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8
158화 포르피리온의 재습격 (8)
여신은 지금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물론 예전부터 계속 여신을 놀라게 하였던 대규긴 했다.
여신은 떨리는 목소리로 대규에게 물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건가? 그대가 이곳에 와서는 안 된다. 이 전투는 대장들끼리의 전투이고 그에 걸맞은 규율이 있다.”
여신의 눈동자가 대규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자 그는 크게 외쳤다.
“규율이고 나발이고 지금 그게 무슨 소용입니까! 저 거인 녀석들 말대로 전쟁에선 이기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리고 전 한 부대의 대장군으로서 이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감히 상관에게 불복종하는 것이냐!”
여신이 노한 목소리로 일갈했다.
하지만 대규는 꿈쩍 안고 이렇게 대꾸했다.
“예. 감히 그렇습니다. 모든 처벌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대신 처벌은 저자들을 쓰러뜨린 후에 해주십시오.”
그 말에 여신은 할 말이 없어졌다.
“…알았다. 일단 전투가 끝나고 보자.”
“여신께선 기가스 포르피리온과 저 홀쭉한 거인을 맡아주십시오. 제가 저 뚱뚱한 거인을 상대하겠습니다.”
여신은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대규를 쏘아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이렇게 말했다.
“조심하거라. 녀석은 거인대장 기간테스다. 영웅의 몸으론 무리일 것이다.”
“알겠습니다.”
대규는 대답한 뒤 뚱뚱한 거인 토온에게 날아갔다.
살집 있는 분홍빛 피부에 머리 위엔 더듬이라니. 꼭 드래곤볼에 나오는 몬스터 마인부우를 닮았다.
실실 웃고 있는 것 같은 눈매도 판박이였다.
‘그런데 왜 무기를 안 들고 있지? 맨손으로 싸우는 녀석인가?’
그를 보자 공략집이 떠올랐다.
-차원의 틈 공략집-
몬스터 이름: 토온(Thon)
보상: 골드 등급 젬스톤 1개, 신화 등급의 선물 상자
특징: 기간테스 대장 중 한 명으로 한 부대를 거느리고 있다. 항상 능글맞게 웃고 있지만, 저 눈을 뜨면 무시무시한 위력을 뿜어낸다. 토온의 거대한 살집은 무기나 적들을 흡수시켜 버린다.
보유 스킬: 흡수-널찍한 살집으로 상대의 무기 혹은 상대방 자체를 흡수시킨다. 흡수한 무기나 상대방의 능력도 일정 부분 흡수하며 강해진다.
<토온에 대한 공략(하급)을 습득했습니다.>
<토온에 대한 당신의 공격력이 10% 상승합니다.>
<토온으로부터 아이템을 습득할 확률이 조금 높아집니다.>
<토온의 약점을 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영상을 재생하시겠습니까? Yes/No>
‘상대방의 무기와 능력을 흡수하는 스킬이라고?’
저 자식은 황금 눈물 갑옷이 지니고 있는 기능을 아예 스킬로 갖고 있었다.
공격 영상을 보니 모루 위에서만 다른 아이템과 흡수가 되는 황금 눈물 갑옷과 달리 녀석은 전투 중에도 자유자재로 상대방의 무기와 능력을 흡수할 수 있었다.
저 비대한 뱃살이 늘어나면서 무기와 아이템 등을 감싸 안아 배 속으로 흡수하는 방식이었는데 영상에 따르면 녀석이 흡수한 무기들과 생명체는 수없이 많았다.
게다가 흡수한 무기 중 자기가 원하는 무기를 골라서 꺼낼 수 있는 것 같았다.
녀석의 약점은 다른 거인형 몬스터 처럼 심장부였다.
‘하지만 워낙 몸집이 크고 거죽이 두꺼운데 외상으로 공격할 수 있을까?’
토온은 자신의 주변을 날아다니는 자그마한 대규를 바라보며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 감히 세미데우스 영웅 주제에 기간테스에게 도전하다니. 아주 재밌다, 재밌어. 하하!”
녀석은 자신의 후덕한 뱃살을 손바닥으로 팡팡 치며 이렇게 말했다.
“그럼 어떤 무기로 상대해 주는 게 좋을까나아?”
그리고 손가락으로 자신의 뱃살을 꼬집어 당겼다.
녀석의 핑크빛 뱃살이 점토처럼 죽 늘어났다.
“흐음, 모기만큼 작은 녀석이니까 이런 게 좋겠지?’
꿀렁-
늘어난 뱃살은 녀석의 손안에서 저절로 움직였다. 이윽고 녀석은 손으로 뱃살 한 점을 똑 떼어 냈다.
어느새 뜯어낸 핑크빛 살점은 거대한 철퇴로 변해 있었다.
자세히 보니 철퇴가 아니었다.
그건 엄청나게 커다란 파리채처럼 생긴 무기였다. 널따란 부채를 닮기도 했다.
