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8
168화 일본 시장 (5)
최종적으로 신지 양꼬치는 신주쿠 가부키쵸 식당 골목에, 탕꼬는 오모테산도에 입점하기로 했다.
탕꼬의 경우 대규가 구라타 사장과 벌였던 요리 대결 시 만들었던 가이세키 요리를 참고했다. 일본인들이 좋아하도록 요리에 일본풍을 좀 가미하기로 했다는 말이다.
그리고 롯뽄기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굴라를 입점하기로 계획했다.
롯뽄기는 번화가이면서도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나름 형성돼 있어 그곳에 굴라가 들어가는 것도 꽤 나쁘지 않다는 판단에서였다.
중국에서의 식당들이 드디어 오픈할 준비를 끝마쳤다.
현지 교육은 다 마친 상태였고, 이제 최종적으로 베이징의 번화가에 탕꼬와 신지 양꼬치, 그리고 레스토랑 굴라가 오픈하게 됐다.
얼마 후, 대망의 오픈 일이 다가왔다.
대규는 자신의 첫 해외 지점 오픈을 보기 위해 직접 중국으로 향했다.
모두 다 갈 수 없어서 레스토랑 굴라에만 가기로 했다.
굴라는 탕꼬와 신지 양꼬치에 비해 그 규모도 컸고 투자금액도 많았다.
그리고 장룽차오와 고위 공무원들도 와서 축하해 주기로 했다.
장룽차오에겐 중국 사업 진출에서 핵심적인 도움을 받았다. 아니스 그룹과의 협약 말고도 중국 내에서 사업을 진행할 때 그 덕분에 원활하게 진행되기도 했다.
대규는 택시를 타고 중국에 있는 굴라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중국의 지점은 한국의 청담동 본점보다 훨씬 화려했다. 이곳 지점은 무슨 땅을 한 마지기 장기 임대해서 화려한 저택처럼 지어 놨다.
꼭 중세 유럽의 영지를 보는 것 같았다. 택시를 타고 철재로 만들어진 문을 지나자 커다란 정원이 보였다.
정원에는 여러 종류의 나무들과 꽃들이 피어 있었다. 심지어 중간엔 화려한 양식의 분수대도 보였다. 분수대에선 물이 영롱하게 뻗어 나오고 있었다.
저 멀리 중세풍과 현대식 건축 양식이 어우러진 거대한 건물이 보였다.
영어로 ‘레스토랑 굴라’라고 적혀 있었다.
이것이 대륙의 포스인가.
한국에서도 일이 진행되는 걸 메일과 사진으로 확인했지만, 실제로 보니 그 느낌이 남달랐다.
이곳 중국 지점의 굴라는 정말 유럽의 대저택 같은 느낌이었다.
대규는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곳엔 수십 개의 화환이 들어서 있었다. 화환들이 빽빽이 일렬로 늘어선 모습 역시 장관이었다.
‘레스토랑이 아니라 온실 같군.’
게다가 화환들은 한국 화환들과 좀 다르게 생겼다.
빨간 리본들이 곳곳에 달려 있었고, 그 리본엔 금색 실로 화려하게 자수가 놓여 있었다.
주로 생화를 덕지덕지 꽂아놓은 한국 화환들과 달리 중국 화환들은 죽부인처럼 나무로 엮인 틀에 꽃들을 부착하는 형태였다.
한국 화환만큼 화려하진 않았지만 붙어 있는 꽃들 역시 모두 붉은색이라 눈이 아플 지경이었다.
“중국인들은 빨간 것을 길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귀에 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니 라이펑이 있었다.
전에 대규와 장룽차오의 만남을 주선한 중국의 공무원, 그리고 대규와 같은 능력을 지닌 인간 출신 영웅이었다.
“그런데 저건 뭐죠?”
대규는 카운터의 벽에 부착된 글자를 보며 말했다.
거기엔 한자로 복(福) 자가 거꾸로 적혀 있었다.
그러자 라이펑이 웃으며 말했다.
“중국인들은 복 자를 똑바로 붙여 놓으면 복이 도망간다고 생각해서 일부러 거꾸로 붙여 놓는답니다.”
“그렇군요.”
내부 인테리어 역시 화려했다.
한국의 굴라는 세련된 레스토랑인데 이곳은 웅장하고 중국의 동양스러움과 유럽의 서구 스타일이 뒤섞인, 한마디로 개화기의 콘셉트였다.
대규는 환하게 웃으며 가게 오픈을 기념하는 커팅 리본을 잘랐다.
짝짝짝!
관계자들이 웃으며 박수를 쳤다.
그 틈에 대규를 도와줬던 고위 공무원 장룽차오도 보였다.
대규는 장룽차오를 발견하자마자 다가가서 인사했다.
