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2
162화 제우스의 보상 (1)
“신의 육체를 얻어야 된다, 라.”
대규가 신의 육체를 얻으려면 제우스로부터 징표를 세 개 얻은 뒤 신의 육체를 얻을 수 있는 시련에 도전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징표를 딱 하나 얻은 상태였다. 영웅들 간 저승의 레이스에서 우승한 대가로 받았다.
‘나머지 두 개의 징표는 대체 언제 얻어서 신의 육체를 얻게 될까.’
아직도 까마득했다.
대규는 떠오른 공략집 창의 메시지를 곱씹으며 생각했다.
‘이 정도면 충분히 강해져서 모든 걸 다 알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구나.’
제우스는 이제 영웅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럼 이제 영웅들에 대한 보상을 내리겠다.”
영웅들의 손에 각자 얻은 젬스톤이 떨어졌다.
각자 적들을 해치운 대가로 얻어낸 것들이었다.
물론 대규의 손에는 남들보다 몇 배는 많은 젬스톤이 주어졌다.
블랙 등급 젬스톤 14개에 골드 등급 젬스톤 2개!
본래 얻은 건 블랙 등급 7개에 골드 등급 1개였다. 블랙 등급 7개 중 5개는 크툴루를 해치우고 얻은 것이었다.
하지만 지니고 있던 미다스의 손 보석 때문에 젬스톤의 개수는 두 배로 늘어났다.
엄청난 양도 양이었지만 모두 대규 손에 놓인 골드 등급 젬스톤에 주목했다.
대규 역시 놀란 표정으로 골드 등급 젬스톤을 쳐다봤다.
여태까지 젬스톤들은 새끼손톱만 한 크기였는데 이 젬스톤은 좀 달랐다.
황금빛을 찬란하게 뿜어내고 있었으며, 그 크기도 다른 등급 젬스톤에 비해 다섯 배는 컸다.
역시 기간테스를 해치우고 얻어낸 보상이라 남달랐다.
대규가 골드 등급 젬스톤을 바라보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골드 등급 젬스톤]
[거인 대장 기간테스급의 몬스터를 해치워야 나오는 젬스톤. 골드 등급 젬스톤 1개는 블랙 젬스톤의 100개의 가치와 맞먹는다.]
블랙 등급 젬스톤만 해도 그 가치가 천문학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골드 등급 젬스톤은 한술 더 떴다.
대규는 당장 현실로 돌아가면 공략집 업데이트부터 하겠다고 결심했다.
이 정도면 공략집을 업데이트하고도 충분히 많은 양의 젬스톤이 남는다.
보관함에 젬스톤들을 넣자 제우스가 말했다.
“그럼 대장군부터 보상을 내리도록 하겠다. 앞으로 나오도록 하라.”
대규는 천천히 왕좌 앞으로 걸어 나갔다.
제우스는 흡족한 미소를 띠며 그에게 말했다.
“그대는 이번 ‘검붉은 평원 전투’에서 누구보다도 커다란 공적을 세웠다. 그대의 행적은 실로 대단했다. 바로 신들의 아버지인 나 제우스를 경탄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어 제우스의 입에서 나온 말은 몹시 놀라운 것이었다.
대규는 하마터면 뒤로 나자빠질 뻔했다.
“…그래서 나 제우스는 세미데우스 영웅 김대규에게 징표를 하사하려고 한다.”
징표란 말에 천막 안의 모든 영웅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대규 역시 넋 나간 표정이었다.
보상으로 징표를 받게 되는 건 생각도 하지 못했다.
제우스는 허공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어느새 운명의 실, 바늘, 천이 허공에 둥둥 떠올라 있었다.
허공에 떠 있는 운명의 천에는 대규의 이름과 그 옆에 작은 황금 벼락이 수놓아져 있었다.
저번에 저승 레이스에서 우승한 대가로 얻은 첫 번째 징표였다.
제우스는 그때처럼 운명의 바늘에 실을 꿴 뒤 그것을 손끝으로 가볍게 톡 건드렸다.
그러자 바늘은 저절로 움직이며 천에 수를 놓기 시작했다.
첫 번째 징표와 똑같이 생긴 작은 벼락 모양의 자수였다. 자수에선 황금빛이 은은하게 퍼져 나왔고, 제우스는 징표가 완벽하게 수놓아진 운명의 천을 집어 들며 말했다.
“그대는 벌써 두 번째 징표를 얻었구나. 짧은 시간에 징표를 이렇게 빨리 모은 건 판테온을 통틀어 그대가 처음일 것이다.”
제우스가 말을 마치자 천, 바늘, 실들은 사라졌다.
“그대의 두 번째 징표 역시 판테온 기록의 신전에 영구히 기록됐다. 이제 마지막 징표만 하나 더 모으면 그대는 신의 육체를 얻을 수 있는 시련에 도전할 자격이 주어지겠구나.”
