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5
155화 포르피리온의 재습격 (5)
지영은 허공에 나타난 아포피스를 넋 나간 채 바라보며 생각했다.
‘대체 김대규 이 남자의 정체는 뭐란 말인가.’
곧 소환된 아포피스는 크툴루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크툴루의 촉수들도 아포피스를 휘감기 시작했다.
치지직-
촉수들의 공격 때문에 아포피스의 비늘 덮인 피부가 녹아내렸고, 검은 피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키에엑!”
아포피스가 괴로운 듯 울부짖었다. 여태까지 저토록 부상을 입은 경우는 처음 봤다. 만만치 않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크툴루는 역시 강적이었다.
하지만 아포피스는 멈추지 않고 크툴루의 문어처럼 생긴 머리를 콱 물어 버렸다.
“그으으-”
크툴루의 몸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아포피스의 커다란 송곳니는 점점 크툴루의 머리 안쪽을 파고들었다.
이때다.
“지영 씨! 지금 스킬을 걸어 주세요!”
다급하게 외치자 지영이 스킬을 걸기 시작했다.
그녀는 팔을 뻗어 자신의 손을 대규의 양어깨 위에 올렸다.
그녀의 손끝에서 어깨로 기분 좋은 온기가 전해졌다. 하지만 기분 좋은 것도 잠시, 온기는 급격하게 뜨거운 열기로 변해 버렸다.
어깨가 녹아 버릴 정도로 뜨거운 열기에 대규는 숨을 헉, 하고 들이쉴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지영이 등 뒤에서 속삭였다.
“여러 명에게 내릴 축복을 한 명에게 몰아주는 거라 이런 거예요. 금방 끝나요. 절대 움직이지 마세요.”
대규는 이를 악물었다.
어깨로 들어온 열기가 온몸에 도는 것 같았고 곧 심장이 마구 요동쳤다.
두근두근.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며 오한이 왔다.
그럴수록 심장은 혈액들을 미친 듯이 펌프질시켰다.
곧 지영이 어깨에서 손을 뗐다.
“다 됐어요. 한 명에게 몰아서 축복을 내린 만큼 그 유지 시간이 길지는 않아요. 10분 정도예요. 빨리 가세요!”
안 그래도 지영이 말하기 전 대규는 벌써 크툴루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몸이 가벼워진 정도가 아니라 꼭 종잇장같이 느껴졌다. 온몸에서 에너지도 훨씬 넘쳐났다. 하지만 ‘힘이여, 솟아라!’ 스킬을 썼을 때처럼 근육이 막 꿀렁거리거나 하진 않았다.
외관은 평소와 똑같았다. 하지만 그 느낌은 전혀 달랐다.
한편 아포피스는 크툴루를 상대로 고전을 벌이고 있었다.
녀석의 소환 시간은 이제 10초도 남지 않았다.
수백 개의 촉수들은 아포피스의 거대한 몸뚱이를 밧줄처럼 꽁꽁 휘감은 상태였다. 심지어 심장부로 들어가는 길목을 막고 있던 촉수들도 모조리 아포피스를 포위하고 있었다.
‘지금이 기회다.’
대규는 심장부를 향해 재빨리 날아갔다.
아포피스는 부상을 입은 채여선지 크툴루의 문어 머리를 물고 있었다.
이빨은 이제 문어 머리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고, 녀석의 머리에선 피가 폭포처럼 흘러나왔다.
“그으으…….”
대규는 무사히 심장부가 있는 체내 안쪽으로 침입했다.
바깥쪽에서 아포피스의 신음이 들렸다. 아포피스를 희생시킨 것 같아서 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크툴루의 체내 벽에는 작은 촉수들이 돋아나 있었다. 그것들은 몹시 고약한 냄새를 풍겼다.
대규는 사슬검을 힘차게 휘둘렀다.
화르륵-
검은 화염이 넓은 파도처럼 뿜어져 나와 빠르게 촉수들을 태워 버렸다.
여태까지 작은 불꽃이 날아가던 것과 차원이 달랐다.
‘이것이 지영 씨의 버프 스킬 효과인가?’
촉수들은 흔적도 없이 불타 버렸다.
재생이 되고 있지만, 그 속도가 현저히 느려졌다.
그때 바깥쪽에서 아포피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크르르르…….”
아무래도 녀석의 소환 시간이 다 찬 것 같았다.
대규는 지도창을 켜고 심장이 있는 심장부로 향했다.
그때 등 뒤쪽에서 거대한 촉수들이 빠르게 뒤쫓아 왔다.
아포피스가 사라지자 이젠 몸속의 침입자를 노리고 들어온 것이다.
“레툼 익투스!”
검은 화염을 품은 검광이 빠르게 날아갔다.
팡!
그리고 거대한 촉수들은 마치 폭발하듯 터져 버렸다.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이 폭탄 같은 공격은 뭐야? 이 역시 버프만큼 증가한 공격력인가?’
