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3
153화 포르피리온의 재습격 (3)
두근두근.
심지어 불쾌한 심장박동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팡!
그때 맨 앞줄에 있던 알이 터졌다.
질척한 점액과 함께 새로운 괴수가 한 마리 태어났다.
대규는 쭉 늘어서 있는 알들의 뒤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이 괴수 군단의 괴물들보다 훨씬 더 끔찍한 존재가 있었다.
그것을 보자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세상에서 저토록 추악하고 역겹게 생긴 생물체는 처음 봤다.
그것의 머리는 아주 커다란 문어같이 생겼다. 하지만 머리 아래쪽에는 수십 개, 아니 수백 개의 촉수가 징그럽게 꿈틀거렸다.
녀석의 눈은 빨간빛으로 빛났고, 몸뚱이 역시 굵은 촉수 다발로 이뤄져 있었다. 촉수의 안쪽에는 검은색의 작은 가시들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쿰척.
녀석이 몸을 움직이자 몸뚱이 아래쪽에서 커다란 알이 나왔다.
알은 녀석의 몸에서 나오자마자 땅에 뿌리를 내리고 부화하기 시작했다. 곧 저 알에서 새로운 괴물이 태어날 것이다.
‘뭐 저런 게 다 있어…….’
아무래도 저 녀석이 병사들을 낳는 크툴루란 녀석인 것 같았다.
대규는 녀석의 비주얼에 압도됐다. 여태까지 상대했던 몬스터들과 본질적으로 달랐다.
정말 외계의 종족 같은 느낌이었다.
‘뭐 이런 녀석을 데려와? 기가스 포르피리온 녀석, 정말 작정하고 덤벼들었군.’
앞쪽의 알이 팡 터지며 새로운 괴물이 또다시 태어났다.
저런 식으로 병사들이 자꾸 태어나면 이쪽은 답이 없다. 해치워도 계속 병력이 빠르게 충원돼 버리니까 말이다.
‘정예군 영웅들이 괴수 군단을 해치울 동안 내가 이 녀석을 쓰러뜨려야 한다.’
‘하지만 가능할까?’
대규는 감히 녀석의 얼굴을 바라보지 못했다. 그만큼 녀석은 오싹했다.
그때 아테나 여신이 그를 보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물론 그대는 잘해 낼 거로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을 신뢰감에 찬 눈빛으로 바라봤던 여신의 눈동자가 생각났다.
이런 약한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지금도 아테나 여신은 기가스 포르피리온과 생사가 걸린 전투를 벌이고 있는데 말이다.
대규는 마음을 가다듬고 녀석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이윽고 공략집이 떠올랐다.
-차원의 틈 공략집-
몬스터 이름: 크툴루(Ktulu)
보상: 높은 확률로 블랙 등급 젬스톤 5개 드랍
특징: 끊임없이 병사들을 낳는 모체 괴수. 카르케르에 갇혀 있던 고대 외계종족. 그들의 기원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자웅동체로 혼자 자가 번식을 하며 번식 속도가 매우 빠르다. 촉수 다발에 잡히면 몸이 순식간에 으스러져 버린다.
보유 스킬: 재생-몸 부위가 절단 나도 바로 돋아나 재생된다.
출산-병사들을 끊임없이 출산해 낸다.
<크툴루에 대한 공략(하급)을 습득했습니다.>
<크툴루에 대한 당신의 공격력이 10% 상승합니다.>
<크툴루로부터 아이템을 습득할 확률이 조금 높아집니다.>
<크툴루의 약점을 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영상을 재생하시겠습니까? Yes/No>
블랙 등급 젬스톤을 5개나 드랍한다니.
여태까지 봤던 보스 몬스터들 중 가장 파격적인 보상이었다.
다행인 점은 저 비대한 몸집에 비해 공격 스킬이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출산이라는 스킬은 아주 귀찮은 것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녀석은 꽤 빠른 속도로 괴수 군단을 낳고 있었으니까.
알들은 꿈틀대며 열심히 부하가 되고 있었다.
대규는 녀석의 약점 영상을 재생했다.
‘이게 뭐야…….’
공격 스킬이 없는 것뿐이지 녀석의 위력은 엄청났다.
녀석은 수 백 개의 촉수를 움직여 모든 것들을 파괴했다.
심지어 영상에서 나온 건 일대일의 싸움이 아니라 크툴루 대 수십 명으로 이뤄진 한 부대의 전투였다.
촉수들이 한꺼번에 움직이면서 수십 명의 영웅이 휘감아 버렸다.
그리고 녀석은 게걸스럽게 영웅들을 먹어치워 버렸다.
으득, 으득, 으드득-
녀석이 비대한 몸뚱이를 움직일 필요조차 없었다. 수백 개의 촉수는 알아서 척척 영웅들을 사로잡아 버렸다.
게다가 녀석이 지닌 재생 스킬은 엄청났다.
촉수를 베어 버리면 그 자리에서 새로운 촉수가 재빨리 자라났다.
‘약점은 없나?’
물론 있다.
