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2
182화. 신체강화 (6)
대규는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얼굴뿐만 아니라 굵다란 팔이 젤리 같은 몸뚱이에서 튀어나와 무기를 휘둘렀다.
대규 역시 사슬검을 휘둘러 녀석의 무기를 막았다.
휘리릭-
챙!
그 사이 이호트의 진짜 얼굴인 황금빛 얼굴은 거대한 젤리 몸통 안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무기를 흔드는 팔의 주인은 대규를 향해 튀어나와 공격했던 무시무시하게 생긴 거인 얼굴이었다. 아무래도 이호트를 상대하다 죽은 거인 같았다.
녀석의 팔에는 거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무기인 철퇴가 쥐어져 있었다.
하지만 대규에겐 상대가 안 된다.
다시 한 번 날아간 사슬 검날이 이호트의 몸뚱이에서 나온 거인의 팔을 순식간에 베어 버렸다.
화르륵- 서걱!
잘린 팔의 단면에 악마의 화염이 붙자마자 튀어나온 거인 얼굴이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 그리고 곧 그 얼굴은 젤리 몸통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대규는 좀 전에 이호트의 진짜 얼굴인 황금 얼굴이 사라진 곳으로 사슬검을 찔러 넣었다.
검날이 젤리 같은 몸통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꿀렁-
몸통 표면에서 새로운 얼굴이 돋아났다. 이번엔 거인이 아니라 오크의 얼굴이었다.
그 얼굴은 대규의 사슬 검날을 날카로운 송곳니로 물어 버렸다.
화르륵-
사슬검의 화염이 발동해 오크의 얼굴을 녹이려 했지만, 녀석의 이빨 악력은 엄청났다.
‘빌어먹을…….’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저 옆쪽에서 다른 팔들이 대규를 향해 달려들었다.
왼팔을 들어 장갑에서 아라크네의 거미줄을 발사했다.
스르르…….
거미줄들이 뿜어져 나와 달려드는 팔들의 움직임을 봉쇄해 버렸다. 하지만 그도 잠시뿐, 거대한 원통형의 젤리 몸뚱이에선 여러 얼굴과 팔이 새롭게 돋아나 대규를 공격했다.
진짜 얼굴인 황금 얼굴은 없었다.
이미 몸통 안으로 깊숙이 숨어 버린 것 같았다.
대규는 젤리 몸통에서 수없이 돋아나 자신을 공격해 오는 얼굴과 팔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정말 끔찍한 녀석이군.’
자신과 싸우다 패배한 적들을 흡수하는 능력을 지녔던 기간테스 토온도 이런 식으로 전투하진 않았다.
토온의 경우 흡수한 능력이나 무기를 한 번에 하나씩 불러와 전투를 했지 이렇게 일 대 다수로 한꺼번에 공격하진 않았다.
게다가 이 녀석들은 지도창으로 볼 때는 조무래기 몬스터를 나타내는 작은 붉은 점일 뿐이지만 녀석들이 몸을 두고 있는 곳은 결국 보스 몬스터, 이호트의 몸뚱이였다.
아무리 조무래기들을 베어 버린다고 해도 이호트의 몸뚱어리에서 그가 흡수한 존재들이 계속해서 튀어나오니 끝이 없었다.
이대로 가다간 대규가 불리했다. 수련 시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그때 공략집이 발동됐다.
<이호트의 몸은 콜라겐 비슷한 젤리 물질로 구성돼 있어서 뚫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액체와 반고체 상태로 이뤄진 몸이지만 다곤의 아가미 정수를 이용하면 자유롭게 숨 쉬며 그 안을 거닐 수 있습니다.>
<사슬검으로 녀석의 몸을 뚫고 안으로 들어가 진짜 얼굴을 찾아 해치우십시오.>
‘저 꿀렁대는 몸통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단 말이야?’
하긴, 저렇게 많은 얼굴이 저 안에서 존재할 수 있으니… 왠지 토온의 몸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느낌이 비슷할 것 같았다.
망설일 시간은 없었다.
공략집이 저렇게 친히 알려 주는 방법이라면 그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좋은 전략일 것이다.
대규는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수십 개의 팔을 피한 뒤 사슬 검날로 이호트의 젤리 몸통 구석 부분을 슬쩍 갈랐다.
화르륵-
꿀렁.
검은 화염이 몸통을 가르자 사람 한 명이 들어갈 만한 틈이 생겼다. 대규는 그 안으로 몸을 비집고 들어갔다.
꿀렁꿀렁-
들어가려고 발걸음을 한 발자국씩 옮길 때마다 젤리 몸의 벽이 움직였고 액체인지 고체인지 모를 물컹한 느낌의 이상한 물질들이 대규의 온몸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숨도 쉬기 힘들 지경이었다.
대규는 다곤의 아가미의 정수를 꺼내 경동맥에 갖다 댔다.
척!
