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5
165화 일본 시장 (2)
다음 날 준섭과 대규는 롯뽄기와 긴자를 순서대로 둘러봤다.
롯뽄기 역시 유동인구가 많은, 도쿄의 메이저 번화가였다.
과거 미군기지가 있었고, 그에 따라 다양한 유흥업소가 발달한 곳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용산, 특히 이태원의 느낌이었다.
준섭의 말에 따르면, 일본 방송관계자와 연예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라고 했다.
그리고 도쿄의 상징이었던 도쿄타워도 가까이에 있었다.
“흐음, 이 정도 위치면 레스토랑 굴라가 입점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고급스러우면서도 이국적인 동네 같습니다. 우리 양고기 스테이크도 이국적인 음식으로 볼 수 있으니까요.”
대규는 롯뽄기를 둘러본 뒤 준섭에게 이렇게 말했다.
준섭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알았다고 했다.
둘은 긴자도 둘러보기로 했다. 굴라가 들어갈 곳은 긴자와 롯뽄기 중에서 괜찮은 곳을 고르기로 했다.
그들은 전철을 타고 긴자로 향했다.
“우와아!”
긴자는 아주 화려한 거리였다.
일단 역 주변엔 백화점들이 많았고, 그 외에도 명품 매장들이 즐비했다.
샤넬, 불가리, 티파니 등… 매장의 문 앞에는 하나같이 덩치 큰 경호원들이 서 있었다.
택시들이 거리에 일렬로 서 있었고, 고급스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도 많이 지나다녔다.
“이곳도 만만치 않은데요. 우선 배부터 채울까요.”
준섭이 말했고, 그들은 대규가 그토록 고대했던 일본의 화정식집으로 향했다.
가게의 외관은 고풍스러운 전통 일본 가옥의 모양이었고, 그들은 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심상치 않았다.
새빨간 욱일기가 카운터 옆에 작게 걸려 있었다.
‘응? 여기 한국인들도 종종 오는 곳 아닌가?’
욱일기를 본 대규는 약간 기분이 불편했지만, 일본이니까 뭐 그러려니 했다.
카운터의 직원이 예약 확인을 했다. 그는 일본식 와복을 입고 있었다.
“카운터에서 온 김 상 맞으십니까?”
김 상, 이란 말이 나오자마자 가게에 싸늘한 분위기가 흘렀다.
‘뭐야?’
대규와 준섭은 예약해 둔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도 작은 욱일기가 걸려 있었다.
곧 매니저가 주문을 받으러 왔다. 젊은 남자였는데 그 역시 와복을 입고 있었다.
그는 친절하게 메뉴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고, 대규와 준섭은 메뉴판을 천천히 살펴봤다.
아기자기하게 차려진 음식들 사진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거워졌다.
하지만 매니저의 친절한 목소리 이면에 뭔가 불편한 느낌이 있었다.
‘가게의 분위기도 그렇고… 뭔가 좀 걸려.’
대규는 메뉴를 설명하는 매니저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리고 공략집을 이용해 그의 속마음을 들여다봤다.
한편, 매니저 야마모토는 웃고 있었지만 그의 속마음은 전혀 달랐다.
그는 준섭과 대규를 바라보며 속으로 비웃고 있었다.
‘김 상이라 해서 예상은 했지만… 역시 한국인, 아니 조센진이었잖아.’
그의 속마음을 들은 대규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지금 뭐라고 한 거야, 조센진?
하지만 겉으로 내색하진 않았다.
곧 매니저의 검은 속마음은 계속해서 들렸다.
‘조센진이 감히 우리 가게에 오다니… 오늘은 정말 재수가 없군. 하긴, 요즘엔 조센진들 사이에서도 우리 가게가 좋다고 소문이 나긴 했으니까. 사장님에게 빨리 알려서 특별 요리를 대접해야겠군. 흐흐…….’
대규는 그 특별 요리라는 게 궁금해졌다.
매니저는 저 검은 속마음과 달리 겉으론 친절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속마음을 듣고 보니 친절이 아니라 가식적인 미소 같았다.
대규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메뉴를 추천해 주시겠습니까?”
“저희 가게는 가이세키요리(會席料理)가 유명하지요. 저녁 메뉴론 화정식 가이세키 세트가 인기가 많습니다만.”
저자가 추천하는 메뉴가 그 ‘특별 요리’라는 것일까.
대규는 메뉴판에 적힌 화정식 가이세키 세트를 눈여겨봤다.
하지만 사진상으로 그 메뉴는 멀쩡했다. 작은 그릇에 다양한 일본식 음식들이 아기자기하게 담겨 있었다.
가이케시 요리는 일본의 전통 코스 요리다.
옛날에는 연회장에서 주로 내던 술과 함께 먹는 요리를 뜻했으나 점차 호사스러운 잔치 요리로 발전하게 됐다.
