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집을 습득하셨습니다-164화 (164/294)

# 164

164화 일본 시장 (1)

대규와 준섭은 일본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 있었다.

어느새 비행기 아래쪽으로 도쿄만이 보였고, 그들이 타고 있는 비행기는 곧 나리타 공항에 착륙했다.

공항에 내린 대규는 표지판엔 한국어가 빼곡하게 적혀 있는 걸 보고 놀랐다. 그 때문에 길을 헤맬 필요가 전혀 없었다.

표지판의 한국어를 본 준섭이 말했다.

“도쿄엔 한국인 관광객이 그전부터 많아서 공항 간판에는 한국말 표시가 완벽하게 돼 있습니다. 심지어 도쿄 시내 지하철인 JR 야마노테센의 주요 역에도 한국말 표시가 다 돼 있죠.”

“그렇군요.”

그들은 공항에서 신주쿠 시내로 향했다. 호텔이 신주쿠 역 근처에 있었다.

호텔에서 짐을 풀자 준섭이 시장조사 일정을 간략하게 말해 줬다.

“첫날인 오늘은 하라주쿠와 시부야, 그리고 이곳 신주쿠를 돌아볼 예정입니다. 이 세 지역은 JR 야마노테센 전철 한 정거장 간격으로 붙어 있거든요. 그런데 야마노테센은 항상 사람이 붐빕니다. 택시를 타고 가면 됩니다만…….”

그러자 대규가 이렇게 주장했다.

“아닙니다. 지하철을 이용하도록 해요.”

일본의 택시비는 기본료가 한국에 비해 매우 비쌌다. 2017년 1월 1일 기준 730엔, 한화로 7,000원이 훌쩍 넘는 금액이었다.

돈 걱정이야 별로 없었지만 대규는 사실 일본 지하철을 한번 타보고 싶었다. 일본의 문화를 경험해 보고 싶었다.

JR 야마노테센은 일본 지하철 노선 도쿄 시내를 순환하는 노선으로 서울의 지하철 2호선과 비슷했다.

아무래도 준섭이 말한 저 세 지역은 한국으로 치면 홍대-신촌-이대 입구와 비슷한 것 같았다.

물론 전철역 간 간격은 서울보다 훨씬 넓었다.

신주쿠(新宿) 역에 들어선 대규는 깜짝 놀랐다.

우리나라 지하철역에 비해 몇 배는 넓고 복잡한 것 같았다.

준섭의 말을 들어 보니 신주쿠 역에는 총 11개의 노선이 지나간다고 했다.

“우선 하라주쿠와 시부야를 먼저 둘러보고 저녁에는 이곳 신주쿠 번화가를 둘러보기로 하죠.”

신주쿠에 그들이 머무는 호텔이 있기도 했고, 신주쿠의 최대 번화가 가부키쵸는 저녁이 돼야 활기를 띤다고 했다.

맨 처음 토착한 하라주쿠(原宿)는 전형적인 젊은이들의 번화가였다.

옷가게를 비롯한 다양한 가게들이 많았다. 특히 하라주쿠의 메인 로드라 불리는 다케시타 도리엔 사람들이 바글바글해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중에서 반가운 가게가 하나 보였다. 바로 우리나라 포털사이트가 개발한 캐릭터가 들어간 상품들을 파는 가게였다.

‘한국 캐릭터 상품들도 이제 해외로 진출하기 시작했구나.’

하지만 다케시타 도리엔 식당보다는 쇼핑할 가게들이 많았다. 식당은 주로 맥도날드나 롯데리아 같은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점이었다.

그런데 길 건너편에 식당들의 모습이 보였다.

대규는 건너편을 가리키며 준섭에게 말했다.

“가게를 내기엔 여기보단 저쪽이 좋을 것 같군요.”

그곳은 바로 하라주쿠 건너편에 있는 오모테산도(表參道).

쇼핑 가게들도 있었지만 분명 식당들도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식당들은 대부분 젊은 층을 겨냥한 트렌디한 가게들이었다.

준섭 역시 오모테산도 구역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님 말이 맞군요. 오모테산도를 리스트에 넣겠습니다.”

그들은 오모테산도를 향후 가게 오픈 지역으로 점찍어 둔 후 점심으로 간단히 일본 라멘을 먹었다.

그냥 작은 라멘 가게였는데, 돼지 육수로 진한 맛을 낸 게 꽤 맛있었다.

점심을 먹은 뒤 시부야(渋谷)로 향했다. 오모테산도를 거치면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거리였다.

시부야 역시 식당들도 있지만 주로 쇼핑센터투성이였다.

확실히 오모테산도가 가게를 내기엔 제일 좋을 것 같았다.

저녁이 됐고, 그들은 신주쿠로 돌아왔다.

저 앞쪽에 번쩍번쩍 화려한 네온사인이 보였다. 네온사인엔 ‘가부키쵸(歌舞伎町) 1번가’라고 적혀 있었다.

