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6
166화 일본 시장 (3)
대규는 사장을 똑바로 쳐다봤다.
기름치란 20%가량 지방을 함유하고 있는 갈치꼬리과 어류의 일종이다. 하지만 그 지방의 90% 이상은 사람이 소화할 수 없는 왁스 성분이어서 기름치를 섭취하게 되면 36시간 이내에 설사나 구토 증세를 일으킨다.
참치와 좀 비슷해서 국내의 일부 양심 없는 업자들이 냉동 기름치를 혼마구로, 생참치회라고 속여 팔아 무더기로 적발된 적도 있었다.
냉동 기름치란 얘길 듣자 준섭은 입이 떡 벌어졌다.
사장인 구라타는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외쳤다.
“웃기는군! 우리 가게 음식을 모욕하지 마시오!”
하지만 대규를 말을 이었다.
“만약 이게 정말 참치라면 사장님이 직접 한번 드셔 보시지요. 거기 계신 매니저분도요. 드시고 복통을 일으키지 않으면 인정하겠습니다. 36시간 동안 한 번 지켜보도록 하죠.”
물론 36시간 동안 이곳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당장 내일 한국으로 떠날 예정이었다.
하지만 대규는 일부러 이렇게 말했다. 그들이 저 냉동 기름치를 먹지 않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이 성게알 계란찜도 마찬가지죠. 성게알 색을 보면 이게 얼마나 신선도가 떨어지는 제품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일부러 색이 진한 소스로 그 변색을 가리려고 했지만…….”
“당장 나가시오! 경찰에 신고해 버리기 전에!”
저렇게 요란하게 난리를 치는 걸 보니 찔리는 게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쫄지 않고 이렇게 쏘아붙였다.
“기름치를 수입, 판매하는 게 일본에선 불법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이 가게부터 신고당해야 할 것 같습니다. 경찰에서 이곳을 제대로 조사하게 되면 그땐 뭐라고 말하실지 참으로 궁금해지는군요.”
대규는 말을 마친 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들이 잘못을 인정하면 그래도 넘어가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 되겠다.
‘모 일본 드라마처럼 무릎이라도 꿇려야 할까?’
대규는 매니저 야마모토를 노려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조선인이 아니라 한국인입니다. 일본이 패망하고 독립한 게 70년도 더 지났습니다. 조선인이라고 지칭하는 건 그만두시죠. 나름 격식 있는 일본 식당에서 이런 짓을 벌이다니. 후폭풍이 두렵지도 않으신가 보군요.”
그러자 구라타는 코웃음을 치며 이렇게 응수했다.
“흥! 웃기지 마라. 우리 식당엔 정, 재계뿐만 아니라 사회 각층의 영향력 있는 분들이 오신다. 그리고 그들 역시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지닌 분들이지.”
손님들 마저 우익사상에 물든 사람들만 오는 곳인가.
하긴, 그런 것 같기도 했다. 가게의 손님들은 웅성거리긴 했지, 아무도 대규 일행과 사장을 제지하지 않았다.
오히려 늙은 일본인 남자 둘은 대규를 나무라는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었다.
“조선에서 온 손님 하나가 난리 친다고 우리 가게가 꿈쩍이나 할 것 같으냐?”
구라타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조선인들은 우리 일본이 아니었으면 개화하지 못했을 거다. 기본적으로 열등하기 때문이지. 우리 민족이 더 뛰어난데 감히 일본으로 와서 한류다 뭐다 설치는 꼴 나는 못 본다!”
“웃기는군요.”
“하다못해 요리도 그렇지. 우리 일본 요리가 맛도 뛰어나고 예술성도 좋다. 한국의 비빔밥? 아무렇게나 마구 섞어 먹는 개밥 같은 게 무슨 음식이라고! 보니까 요리 좀 하는 놈인가 본데, 한국인의 요리 실력이면 뭐… 뻔할 테지!”
그 순간 대규의 마음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다른 건 몰라도 자신의 요리 실력을 깎아내리는 건 참을 수 없었다.
“그 말 취소하십시오.”
“조선 애송이, 네 녀석이 조선에선 얼마나 잘나가는 요리사인지 모르겠지만, 그래 봤자지!”
대규는 화를 참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렇군요. 안 그래도 사장님은 가게와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나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가게가 그토록 유명하다고요.”
“그래, 맞다. 나는 몇십 년 동안 이곳에서 위대한 일식 요리를 만들어 왔다! 애송이 주제에 그건 잘 알고 있군.”
사장 구라타의 말에 코웃음을 치며 이렇게 응수했다.
“요리에 자부심 많으신 분이 특정 손님을 상대로 쓰레기 음식을 낸다는 게 참 어이없군요. 그런 마음가짐이라면 당신의 요리 실력도 사실은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겠지요.”