심지어 터진 촉수는 빠르게 재생을 하지 못했다.
이때다 싶어 대규는 녀석의 신체 내벽을 사정없이 공격했다.
팡! 팡!
내벽이 폭발하듯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바깥쪽에서 크툴루가 괴로워서 몸부림치는 소리가 들렸다.
내벽에 상처가 나자 저 앞쪽에 있는 촉수들의 움직임 역시 서서히 느려졌다.
하지만 대규의 몸은 아주 가벼웠다.
크툴루의 움직임이 둔해지자마자 재빨리 심장부 깊숙한 곳으로 날아갔다.
얼마 후 심장부에 도착했다.
그곳은 판테온의 시련에서 겪었던 거대 바다 괴물 카리브디스처럼 거대한 심실이었다.
심실 한가운데 세차게 박동하는 심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박동 소리가 너무 커서 귀가 먹먹할 지경이었다.
대규는 불카누스의 사슬검으로 녀석의 심장을 힘차게 내리찍었다.
철컥.
안쪽에서 뭔가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수십 개의 독 촉수들이 뻗어 나와 검을 잡은 대규의 오른팔을 휘감았다.
심장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함정인 것 같았다.
촉수들이 팔을 세게 짓눌렀지만, 대규는 전혀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방어력 역시 150% 상승했겠지. 하지만 이거 너무 무적인데.’
대규는 심장에 박힌 사슬검을 꺼내며 외쳤다.
“비산의 결계!”
우르릉-
번쩍!
검은 화염이 허공에서 거대한 폭포수처럼 내려와 독 촉수들을 덮쳤다.
화르륵-
촉수들은 단번에 잿더미가 돼 버렸다.
그 틈을 타 대규는 다시 한 번 심장을 공격했다. 높이 점프해 사슬검을 재빨리 휘둘렀다.
“레툼 익투스!”
일격의 기운이 심장을 파고들었고,
꿀렁-
파아앙!
심장은 거대한 굉음 소리를 내며 터져 버렸다.
검붉은 액체가 심장에서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크툴루의 심장을 파괴했습니다.]
[많은 양의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2단계 상승했습니다.]
온몸에서 강렬한 하얀빛이 일었다. 단번에 레벨이 2단계 상승한 덕분인 것 같았다.
‘대단하군.’
세미데우스의 육체를 얻은 이후 레벨 업은 몹시 힘든 일이 돼 버렸다. 웬만한 노가다를 하거나 보스 몬스터를 잡아도 레벨은 겨우 1단계만 상승할 뿐이었다.
그런데 이 녀석을 하나 해치운 것만으로 레벨이 2단계다 상승하다니.
대규는 오랜만에 상태창을 확인해 봤다.
김대규(세미데우스)
Lv. 7(79.00%)
생명력 3,390/3,390
마나 720/935
근력 142
민첩 141
지능 141
운 10(+5)
권위 28(+3)
사용 가능한 스탯 포인트: 12
‘스탯 포인트가 12나 모였다. 이 정도면 다른 스탯을 올려도 되지 않을까?’
하지만 지금은 그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지영이 걸어 준 버프 지속 시간은 이제 3분도 채 남지 않았다.
크툴루의 심장을 파괴하자 보상인 블랙 젬스톤 5개와 주먹만 한 까만 공이 두둥실 떠올랐다.
‘저건 대체 뭐지?’
하지만 대규가 볼 새도 없이 그것들은 두둥실 떠올라 순식간에 허공에서 팟, 사라져 버렸다.
아테나 여신 부대로 전송된 것 같았다.
일단 저 까만 공에 대해선 나중에 확인하기로 했다. 크툴루의 심장을 파괴하자 녀석의 신체 내부가 급격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쿠구궁-
신체 내벽이 녹아내리기 시작했고, 질척한 체액과 피들이 급류처럼 심실 안으로 흘러들어 왔다.
빌어먹을.
들어온 입구는 이미 막혀 버렸다. 죽어 버린 촉수들의 찌꺼기가 입구를 꾸역꾸역 막고 있었다.
‘그럼 이 신체 내벽을 뚫고 밖으로 나가자!’
지금 버프로 올라간 자신의 능력이면 가능할 것 같았다.
대규는 힘차게 발돋움을 한 뒤 가장 연약해 보이는 내벽을 향해 사슬검을 있는 힘껏 휘둘렀다.
찌이익-
역겨운 소리와 함께 내벽이 갈라지며 기다란 틈이 생겨났다.
틈 사이로 대규는 몸을 빠져나와 허공 위를 날았다.
하늘 위에서 바라보니 장관이었다.
거대한 크툴루는 서서히 주저앉으며 신음을 내지르고 있었다.
녀석의 몸 밑 쪽에는 아직 부하가 되지 않은 알들이 보였다.