녀석의 약점은 심장부인데 그곳에 가려면 저 끔찍하게 생긴 촉수들을 헤치고 녀석의 몸 내부로 들어가야 한다.
즉 심장을 공격하려면 저 촉수들의 안쪽으로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촉수들의 공격 영상을 보니 어떻게 들어가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대규가 한 부대의 대장군이라지만 혼자의 힘만으론 녀석을 상대하는 게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다.
‘아포피스를 소환해 버려?’
대규는 라의 목걸이를 보며 생각했다.
하지만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아포피스를 최근에 소환했던 때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최근에 소환했던 건 승전기원 파티에서 영웅들과 함께 저승의 지옥에 갔을 때다. 지옥에 있는 금속 인페리 페룸을 얻기 위해 최종 보스 키메라와 전투를 벌였을 때 대규는 우선 파라오의 저주 스킬로 키메라의 능력을 50% 다운시키고 그 이후 아포피스를 소환했다.
하지만 그때 아포피스는 키메라에게 살짝 부상을 입었다.
그리고 대규가 같이 합세해서 키메라를 쓰러뜨렸다.
‘젠장, 적들이 점점 강해지니까 그 무적으로 보였던 아포피스도 이젠 그렇게 강한 존재가 아니게 되는구나.’
심지어 저 크툴루란 녀석은 당시의 키메라보다 훨씬 강해 보였다.
‘아포피스와 같이 합동 공격을 하는 건 좋은데… 내가 좀 더 강해야 할 것 같다.’
그르르르.
뒤쪽에서 굉음이 들렸고 대규는 고개를 돌렸다.
괴수 군단은 이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벌레의 다리들과 촉수들이 꿈틀거리며 기분 나쁘게 정예군 영웅들을 향해 가고 있었다.
대규는 일단 후퇴해 괴수 군단의 앞 열부터 해치우기로 했다.
그래야 정예군 영웅들에게 녀석들의 약점을 알려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병사들이지만 녀석들 역시 재생 능력을 지니고 있다. 급소를 잘 노려야 해.’
대규가 모습을 보이자 앞 열의 괴수들이 공격하기 시작했다.
점액이 잔뜩 묻어 있는 촉수가 옆구리를 노리고 날아들어 왔다.
휘릭-
몸을 돌려 날아오는 촉수를 피했다. 하지만 더 많은 촉수들이 끈질기게 대규를 향해 날아왔다.
촉수들은 채찍처럼 대규의 온 몸을 휘감으려고 했다.
“레툼 익투스!”
검은 화염을 품은 검광이 촉수를 깔끔하게 절단해 버렸다.
촉수의 절단면엔 악마의 화염이 붙어 활활 타올랐다.
“키에엑!”
촉수 괴물이 괴상한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이내 불길 속에서 촉수들이 재생됐다. 심지어 하나의 촉수가 잘린 곳에서 두 개의 촉수가 재생됐다.
‘징그러운 녀석들.’
휘리릭-
촉수들이 다시 공격해 왔고, 대규는 다시 한 번 몸을 돌려 그것들을 피했다. 하지만 촉수 끝이 아슬아슬하게 머리털 끝을 스쳤다.
치지직-
머리카락이 타는 냄새가 났다.
닥튈로이의 반지와 갑옷의 마력 저항이 있는데도 이 정도라니.
한 번이라도 제대로 공격을 맞으면 큰일 날 것 같았다.
어쨌든 이 촉수 괴물의 약점은 촉수들 한가운데 있는 주둥이 속의 신경절!
공략집을 가동하니 주둥이 속의 신경절 부분이 붉은 점으로 반짝였다.
대규는 그곳을 정확히 노리고 다시 한 번 스킬을 시전했다.
“레툼 익투스! 죽어라!”
악마의 화염이 괴수의 신경절을 노리고 날아갔다. 일격의 기운은 촉수 괴물의 신경절에 정확히 꽂혀 들어갔다.
“키에에엑!”
촉수 괴물이 괴상한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후우, 스킬을 썼는데도 한 번에 한 마리를 죽이는 게 고작이라니.’
이 시간에도 저 쿠툴루 자식은 괴수 군단을 마구 생성해 내고 있을 것이다.
그때 거대한 벌레의 다리가 대규를 향해 날아들어 왔다.
피할 틈도 없이 네메시스의 방패를 들어 막았다.
텅!
푸쉬쉬쉬쉬-
벌레 괴물의 다리에 묻어 있는 점액이 방패를 아주 약간 부식시켰다.
하지만 부식 효과는 녀석만 지니고 있는 게 아니다.
네메시스의 방패 역시 부식 효과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벌레 괴물의 다리 역시 서서히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심지어 방패가 녹는 것보다 녀석의 다리가 녹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방패를 업그레이드시켜 놓길 잘했다!’
괴물은 놀라서 자신의 다리를 방패에서 뗐다. 그 틈을 노려 대규는 괴물의 약점인 몸뚱이 위의 거대한 뇌 한가운데를 노리고 날아갔다.
“흐라압!”