보통은 일본의 전통 숙박시설인 료칸의 저녁상이나 고급 일식당에서 볼 수 있으며, ‘이치쥬산사이(一汁三菜)’라 불리는 국, 사시미, 구이, 조림을 기본 구성으로 한다.
여기에 오토오시(お通し)라 불리는 간단한 안주류와 튀김, 찜, 무침들이 더해지고 마무리로 밥과 국, 채소 절임, 디저트 등이 제공된다.
매니저가 권한 화정식 가이세키 세트에는 별문제가 없어 보였다.
일단 대규는 그걸로 2인분을 시켰다.
그리고 매니저의 속마음을 계속 주시하기로 했다.
재수가 없어 가게를 박차고 나갈까도 생각했지만, 그럼 준섭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고, 또한 가게측은 아직 대규에게 증거로 잡힐 만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
게다가 그런 식으로 저들을 피하고 싶지 않았다. 또 저들이 대체 어떻게 나올지 약간 궁금하기도 했다.
준섭은 방 안에 있는 욱일기를 보며 약간 불편한 표정으로 말했다.
“좀… 일본의 우익 색이 짙은 식당인 것 같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얼마 후 식욕을 돋우는 전채 요리가 나왔다. 애피타이저, 즉 일본말론 쓰키다시라 불리는 요리였다.
작은 그릇에 담긴 생선 절임 요리였는데 양이 적어 꼭 젓갈 요리처럼 보이기도 했다.
매니저가 음식에 관해 설명했다.
“구운 참치 살을 발라내서 양념에 절인 요리입니다. 참치는 오늘 아침에 쓰키지 어시장에서 공수해 온 신선한 것이랍니다.”
쓰키지 어시장이라면 우리나라 노량진 수산 시장 같은 곳이다.
음식 자체는 나빠 보이지 않았다. 일본 요리 특유의 아기자기하고 예쁜 데코레이션까지 갖춰지니 매우 그럴듯했다.
하지만 매니저의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매니저는 속으로 계속 비열한 웃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가 나가고 대규는 음식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때 그의 눈동자가 커졌다.
‘이 새끼들이!’
음식을 막 먹으려던 준섭을 말렸다.
“잠깐만요, 부사장님.”
공략집에 떠오른 음식에 대한 정보 때문이었다.
[고양이 캔 음식으로 만들어진 절임 요리]
[F 회사에서 캣푸드로 나온 100엔짜리 고양이용 참치캔으로 만들어진 절임 요리. 고양이용 캔 참치를 저렴한 미소 소스에 절인 음식이다.]
미친… 100엔이면 우리나라로 치면 천 원 남짓한 가격이었다.
그게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요리가 아니잖아.
아니, 먹을 수는 있다. 물론 알고 먹으면 기분이 몹시 나빠져서 그렇지.
하지만 접시 위의 음식은 몹시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웠다.
대규는 준섭에게 말했다.
“드시지 마세요.”
“예?”
“일단 더 기다려 봅시다. 다른 음식들도 보고 한꺼번에 먹도록 하지요.”
대규는 기가 찼지만, 최대한 냉정하게 다음 요리들을 기다렸다.
저들이 다른 음식에도 수작을 부렸는지 알고 싶었다.
매니저 야마모토는 다음 음식을 들고 들어왔다. 그는 대규와 준섭이 전채 요리엔 손도 대지 않을 걸 보고 좀 놀랐다.
‘이 조센진들이 왜 안 먹었지? 설마 고양이 캔 음식으로 만든 거란 걸 알았나? 아니다. 이건 일반인들은 절대 구별하지 못한다구!’
대규는 이걸 듣고 속으로 조소를 지었다.
이 녀석들이 고의로 엉터리 음식을 서빙한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식당의 주인은 일본의 우익 사상이 충만하고 한국인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주인뿐만 아니라 매니저, 다른 직원들도 한국인들을 싫어했다.
현 식당의 주인은 3대째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본래 이 식당은 긴자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시작됐었다.
식당의 첫 창시자인 현 주인의 할아버지는 조선 식민지 시절 사람이었고, 그는 한국인들을 조선인이라고 생각하며 무시했다. 그런 사상은 현 주인에게까지 내려왔고, 이곳에서 일하는 매니저 야마모토 역시 그런 사상을 지니게 됐다.
특히 한국인 손님에게 이런 거지 같은 음식을 내자고 사장에게 제안한 게 야마모토였다.
사실 일본 곳곳에는 혐한 식당이나 가게가 간혹 있었다.
오사카의 모 초밥집에선 일부러 한국인 관광객에게 와사비가 잔뜩 들어간 초밥을 고의로 내놨다가 언론에 보도가 되기도 했다.
야마모토는 그 초밥집이 멍청하다고 생각했다.
‘멍청한 놈들, 테러하려면 지능적으로 해야지!’
그는 와사비 테러처럼 뻔히 보이는 것 말고 이런 엉터리 음식을 그럴듯하게 내놔서 한국인들을 속이는 행위를 사장에게 제시했고, 사장은 이에 동조했다.
