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3
163화 제우스의 보상 (2)
지영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황급히 손을 빼냈다.
하지만 가로쉬는 개의치 않는 듯했다.
제우스는 영웅들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럼 공적에 대한 보상은 이걸로 마친다. 나는 판테온의 중앙 신전으로 돌아가겠다.”
말을 마친 그는 자신의 독수리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영웅들은 제우스를 배웅했다.
아테나 여신은 제우스가 떠나고 난 빈 왕좌에 가서 앉은 뒤 말했다.
“다들 잘 싸워줬다. 이번 전투는 판테온의 역사에 길이길이 기억될 것이다. 특히…….”
여신은 대규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대의 공적은 더욱 기억되겠지. 아마 판테온의 음유시인들은 그대의 공적을 노래로 기리며 후대에 널리 전할 것이다.”
음유시인들이 자신의 노래를 만든다니, 약간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이었다.
“그럼 다음번 소환 때 만나기로 하지. 각자의 생업으로 돌아가도록 하라.”
아테나 여신이 말을 마친 순간 대규 주변의 배경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다시 현실로 돌아갈 때였다.
정신을 차리자 대규는 오피스텔에 도착해 있었다.
‘이번 전투는 뭔가 엄청났어.’
검붉은 평원의 전투라고 이름까지 붙여질 정도였다.
역사 교과서를 보면 이름이 남아 있는 전쟁인 임진왜란, 병자호란 같은 네임드 전쟁이 된 건가.
뭔가 신기했다.
대규는 정신을 차린 뒤 이번 소환에서 얻어낸 보상들을 점검했다.
우선 젬스톤.
블랙 등급 젬스톤 14개에 골드 등급 젬스톤 2개였다.
골드 등급 젬스톤은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으니 보관함에서도 따로 보관해 뒀다.
이제 총 소유하고 있는 블랙 젬스톤은 28개였다.
‘엄청 넘쳐나네. 블랙 등급 젬스톤이 없다고 빌빌댈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리고 투명 망토 림피디팔리움과 토온의 배 속에서 가져온 수많은 무기와 아이템들이 있었다.
대규는 일단 토온의 배 속에서 가져온 것들은 나중에 살피기로 했다.
그가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었다.
바로 공략집 업데이트였다.
‘그동안 업데이트를 너무 안 했어.’
지난번 현실에선 공략집의 위력이 꽤 쏠쏠했다. 음식들의 성분 및 재료 분석뿐만 아니라 음식에 어울리는 와인 리스트까지 골라줬으니 말이다.
‘전에는 블랙 젬스톤이 없어서 못 했는데 이제 남아도니까 빨리 업데이트하자.’
공략집의 업데이트창을 불러왔다.
<업데이트시키려면 블랙 등급 젬스톤 3개가 필요합니다. 사용하시겠습니까? Yes/No>
훗. 겨우 블랙 등급 젬스톤 3개?
이 정도는 껌이다.
Yes!
<공략집이 성공적으로 업데이트됐습니다.>
<다음 단계로 업그레이드하려면 골드 등급 젬스톤 3개가 필요합니다.>
아깝다!
내친김에 다음 단계로 업그레이드하고 싶었지만, 현재 소유하고 있는 골드 등급 젬스톤은 2개뿐이었다.
‘다음에 하지, 뭐.’
‘그런데 다음번에도 골드 등급 젬스톤을 쉽게 구할 수 있을까?’
골드 젬스톤은 기간테스인 토온을 해치워야 겨우 나왔다. 그것도 딱 1개.
물론 대규야 미다스의 손이 있어서 2개를 얻을 수 있었지만.
‘뭐, 어떻게든 얻게 되겠지. 그런데 이번 업데이트 내용은 뭘까?’
아마 공략집을 작동시킬 만한 상황이 돼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업데이트를 해놓으니까 왠지 마음이 편해졌다.
‘그럼 이제…….’
대규는 보관함에서 제우스에게 받은 투명 망토 림피디팔리움을 꺼냈다.