아가미가 목에 붙으면서 순식간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유롭게 숨을 쉴 수 있게 됐다. 아가미의 정수가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규는 공략집의 지도창을 켰다. 녀석의 진짜 얼굴이 어디 있는지 알아야 했다.
진짜 얼굴은 몸통의 구석 쪽을 향하고 있었다. 대규로부터 최대한 멀리 도망치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잡아 주마.’
대규는 발걸음을 움직였다.
그때 사방의 벽에서 적들이 튀어나왔다.
이들 역시 이호트가 흡수한 영웅이나, 몬스터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호트의 신체 내벽과 같은 색인 연보랏빛의 젤리를 뒤집어쓴 것 같은 형상이었다.
“꾸어어어…….”
처음으로 튀어나온 건 수십 마리의 오크로 구성된 군단이었다.
‘오크 부대를 한 움큼 삼켰나?’@@@
오크들은 송곳니를 내밀며 대규에게 달려들었다. 젤리같이 쉴 새 없이 꿀렁대는 이호트의 신체 내부에서도 녀석들은 아주 잘 달려왔다.
‘하지만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오크들의 머릿수는 꽤 많았다.
레툼 익투스나 광역 스킬 비산의 결계를 써서 해치워 버릴까, 생각도 해 봤다.
‘하지만 이 녀석들이 있잖아.’
대규는 인피니투스를 꺼냈다.
방금 전 자신의 부하로 들인 딥원들의 실력을 제대로 구경하고 싶었다.
그리고 녀석들을 풀어서 싸우게 하면 훨씬 시간을 줄일 수 있을지도 몰랐다. 녀석들이 저 오크들을 상대하는 동안 이호트의 진짜 얼굴을 향해 달려가는 거다.
인피니투스의 가방 뚜껑을 열자 딥원들이 신속하게 척척 나오기 시작했다.
대규는 딥원 대장 얀슬레이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녀석들을 해치워라.’
얀슬레이는 대규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딥원들에게 뭐라고 명령을 내린 뒤 오크들에게 달려들었다.
“갸르륵!”
다른 딥원들 역시 얀슬레이를 따라 오크들에게 덤볐다.
물갈퀴가 붙은 팔다리로 빠르게 달려간 어인괴물들은 오크보단 몸집이 작았지만 싸움에서 전혀 밀리지 않았다.
그들은 오크들의 몸에 달라붙어 주둥이 사이의 날카로운 이빨들로 맹렬하게 공격을 했다.
찌지직-
녀석들의 송곳니에 오크들의 몸이 처참히 찢겨 나갔다.
‘엄청난 악력이군.’
연보랏빛의 오크들은 곧 만신창이가 돼 버렸다.
실로 믿음직스러운 부하들이었다.
대규는 속으로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높게 점프를 했다. 마무리를 지어야지.
“레툼 익투스!”
젤리 같은 신체 내벽 때문에 발에 닿는 힘이 분산돼 점프력이 살짝 떨어졌다. 하지만 스킬의 위력은 떨어지지 않았다.
화르르륵-
나머지 오크들은 대규의 화염에 휩싸여 괴롭게 울부짖었다.
“죽어라!”
사슬 검날이 부메랑처럼 날아가며 울부짖는 녀석들의 목을 단번에 따 버렸다.
촤아악-
하지만 검날엔 녀석들의 피 대신 연보랏빛의 질척질척한 액체가 잔뜩 묻어났다.
그리고 베어진 오크들은 젤리처럼 흐물흐물 녹아서 이호트의 몸 내벽으로 다시 흡수돼 버렸다.
‘기분 나쁜 광경이군.’
오크 군단이 쓰러지자 이번엔 거인 군단들이 벽에서 뛰쳐나왔다.
차원의 틈에서 맨 처음 봤던, 미니 키클롭스처럼 몸집이 작은 거인들도 있었고 나름 기간테스처럼 보이는 거대한 거인 대장 녀석들도 있었다. 물론 그들 역시 방금 쓰러뜨렸던 오크들처럼 몸 표면이 연보랏빛이었고 젤리처럼 물컹물컹한 느낌이었다.
“끄으으으!”
“꾸에에엑!”
연보랏빛 거인 부대들은 괴성을 지르며 딥원들과 대규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대규는 얀슬레이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뒤쪽으로 물러서라.’
얀슬레이와 딥원들은 그 말을 듣고 신속하게 뒤쪽으로 물러섰다. 어인괴물들은 민첩성 역시 남달랐다.
대규는 거인들이 자신의 몸 주변으로 가까이 오길 기다렸다가 그들의 머리 위로 높게 점프했다.
“비산의 결계!”
그러자 투명한 막이 형성됐고 곧 악마의 화염이 비처럼 마구 쏟아져 내렸다.
화르륵- 쾅쾅!
화염은 거인 군단뿐 아니라 이호트의 젤리 같은 신체 내벽에도 마구 쏟아졌다. 신체 내벽이 서서히 녹아내리면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
몸 바깥쪽에서 들리는 이호트의 비명이었다. 날카로운 기계 고주파 음 같았는데 아무래도 이호트가 공격을 받고 괴로워서 내는 리액션인 것 같았다.
