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7
177화 신체 강화 (1)
대규는 백색 상자를 열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상자는 열리지 않았다.
바라봐도 방금 전 헤르메스가 받은 상자를 봤을 때 떠올랐던 메시지창만 떠올랐다.
<본 아이템은 신의 육체를 얻은 자만이 확인할 수 있는 아이템입니다. 본 아이템에 대한 설명을 열람하려면 우선 신의 육체를 얻어야 합니다.>
제우스는 미소를 지으며 대규에게 말했다.
“아쉽게도 이 아이템은 그대가 신의 육체를 얻어야지 비로소 얻게 되겠구나.”
그는 영웅들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그럼 나는 이만 떠나도록 하지. 다음번 소환 땐 모든 부대가 함께 참여하는 최후의 전투가 있을 것이다. 소환 시기는 랜덤하게 정해질 것이다. 그때까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거라. 그럼 이만.”
말을 마친 제우스는 자신의 애완 독수리와 함께 지휘사령부의 천막을 나섰다.
대규는 기분이 멍해졌다.
‘정말 세미데우스의 한계 레벨을 돌파하지 않으면 신의 육체를 얻는 시련은 견뎌 낼 수 없는 것일까?’
‘제우스가 저렇게 말할 정도니 그런 거겠지. 그것보다 한계 레벨은 대체 어느 정도인 거지?’
상태창을 불러봤다.
김대규(세미데우스)(징표 모두 획득)
Lv. 17(84.00%)
생명력 3,890/3,890
마나 1,005/1,035
근력 164
민첩 151
지능 151
운 10(+5)
권위 28(+3)
사용 가능한 스탯 포인트: 20
세미데우스 옆에 징표 모두 획득, 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무래도 세 개의 징표를 모았다는 뜻 같았다.
세미데우스라 적힌 글자를 누르자 공략집의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신의 육체를 얻기 위해선 한계 레벨 50에 도달해야 합니다.>
이럴 수가. 아직도 33단계나 남았다.
더욱 기가 막힌 점은 저번 전투에 이어 기간테스를 두 명이나 해치웠는데도 현재 자신의 레벨이 17이란 점이다.
이제 남은 커다란 전투는 최후의 전투 하나.
그 전투엔 모든 신과 부대들이 한꺼번에 참여한다고 했다.
‘하지만 마지막 전투에서 과연 자신이 한계 레벨까지 올릴 수 있을까?’
자신보다 실력이 뛰어난 신들도 대거 참여하는데 말이다.
‘어떡해야 하지?’
고민할수록 신의 육체를 얻고 싶은 갈망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역시 한 가지 방법밖에 없는 것 같았다.
대규는 헤르메스를 바라보며 물었다.
“지금 아스클레피오스 님은 어디 계십니까?”
그러자 그는 심드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마 자신의 천막에서 취미생활에 몰두해 있겠지.”
아무래도 전에 대규를 포함한 영웅들이 수술을 받은 그 천막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취미생활이란 건 대체 뭘까?’
어쨌든 대규는 지휘사령부의 천막에서 나와 아스클레피오스가 있는 천막으로 향했다.
천막 입구를 가리고 있는 천을 손으로 열고 들어가며 말했다.
“계십니까?”
그런데 아스클레피오스는 대규가 들어온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수술대 옆에 서서 뭔가를 하고 있었다.
수술대 위에는 엄청나게 커다란 몸뚱이가 누워 있었다.
자세히 보니 좀 전의 전투에서 대규와 영웅들이 쓰러뜨렸던 히폴리토스의 시체였다.
심지어 수술대에 올라와 있는 부분은 전신이 아니라 녀석의 토막 난 상체, 정확히는 명치 부위였다.
‘대체 저걸 어떻게 여기로 옮겨 온 거지?’
그때 대규의 인기척을 듣고 아스클레피오스가 고개를 들었다. 그는 대규를 발견하고는 반색을 하며 반겼다.
“오오, 그대가 온 줄도 몰랐군. 나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결정한 거냐?”
대규는 대답 대신 히폴리토스의 토막 난 시체를 바라보며 그에게 물었다.
“대체 지금 이 녀석을 갖다가 뭘 하고 계신 겁니까?”
그러자 아스클레피오스는 흥분에 번뜩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 이거 말인가? 흐흐…….”