스르륵-
부드러운 하얀 천이 손을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
한번 사용해 보자.
대규는 전신거울 앞에 서서 망토를 뒤집어써 봤다. 그러자 거울 앞 자신의 모습이 사라졌다.
한 번 몸을 움직여 봤다. 하지만 여전히 대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번엔 얼굴을 빼고 목 아랫부분부터 발까지 망토를 둘러봤다.
‘유령 같은 비주얼이 나오는 거 아니야? 머리만 동동 떠다니는…….’
하지만 예상과 달리 대규의 몸은 완전한 투명 인간이 돼 버렸다. 이 망토에 몸이 닿기만 한 상태면 투명화가 발동되는 것일까?
그때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망토가 신체에 닿은 상태에서 사용자의 의지만 있다면 투명화는 발동됩니다.]
‘그렇구나. 좋은걸.’
하지만 계속해서 전투 중에 이 망토를 들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잠깐만, 이 망토 분명 탈부착이 가능하다고 했잖아.’
그럼 갑옷 뒤에 망토를 부착하면 될 것이다. 오크 대장군 가로쉬가 자신의 갑옷에 붉은 망토를 달고 다니는 것처럼 말이다.
‘간지도 나고 좋을 것 같다!’
게다가 갑옷에 부착시키면 전투 중에도 손쉽게 투명화를 발동시킬 수 있었다. 게다가 한 번 붙인다고 영원히 그곳에 붙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좋았어!’
대규는 황금 눈물 갑옷의 어깨 부분에 투명 망토를 갖다 댔다.
척!
강력한 아교라도 묻어 있는 것처럼 망토는 갑옷의 어깨 부분에 딱 달라붙었다.
투명 인간이 되겠다는 의지를 보이자 대규의 몸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스르륵-
그 상태로 오피스텔을 마구 뛰어다녔다. 하지만 거울 속에는 그 어떤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됐다. 이걸로 움직이는 상태에서도 투명해질 수 있는 능력까지 지니게 됐다.’
대규는 갑옷을 벗은 뒤 인제 그만 자려고 침대에 누웠다.
침대에 누워서도 계속해서 그가 쓰러뜨린 토온과의 전투가 떠올랐다.
‘그나저나 정말 대단한 전투긴 했어. 후대에 기록될 전투라니……. 그런 전투에서 내가 가장 큰 공적을 세웠다니, 그럼 내가 임진왜란의 이순신 장군 정도 된 건가? 이렇게 생각하니 기분이 아주 묘한걸!’
하지만 이제 내일부터는 현실과의 싸움이었다.
현실에서도 후대에 기록될 만큼 어마어마한 사업을 한번 벌여 보자!
그런 생각을 하며 대규는 눈을 감았다.
현실로 돌아온 이후 대규의 사업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북한은 여전히 미사일 실험으로 세계를 위협했고, 결국 미국은 핵잠수함을 한국에 배치하기로 최종적으로 확정했다.
국내에서 반대 여론이 들끓었지만, 미국의 결정을 막진 못했다.
한국에 대한 중국의 경제 제재 역시 여전히 확고했지만 대고 식품에 대해서는 예외였다.
장룽차오와 고위 공무원들 덕에 대규 식품은 중국에서 아주 잘 자리 잡고 있었다.
탕꼬&다이어트 도시락도 잘 팔렸고, 이제 곧 탕꼬와 신지 양꼬치, 굴라 레스토랑 1호점이 베이징에 문을 열 예정이었다.
베이징 이후엔 덴진, 상하이, 광저우 등 중국의 주요 도시로 뻗어 나갈 계획이었다.
대규식품은 말 그대로 대륙을 장악해 나갈 것이었다.
중국 대륙뿐만 아니라 국내에서의 인기도 호조였다. 프랜차이즈들은 점점 늘어났다.
몇 달 전만 해도 충청권까지만 진출했던 프랜차이즈들은 이제 영남, 호남권에도 진출하기 시작했다.