그때 대규의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제우스가 수여한 두 번째 징표가 판테온 기록의 신전 당신의 영역에 무사히 기록됐습니다.]
이로써 대규는 두 번째 징표를 받게 됐다.
제우스는 아테나 여신을 쳐다보며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저자가 신의 육체를 얻게 되면 더 이상 아테나 너의 부하가 아닐 수도 있겠구나.”
농담처럼 들렸지만 뼈가 있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들은 여신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하지만 그녀는 반박하지 않았다.
감히 신들의 아버지 제우스의 말에 끼어드는 건 예법에 어긋났다. 하지만 그 이유뿐만이 아니었다.
제우스의 말은 사실이었다.
여신인 그녀 역시 대규의 실력이 경이롭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두려운 느낌이 들면서도 동시에 묘하게 존경스러운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 느낌은 낯설지 않았다. 바로 그녀가 자신의 아버지이자 롤모델인 제우스를 떠올릴 때 드는 느낌과 비슷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의 직속 부하에게 이런 기분을 느끼다니! 이건 말도 안 된다.’
그녀는 대규를 흘끗 바라보았다.
대규는 처음 그녀의 부대에 왔을 때보다 몇 배는 강해졌고, 늠름해졌다.
그 모습을 보니 약간 씁쓸한 기분도 들었다.
‘아무래도 그대가 신의 육체를 얻을 날이 머지않은 것 같구나.’
제우스의 말대로 대규가 신의 육체를 얻게 되면 상관인 자신과 지위가 같아질 수도 있다.
어쩌면 그녀를 능가하는 신이 될지도 몰랐다.
한편, 대규는 방금 전 자신의 운명의 천에 수놓아졌던 두 번째 징표를 떠올리며 이렇게 다짐했다.
‘이제 남은 징표는 단 한 개! 어떻게든 모아주마!’
하지만 징표를 얻기 위해선 제우스 신을 경탄시킬 만한 일을 벌여야 한다. 이번 전투에서 고작 세미데우스 영웅의 몸으로 거인 대장 기간테스를 해치운 것처럼 말이다.
‘이에 필적할 만한 일은 또 뭐가 있을까? 또 다른 기간테스를 쓰러뜨려야 하나?’
그때 제우스가 대규를 보며 말했다.
“참, 그대에게 징표 말고 내릴 보상이 하나 더 있다. 그대가 토온을 해치운 대가로 받은 보상이다.”
대규의 눈앞에 황금빛 선물 상자가 두둥실 떠올랐다.
공략집에서 봤던 토온의 보상!
신화 등급의 선물상자가 분명했다.
대규는 떨리는 마음으로 상자를 받았다.
‘현실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아이템이었으면 좋겠다.’
촤아악-
상자를 열자 무지갯빛이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대규의 예상과 달리 상자에는 하얀 천이 하나 들어 있었다.
별다를 것 없어 보이는 무명천이었다.
대규는 천을 가리키며 제우스에게 물었다.
“이게 대체 뭡니까?”
그러자 제우스는 재미있다는 듯 히죽이며 이렇게 말했다.
“만져 보아라. 귀한 물건이니 말이다.”
대규는 그 말을 듣고 상자 안쪽에 손을 갖다 댔다.
스륵-
‘뭐지, 이 느낌은?’
몹시 부드러운 감촉이 이 손끝을 미끄러지듯 스쳤다. 흡사 고급스러운 비단 천 조각을 쓰다듬은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분명 상자 안에는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았다.
그 순간 눈앞에 아이템 설명창이 떠올랐다.
[림피디팔리움(limpidipallium)]
[신비한 직물로 짜인 투명 망토. 이것을 걸친 존재는 한없이 투명해져 볼 수 없는 존재가 돼 버린다. 탈부착 기능이 있어 갑옷이나 다른 의상에 자유롭게 부착이 가능하다. 매우 질겨서 신화 등급 이하 무기론 찢어지거나 해를 입지 않는다.]
메시지창을 본 대규의 눈동자가 커졌다.
‘좋았어!’
몸을 투명하게 만들어 주는 망토의 능력은 현재 황금 눈물 갑옷이 지니고 있는 투명화 옵션과 비슷해 보였지만 중요한 부분에 있어서 차이점이 있었다.
갑옷의 투명화 옵션의 경우 가만히 있는 부동(不動)자세에 한해서만 그 옵션이 발동된다.
몸을 움직이기라도 하면 바로 투명화 옵션은 풀려 버린다.
이게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물론 아예 옵션이 없는 것보단 훨씬 나았지만 말이다.