그는 기분 나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헤르메스에게 들어 보니 이 녀석은 외계 종족인 크툴루 괴물과 신체 융화를 했다고 하더군. 단순히 기계처럼 합체, 분리한 것이 아니라, 세포, 유전자 단위로 융화한 것 같아서 말이야. 그러니까 이런 융화가 혹시 의술로도 가능한 게 아닌가 싶어서 살펴보고 있는 중이다. 잠깐만 거기서 기다리고 있게. 곧 끝날 것 같으니.”
그는 메스를 든 채 사체를 이리저리 뒤적이며 집중하는 표정을 지었다.
완전히 집중해 있는 모습은 꼭 옛날에 봤던 대장간의 신 헤파이스토스가 무기를 만드는 모습과 비슷했다.
단 한 가지 헤파이스토스와 다른 점이 있다면 저 아스클레피오스란 신은 변태같이 흥분한 눈빛으로 시체를 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오, 좋아……! 이거 엄청난걸!”
저런 추임새는 덤이다.
‘의술의 신이라지만 여러모로 기분 나쁜 양반이라니까.’
대규는 이렇게 생각하며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아스클레피오스는 끼고 있던 장갑을 벗으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걸 잘 이용하면 다른 종의 육체끼리 유전자를 섞어서 더욱 강해질 수 있는 수술을 할 수도 있겠군. 어쩌면 엄청난 발견이 될지도……!”
그는 이제 대규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리 와서 이 녀석의 시체 처리를 좀 도와주겠느냐?”
대규는 수술대로 다가갔다. 수술대 위에선 비릿한 피 냄새가 잔뜩 풍겼고, 저도 모르게 코를 틀어막았다.
“뭘 어떻게 하면 됩니까?”
“이 녀석의 시체는 이제 더 이상 볼일이 없다. 평원에 던져 주면 까마귀들의 한 계절 먹잇감 노릇을 톡톡히 하겠지. 저기 저 자루에 담아 주면 된다.”
대규는 수술대 위에 있는 히폴리토스의 몸을 바라보았다. 아스클레피오스의 메스로 사정없이 난도질당한 흔적 외에도 다른 것들이 보였다. 바로 휑하니 뚫린 명치와 심장 부위.
‘내가 이 녀석을 저렇게 만들었다니…….’
방금 전의 일인데 몹시 옛날 일처럼 느껴졌다.
자루에 시체를 넣자 아스클레피오스가 다가와 말했다.
두 손바닥을 찰싹 붙이고 비비면서 무지 흥분한 눈빛을 한 채였다.
“그래… 내 부탁을 들어주기로 결정했나 보구나. 어디 보자… 징표는 세 개 모두 다 모았고, 아하! 역시 한계 레벨이 문제였구만그래.”
“…그렇습니다.”
“흐흐흐. 자네는 현명한 선택을 한 거야. 세미데우스가 한계 레벨에 다다르는 건 아주 힘든 일이지.”
“그런 것 같습니다.”
그는 새로운 수술용 장갑을 손에 끼며 말했다.
“먼저 자네의 신체를 해부해 열람할 기회를 주게. 그렇게 한 후에 신체 강화 수술을 해 주겠네.”
대규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그에게 확답을 받기 위해 질문했다.
“정말로 그 수술을 받으면 한계 레벨이 도달하게 되는 겁니까?”
그러자 아스클레피오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정확히는 그 수술을 받자마자 한계 레벨에 도달하는 게 아니야. 신체 강화 수술은 자네의 레벨 올리는 속도를 비약적으로 빠르게 만들어 주는 수술이지. 자네 말이야, 저 자루에 든 녀석을 해치우고 얼마나 레벨이 상승했지?”
“5단계 올랐습니다.”
그러자 아스클레피오스는 씩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저 녀석을 해치웠는데 고작 5단계라니… 정말 노가다가 따로 없군. 그것도 무지 지독한 노가다 말일세. 안 그런가? 하지만 이 수술을 받게 되면 똑같은 전투를 치렀을 때 단번에 레벨이 50단계는 상승하게 될 거야. 지금 오르는 것보다 열 배 정도 빠르게 오른다고 보면 되네.”
그 말을 들은 대규의 눈동자가 커졌다.
아스클레피오스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앞으로 기간토마키아 전투는 한 번 남았지? 최후의 결전 말일세.”
“그렇습니다.”
“이 수술을 받고 그 최후의 결전에 참여한다면… 어디 보자, 자네 실력이라면 한계 레벨에 도달하는 건 일도 아니겠지.”
확실히 그렇다.
앞으로 한계 레벨인 50이 되기 위해선 33단계의 레벨 업이 필요한 상태다.