오죽하면 탕꼬는 이제 ‘국민 탕수육 치킨’으로 불리고 있었다.
이에 준섭과 대규는 한국과 중국 말고 새로운 시장을 모색하기로 했다.
바로 옆, 섬나라 일본!
“한, 중, 일 세 동아시아 지역에서 성공을 거두면 향후 동남아, 그리고 유럽이나 미 대륙 시장 진출에도 용이할 것입니다.”
게다가 일본은 우리나라랑 지리학적으로 가깝고 식생활도 비슷한 면이 많았다.
준섭의 의견에 동의한 대규는 그와 함께 시장조사를 하러 일본에 같이 가기로 했다.
대규는 이번 시장조사에 꼭 참여하고 싶었다.
일본에는 다양한 음식들이 많았고, 식문화도 발달해 있었다. 시장조사를 통해 참신한 아이디어를 얻고 싶었다.
시장조사를 하러 가기 전 준섭이 사전 브리핑을 하러 대규의 사무실로 찾아왔다.
대규는 준섭에게 물었다.
“부사장님은 솔직히 일본 진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탕수육 치킨이나 양꼬치가 일본 사람들에게 거부감이 있진 않겠죠?”
“전혀 아닙니다!”
준섭은 희망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탕수육 치킨과 비슷한 요리는 현재 일본에도 존재합니다. 토리텐(鳥天)이라고, 닭튀김의 일종인데 규슈 지방의 향토 음식이지요.”
말을 마친 그는 태블릿 PC로 토리텐의 사진을 보여 줬다.
확실히 토리텐은 탕수육 치킨과 아주 흡사하게 생겼다.
일반적으로 잘 알고 있는 일본식 닭튀김 가라아게와는 외관이 달랐다. 가라아게는 치킨의 비주얼에 더 가깝다면 토리텐은 탕수육의 비주얼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었다.
“이거 탕꼬랑 완전 똑같은데요?”
“그렇습니다. 반죽 방식도 탕꼬와 매우 흡사합니다. 게다가 일본인들 역시 양고기를 즐겨 먹습니다. 꼬치 형태는 아니지만, 철판에 구워 먹는 징기즈칸 요리가 발달해 있죠.”
징기즈칸이라면 대규도 들어본 적이 있었다.
징기즈칸은 일본식 양고기 구이 요리였다. 특히 북쪽 지방의 홋카이도에서 유명한 음식이지만 현재는 도쿄나 오사카 등지에서도 먹을 수 있다.
“철반 냄비에 숙주, 양파 등 야채를 깔고 그 위에 구워먹는 바비큐 구이 말이로군요.”
대규가 말하자 준섭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이 정도면 우리 메뉴가 진출하기에 커다란 장애물이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현지 조사는 꼼꼼히 해봐야겠죠. 시장조사는 어디로 갈 예정입니까?”
대규가 묻자 준섭은 태블릿 PC로 도쿄의 지도를 보여 주며 말했다.
“일단 가장 대도시인 도쿄로 3박 4일 갔다 올 예정입니다. 식당이 진출할 만한 번화가들을 위주로 돌아볼 예정입니다.”
“흐음.”
“탕꼬와 신지 양꼬치의 경우 젊은 층이 많은 신주쿠의 가부키쵸, 시부야, 하라주쿠 등의 지역을 눈여겨볼 예정입니다. 그리고 고급 레스토랑인 파인다이닝 굴라의 경우 롯뽄기, 긴자 등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그건 뭐죠?”
대규가 테이블 위에 놓인 작은 USB를 가리키며 묻자 준섭은 척척 대답했다.
“만약 대규식품이 도쿄에 진출했을 시 경쟁이 될 만한 업소들, 혹은 프랜차이즈 식당들을 뽑아 리스트업 해놨습니다. 참고로 한번 확인해 보십시오.”
“알겠습니다.”
대규는 이렇게 일 처리를 완벽하게 하는 준섭이 믿음직스러웠다.