네온사인을 지나자 유흥업소들과 식당, 선술집들이 좌르륵 널려 있었다.

사람들도 엄청나게 많았다.

가게 앞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점원들의 모습도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중년의 키 작은 일본 남자가 대규에게 다가와 어눌한 한국말로 말을 걸었다.

“잘생깅 한코쿠 옵빠, 놀다 가요우. 여자 많스무니다~”

유흥업소의 점원인 것 같았다.

그가 서 있는 가게는 선홍빛 네온사인이 반짝거렸고, 간판에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는 여자들 사진이 붙어 있었다.

대규는 정중하게 일본어로 거절했다.

“다이죠부 데스(괜찮습니다).”

일본인 남자는 몇 번이나 더 놀다 가라고 권유하다가 대규가 꿈쩍도 안 하자 아쉽다는 듯 쩝 입맛을 다시며 다른 곳으로 향하더니 다른 한국인 남자 관광객들을 발견하고는 다시 어눌한 한국어로 호객행위를 했다.

그 관광객들은 대규 또래의 젊은 남자들이었는데 주변을 기웃거리면서 민망한 웃음을 짓더니 결국 그 가게 안으로 쑥 들어갔다.

대규는 그 모습을 보며 준섭에게 물었다.

“저런 가게에서 저렇게 대놓고 호객행위를 해도 되는 겁니까? 그것보다 일본도 우리나라처럼 성매매는 불법 아닌가요?”

그러자 준섭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불법 맞습니다. 하지만 일본법상 성매매는 ‘대가를 받고 불특정의 상대방과 성행위를 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어서 저런 업소들은 합법을 유지하기 위해 교묘하게 성행위가 아닌 유사 성행위를 제공하죠.”

“아…….”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의 성 산업은 그 부분을 교묘하게 피해 가면서 무궁무진하게 발전했죠. ‘오죽하면 성행위를 제외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제공한다’란 말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사장님은 저런 곳 좋아하십니까?”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냈던 준섭이 이런 질문을 하자 좀 부끄러워졌다.

대규는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저는 별로…….”

사실이었다. 차라리 그 돈으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말지.

“부사장님은요?”

그러자 준섭은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저도 별로입니다. 사실 대기업에 다닐 때 접대 명목으로 몇 번 룸살롱에 끌려간 적이 있었습니다. 저야 술만 비워 내고 있었지만… 억지로 그 자리에 있는 게 너무 불편하고 싫더군요. 뭐, 그런 자리가 즐거운 사람도 있겠지만…….”

그러면서 준섭은 대규를 똑바로 쳐다보며 이렇게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저는 적어도 이곳 대규식품에선 그런 문화가 없도록 만들고 싶습니다. 부사장으로서 상대 회사를 컨택하고 접대할 일이 생길 때 최대한 그런 곳엔 가지 않으려고 노력 중입니다.”

대규는 그런 준섭을 칭찬했다.

“잘하고 계십니다. 그럼 우리 골목들을 한번 둘러보지요.”

신주쿠의 골목 일대를 돌아보면서 그들은 탕꼬와 신지양꼬치가 어디에 입점하면 좋을 것인지를 눈여겨봤다.

완전 후미진 뒷골목만 아니라면 어디든 괜찮을 것 같았다. 그 정도로 이곳은 사람들이 많이 다녔고 접근성이 좋았다.

“유흥업소들이 밀집한 골목보단 이쪽 식당 골목이 좋겠군요.”

준섭이 식당들이 밀집한 골목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골목은 그의 말대로 유흥업소 대신 초밥집, 우동가게, 소바집 등이 밀집해 있는 식당 골목이었다.

대규 역시 그 골목이면 무난할 것 같았다.

그들은 오모테산도에 신주쿠 가부키쵸 식당가 골목을 추가했다.

“그럼 사장님, 오늘 저녁 메뉴는 뭡니까?”

준섭이 대규에게 물었다.

사실 시장조사 3박 4일 동안 먹을 곳은 대규가 조사해서 정했다.

일본의 식문화를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규는 준섭에게 대답했다.

“규카츠라고 소고기로 만든 돈가스입니다.”

“아, 이름은 들어봤습니다. 신촌에도 규카츠 전문점이 최근 두 곳이나 생겼으니까요.”

규카츠는 돈가스의 소고기 버전으로 비프가스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일본의 규카츠는 소고기를 다 익혀 내지 않고 튀기는 게 특징이었다.

일본의 규카츠는 레어 수준의 소고기를 튀겨 내 그걸 고추냉이에 찍어 먹는다. 물론 각자 앞에는 개인화로가 지급되며 취향에 따라 고기를 더 구워 먹을 수도 있다.

준섭과 대규는 한 규카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의 여주인은 그들을 반기다가 그들이 한국인이란 걸 알고 아주 좋아했다.

그녀는 흥분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와따시와 칸코쿠노 도라마노 빅 팬 데스(저는 한국 드라마의 빅 팬입니다).”