지금 상태론 까마득하지만, 수술을 받게 되면 현재 수준에서 레벨 3단계를 올리는 노력만 해도 30단계가 훌쩍 상승한다.
‘그 정도면 해볼 만하다. 단 한 번의 전투에서도 레벨 업을 할 수 있을 거야.’
대규는 곧 결심한 듯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수술을 받겠습니다.”
“좋았어! 그럼 이리로 오게.”
그는 수술대를 가리켰다.
방금 전까지 히폴리토스의 시체가 누워 있었던 그 수술대였다.
비릿한 피 냄새가 났지만, 대규는 그 위에 누웠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져서 신났는지 흥흥, 콧노래까지 부르며 수술용 메스를 들고 다가왔다.
손가락 사이사이마다 각기 다른 메스를 끼고 있는 그의 모습은 꼭 영화에 나오는 울버린처럼 보이기도 했다.
물론 대머리에 퀭한 눈빛을 지닌 병든 울버린의 모습이다.
“금방 끝날 거야. 일단 숨을 크게 들이키게. 안 그러면 마취가 안 돼서 괴로운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그런 상황을 원하진 않겠지? 흐흐…….”
“알겠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숨을 내쉬면서 속으로 숫자를 10까지 세면 돼.”
전신마취와 비슷한 효과인 것 같았다.
솔직히 적어도 의식이 남아 있길 바랐다. 자신이 잠든 사이 누군가가 자신의 몸을 마음대로 들여다본다는 건 왠지 모르게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그 대상이 아무리 의술의 신이라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대규는 그의 지시대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후으읍.
그리고 천천히 내쉬면서 속으로 숫자를 셌다.
10… 9… 8…….
점점 의식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보이지도 않았다.
그렇게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번쩍!
대규의 눈동자가 떠졌다.
눈을 뜨니 아스클레피오스가 자신을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이마와 반질반질한 머리통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대규는 그를 보며 입을 열었다.
“다 끝난 겁니까?”
“그, 그래… 그렇다네.”
‘왜 저렇게 그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는 거지?’
심상치 않은 기분에 대규는 그를 향해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뭐가 잘못됐습니까?”
설마 공략집을 발견한 건 아니겠지?
하지만 이내 자기 생각이 너무 바보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걸 어떻게 해부한다고 발견하겠냐. 뇌에 칩 같은 형태로 끼워져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여전히 아스클레피오스는 대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약간 겁에 질릴 것 같기도 했다.
얼마 후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네 말이야… 대체 정체가 뭔가?”
“예?”
그는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분명 인간은 인간인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말도 안 돼…….”
저렇게 중얼거리니까 더 수상하고 찜찜했다.
대규는 아스클레피오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대체 왜 그러시는 겁니까? 제발 알려 주십시오!”
“알겠네…….”
아스클레피오스는 심호흡한 뒤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자네의 육체는 분명 인간의 육체야. 판테온의 시련을 통해 세미데우스가 됐지만, 그 근본은 분명 인간의 육체란 말일세. 그런데 일반적인 인간의 육체는 또 아니야.”
“예?”
“자네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 이건 정말 말도 안 되지만, 자네의 세포는 판테온의 흙과 똑같은 성분이란 말일세.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내 몸이 판테온의 흙으로 구성돼 있다고?’
대규 역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스클레피오스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 판테온의 흙으로 만들어진 인간들은 최초의 인류였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판테온의 신들에게 벌을 받아 몇천 년 전 ‘청동시대’의 대홍수로 다 멸종했을 텐데…….”
점점 혼란스러워졌다.
청동시대의 대홍수라면 대규도 뭔지 알고 있었다.
신화 지식을 쌓기 위해 책을 읽었을 때 본 내용이었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인간 종족의 시대를 황금시대, 은시대, 청동시대, 철시대 등으로 구분했다. 황금시대와 은시대엔 판테온 신들이 인간들과 함께 세상에서 같이 살았다.
하지만 청동시대에 들면서 인간들은 마음이 몹시 고약해져 무기를 만들어 서로 싸우기 시작했고, 세상엔 고통과 한숨이 그칠 날이 없었다.
이에 판테온의 신들은 대홍수를 일으켜 사악한 인간들로 넘쳐나는 청동시대를 끝내고자 했다.
그리고 철의 시대가 도래해 새로운 인간 종족이 태어났고, 그 인간들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이끌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청동시대의 홍수 이야기는 성경에서도 나왔다. 선사시대의 홍수 이야기라고. 그 유명한 노아의 방주도 저 홍수 이야기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그게 신화 속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단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