적의 약점 영상을 맘 놓고 보기 위해선 아무것도 못 하고 가만히 서 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이 림피디팔리운이란 망토를 걸치면 움직이면서도 투명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따라서 투명한 상태에서 마음껏 움직이며 적에게 공격을 가할 수도 있다.
그럼 적은 대규가 어디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속절없이 공격을 당하기만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쓰일 수 있지. 들어가기 힘든 장소에 몰래 들어간다거나…….’
‘이를테면 여자 목욕탕 같은 곳?’
농담이다. 그런데 흥미를 느낄 나이는 훨씬 지났다.
대규가 투명 망토를 받고 물러나자 제우스는 다른 영웅들을 보며 말했다.
“이제 다른 영웅들에게 보상을 내리겠다.”
케이른과 다른 영웅들이 각자 보상을 받았다. 그리고 지영의 차례가 됐다.
제우스는 지영을 보며 인자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대의 행적도 유심히 지켜봤다. 그대의 스킬이 아니었다면 이 부대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황송하옵니다.”
“특히나 그대가 대장군에게 스킬을 걸어 주지 않았다면 지금쯤 대장군은 초주검이 됐겠지. 이건 내가 그대에게 특별히 내리는 보상이다.”
지영에게도 황금 상자가 주어졌다.
그녀는 상자를 열어 봤다. 그 안에는 멋지게 생긴 쌍검 한 자루가 들어 있었다.
외관만 봐도 등급이 높아 보이는 무기였다. 그런데 각 손잡이에 푸른색의 둥근 보석이 박혀 있었다.
보석은 대규의 사슬검에 붙어 있는 살로메의 보석과 비슷하게 생겼다. 색깔이 푸르다는 것만 빼고 말이다.
곧 아이템 설명창이 떠올랐다.
[유디트(Judith)의 보석이 박혀있는 쌍검(신화)]
[적진에 뛰어들어 적장의 목을 잘라온 여자 영웅 유디트가 지녔던 보석이 박혀 있는 쌍검. 용맹스러운 기운으로 공격한 상대방의 마나를 흡수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다. 공격력 77% 상승함.]
대규의 살로메 보석이 공격할 때마다 적의 생명력을 흡수하는 거라면 저 유디트의 보석은 공격할 때마다 상대방의 마나를 흡수하는 능력을 지닌 것 같았다.
지영이 지닌 스킬 전쟁의 축복은 마나 사용량이 큰 스킬이었다.
하지만 저 보석 박힌 쌍검이 있으면 굳이 마나 회복력 포션을 주기적으로 복용할 필요 없이, 적을 공격하면서 동시에 마나까지 회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곧 세미데우스의 육체를 얻게 될 판테온의 시련에 도전한 뒤 자가 치유 능력을 지니게 될 거야.’
그녀가 판테온의 시련을 통과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건 생각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그녀의 실력은 상상 이상이었으니까.
지영이 보상을 받고 들어가자 제우스는 이제 오크 영웅 가로쉬를 불렀다.
가로쉬는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깜짝 놀라며 왕좌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대는 이 부대의 장군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부대의 승리를 위해 누구보다도 열심히 싸웠다. 그대의 신 아레스가 이 소식을 들으면 아주 기뻐할 것이다.”
“화, 황공하옵니다!”
가로쉬는 기쁨에 넘친 목소리로 외쳤다. 아레스의 이름을 듣자 그의 눈엔 감격의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이건 내가 내리는 선물이자 축복이다.”
제우스는 자신의 손을 오크의 이마에 갖다 댔다.
그러자 가로쉬의 몸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털이 더 수북해지고 그의 피부 거죽은 더욱 단단해졌다.
신체 자체가 변해 버린 것이다.
“우오오오!”
그 모습을 본 아레스 부대의 영웅들이 천막이 떠나갈 듯 함성을 질렀다.
“가로쉬 대장군이 상급 오크가 되셨다!”
가로쉬 역시 자신의 신체 변화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멍하니 서 있었다. 얼마 후 현실 파악이 된 그는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크흑, 크흐흑! 내가 상급 오크가 되다니!”
상급 오크라는 건 오크들 사이에서 엄청난 지위인 것 같았다. 대규는 케이른에게 이렇게 물었다.
“케이른, 상급 오크라는 게 대체 뭡니까?”
그러자 케이른이 대답했다.
“상급 오크는 오크족 중에서도 상위 0.1%만 될 수 있는 전설의 종족입니다. 이제 아레스 부대는 엄청난 대장군을 두게 됐군요.”
가로쉬는 눈물을 닦으며 지영 쪽을 바라보았다.
지영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향해 박수를 칠 뿐이었다. 하지만 가로쉬 눈에는 그마저도 좋아 보였나 보다. 그는 지영에게 가서 그녀의 손을 꼭 붙잡으며 이렇게 외쳤다.
“이게 다 자매 덕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