여태껏 이 가게에 찾아온 한국인들은 속는 줄도 모르고 엉터리 음식을 아주 맛있게 먹었다.
심지어 최고의 가이세키 일식 요리라고 찬사까지 했다.
이렇게 유명한 고급 식당에서 설마 그런 짓을 하리라곤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흐흐흐, 조센진들은 정말 멍청하다니까! 이러니까 우리나라가 식민 지배를 했지. 젠장, 지금까지 조선은 우리 대일본제국의 식민지여야 하는데…….’
야마모토는 다음 음식을 서빙했다.
성게 알이 올려진 자왕무시, 일식 계란찜이었다.
작은 도기 그릇에 매끈한 계란찜이 정갈하게 담겨 있었다.
야마모토는 싱긋 웃으며 대규에게 말했다.
“계란찜에 뿌려진 것은 저희 가게 특제 소스인데 한국인들 입맛엔 좀 짤 수도 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대규가 대답하자 야마모토는 방 밖으로 나갔다.
‘웃기는군!’
대규는 계란찜을 노려봤다.
공략집으로 이미 저 계란찜 역시 엉터리 음식이란 건 간파했다.
계란찜 위에 올려진 성게 알은 유통기한이 한참 지났고, 야마모토가 특제 소스라고 말한 건 짜디짠 액젓 한 바가지였다. 심지어 그 액젓은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싸구려 브랜드였다.
‘그걸 특제 소스라고 속이다니… 물론 저렇게 말하면 뭘 모르는 한국인 손님들은 그러려니 하고 먹었겠지.’
대규는 계란찜에도 손을 대지 않았고, 준섭에게도 먹지 말라고 지시했다.
얼마 후 참치회가 나왔다.
회 역시 그럴듯해 보였지만 활어회가 아니라 냉동이었다. 게다가 진짜 참치가 아니라 기름치라는 참치 비슷한 생선을 썰어 내온 것이었다.
물론 야마모토는 이렇게 말했다.
“특상인 참다랑어 혼마구로 회입니다.”
저 매니저는 입만 열면 거짓말이로군.
이어 나온 모든 음식이 이런 식이었다.
심지어 마지막에 나온 공깃밥 역시 바로 지은 밥이 아니라 몇 날 며칠 지난 냉동 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린 것이었다.
공략집은 이 모든 걸 꼼꼼하게 알려 줬다.
‘전에 비해 공략집이 알려 주는 정보가 훨씬 꼼꼼해진 것 같은데… 업데이트 효과인가, 아니면 기분 탓?’
대규의 맞은편에 앉은 준섭은 음식을 먹지 말라는 대규의 지시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대로 따랐다.
한편 매니저 야마모토는 대규와 준섭에게 음식을 서빙하러 갈 때마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 조센진들… 왜 음식엔 손도 안 대고 있지?’
그는 이제 마지막으로 디저트를 서빙하러 갔다.
그러면서 야마모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음식을 드시지 않습니까? 입맛에 맞지 않으십니까? 아니면 불편한 점이라도…….”
그러자 대규는 야마모토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혹시 사장님 좀 뵐 수 있을까요?”
야마모토는 뭔가 싸한 기분이 들었지만, 대규 말대로 사장을 데리고 왔다.
사장은 주방 복을 입은 채 대규와 준섭의 방으로 들어왔다.
풍채가 좋은 중년의 일본 사내였다. 하지만 눈빛은 몹시 거만했다. 중화사상에 찌들어 있었던 장룽차오의 눈빛과 좀 비슷하게 느껴졌다.
사장은 대규 일행이 음식에 손도 대지 않을 걸 보고 이렇게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그제야 대규는 차갑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긴자, 아니 일본에서 유명한 화정식집이라 기대했는데, 아주 실망했습니다.”
그러자 사장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게 무슨…….”
“캣푸드로 만들어진 애피타이저에 싸구려 액젓을 부은 계란찜, 그리고 냉동 회까지… 뭐라 할 말이 없군요.”
“지, 지금 뭐라고 했소?”
사장의 얼굴이 붉게 변했다.
옆에서 보던 준섭 역시 당황해서 대규에게 속삭였다.
“사, 사장님… 그게 대체 무슨…….”
하지만 대규는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어디 보자, 참치 절임 에피타이저는 F 사에서 100엔에 팔고 있는 고양이 참치캔으로 만들어졌고, 성게 알 계란찜 특제 소스는 마트에서 한 병에 200엔 하는 D 사의 액젓으로 만들었군요. 성게 알은 적어도 사흘 전에 쓰키지 시장에서 가져온 것이고…….”
마지막으로 대규는 참치회를 젓가락으로 집어 들며 말했다.
“이건 참다랑어가 아니라 기름치군요. 그것도 냉동 기름치 말입니다.”
사장과 매니저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