사슬검을 높게 쳐들고 뇌의 한가운데 신경절을 정확히 찔렀다.
푹-
물컹한 게 터지는 것 같은 불쾌한 느낌이 사슬 날을 타고 손까지 전해졌다.
곧 검은 화염이 녀석의 뇌에 위치한 신경절을 태워 버렸다.
화르륵-
“키이이이…….”
벌레 괴물 역시 쓰러져 버렸다.
“휴…….”
하지만 이제 겨우 두 마리를 해치웠을 뿐이다. 크툴루의 괴수 병사들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다.
심지어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대규가 아무리 강하다지만 물량 앞에선 장사 없단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장룽차오의 무의식에 들어갔을 때도 그 병마용들을 홀로 상대하느냐고 나중에는 체력이 떨어졌었다.
‘일단 정예군들에게 이 녀석들의 약점을 알려 줘야 해!’
대규는 저 멀리서 날아오고 있는 가로쉬와 지영 등에게 가서 외쳤다.
“촉수형 괴물의 약점은 아가리 안쪽의 신경절이고, 별레형 괴물의 약점은 몸뚱이 위의 뇌 한가운데 신경절입니다! 그곳을 꼭 공격해야 합니다! 다른 데를 공격하면 무조건 재생되기 때문에 이 점 유의하십시오! 그리고 녀석들의 점액은 모든 걸 녹여 버립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가로쉬는 이렇게 외치며 배틀 엑스를 들고 괴수 군단들에게 뛰어들었다.
“알겠다!”
역시 전쟁의 광기를 사랑하는 아레스 부대의 대장군다웠다.
지영을 포함한 나머지 영웅들도 뛰어들어 각자 괴수들을 맡아 싸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가로쉬의 모습이 이상했다.
괴수 군단에 뛰어들었지만 전혀 공격을 하지 않고 오히려 괴물들의 공격을 다 맞고 있었다.
치이익-
괴물들의 점액이 닿을 때마다 가로쉬의 몸은 끔찍하게 녹아내리고 있었다.
상처에서 진물이 났지만 그는 도끼를 움직이지 않았다.
보다 못한 대규가 그에게 외쳤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그러자 가로쉬는 기분 나쁘게 웃으며 대답했다.
“크크크, 조금만 기다려라. 인내하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이제 얼마 안 남았다.”
그는 계속해서 괴물들의 공격을 받았다. 피부가 다 벗겨질 무렵 가로쉬는 호기롭게 외쳤다.
“크흐흐! 기분 좋다, 기분 좋아!”
고통을 즐기기라고 하는 건가.
그때 가로쉬가 배틀 엑스를 쳐들며 말했다.
“인내하는 자의 미덕을 제대로 보여 주겠다! 이 괴물 녀석들아!”
가로쉬는 보법을 이용해 하늘 높이 점프했다.
허공에서 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맞은 만큼, 아니 최소 그 열 배로 돌려주마! 이 추잡스러운 녀석들아!”
가로쉬의 몸에서 하얀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의 우락부락한 몸이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꼭 대규의 힘이여, 솟아라! 스킬을 쓴 것 같았다.
근육의 핏줄이 울룩불룩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힘이여, 솟아라!와 다른 점은 그가 쥐고 있는 무기 배틀 엑스의 날이 황금빛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흐라압!”
가로쉬는 괴수 군단을 향해 날아갔다.
자세히 보니 도끼날의 색이 변한 게 아니었다. 날에서 황금빛의 검강이 뿜어져 나오며 도끼날을 코팅하듯 휘감고 있는 것이었다.
가로쉬의 눈동자는 붉은빛으로 빛나고 있었고, 그의 툭 튀어나온 송곳니는 더욱 거대하고 뾰족해져 있었다.
도끼날을 휘두르자 수십 개의 촉수들과 벌레들의 다리가 단번에 잘려 나갔다.
‘저 무식한… 괴물들은 재생한다니까!’
하지만 대규의 걱정은 무의미했다.
재생도 하기 전에 가로쉬의 도끼날은 괴물들을 갈기갈기 찢어 놨다.
녀석들의 약점인 신경절들 역시 파괴된 건 말할 것도 없었다.
가로쉬의 공격으로 괴물을 열댓 마리가 한꺼번에 죽어 버렸다.
‘저게 일전에 제우스에게 보상으로 받은 스킬 인내는 미덕의 위력이구나.’
대단했다.
물론 저 스킬을 발휘하기 위해선 상대의 공격을 견뎌 내고 참아야 한다.
가로쉬처럼 온몸이 녹아내릴 때까지.
하지만 그럴수록 자신의 공격은 더욱 강해진다.
어느새 가로쉬는 다시 괴수들 틈으로 뛰어들어 가 그들의 공격을 맨몸으로 견뎌 내기 시작했다.
다른 영웅들 역시 열심히 괴수들을 무찌르고 있었다.
‘나라고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일단 한번 해보는 거다.’
영웅들의 모습을 보고 의기 충전한 대규는 크툴루를 상대하러 앞쪽으로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