“장룽차오 님,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자 그는 씩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와야죠. 이 기가 막힌 양갈비 레스토랑의 오픈 일인데… 그동안 이놈의 양갈비 스테이크가 먹고 싶어 혼났습니다. 심지어 꿈에서도 나왔어요.”
역시 미루스 비덴스 고기의 효과는 엄청나다.
그런데 그 옆에 아름답게 생긴 중년 여성이 보였다. 대규가 그녀를 바라보자 장룽차오가 소개를 해 줬다.
“내 와이프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대규가 손을 내밀자 그녀는 악수하며 미소를 지었다.
“호호, 안녕하세요?”
그녀의 팔엔 전에 대규와 준섭이 선물한 명품 가방이 들려 있었다.
그녀는 대규를 보며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가방 잘 받았어요. 너무 예뻐요, 호호. 남편이 당신들을 칭찬하고 음식도 엄청 칭찬하더군요. 아주 기대가 돼요.”
“감사합니다.”
그러자 장룽차오가 뒤에 따라온 몇몇 부부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곳 굴라의 오픈 기념으로 제가 우리 당의 고위 공무원 몇몇을 데려왔습니다. 부부 동반으로요. 솔직히 이 분위기! 여자들도 아주 좋아할 만하지 않습니까?”
“역시 훌륭하십니다. 그럼 안으로 들어가시죠. 특별히 자리를 마련해 놨습니다.”
대규와 장룽차오 부부, 그리고 다른 공무원 부부는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앉게 된 자리는 빨간 테이블보가 놓인 원형의 마호가니 테이블이었다. 테이블 중앙엔 고풍스러운 촛대와 화병이 놓여 있었다.
식당의 총지배인이 다가와 말했다.
“물은 산 펠레그리모로 드리겠습니다. 기본 제공입니다.”
산 펠레그리모면 이탈리아 브랜드의 명품 탄산수였다.
지배인은 깍듯한 태도로 말하며 탄산수를 잔에 부었다. 한국의 매니저들만큼이나 정갈한 분위기였다.
곧 코스 요리가 서빙되기 시작했다.
본사에서 공급한 미루스 비덴스 양갈비 고기와 크림소스, 판테온 콩들로 만들어진 요리였다.
물론 식품의 유통 역시 큰 문제가 없었다.
장룽차오를 포함한 공무원들이 길을 잘 뚫어 준 탓에 유통이 쉬워진 것이다.
곧 본 요리인 스테이크가 서빙됐고, 다들 그것을 먹기 시작했다.
얼마 후 사람들은 감탄 어린 표정을 지으며 리액션을 보이기 시작했다.
“오오… 너무 맛있어!”
“이게 정말 양고기란 말입니까?”
장룽차오는 고기를 썰어 먹으며 외쳤다.
“그래, 이 맛이야! 이 맛이 그동안 얼마나 그리웠는지!”
대규는 그 모습을 보고 씩 웃었다.
그러자 대규 오른편에 앉은 라이펑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음식 맛이 정말 놀랍군요. 역시 대규 영웅님답습니다.”
그러자 장룽차오가 그의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영웅이라구? 하긴, 김대규 사장은 이 정도 음식을 만들어 내면서 이런 레스토랑을 이렇게 우리 중국 땅에 당당히 오픈할 수 있는 기개를 지닌 사람이지. 그 기개는 우리 중원의 영웅호걸들과 맞먹는단 말씀이야!”
“하하하, 그렇군요.”
공무원들은 장룽차오의 말에 동의했다. 그들은 라이펑이 말한 영웅, 이란 단어를 비유적 의미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들이 웃는 사이 라이펑과 대규는 묘한 눈빛을 교환했다.
공무원들이 먹고 마시며 떠들 때 라이펑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규 영웅님,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저는 아주 바쁘게 지냈습니다.”
그에게 일본 진출과 시장조사 등에 대해 간략하게 이야기해 줬다.
대규의 이야기를 들은 라이펑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대단하십니다. 중국에 진출한 지 얼마 안 돼서 일본까지… 이러다가 대규 님이 동아시아를 제패하는 것도 순식간이겠군요.”
“하하, 제패라니… 너무 과분한 찬사이십니다.”
라이펑은 이제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대규 님은 혹시 현실에서 저 말고 다른 영웅을 만난 적이 있으십니까?”
“다른 영웅이요?”
대규는 가만히 생각해 봤다.
아주 옛날에 양아치 건달 최대호 녀석을 만났고, 녀석이 탕꼬를 불태우러 왔던 일 말고는 없는 것 같았다.
뭐, 그 녀석도 제2타르타로스에서 죽어 버렸지만.
“…없습니다. 라이펑 님 말고는요.”