그녀는 욘사마가 나오는 겨울연가로 한국 드라마에 입문해 심지어 최근 히트를 쳤던 케이블 드라마까지 다 섭렵했다고 했다.

대규는 그녀의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자신의 음식들도 한류 드라마들처럼 이렇게 이곳 일본 사람들에게 사랑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준섭이 여주인에게 혹시 탕꼬에 대해 들어봤냐고 물어봤다.

대규 역시 궁금했다.

나름 아이돌 스타들이 홍보도 했고 중국의 SNS에서도 유명했으니 말이다.

그러자 여주인이 말했다.

“인터넷에서 본 적 있어요! 한국식 토리텐이라구요. 그리고 한국 아이돌들이 먹는다는 그 마성의 도시락 맞죠?”

그러자 준섭이 웃으며 대답했다.

“맞습니다. 이분이 바로 탕꼬를 개발하신 사장님이랍니다!”

“에에에~?”

여주인은 호들갑스러운 리액션을 보인 뒤 대규와 악수를 나눴다.

그리고 일본에도 빨리 탕꼬와 다이어트 도시락이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주방으로 사라졌다.

대규는 아주 기분이 좋아져서 준섭에게 말했다.

“이거, 일본 진출이 생각보다 순조롭겠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사실 좀 마음이 놓이네요. 일본을 시장조사 하기로 결정한 뒤 좀 걱정했거든요. 요즘 일본에 한국과 한국 문화를 싫어하는 혐한 들이 많아졌다고 해서요.”

“혐한이요?”

“네.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답니다. 특히 2010년 이후에 급증하는 추세랍니다. 조직화된 단체가 존재하고 폭력적일 정도로 과격한 짓을 하거든요. 그런데 일본의 지도층이나 언론은 그들을 제지, 비판하기는커녕 그걸 조장하고 있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거든요.”

그 말을 들은 대규는 준섭에게 물었다.

“왜 갑자기 혐한 족이 늘어난 겁니까?”

“한류 붐에 대한 반감 행위라는 분석도 있습니다만… 하여튼 요즘엔 혐한류 만화, 반한 정치 서적 등의 콘텐츠들이 생겨나는 등 혐한 활동이 아주 풍부하게 진화(?)하고 있답니다.”

“흐음…….”

그때 규카츠와 생맥주 두 잔이 나왔다.

생맥주를 본 대규가 여주인에게 물었다.

“생맥주는 안 시켰는데요?”

그러자 여주인이 생긋 웃으며 말했다.

“맥주는 서비스예요. 한국에서 귀한 손님이 오셨는데 이렇게라도 대접해 드려야죠! 그런데 전 한국 관련된 건 다 좋아하는데 딱 하나가 아주 아쉬워요. 바로 한국 맥주예요. 한국 맥주는 너무 맛없어요.”

“하하, 그건 저도 인정합니다.”

여주인이 사라지자 대규와 준섭은 그릇에 높인 규카츠를 보자마자 탄성을 질렀다.

“우와아-”

바삭바삭하게 튀겨 낸 얇은 튀김옷 안쪽에는 붉은빛의 신선한 소고기가 보였다.

개인화로도 나와서 취향대로 구워 먹을 수 있었다.

우선은 굽지 않고 레어 상태의 규카츠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신선한 육회와 바삭한 튀김을 동시에 먹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준섭 역시 감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상당히 괜찮은 음식인데요?”

그들은 순식간에 규카츠를 비워냈다.

아주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여주인은 그들이 나갈 때도 계속 악수를 하고 한국이 최고라고 말했다.

가게를 나선 대규는 준섭에게 말했다.

“우리나라 육회도 저 규카츠처럼 만들면 신선할 것 같아요.”

가부키쵸를 더 돌아본 그들은 호텔로 돌아왔다. 첫날은 상당히 만족스러운 일정이었다.

오모테산도와 가부키쵸의 골목도 발견했고, 맛있는 음식도 먹었다.

“부사장님, 다음 날 일정은 어떻게 됩니까?”

“롯뽄기와 긴자를 둘러볼 예정입니다.”

대규는 설레는 목소리로 말했다.

“긴자라면… 제가 요청했던 일식 화정식집도 가는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대규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곳은 그가 꼭 가고 싶었던 식당이었다. 조사를 해봤는데 현지에서도 유명한 전통 일식 화정식집이었다.

화정식이란 전통 일본 요리로 한 상 차려진 요리를 말한다.

라멘이나 덮밥도 좋았지만, 일본의 식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선 전통 일본 요리를 먹어 보고 싶었다.

그 집은 긴자에서 30년 넘게 자리를 잡은 식당이었다.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꽤 인지도가 있었고, 식당 주인도 그에 대한 자부심이 넘치는 곳이었다.

대규는 자신도 식당을 경영하는 사람으로서 한곳에서 30년 넘게 식당을 운영한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것도 고급 식당이 많은 거리라 불리는 긴자에서 살아남은 가게다.

‘기대되는걸.’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