‘이제 저것들을 해치울 수 있겠지.’
대규는 알 부화장으로 날아가 사슬검을 휘둘렀다.
“레툼 익투스!”
버프 효과를 받은 검은 화염이 파도처럼 몰려와 부화장을 휩쓸었다.
곧 평원 일대는 검은 화염 바다가 됐고, 알들은 화염 속에서 순식간에 잿더미가 됐다.
심지어 검은 화염은 앞쪽에 조금 남아 있던 괴수 군단들마저 쓸어버렸다.
괴수들은 화염 속에서 신음을 내지르며 죽어 갔다.
이 정도로 강한 화염 앞에선 녀석들의 재생 능력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재생되기도 전에 화염이 모든 걸 다 태워 버리니까 말이다.
마침 버프 효과의 지속 시간이 끝나 버렸다. 대규는 자신이 만들어낸 검은 화염 바다를 보며 생각했다.
‘꿈만 같군.’
한편 지영은 그 모습을 보고 놀라고 있었다.
‘저 화염은 대체…….’
대규가 한 번 칼을 휘둘렀을 뿐인데 평원이 불바다가 돼 버렸다.
자신의 버프 스킬을 받아 강해질 거라곤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괜히 대장군의 칭호를 받은 게 아니었어.’
죽어도 쓰러뜨릴 수 없을 것 같았던 크툴루는 결국 쓰러졌다.
지영은 뒤쪽을 돌아봤다.
저 멀리 가로쉬를 포함한 정예군 영웅들이 날아오는 게 보였다.
지영의 전쟁의 축복 스킬 덕분에 다들 능력이 강해져서 순조롭게 괴수 군단을 물리치고 온 것이다.
‘잘됐어…….’
아군의 승리가 확실시되자 그녀의 온몸에서 서서히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서서히 그녀의 몸은 불바다 쪽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연속으로 쓴 전쟁의 축복 덕에 마나는 완전히 소모됐고, 설상가상으로 하늘을 날 수 있는 스킬 전설의 날개 사용 시간도 동이 나 버렸다.
여태까지 그녀는 마나를 마나 회복 포션으로 계속 보충하면서 전설의 날개 스킬을 지속해서 유지해 왔다.
아군들에게 전쟁의 축복을 걸어 주는 것까지 생각하고 마나 회복 포션을 챙겨와 전투를 해왔다.
하지만 대규에게 전쟁의 축복을 몰아서 걸어 주는 건 계획 밖의 일이었다.
그녀의 예상보다 적군이 너무 강했던 것이다.
물론 대규에겐 마나 회복 포션이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사실대로 말하면 대규는 분명 거절했을 것이고, 결국 저 무시무시한 괴물을 해치울 수 없었을 것이다.
화염의 바다로 떨어지면서 그녀는 생각했다.
‘이제 됐다. 나는 부대의 영웅으로서 최선을 다한 거야. 물론 이걸로 차원의 틈 시절부터 대규 씨에게 받아 왔던 은혜를 다 갚을 순 없겠지만…….’
그녀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악마의 화염에서 피어오르는 열기가 그녀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온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이상하리만치 평온했다.
까만 불길이 그녀의 몸을 집어삼키려는 순간,
휙-
누군가가 그녀의 몸을 낚아채 갔다.
크툴루와 그의 괴수 군단은 처참하게 박살 나 버렸다.
물론 지영이 아군에게 걸어준 버프 스킬, 전쟁의 축복 덕분이었다.
그래도 아군 측의 사상자는 존재했다. 정예군의 영웅 중 3명이 전투 도중 괴수들에게 당한 것이다. 아레스 부대의 고블린 영웅 두 명, 그리고 대규와 함께 전의 포르피리온 전투에서 싸웠던 영웅 한 명이었다.
대규는 그들의 명복을 빌었다. 아테나 여신이 그랬던 것처럼 마음속으로 그들이 저승의 천국이라 불리는 엘뤼시온에서 평화롭게 여생을 보내길 기도했다.
‘그나저나 정말 엄청난 화염이군.’
대규는 아직도 평원을 태우고 있는 악마의 화염 불바다를 보며 생각했다.
화염은 모든 걸 다 태우고 있었다. 크툴루도, 괴수들의 알도, 괴수 군단도.
꼭 거대한 화형식을 치르는 것 같았다.
‘지영 씨의 스킬은 정말 엄청난 거였어. 그런데 지영 씨는 어디 있는 거지?’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저 앞에서 일렁이는 검은 불길 속으로 거대한 인영이 보였다.
대규를 포함한 일동은 모두 놀랐다.
거대한 몸집의 오크 대장 가로쉬가 지영의 몸을 두 팔로 안은 채 화염 속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의 몸은 악마의 화염 때문에 다 녹아내린 상태였다. 심지어 살갗이 녹아내려 뼈가 보이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형형하게 살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