‘그런데 여기 괴물 녀석들은 왜 죄다 비명 소리가 저런 식인 거야?’
크툴루도 그랬고 다곤 역시 좀 이상한 비명 소리를 냈었다. 이곳 카르케르에 갇혀 있는 괴물들의 비명은 뭔가 생물체의 비명 소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기괴한 소리였다.
특히 이 이호트란 녀석은 고주파 음 같은 소리를 냈는데 듣는 대규의 머리가 다 아파 올 지경이었다.
비산의 결계가 한차례 쓸고 가자 달려들던 거인 무리는 웬만큼 사라졌다.
나머지 거인 무리는 딥원들이 신속하게 해치웠고 대규는 이제 이호트의 진짜 얼굴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길목마다 연보랏빛의 젤리 괴물들이 나타나 방해했지만 신속하게 따라온 얀슬레이가 그들을 제거했다.
콰직!
“끄르르…….”
얀슬레이의 송곳니가 녀석들의 몸뚱이에 파고들자 녀석들은 쓰러졌다. 역시 딥원 무리의 대장다웠다.
대규는 얀슬레이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너는 정말 실력자로구나. 대단하다.’
‘감사합니다!’
얀슬레이는 그 미성의 목소리로 황송하다는 듯 텔레파시를 보냈다. 물론 그의 얼굴은 수산 시장에 있는 생선, 그 자체였지만 말이다.
‘정말 저 목소리랑 얼굴이 매치가 안 된다니까.’
딥원들과 적들을 해치우는 사이 레벨은 3단계나 올라 44가 됐다.
이제 6단계만 더 오르면 세미데우스 한계 레벨에 도달하게 된다.
그 사실을 떠올리자 기분이 좋아졌다. 이제 수련 시간은 5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그 사이에 이호트 녀석을 해치우면 좋겠는데.’
저 멀리 황금 얼굴이 보였다.
얼굴은 제단 같은 곳 위에 놓여 있었는데 대규가 달려와도 도망치지 않고 그 위에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뭐지?’
대규는 제단 쪽으로 다가가 녀석의 진짜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뭐 이렇게 생겼담?’
얼굴을 가까이서 보자마자 저도 모르게 얼굴이 찌푸려졌다.
얼굴은 정말 기괴한 형태였다.
여태까지 대규를 공격해 왔던 오크들이나 거인들의 얼굴은 대규가 그전까지 봐 왔던, 그리고 상상이 가능한 얼굴이었다. 오크들의 경우엔 털투성이 야수 형태의 얼굴이었고 거인들은 추악하긴 하지만 외눈박이 정도의 비주얼이었다.
한마디로 신화나 게임, 판타지 영화 등지에서 본 적은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호트의 진짜 얼굴은 달랐다.
그건 계란처럼 생긴 얼굴이었는데 눈, 코, 입의 위치가 제각각 이상하게 흩어져 있었다.
눈, 코, 입 차제는 인간의 그것과 비슷했는데 눈이 있어야 할 곳에 코가 있고 입이 있어야 할 곳에 눈동자가 붙어 있는 식이었다.
이상하게 뒤섞여 있는 이목구비였는데 몹시 기분이 나쁘게 생겼다. 그리고 눈동자들은 눈을 감고 있었다.
대규가 그것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번쩍!
제각각으로 흩어진 눈동자들이 눈을 떴다.
그런데 얼굴에 붙은 눈동자는 인간의 눈동자가 아니었다. 흰자와 검은자의 구분 없이 그냥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동공은 금빛인데 파충류의 눈처럼 세로로 가느다랗게 찢어져 있었다.
그때 얼굴에 붙어 있는 입이 벌어졌다.
입안은 더욱 흉칙했다.
인간의 입술 사이로 혀 대신 괴상하게 생긴 촉수들이 뿜어져 나왔다.
휘리릭-
촉수들이 대규의 몸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대규는 재빨리 그것을 피했다.
콰콰쾅!
대규가 방금 전까지 서 있던 자리가 폭발해 버렸다.
‘폭탄도 아니고 뭐 저런 게 다 있어?’
촉수들은 대규의 뒤를 쫓아왔다. 젤리 같은 신체 내벽을 타타탓 달려서 올라갔다. 하지만 촉수들은 끈질겼다.
그때 얀슬레이가 번쩍 점프해 물갈퀴가 달린 팔다리로 촉수들을 붙잡았다.
얀슬레이는 촉수들을 향해 자신의 뾰족한 송곳니를 박아 넣었다.
“@%[email protected]!”
촉수로부터 이상한 소리가 나왔다. 그때 얀슬레이의 몸은 보이지 않는 힘에 가격당한 것처럼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쿵!
얀슬레이는 저 멀리 날아가 쓰러져 버렸다.
이제 촉수들은 대규의 옆구리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