조만간 거대 고사리 뿌리를 우린 물과 미루스 비덴스의 젖을 짜 만든 우유를 선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참, 그리고 사장님이 혹시 가고 싶으신 곳이 있다면 미리 말씀해 주십시오. 그럼 제가 그곳들도 일정에 넣고 예약해 놓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이거 3박 4일 동안 아주 풍성한 식도락 여행이 될 것 같습니다.”
준섭이 사무실을 나선 후 대규는 일본의 음식들에 대해 조사를 해봤다.
우선 일본의 음식, 하면 바로 떠오르는 건 라멘, 덮밥, 우동, 소바 등이었다.
대부분 우리나라에서도 먹어 본 적 있는 음식들이었다.
그만큼 일본의 음식들은 우리나라에 아주 잘 정착한 것 같았다.
‘물론 어느 정도 한국인의 입맛에 맞춰 현지화가 된 거겠지만. 그리고 현지의 일식당은 우리나라 일식당과 분위기나 문화도 다를 거야.’
일본의 경우 우리나라보다 훨씬 일찍 혼밥 문화가 시작돼서 현재 1인 식당과 1인 술집이 넘쳐났다. 그리고 대형 프랜차이즈 식당들도 있지만, 그에 반해 소규모 이자카야, 밥집 등도 많이 존재했다.
또한 식당들은 대부분 상점가라 불리는 곳에 모여 있었다.
대규는 일본 음식들을 조사하다 놀라운 사실 몇 개를 알게 됐다.
그중에서도 가장 놀라웠던 사실은 본래 일본 요리가 아닌데 일본으로 흘러들어 가 현지화가 기가 막히게 된 음식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게 바로 라멘이었다.
라멘의 경우 중국의 ‘란저우라몐(兰州拉面)’이 그 기원이었다. 란저우라몐은 돼지기름이 둥둥 떠다니는 일본 라멘과 달리 쇠고기 살코기를 넣은 우육탕면이었다.
그 면 요리가 일본으로 전해져 현재의 라멘이 됐다. 하지만 이제 라멘은 일본을 대표하는 국민 음식이 돼 버렸다.
‘마치 우리나라의 짜장면 같군.’
라멘은 일본의 가장 흔한 서민 음식이었고, 프랜차이즈로 운영하는 점포들도 많았다.
대량생산한 면과 스프를 구입해 그저 끓여 내기만 하는 가게도 많았지만 대대로 기술을 전수하는 장인의 영역으로 들어선 곳도 있다고 했다.
‘라멘 장인이라니… 확실히 우리나라랑 좀 식문화가 다르긴 하구나.’
게다가 전에 준섭이 보여 줬던 탕꼬와 비슷한 음식인, 토리텐과 가라아게에 대해서 알아봤다.
토리텐과 탕꼬는 밑간을 한 닭고기에 밀가루, 계란 반죽을 튀김옷으로 입혀 튀긴 닭튀김으로 탕수육의 바삭한 식감을 갖고 있었다.
반면 가라아게는 전분으로 튀김옷을 입혀 튀김옷이 더 노르스름하고 두꺼웠다. 탕수육보단 프라이드치킨과 비슷한 형태였다.
‘이렇게 보니까 빨리 먹고 싶다…….’
대규는 일본에 가서 방문할 식당들을 주로 서민적이고 대중적인 곳들로 선정했다.
대규식품이 운영하는 식당 중 굴라 레스토랑 말고 나머지는 모두 서민적인 식당들이었다.
그리고 고급 레스토랑은 국가를 막론하고 그 분위기가 매우 비슷했다. 중국에 갔을 때 장룽차오와 만났던 고급 레스토랑을 가보고 그걸 느꼈다.
하지만 서민 식당은 다르다.
서민 식당은 그 어떤 곳보다도 그 나라의 식문화와 분위기가 가장 잘 반영된 곳이다.
따라서 일본의 서민 식당들을 방문해 분위기를 잘 파악해야 향후 대규 식품이 일본에서 잘 자리 잡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준비를 마친 대규와 준섭은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