그러자 구라타는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뭐라?! 이, 이 자식이! 네가 요리를 얼마나 잘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요리는 너와 비교하면……!”
“그럼 그렇게 해보지요. 비교해 봅시다.”
“뭐라고?”
“사장님과 제 요리를 비교하자구요. 이 자리에서 직접 요리 대결이라도 펼쳐 보시든지요.”
그러자 구라타는 코웃음을 치며 물었다.
“웃기는군. 내가 왜 너 같은 조선인 애송이와 요리 대결을 해야 하지?”
“그럼 관두십시오. 대신 저도 한국에 가서 이렇게 소문내 주지요. 이곳 사장님이 애송이 한국인과의 요리 대결을 거절했다구요. 사장님이 지니고 계신다는 자부심은 고작 그 정도인 것 같군요.”
그러자 구라타는 테이블을 주먹을 쾅, 치며 말했다.
“흥! 도전을 받아 주마!”
대규는 속으로 씩 웃었다.
걸려들었다.
예상하긴 했다. 이 인간은 성질이 급하고 욱하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리고 자존심은 오지게 세서 자존심을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불같이 화를 내며 달려든다.
구라타 사장은 대규를 노려보며 말했다.
“네 녀석이 대결에서 지면 우리 가게와 음식을 모욕한 대가로 무릎을 꿇고 사과해라.”
그러자 대규는 차갑게 반박했다.
“모욕이라뇨. 저는 사실을 말한 것뿐입니다.”
“이 자식이……!”
“대신 내가 이기면 혐한 짓거리는 당장 멈추고 공개적으로 사과하시기 바랍니다.”
“흥, 좋다!”
말을 마친 뒤 그들은 주방으로 향했다.
준섭은 주방으로 가는 대규를 부른 뒤 당황한 표정으로 속삭였다.
“사장님, 너무 감정적인 처사인 것 같습니다. 이곳은 저들의 식당이고, 갑자기 요리 대결이라뇨…….”
“부사장님도 저들이 지껄이는 말을 듣지 않으셨습니까? 두고 보십시오. 제가 꼭 이겨서 이 가게가 다시는 저런 야비한 행동을 못 하도록 만들겠습니다.”
그래도 준섭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저 사람 말대로 이곳은 일본의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오는 가게입니다. 혹여나 일이 잘못됐다간 대규식품의 일본 진출 사업에 악영향을 미칠지도…….”
“오히려 엄청난 마케팅이 될 수도 있죠. 만약 제가 이 대결에서 이긴다면.”
대규는 자신만만하게 말한 뒤 주방으로 향했다.
준섭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제발 사장님이 이기기를 바라는 수밖에.’
하지만 이 가게는 일본에서도 상당히 이름난 식당이고, 저 구라타 사장이란 자는 인성은 쓰레기일지라도 실력 하나는 우수한 것 같았다.
가게 벽에 붙어 있는 표창장과 상패 등이 그를 증명했다.
대규 역시 준섭에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좀 떨렸다.
‘내가 잘한 건가? 아니야, 떨지 말자. 내 요리 스킬은 상급 수준이다. 이건 아무도 이길 수가 없다고.’
게다가 업데이트한 공략집까지 있지 않은가.
얼마 후 주방으로 들어선 대규는 깜짝 놀랐다.
그곳에 쌓여 있는 식재료들 때문이었다.
엄청나게 신선한 야채와 생선들, 고기들은 모두 최상품이었다.
굳이 공략집이 알려 주지 않아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상태들이 최고였다.
‘확실히 훌륭한 재료로 음식을 만들긴 하는군.’
대규를 비롯한 한국인 손님들에게만 쓰레기 음식을 줘서 그렇지 말이다.
구라타 사장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자신 있게 덤볐으니 어디 한번 해봐라. 질 낮은 한국 요리를 어디 한번 만들어 보시지.”
“됐습니다. 그럼 또 트집을 잡으시겠죠. 저도 이 집의 대표 메뉴인 가이세키 요리를 만들겠습니다.”
“뭐라?”
“왜요. 전 못 할 것 같습니까? 심사는 여기 계신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하도록 하죠.”
대규는 한 테이블에 앉은 네 명의 일본인을 보며 물었다.
“괜찮습니까?”
그중 세 명의 손님은 주로 머리가 희끗희끗한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었는데 딱 봐도 일본의 고위층 인물들인 것 같았다.
나머지 한 명은 상대적으로 젊은 중년의 남자였다.
그는 흥분한 목소리로 대규에게 말했다.
“좋습니다. 아주 좋아요!”
“당신은……?”
대규가 묻자 그는 품속에서 명함을 꺼내 건네며 말했다.
