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8
178화 신체 강화 (2)
아스클레피오스가 말을 이었다.
“그대의 육체는 분명 멸종된 청동시대 인간의 육체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어떻게 된 건지 나조차도 혼란스럽군. 어쩌면 이것이 그대의 놀라운 능력과 연관이 있는 것 같기도 한데… 자세한 건 잘 모르겠다.”
그 말을 들은 대규의 머릿속에 한 생각이 퍼뜩 스쳐 지나갔다.
‘혹시 공략집이 내 육체와 무슨 연관이 있는 것 아닐까?’
대구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놀라운 능력을 지닐 수 있었던 건 다 공략집 덕분이었다. 만약 공략집이 자신의 육체와 연관이 있는 거라면…….
하지만 어떤 식으로 연관이 있는지는 전혀 모르겠다. 모든 게 아리송한 것투성이였다.
그러자 아스클레피오스는 대규에게 말했다.
“뭐가 어찌 됐든 그대는 내 부탁을 들어줬으니 나도 약속을 지키도록 하겠다. 신체 강화 수술을 지금 당장 시작하지.”
그는 대규에게 등 뒤를 보인 채 엎드리라고 했다.
대규가 수술대 위에 엎드리자 아스클레피오스는 그의 옷을 벗겨냈다. 곧 차가운 그의 메스가 등에 닿았다.
메스가 등 위의 피부를 따라 움직였다. 하지만 고통은 전혀 없었다.
그때 대규는 신체 강화 수술의 원리가 문득 궁금해졌다.
‘수술 한 번으로 레벨을 쉽게 올릴 수 있게 된다니, 그야말로 꿈같은 일 아닌가?’
“대체 무슨 원리로 수술 한 번에 레벨을 급격히 올릴 수 있는 겁니까?”
대규가 묻자 아스클레피오스는 나지막이 말했다.
“말해 줘도 이해가 잘되진 않을 걸세. 쉽게 말하면 그대의 중추신경들을 조작해서 신경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경험과 감각을 극대화시키는 걸세. 자극과 감각, 경험을 받아들이는 건 결국 신경들이니까 말일세.”
“흐음…….”
“따라서 일반인의 신경이 10의 경험치로 받아들이는 걸 자세의 신경은 100의 경험치로 받아들여진다는 거야. 대충 이해가 가는가?”
“알 것 같습니다.”
신체 강화 수술은 일전에 영웅들과 함께 받았던 수술보다 시간이 훨씬 더 걸리는 수술이었다.
아무래도 그때 그 수술은 일시적인 효과만 내는 거라 그랬던 것 같았다. 그게 간단한 시술 정도였다면 이건 확실히 본격적이 수술 느낌이 났다.
20분 정도 지나자 아스클레피오스가 말했다.
“다 됐네. 이제 일어나도 돼.”
대규는 수술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의 몸은 전혀 변한 게 없었다. 몸이 가벼워지거나, 힘이 솟아나거나 하지도 않았다.
“다 된 거 맞습니까?”
의심스러운 목소리로 묻자 아스클레피오스가 대답했다.
“그래. 뭐라도 싸워서 경험치를 획득해 보면 알게 될 거야.”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규가 수술대에서 일어나 천막 밖으로 나가려 하자 아스클레피오스가 한 번 더 당부했다.
“이 수술에 대해선 엄격하게 비밀로 하게. 그럼 뒤탈은 없을 거야. 전에도 말했듯이 제우스 님은 이 수술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거든. 형평성에 어긋난다나…….”
대규가 고개를 끄덕였지만 아스클레피오스는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그래도 나름 의술의 신인데 수술을 마음대로 할 권리는 줘야 하는 것 아닌가! 맨날 거인 녀석들 몸이나 해부하고 있으니 내 신세가 불쌍하게 느껴지는군.”
구시렁거리는 그를 뒤로하고 대규는 마침내 천막을 나왔다.
천막을 나와도 몸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 수술의 효과를 한번 시험해 보고 싶은데…….’
하지만 이곳은 아군의 주둔지. 처치할 만한 몬스터가 있을 리 만무했다.
천막을 나오자 주둔지 중앙에선 승리의 연회가 한창이었다.
다들 승리의 기운에 취해 양껏 마시며 떠들고 있었다. 그 틈에서 유난히 조용하게 음식을 먹는 지영의 모습이 보였다.
대규는 그 옆에 가서 앉았다.
“어디 갔다 오셨어요?”
지영이 그에게 물었지만, 그는 대충 바람을 좀 쐬고 왔다고 둘러댔다. 그리고 그녀가 더 이상 묻지 못하게 은근슬쩍 화제를 돌렸다.
“망토, 정말 유용한 아이템이더군요.”
