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0
180화 신체 강화 (4)
“……!”
물 밖에서 봤던 딥원들과 비슷한 형상을 지닌 몬스터의 그림자가 보였다. 하지만 아직 거리가 멀어서 공략집은 뜨지 않았다.
녀석의 몸집은 딥원들보다 훨씬 컸다. 그리고 근육도 더 잘 발달돼 있는 것 같았다.
몸이 초록빛을 띠고 있는 거로 보아 녹색의 비늘로 뒤덮여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녹색의 비늘은 윤기까지 흐르고 있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이상하지만 좀 아름답다는 생각도 드는걸.’
녀석은 대규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주둥이를 벌리고 심해의 바닷물을 아주 크게 들이마시고 있었다. 소용돌이는 그로 인해 생겨난 것이었다.
‘저 물의 소용돌이를 타고 녀석에게 접근한다. 접근해서 약점을 본 뒤 신속하게 녀석을 공격하는 거야.’
벌써 녀석을 해치우고 왕창 레벨 업을 할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소용돌이에 몸을 맡긴 대규는 얼마 후 다곤의 코앞까지 다가갔다.
공략집이 떠올랐다.
-차원의 틈 공략집-
몬스터 이름: 다곤(Dagon)
보상: 높은 양의 경험치, 아가미의 정수
특징: 고대 외계인 종족이지만 거인들에 의해 이곳 거인의 지옥 카르케르 지하 2층에 부하들과 함께 갇혀 버렸다. 어인괴물 딥원들의 두목. 물을 조종하는 능력이 있음. 회오리를 불러일으켜 적을 빨아들인다.
보유 스킬: 물회오리-물을 조종해 거대한 소용돌이 회오리를 일으켜 상대방을 그곳에 가둬 버린다. 수압이 엄청남. 마나 200.
<다곤에 대한 공략(하급)을 습득했습니다.>
<다곤에 대한 당신의 공격력이 10% 상승합니다.>
<다곤으부터 아이템을 습득할 확률이 조금 높아집니다.>
<다곤의 약점을 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영상을 재생하시겠습니까? Yes/No>
휘이이잉-
대규는 소용돌이에 몸을 맡긴 채 녀석의 주둥이 앞까지 흘러갔다.
“쒸익쒸익-”
주둥이 옆의 볼에 붙어있는 녀석의 거대한 아가미가 숨을 쉬느라 들썩거리는 게 보였다.
‘엄청나군.’
대규는 약점 영상을 재생했다. 다곤의 약점 역시 졸개들 딥원처럼 아가미 부분이었다.
주둥이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 대규는 물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녀석의 얼굴 옆 아가미 쪽으로 향했다.
아가미 바깥쪽의, 볼살의 뚫린 틈이 보였다.
대규는 불카누스의 사슬검을 들어 녀석의 아가미 틈 사이로 스킬을 썼다.
“레툼 익투스!”
불카누스의 입김으로 만들어진 화염에 악마의 화염까지 더해진 탓인지 사슬검의 불꽃은 바닷물 속에서도 아주 잘 뻗어 나갔다.
‘마법을 품은 불길이라 물의 영향을 받지 않는가 보군.’
다행이었다.
내심 불 대신 부글부글한 기체만 형성되면 어떡하나 걱정했다.
“@$#!”
다곤이 괴상한 소리를 냈다.
대규는 녀석의 살 틈으로 들어가 아가미를 없애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틈 속에 부채꼴 모양으로 접혀 있는 선홍빛 촉수들이 보였다. 그것이 살 틈에서 튀어나와 대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물론 대규는 투명한 상태여서 촉수들은 그가 있는 위치를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하지만 외부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마구잡이로 공격을 시작했다.
‘제길! 투명화가 무력할 정도잖아.’
대규는 촉수들을 향해 사슬검을 휘둘렀다. 화염이 촉수들을 향해 뿜어져 나갔고, 그와 동시에 촉수들은 뒤쪽으로 물러났다.
‘후퇴하는 건가?’
아니었다.
아가미 전체가 뒤쪽으로 물러났고, 곧 대규의 눈앞엔 다곤의 커다란 눈동자가 보였다.
녀석이 고개를 돌린 것뿐이었다.
멀뚱멀뚱 대규를 쳐다보는 녀석의 눈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럴 만도 한 게 분명 공격은 당했는데 공격을 한 적이 보이질 않으니까 말이다.
그때 녀석의 주둥이가 다시 벌어졌다.
쩌억-
곧 녀석은 다시 한 번 바닷물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이거 단순히 녀석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유리한 게 아니잖아.’
이미 대규는 녀석의 주둥이 안에 들어와 있었다.
곧 대규의 눈앞에 녀석의 무시무시한 송곳니가 보였다.
저것에 씹히면 단번에 몸이 두 동강 날 것 같았다.
녀석이 이빨이 빠르게 닫히면서 대규의 팔 날을 스쳤다.