“그렇군요.”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물어보시는 거죠?”
대규가 묻자 라이펑은 주저하는 듯한 태도로 이렇게 말했다.
“대규 님과는 별로 상관이 없겠지만…….”
그의 목소리가 약간 심각해졌다.
“…최근 지구에 있는 인간 영웅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예? 그게 무슨?”
“좋지 않은 마음을 먹고 자신의 능력을 현실에서 남용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그건 그전부터 있었던 일 아닌가요?”
대규가 라이펑에게 되물었다.
또 뭐라고.
당장 옛날 기억만 되짚어 봐도 그런 일은 많았다. 특히 그 최대호 녀석만 해도 자신의 능력을 남용해 못된 짓을 저질렀다. 심지어 영웅이 되기도 전인 후보생 시절부터 말이다.
‘이런 사기 능력을 지니게 됐는데 현실에서 조용히 사는 인간이 이상한 걸지도 모른다.’
그러자 라이펑이 이렇게 말했다.
“홀로 벌이는 단순히 범죄나 뭐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닙니다.”
“예?”
“그런 영웅 몇몇끼리 모여서 영웅 연합을 만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조직적인 일을 벌이려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군요.”
대규는 별 관심이 없다는 듯 말했다.
사실 관심이 없었다.
솔직한 마음으론 그들과 별로 얽히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날고 기어 봤자 그들은 인간 영웅이다. 세미데우스의 육체를 지닌 자신과 질적으로 능력이 떨어진다.
굳이 그들이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 그들이 현실에서 뭘 하든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 연합이란 단체가 자신과 자신의 회사 대규식품을 건들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라이펑은 대규의 목소리에서 그의 속마음을 눈치챘다.
‘하긴, 그자들도 눈치가 있다면 대규 님을 건드리지 않겠지. 이 사람은 인간뿐만 아니라 정령과 기타 등등 종족의 영웅 중에서도 최고의 영웅 칭호를 신에게 받은 사람이 아닌가.’
그때 한 고위 공무원이 대규에게 말을 걸었다.
“김대규 사장님, 중국 진출의 향후 동향은 어떻게 됩니까?”
대규는 그에게 친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광저우와 상해 등 대도시 위주로 진출해 나갈 예정입니다.”
그러자 그가 관심을 보이며 말했다.
“혹시 홍콩특별행정구역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홍콩이요?”
“그렇습니다. 홍콩 특구는 관광객도 많고, 도시 자체가 엄청난 번화가이기 때문에 맞을 것 같은데…….”
홍콩을 잊고 있었구나.
그러자 라이펑도 옆에서 맞장구를 쳤다.
“홍콩도 좋은 곳입니다. 약 9만 9천 개의 크고 작은 음식점들이 있습니다. 전 세계의 음식을 홍콩에서 만나 볼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심지어 비행기를 빼곤 날아다니는 모든 것을 음식으로 만들고, 식탁을 빼고 다리 달린 모든 걸 먹는다는 말이 있을 만큼 홍콩 사람들의 음식 문화는 그 맛과 가짓수에서 세계적인 수준이다.
“흐음…….”
대규도 그 사실은 알고 있었다.
홍콩에서 유명한 음식이 딤섬과 차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대규는 홍콩을 처음 언급한 공무원에게 물었다.
“제 음식이 홍콩 현지인들에게도 메리트가 있을까요?”
그러자 공무원이 말했다.
“대규 사장님은 홍콩 사람들의 식사 문화를 잘 모르시는 것 같군요. 홍콩 사람들은 집에서 식사를 거의 안 한답니다.”
“예?”
그 공무원의 말에 따르면, 대부분의 식당이 아침부터 장사를 한단다. 출근하는 이들은 집 대신 식당에서 아침을 사 먹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침 6시부터 오픈하는 식당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패스트푸드점에서 모닝세트도 많이 사 먹는다고 했다.
‘아침 장사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는데!’
한국에서는 24시간 패스트푸드점이나 해장국집 말고는 아침에 문을 여는 식당이 거의 없었다. 아침엔 준비하고 점심~저녁 장사를 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공무원이 말을 이었다.
“이곳 같은 양갈비 레스토랑은 아침 식사를 제공하기 부담스럽겠지만… 사장님이 따로 운영하시는 양꼬치나 탕수육 치킨은 아침 메뉴를 만들어 팔 수 있지 않을까요?”
맞는 말이다.
심지어 지금 신촌에서 운영하고 있는 테이크아웃 전문 탕꼬를 변형시켜 아침부터 팔 수 있게 만들 수도 있다.
대규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은 아이디어 감사합니다. 검토해 보겠습니다. 한국에 돌아가서 부사장과 함께 상의해 보기로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