“아, 실례했습니다.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간만에 어르신들을 따라 이곳에 왔는데 이런 흥미로운 사건을 구경하게 되는군요.”
다른 늙은 일본 사람들은 대규와 준섭을 맘에 안 든다는 듯 쳐다보고 있었는데 이 남자는 달랐다.
‘이 남자는 우익사상을 지닌 자가 아닌가?’
대규는 남자가 준 명함을 봤다. 명함에는 ‘아사니치 신문 문화부 기자, 이시다 고로’라고 적혀 있었다.
명함을 본 준섭이 속삭였다.
“아사니치 신문이면 그나마 중도적인 사상을 지닌 신문사입니다. 그리고 발행 부수 2위인 메이저 신문사이기도 합니다.”
아사니치 신문이면 대규도 그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었다.
고로는 대규에게 말했다.
“이거 흥미로운 취잿거리인 것 같습니다. 이 대결에 관해 기사를 쓰고 싶은데… 사장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러자 구라타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흥, 맘대로 하시오. 어차피 내가 이길 텐데.”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로는 고개를 숙이며 구라타에게 인사했다. 그리고 대규에게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속삭였다.
“꼭 이겨 주세요. 이 집은 음식은 최고인데 사장의 성향이 좀 재수 없거든요. 언젠가 한번 비판 기사를 내고 싶었습니다.”
대규는 고개를 끄덕인 뒤 주방으로 다시 들어가 요리 준비를 했다.
제한 시간은 1시간.
그 안에 구라타와 대규는 각자 간단한 가이세키 코스 요리를 만들기로 했다.
대규는 재료들을 신속히 골라냈다.
재료 중 거대한 참치 대뱃살이 보였는데, 아주 선명한 붉은 기를 띠고 있었다.
‘이건 진짜 참다랑어잖아. 대단한데…….’
그러자 공략집이 떠올랐다.
-차원의 틈 공략집-
재료명: 참다랑어 대뱃살
특징: 오늘 아침 쓰키지 시장에서 공수해 온 특급 참다랑어. 부위의 지방 함량에 따라 각 1번 도로~4번 도로로 나뉘며 1번 도로가 가장 최상급이다.
<1번도로 부위를 표시하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뱃살의 앞쪽 부분이 붉은 컬러로 빛났고 나머지 부위는 흑백을 띠었다.
참치는 한우처럼 각 소마다 등급이 다른 게 아니라 한 마리의 참치 안에서 그 부위에 따라 등급이 나뉜다.
뱃살 내에 지방 함량이 많은 부위일수록 최상급이 되는 것이다.
대규는 1번 도로 부위를 칼로 잘라 가져왔다.
그리고 닭고기와 다른 육류들도 조금씩 가져왔다. 당연히 공략집을 이용해 가장 좋은 것들만 골라왔다.
나머지 야채, 두부, 해산물 등도 골랐다. 구라타는 그 모습을 보고 내심 놀랐다.
‘저 애송이 자식… 기본적인 지식은 있나 보군. 아니다! 우리 가게 재료들이 그만큼 훌륭하다는 거지!’
하지만 가이세키 요리의 핵심은 맛도 맛이지만 아기자기한 예술성과 참신성이다.
얼마나 장인정신을 발휘해 맛있으면서도 아름다운 요리를 내놓느냐가 중요 포인트.
‘그것까진 못 할 것이다.’
그는 속으로 코웃음을 친 뒤 자신의 요리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타타타탓.
그의 식칼이 빠르게 도마 위를 움직였다. 칼날의 모습이 안 보일 정도였다.
그러자 순식간에 무채가 쓸렸다. 무채들은 아주 가느다랗고 얇았다. 투명하게 속이 비칠 정도였다.
꼭 가느다란 소면 같았다.
대규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실력 하나는 진짜인 것 같군. 나도 요리를 시작하자.’
우선 에피타이저와 기본적인 생선 조림 요리와 튀김, 참치회를 만들 예정이었다.
맛을 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요리 스킬이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데코레이션.
정통 일식 요리는 한 번도 만들어 본 적이 없었다.
대체 어떻게 해야 아름답게 보일까?
대규는 도마 위에 있는 식재료들을 가만히 쳐다보며 머리를 굴렸다.
그때 공략집의 메시지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재료로 완성할 요리의 종류를 선택해 주십시오.>
<한식/일식/중식/양식/기타>
‘이게 뭐지?’
대규는 처음 보는 메시지창에 놀랐다.
일단 일식을 선택해 봤다.
그러자 다음과 같은 창이 떠올랐다.
<식재료들을 바탕으로 완성할 수 있는 요리들의 모든 경우를 이미지로 제공하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