“끄윽……!”
스친 것만으로도 팔에 외상을 입었다. 철벽같은 방어력을 자랑하던 황금 눈물 갑옷이 살짝 뚫린 것이었다.
녀석의 주둥이는 빠르게 닫히고 있었다. 저 입이 닫히면 답이 없다.
빨리 이곳에서 빠져나가야 한다.
대규는 있는 힘을 다해 내려앉고 있는 녀석의 입천장을 발로 차올렸다.
빠악!
입천장에 정확히 작렬하는 발차기.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괴로운 듯 녀석이 이상한 비명을 질렀고 대규는 그 틈을 타 주둥이 밖으로 무사히 빠져나왔다.
그리고 사슬 검날을 녀석의 얼굴을 향해 휙 휘둘렀다.
검날 끝부분이 줄 달린 쇠갈고리처럼 녀석의 눈 바로 아래 살에 박혔다.
녀석이 다시 한 번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살점에 단단히 박힌 사슬 날에 의지해 대규는 녀석의 얼굴을 기어 올라갔다.
곧 눈 밑까지 성공적으로 기어 올라갔다.
사슬 검날 끝에는 녀석의 눈 아래쪽에서 뜯겨 나온 불그죽죽한 살점이 붙어 있었다.
‘생선 부위 중엔 눈 밑 살이 가장 맛있는 부위라던데…….’
회 중에서도 가장 비싼 부위가 눈 밑 살이었다.
녀석의 눈 밑 살은 맛있을까?
‘지금 이 상황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저 앞에 녀석의 아가미가 벌어진 틈이 보였다.
대규는 다시 한 번 그 틈을 향해 사슬검을 휘둘렀다.
화르륵- 서걱!
사슬검의 화염들이 날아가면 아가미 틈으로 삐져나온 분홍빛 촉수들을 베어 버렸다.
촉수들이 죽어 버린 걸 확인한 후 대규는 아가미 틈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 안쪽에는 기포들을 끊임없이 생성하며 숨을 쉬고 있는 거대한 붉은빛의 아가미 속살이 보였다.
아가미 속살들은 겹겹이 접혀 있었으며 물결에 따라 출렁이고 있었다.
‘이곳이 녀석의 약점이다. 바로 해치워 주지.’
대규가 사슬검을 들어 아가미를 찌르려는 순간,
휘리릭-
겹겹의 아가미들이 선풍기 날개처럼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회전하는 아가미들은 사슬 검날을 튕겨 버렸다. 엄청난 회전력이었다.
‘쉽게 되는 게 없군!’
대규는 사슬검을 다시 한 번 치켜들며 외쳤다.
“힘이여, 솟아라!”
온몸의 근육들이 꿀렁이며 힘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대규는 사슬검을 다시 한 번 들고 모터처럼 빠르게 회전하는 아가미들에 사슬날을 있는 힘껏 밀어 넣었다.
검신 주변에 새카만 화염들이 화르륵 피어올랐다.
푸슉-!
화르르륵-
“으왓!”
저도 모르게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가미들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기 때문이다.
붉은 피가 대규의 온몸을 적셨다. 온몸에 비릿한 냄새가 배고 있을 즈음 바깥에서 다곤의 괴상한 비명이 다시 한 번 들렸다.
기우뚱-
대규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아무래도 녀석의 몸이 서서히 쓰러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외계인 다곤을 물리쳤습니다.]
[높은 양의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마나를 1,000 흡수하였습니다.]
[레벨이 20단계 상승했습니다.]
‘20단계?!’
금방 오를 거라곤 생각했지만, 막상 겪으니 얼떨떨했다.
대규는 상태창을 불러봤다.
“흐아아…….”
입에서 저도 모르게 신음이 터져 나왔다.
김대규(세미데우스)(징표 모두 획득)
Lv. 41(21.00%)
생명력 5,090/5,090
마나 1,275/1,275
근력 188
민첩 175
지능 175
운 10(+5)
권위 28(+3)
사용 가능한 스탯 포인트: 68
레벨 41에 사용 가능한 스탯 포인트가 68!
거짓말 같았다.
‘수련 시간은 이제 막 30분이 흘렀는데 벌써 레벨이 40이 넘다니!’
넋 놓고 상태창을 바라보고 있는데 눈앞에 뭔가가 두둥실 떠올랐다.
겹겹이 층을 이루며 붙어 있는 선홍빛 아가미 층.
방금 대규가 없애 버린 다곤의 아가미였다.
하지만 그가 없애 버린 아가미는 거의 인간 크기 정도로 컸는데 이 아가미는 손바닥만 한 것이 아주 귀여웠다. 그리고 그 징그러운 선홍빛 촉수들도 없었다.
‘아이템인가?’
