 열렸다.
그 안으로 망설임 없이 들어갔다.
오랜만에 오는 판테온의 광장은 그대로였다.
분수대에선 무지갯빛 물이 넘실거렸고, 신들과 정령들이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케이른은 어디 있지?’
대규는 공략집의 지도창을 작동했다. 그러자 노란 점이 판테온의 도시 외곽 한쪽에서 번쩍였다. 손끝으로 눌러 보니 케이른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가 있는 위치인 것 같았다.
‘그런데 여기는 숲 아닌가?’
그때 공략집의 메시지창이 떴다.
<케이른은 켄타로우스들이 모여 사는 켄타로우스의 부락에서 현재 지내고 있습니다.>
저 숲속이 아마도 켄타로우스의 부락인 것 같았다.
지체할 틈이 없다.
대규는 헤르메스의 장화를 이용해 켄타로우스의 부락으로 바람처럼 달려갔다.
얼마 후, 부락이 있다는 숲에 도착했다.
그곳은 수풀이 무성하게 자란 숲이었는데 신비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그런데 저쪽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다그닥, 다그닥!
젊은 켄타로우스와 늙은 켄타로우스 두 명이 다가와 대규를 보고 소리쳤다.
“누구냐! 감히 우리 부락에 허락도 없이 들어오다니!”
“침입자인가?”
그때 늙은 켄타로우스가 대규를 알아보더니 황급히 놀라 고개를 조아렸다.
“김대규 장군님 아니십니까!”
그러자 젊은 켄타로우스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누구야? 아는 사람이야, 삼촌?”
그러자 대규를 알아본 늙은 켄타로우스가 성질을 내며 말했다.
“이 멍청한 녀석아! 이 분은 아테나 여신 부대의 대장군님이시다!”
“허억! 시, 실례했습니다!”
그들은 대규 앞에서 머리를 조아렸다.
‘켄타로우스 족은 자존심이 세고 성정이 고고해서 쉽게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고 알고 있는데… 그만큼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된 건가?’
내심 뿌듯하기도 했지만, 자신의 아버지뻘 되는 나이 든 켄타로우스가 저렇게 고개를 숙이니 약간 불편하기도 했다.
고개를 들라고 말하자 늙은 켄타로우스가 물었다.
“그런데 대체 무슨 일이십니까? 대장군님께서 우리 부락에 다 찾아오시고…….”
“케이른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를 만나러 왔습니다.”
“케이른 님은 부락의 거처에 계십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규가 발걸음을 옮기려 하는데 늙은 켄타로우스가 눈을 반짝이며 계속 그를 쳐다봤다.
“왜 그러십니까?”
“저, 저기… 실례인 줄은 압니다만…….”
그는 뭔가 대규에게 바라는 게 있는 눈치였다.
“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제가 감히 직접 장군님을 등에 태워도 되겠습니까? 제발 허락해 주십시오!”
그러자 옆에 있던 젊은 켄타로우스가 놀라서 외쳤다.
“삼촌! 그게 대체 무슨 추태야! 삼촌이 천한 당나귀도 아니고!”
“이놈아, 좀 닥쳐라! 이분을 태우는 게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 줄 아느냐?”
물론 대규도 잘 알고 있었다. 켄타로우스들은 누군가를 자신의 등 뒤에 태우는 걸 몹시 굴욕적인 일로 여긴다.
하지만 이 늙은이에겐 대규를 태우는 것이 가문의 영광 수준인 것 같았다.
대규는 계속해서 거절했지만, 늙은 켄타로우스는 끈질기게 부탁했다.
“제발… 이 노인네, 죽기 전의 소원입니다.”
“삼촌은 아직 죽으려면 500살은 더 살아야 할걸?”
젊은 켄타로우스가 핀잔을 줬지만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계속 거절하는 것도 예의에 어긋나는 것 같아서 대규는 그의 등에 올라탔다.
그제야 그는 몹시 만족하며 대규를 태우고 부락 안으로 들어갔다.
대규의 모습을 본 부락의 켄타로우스들은 몹시 놀라며 예를 갖추기 시작했다.
‘켄타로우스들도 이제 나를 알아보게 된 건가?’
늙은 켄타로우스는 부락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켄타로우스의 부락은 몹시 신비롭게 생긴 곳이었다. 숲에서는 연신 푸르스름하고 신비한 기운이 감돌았고, 거대한 해파리처럼 생긴 투명한 버섯들이 여기저기 돋아나 있었다.
그리고 작은 정령들이 반딧불처럼 몸에서 빛을 내며 이곳저곳 날아다녔다. 꼭 판타지 세상에서나 나올 법한 풍경이었다.
그런데 저 앞쪽에 몹시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보였다.
나무의 밑동은 거의 작은 산의 둘레만 했는데 그 높이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나무의 꼭대기는 하늘의 구름에 둘러싸여 보이지도 않았다.
‘대체 얼마나 높은 나무인 거지?’
대규는 늙은 켄타로우스에게 물었다.
“저건 대체 뭡니까?”
그러자 그는 침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세계수입니다.”
그 말을 들은 대규는 깜짝 놀랐다.
세계수라면 분명 앨릭서를 만드는 세 가지 재료 중 하나인 세계수의 수액을 추출할 수 있는 나무다.
‘이런 횡재가!’
대규는 켄타로우스에게 물었다.
“혹시 제가 저 나무에서 나는 수액을 좀 채취해 가도 되겠습니까?”
그러자 그는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휴우… 예전 같으면 얼마든지 그렇게 하시라고 말씀드릴 텐데 지금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보시다시피 세계수가 지금은 완전히 말라 비틀어져 버려서 수액이라고는 한 방울도 나오지 않게 됐거든요.”
대규는 그 말을 듣고 다시 세계수를 바라보았다.
아까는 몰랐는데 자세히 보니 세계수의 몸통은 새카맣게 변해 있었다. 그리고 나무껍질은 푸석푸석하게 갈라져 있었고, 곳곳에 난 나뭇잎 역시 싱싱하지 않고 잔뜩 시들어 있었다.
“왜 저렇게 되어 버린 겁니까?”
그러자 켄타로우스는 구름 속에 가려진 나무의 꼭대기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건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부터 갑자기 세계수가 위쪽부터 말라비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무언가가 꼭대기에 나타난 것 같습니다. 아직 확인을 해 보지는 못했지만…….”
그 말에 젊은 켄타로우스 영웅이 가슴을 쭉 펴며 자랑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케이른 님께서 현재 영웅 부대를 조직해 조사를 나갈 예정이에요. 저도 그 부대에 끼게 됐고요. 케이른 님과 저희가 잘 해결하고 올 겁니다!”
하지만 늙은 켄타로우스의 눈빛은 불안해 보였다.
“저 세계수를 말라비틀어지게 만들 정도면 웬만한 괴물은 아닐 거야.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