주변에는 파지직 거리는 위협적인 전기파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하하! 저번에 상대했던 녀석에게 이 무기를 흡수하길 잘했어.”
토온은 실실 웃던 눈을 위협적으로 떴다.
눈을 뜨니 여태까지 그의 얼굴을 지배했던 능글맞은 인상이 싹 사라져 버렸다.
지영이 걸어준 전쟁의 축복 버프의 지속시간은 10분이다.
이제 채 9분도 남지 않았다.
‘9분 안에 녀석을 어떻게든 해치워야 한다. 해치우진 못해도 치명상이라도 입혀야 해.’
토온은 거대한 파리채를 들고 휘둘렀다.
하지만 그 속도는 다행히 걱정했던 것만큼 위력적이지 않았다.
물론 몹시 빠르긴 했지만, 대규가 마음을 먹고 피하면 충분히 피할 수 있을 정도였다.
‘뭐야? 버프를 받아서 거인 대장의 공격도 이 정도로 느리게 느껴지는 건가?’
파지직!
그때 녀석의 파리채에서 붉은 전기파 같은 게 뿜어져 나왔다.
전기파는 대규를 향해 매섭게 돌진했다.
“크윽! 레툼 익투스!”
악마의 화염을 품은 검광들이 붉은 전기파를 향해 날아갔지만, 전기파는 검광들을 뚫고 대규에게 날아왔다.
‘저건 대체 뭐야?’
대규는 네메시스의 방패를 들어 전기파를 막아 냈다.
파아아앙!
전기파가 방패와 부딪히자 엄청난 굉음과 함께 주변의 풍경이 아지랑이처럼 일렁였다.
실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방패를 든 왼팔 전체가 찌릿찌릿 해졌고 한순간 마비가 된 듯 아무런 감각도 느낄 수 없었다.
토온 녀석은 기분 나쁜 목소리로 이렇게 실실댔다.
“히히, 파리채는 전기 파리채가 짱이라니까~”
왼팔이 마비돼서 방패를 드는 것조차 힘들었다.
‘뭐 저런 게 다 있어!”
녀석은 실실대며 다시 한번 파리채를 휘둘렀다.
“죽어랏, 모기야!”
파지직!
붉은 전기파가 다시 한번 대규를 향해 날아왔다.
대규는 있는 힘껏 날아서 도망쳤다. 하지만 전기파는 목표를 계속 쫓아오는 유도 미사일처럼 대규의 꽁무니를 쉬지 않고 쫓아왔다.
‘크윽…….’
헤르메스의 장화보다 전기파의 속도가 훨씬 빨랐다.
이것이 기간테스의 실력이구나. 괜히 거인 대장들이 아니었어.
하지만 저 전기파를 피할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순간 허공을 날던 대규의 몸이 사라졌다.
“으헝?”
토온은 살이 몇 겹이나 접힌 목을 도리도리 돌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추격할 목표를 잃은 전기파는 허공에서 허무하게 사라져 버렸다.
“이 파리 같은 녀석이 대체 어디로 간 거람?”
그 순간 토온의 머리 위로 검은 화염이 불어닥쳤다.
“레툼 익투스!”
“이 녀석이 언제?!”
대규가 신고 있는 헤르메스의 장화는 순간 이동 능력도 지니고 있다.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장소로 이동할 수 있는 장거리 순간 이동 능력도 있지만 이렇게 단거리로도 순간 이동할 수 있었다.
토온의 머리 위로 검광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녀석은 파리채로 그 검광들과 일격의 기운을 가뿐하게 쳐냈다.
팡팡팡!
꼭 능숙한 테니스 선수를 보는 것 같았다.
“하하하! 몸풀기에 딱 적당한걸!”
재수 없는 자식. 그럼 패널티를 주마.
대규는 오른손에서 거미줄을 뿜어냈다.
스르륵-
거미줄은 순식간에 토온의 팔과 전기 파리채를 휘감았고 대규는 거미줄을 있는 힘껏 당겼다.
그제야 토온은 마음대로 파리채를 움직이지 못했다.
그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으으, 이 벌레 같은 자식이!”
그는 웃고 있던 얼굴을 구기며 다시 한번 위협적으로 눈을 떴다.
하지만 대규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다시 한번 공격을 가했다.
검광들이 토온의 푸짐한 뱃살로 파고들었다. 몇 개의 상처를 남겼으나 치명상은 아니었다.
“흐라압!”
토온은 기함을 지르며 팔에 힘을 줬다. 살덩이 팔에 근육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대규는 이를 악물고 거미줄을 힘껏 당겼다.
“힘이여, 솟아라!”
거미줄이 팽팽하게 늘어났고 둘의 힘겨루기는 막상막하였다.
파앗!
결국, 아라크네의 거미줄이 끊어져 버렸다.
토온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
“휴우, 정말 질긴 거미줄이군.”
그 질긴 거미줄을 끊어버린 녀석도 참 대단했다.
토온은 이를 갈며 대규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너를 상대하려면 다른 무기를 사용해야 겠어.”