대규가 아가미를 바라보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다곤의 아가미의 정수(전설)]
[어인 외계인족의 두목 다곤의 아가미. 오직 물속에서만 착용할 수 있는 탈부착 가능한 아이템으로 경동맥에 착용하면 액체 속에서 자유자재로 숨을 쉴 수 있다. 또한 물속에서 착용 시 적에게 공격을 받으면 아가미들이 지닌 촉수가 튀어나와 상대방을 공격한다. 또한 착용 시 온몸이 다곤의 비늘로 뒤덮여 공격력과 물리 방어력이 각 50%씩 상승한다.]
이 아가미를 착용하면 공략집이 제공해 주는 버블막이 없어도 물속에서 자유롭게 전투를 벌일 수 있다.
지금 공략집의 버블막은 20분밖에 지속하지 않는다는 시간적 압박이 있었는데 이것만 있다면 만사 오케이.
게다가 물속에서란 옵션이 붙긴 하지만 어쨌든 이 아가미를 착용하면 몸에 비늘이 뒤덮여 공격력과 물리 방어력도 상승한단다.
마침 버블막의 사용 시간도 다 끝나 가고 있는데 한번 사용해 볼까.
대규는 다곤의 아가미를 메시지창 설명에 나온 대로 경동맥 근처에 갖다 댔다.
척!
“아얏!”
따끔한 느낌이 들었고 아가미가 대규의 목에 꽉 들러붙었다.
‘이거 괜찮은 건가?’
이상하다 싶어 아가미를 떼어 보려고 했지만, 강력 접착제라도 붙인 듯 아가미는 완전히 목에 들러붙어 버렸다.
스스스…….
아가미가 목 속으로 서서히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대규의 목 살갗에는 생선 아가미처럼 벌어진 틈이 생겨났다.
틈 속으로 손가락을 넣어보니 다곤의 아가미처럼 겹겹이 접혀 있는 아가미 층이 느껴졌다.
어느새 코로 숨을 쉬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몹시 자연스러웠다.
목 안으로 바닷물이 들어갔지만, 곧 상쾌한 산소가 공급됐다.
아가미가 움직이면서 뽀글뽀글 작은 기포를 발생시키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건 뭐야?’
대규는 황금 눈물 갑옷 밖으로 드러난 자신의 손등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자신의 피부가 초록빛을 띠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손등에는 생선 비늘 같은 게 잔뜩 돋아나 있었다.
‘이것이 다곤의 비늘?’
손등을 만져 보니 몹시 단단했다.
이래서 방어력이 상승한다는 거구나. 물론 푸르뎅뎅해서 비주얼은 썩 보기 좋아 보이진 않았다.
‘얼굴도 녹색이려나. 완전 외계인 같겠군.’
대규는 헤엄을 쳐서 바다 바깥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왠지 아까보다 헤엄을 치는 게 더 수월해진 것 같았다. 이것도 아가미의 효과일까?
‘그거보다 분신은 얼마나 졸개 녀석들을 해치웠을까?’
바닷속으로 들어온 이후 분신으로 인해 레벨이 3 정도 올랐다. 하지만 그 이후부턴 레벨이 올랐다는 메시지창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마 분신이 딥원을 30마리 정도 해치우고 시간이 다 돼 사라졌거나 능력이 다해 사라졌을 것이다.
대규의 분신이라지만 능력은 50% 다운된 상태니까 말이다.
‘뭐, 상관없잖아. 녀석들이 남아 있으면 올라가서 다 잡아 버리면 되지.’
현재 자신의 레벨은 41. 딥원 녀석들 정도는 껌이다.
저 멀리 수면이 보였다.
“푸핫!”
수면 밖으로 나오자마자 목에 붙어 있던 아가미는 사라졌다. 콧속으로 차가운 공기가 들어왔다.
어느새 아곤의 아가미는 자신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저 멀리 남아 있는 딥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녀석들은 해안가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는데 머릿수를 헤아려 보니 대충 수십 마리 정도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대규는 녀석들을 향해 사슬검을 휘두르려고 했다.
그때였다.
해안가의 딥원들이 저희끼리 눈짓을 교환하기 시작했다.
공략집에 나온 텔레파시 스킬을 쓰려는 것 같았다.
‘호오, 자기들끼리 전략을 구사해 보겠다 이거지. 하지만 소용없다.’
이미 자신에게 녀석들은 껌보다도 시시한 존재일 뿐이었다. 레벨 업을 위한 제물들이라고나 할까.
“덤벼랏!”
대규는 사슬검을 들고 녀석들에게 달려갔다.
타타탓.
하지만 예상과 달리 녀석들은 덤벼 오지 않았다.
얼마 후 대규는 달려가던 발걸음을 멈췄다.
녀석들이 오히려 그를 보고 무릎을 꿇기 시작한 것이다.
“갸으윽…….”
녀석들은 이제 고개까지 숙이고 있었다. 꼭 영웅들이 판테온의 신들을 대할 때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