“감사합니다.”
확실히 그랬다.
대규는 망자들과 싸울 때 그녀의 망토가 했던 활약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망자들이 그녀에게 접근이라도 할라치면 망토는 파도 모양으로 물결치며 그들을 몰아냈다. 망토는 꽤 충성스러운 호위무사처럼 그녀를 지켰다.
꼭 지난번 전투에서 온몸을 다해 그녀를 지켰던 오크 대장군 가로쉬가 떠오를 정도였다.
그런데 망토는 전투를 겪고서도 전혀 해지거나 하지 않았다. 역시 신묘한 망토였다.
“다음 전투가 마지막이라는군요.”
지영이 대규에게 말했다.
“네. 그렇다는군요.”
“…그럼 이제 대규 장군님이랑 만날 일도 없겠네요.”
그녀의 얼굴에 약간 서운한 기색이 깃들었다.
하긴, 이 전투가 끝나면 이곳에 소환될 일은 없겠지.
‘솔직히 말하면 현실에서 마음만 먹으면 그녀를 만날 수는 있었다. 하지만 굳이 그래야 할까?’
지영과의 접점은 이 세계에서 겪은 전투들뿐이다. 현실에서 만난다 해도 거기서 서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차원의 틈 시절부터 알고 지내서 그런지 꽤 서운하긴 하네.’
대규는 말없이 앞에 차려진 음식을 먹었다.
연회의 음식들은 판테온의 음식이라 그런지 맛이 아주 기가 막혔다.
하지만 음식을 먹은 뒤에 딱히 할 일이 없었다.
헤르메스의 두 아들 실레노스와 판은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며 영웅들과 아군의 사기를 돋우고 있었지만, 대규의 눈엔 그 모습이 몹시 징그러워 보였다.
다른 인간 영웅들은 술을 마시고 적당히 취해 기분이 좋아 보였다. 하지만 세미데우스가 된 대규는 웬만한 양의 술을 마셔도 취기가 오르지 않았다.
‘이런 건 좀 단점이구만.’
빨리 현실로 돌아가서 쉬고 싶었지만, 헤르메스 역시 연회를 즐기고 있었다.
신인 그가 현실로 돌아가도 된다고 허락하기 전까진 갈 수 없었다.
꼭 회식에서 빨리 나가고 싶지만, 윗사람 눈치를 보고 못 빠져나가는 신입사원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흠, 이렇게 된 거 현실에서 할 일을 그냥 여기서 하자.’
대규가 현실로 돌아가서 제일 처음 하려고 했던 것은 공략집 업데이트였다.
분명 다음 공략집 업데이트 비용은 골드 젬스톤 3개였다.
저번에 업데이트하고 싶었지만 젬스톤이 딱 2개밖에 없어서 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이번에 히폴리토스를 해치우고 받은 골드 젬스톤은 4개.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골드 젬스톤은 총 6개다.
공략집을 업데이트하고도 3개가 남았다.
공략집을 업데이트하기로 결심하자 눈앞에 공략집의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업데이트시키려면 골드 등급 젬스톤 3개가 필요합니다. 사용하시겠습니까? Yes/No>
Yes.
<공략집이 성공적으로 업데이트됐습니다.>
<다음 단계로 업그레이드하려면 골드 등급 젬스톤 30개가 필요합니다.>
예상은 했지만… 골드 등급 젬스톤 30개라니.
골드 등급 젬스톤은 높은 지위에 있는 거인 대장 기간테스를 해치워도 겨우 1~2개 정도 떨어질 뿐이었다.
현재 자신이 갖고 있는 골드 젬스톤은 3개.
다음번 업데이트를 위해선 27개가 필요하다. 하지만 미다스의 손을 지니고 있으니 실질적으로 얻어야 하는 젬스톤은 13.5개, 즉 14개다.
‘그런데 기간테스는 이제 한 마리만 남았다고 하지 않았나? 그럼 기간토마키아는 이제 끝이고…….’
그렇다면 이번 업데이트가 실질적으론 마지막 업데이트가 되는 걸까.
뭔가 시원섭섭하고 아쉬운 마음이 살짝 들었다.
마치 엔딩이 얼마 남지 않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기분이었다. 제우스로부터 최후의 전투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그런 기분이었다.
‘그것보다 이번 업데이트 능력은 뭘까? 아마 바로 알 수는 없겠지.’
다른 건 몰라도 전에 헤라클레스가 열어 줬던 무한의 격투장 같은 장소를 열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장소라면 마음껏 수련해서 레벨을 빨리 높일 수 있으니까 말이다.
대규는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받은 수술 효과를 되도록 빨리 시험해 보고 싶었고, 세미데우스 한계 레벨도 되도록이면 빨리 돌파해 신의 육체를 얻는 시련을 겪고 싶었다.