말을 마친 그는 전기 파리채를 자신의 배에 갖다 댔다.
그러자 파리채는 다시 핑크빛의 뭉글뭉글한 뱃살로 변해 버렸다.
녀석이 맨손으로 있는 지금이 기회였다.
대규는 불카누스의 사슬검을 들고 녀석의 가슴 쪽으로 파고들었다.
검은 화염을 품은 검으로 녀석의 왼쪽 가슴을 찌르려던 찰나,
“히히, 걸려들었다~”
갑자기 녀석의 뱃살이 기괴하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늘어난 뱃살은 사슬검을 휘감았다.
“네 녀석의 무기를 흡수해주마! 아까부터 봤지만 정말 탐나는 검이야. 악마의 화염까지 장착했고. 히히.”
“이 자식이……!”
대규는 있는 힘껏 힘을 줬다.
결국 사슬검은 녀석의 뱃살에서 빠져나왔고 대규의 몸은 반동 때문에 저 멀리 퉁겨져 날아갔다.
“히히히, 됐다.”
녀석의 웃음소리에 자신의 사슬검을 황급히 바라보니 끄트머리 부분의 사슬날 하나가 부서져 있었다.
녀석은 부서진 사슬 검날을 탐욕스럽게 바라보며 곧 자신의 배 속으로 흡수시켰다.
“으음… 정말 맛있는 무기야.”
맛있는 음식이라도 음미하는 것처럼 녀석은 입맛을 다시기 시작했다.
얼마 후 토온은 다시 뱃살을 떼어 냈다.
스스스-
떼어낸 뱃살은 정확히 대규의 불카누스 사슬검과 똑같은 모양으로 변해 버렸다.
대규의 검처럼 악마의 화염이 검신을 휘감고 있었다.
‘아니야, 내 검과 미묘하게 달라.’
자세히 보니 사슬검날들이 곧게 뻗어있지 않고 고슴도치의 가시처럼 삐죽삐죽하게 돋아나 있었다.
검을 주시하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토온이 흡수한 불카누스의 사슬검]
[거인 대장 토온이 흡수 스킬을 발휘해 흡수한 불카누스 사슬검. 약간의 변형을 거쳐 재탄생됐다. 흡수한 다른 무기와 조합해 외관과 공격력이 30% 추가 상승됐다.]
“이것이 바로 창조무기다, 하하!”
토온은 대규를 가만히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너 말이야… 벌레 같은 영웅 주제에 정말 탐나는 녀석이란 말이지. 악마의 화염을 담은 칼에 그 질긴 거미줄, 그리고 순간 이동을 할 수 있는 능력!”
그는 탐욕스러운 표정으로 이렇게 선언했다.
“그래, 다음은 너로 정했다! 너를 흡수하고 말했어!”
말을 마친 녀석은 맹렬하게 덤벼오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 나 혼자서는 안 돼.’
지영에게 버프를 받아서 혼자서라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자신이 기간테스를 너무 과소평가한 것 같았다.
대규는 토온이 휘두른 사슬검의 칼날을 네메시스의 방패로 막아냈다!
깡!
방패가 지닌 부식 효과 때문에 녀석의 사슬검이 서서히 부식됐다.
하지만 녀석은 당황하기는커녕 오히려 입이 째지라 좋아하고 있었다.
“이런 신묘한 방패까지! 역시 너는 꼭 흡수해야겠다.”
“웃기지 마라!”
하지만 외침과 달리 대규는 녀석의 맹렬한 공격을 피하느라 급급했다.
심장부엔 다가갈 수조차 없었다.
차라리 녀석의 몸으로 들어가 내부에서 심장을 공격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카리브디스와 크툴루를 해치웠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몸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누가 녀석의 움직임을 잠깐만이라도 봉쇄해 줘야 할 것 같았다.
아테나 여신 쪽을 흘긋 바라봤지만, 여신은 미마스와 기가스 포르피리온을 상대하느라 벅찬 상태였다.
‘제길, 그녀를 도와주러 와서 이게 뭐 하는 거냐. 여기서 쓰러질 순 없다!’
그때 황금눈물 갑옷으로 만들 수 있는 분신이 떠올랐다.
분신의 능력은 본체보다 50% 다운된다 하더라도 지금은 버프를 받아 본체의 능력이 비약적으로 올라간 상태다.
그 정도라면 분신이라도 도움이 될 것이다.
분신이 제대로 싸우진 못할지라도 잠깐 동안 시간을 끌거나 녀석의 움직임을 봉쇄할 수는 있을 터.
그사이 녀석의 몸으로 재빨리 들어가면 된다.
대규는 분신을 만들기 시작했다.
스스슥-
순식간에 대규와 똑같이 생긴 분신이 옆에 나타났고 대규는 갑옷의 투명화를 발동시켜 몸을 감췄다.
“크하하! 흡수해 주마!”
토온은 분신을 대규라고 착각한 채 달려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