‘최후의 결전 전에 신의 육체를 얻고 전투를 한다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게다가 전쟁이 끝난 후 신의 육체를 얻으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다음 소환은 언제쯤일까?’
여태까지 세 달에 한 번 소환됐던 것과 달리 제우스의 말에 의하면, 다음 최후의 결전은 랜덤한 날에 소환된다고 했다.
‘치사하긴. 적어도 날짜는 알려 줘야 만반의 준비를 하지.’
그때 놀라운 메시지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업데이트된 기능으로 사용자가 홀로 수련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합니다.>
<수련 장소를 선택해 주십시오.>
‘뭐야, 이건?’
대규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 모습을 본 옆자리의 지영이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대규는 평정심을 되찾고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창을 가만히 응시했다.
메시지창은 연달아 떠올랐다.
<차원의 틈 / 타르타로스 / 하데스의 지옥 / 카르케르(Carcer) / ??? / ???>
<사용자의 레벨이 높아질수록 상위의 수련 장소들이 개방됩니다.>
<수련 장소를 선택하시면 그곳으로 이동하는 포탈이 열립니다.>
‘저 장소 중에 선택하면 저곳으로 바로 이동하는 건가.’
‘???’라고 적힌 곳은 아무래도 지금 대규의 레벨로는 갈 수 없는 곳인 것 같았다.
대규는 창에 적힌 장소들을 주시했다.
차원의 틈과 타르타로스, 그리고 하데스의 지옥은 그가 겪어 본 곳이었다.
하지만 네 번째에 적혀 있는 카르케르는 달랐다.
그곳은 아테나 여신에게 이름만 들어 본 곳이었다.
대규는 지난번 전투 때 아테나 여신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거인들의 지하 감옥 카르케르(Carcer)에서 빼내 온 괴수들인 것이다. 그곳에서 괴수까지 빼내 올 정도면 포르피리온 녀석도 전력을 다한다고 봐야겠지.’
‘그건 저들 거인들 세계에선 우리 저승의 지옥 같은 곳이다. 하지만 녀석들의 그곳엔 온갖 징그럽고 추잡하게 생긴 것들이 존재하지.’
거인들의 지옥도 수련 장소의 대상이란 건가.
아테나 여신의 말에 의하면, 그곳은 크툴루를 비롯한 온갖 이종족이 갇혀 있는 곳 같았다.
그곳에서 녀석들을 해치우면 한계 레벨을 빠르게 돌파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수술의 효과를 시험하는 건 물론이고 말이다.
대규는 녀석 중 나름 보스 몬스터였던 크툴루를 해치웠을 때 자신의 레벨이 2단계 상승했다는 걸 떠올렸다.
‘지금의 상태라면 크툴루에 필적하는 녀석을 한 마리 해치우면 레벨이 20단계 상승한다!’
다른 수련 장소들의 경우 이미 겪은 곳이었고, 지금 대규가 가기엔 너무 수준이 시시했다.
차원의 틈과 타르타로스에서의 기억들은 벌써 까마득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럼 지금 당장 저 카르케르란 곳으로 가자. 빨리 한계 레벨에 도달해 신의 육체를 얻는 시련에 도전하는 거야.’
대규는 슬그머니 연회석을 빠져나왔다.
다들 연회의 즐거움에 빠져 있어서 대규의 행동을 주시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오직 지영만 빼고 말이다.
‘대규 장군님이 대체 어딜 가는 거지?’
지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멀찌감치 떨어진 채 대규를 가만히 따라갔다.
대규는 주둔지에서 사람들이 없는 한적하고 외진 곳으로 갔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뒤 공략집을 작동시켰다.
<수련 장소를 선택해 주십시오.>
대규는 카르케르를 선택했다.
지이잉-
그러자 그의 눈앞에 포탈이 열렸다.
포탈의 안쪽은 컴컴한 암흑이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망설임 없이 포탈 안으로 발을 디뎠다.
그의 몸이 쑥 들어가자마자 포탈은 순식간에 닫혀서 사라졌다.
지영은 멀리서 숨어 그 모습을 지켜보다 대규가 사라진 곳으로 달려갔다.
포탈과 대규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어떻게 된 거지? 세미데우스니까 판테온이라도 간 걸까?’
하지만 판테온에 가려면 차원의 열쇠가 필요했다. 그건 세미데우스인 그녀 자신도 잘 아는 사실이었다.
대규는 분명 차원의 열쇠는 꺼내지도 않았다.
정말 알 수 없는 점투성이였다.
잠깐 동안 그곳에 서 있었지만, 대규는 돌아오지 않았다.
지영은 결국 연회가 열리는 장소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