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1
151화 포르피리온의 재습격 (1)
‘내 아내?’
대규가 당황한 표정을 짓자 그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바로 지영 자매 말이다!”
‘대체 지영이 언제 가로쉬의 아내가 되어 버린 거지? 못 본 사이에 결혼식이라도 올린 건가.’
그러자 가로쉬는 다시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지영은 미래에 나의 아내가 될 자매다. 그러니까 내가 곁에서 함께 싸우면서 그녀를 지켜 줘야 한다.”
그러자 옆에 있던 고블린, 오우거 영웅들은 옆에서 짝짝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취릭, 취리릭- 가로쉬 대장, 너무 멋있습니다!”
“역시 상남자이십니다! 부럽습니다!”
‘별…….’
얼마 후 지영이 나타났다. 그러자 가로쉬는 주인 만난 강아지 같은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그녀는 차갑게 인사한 뒤 지휘사령부의 천막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아무리 봐도 차인 건 같았지만 가로쉬는 넋이 나간 목소리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역시 지영 자매는 훌륭한 전사다! 훌륭한 전사는 말을 아끼는 법. 그녀는 눈으로 모든 걸 나에게 말해 줬다.”
아무리 봐도 방금 전 지영의 눈빛은 관심 없어 보이는 눈빛이었다.
‘뭐, 오크들이 보기엔 다르게 보이나 보다. 나도 지휘사령부의 천막으로 들어가야지.’
대규는 가로쉬와 함께 사령부의 천막으로 들어갔다. 그곳엔 영웅들과 장군들이 다 모여 있었다.
왕좌엔 아테나 여신이 황금 갑옷을 입고 앉아 있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사뭇 심각해 보였다.
‘대체 무슨 일이지?’
여신은 천막으로 들어온 대규를 보고 반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왔는가!”
그녀는 신뢰감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대규를 바라봤다. 대규가 고개를 숙여 인사하자 여신이 입을 열었다.
“그대들에게 할 말이 있다.”
그녀는 무거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기가스 포리피리온 녀석이 다시 돌아왔다.
“……!”
기가스 포르피리온은 전에 아테나 여신과 전투를 하다가 여신의 아이기스 방패로 벼락을 맞고 도망쳤던 거인 대장이었다.
그런데 그때 도망쳤던 녀석이 이번에 엄청난 대군을 끌고 다시 돌아왔다고 했다.
“이번엔 녀석을 제대로 해치워야 한다. 절대 도망가지 못하도록!”
“그렇게 하면 되지 않습니까?”
앞쪽에 있는 장군 영웅들이 여신에게 물었지만, 여신은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이번에 녀석은 별의별 괴종족들을 다 끌어모아서 온 모양이다.”
여태까지 거인 대장들은 자신과 같은 족속인 거인 병사들만 데려왔었다. 하지만 기가스 포르피리온은 이번엔 이상한 이종족(異種族) 괴수들을 대거로 데려왔다고 했다.
여신은 골치가 아팠다.
전력만 봐도 아군 쪽이 훨씬 밀리는 상태였다. 아레스의 부대에서 오크 대장군 하나와 다른 영웅들이 파견을 왔지만, 전력은 턱없이 밀렸다.
여신은 영웅들을 보며 말했다.
“나는 지난번처럼 기가스 포르피리온을 일대일로 상대할 것이다. 그러니 그대들이 이번에도 포르피리온의 부하 괴수들을 상대해야 할 것이다.”
그녀는 대규를 보며 말을 이었다.
“대규, 그대는 우리 부대의 대장군 위치에 있는 영웅이다. 따라서 나는 내가 포르피리온과 싸우는 동안 전장의 모든 지휘를 그대에게 맡기겠다. 대장군의 권한을 정식으로 내리도록 하마.”
대장군의 권한!
물론 아테나 여신의 부대에서 자신이 대장군급 위치라는 건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승전 기원 파티에서 영웅 중 최강자의 칭호를 받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테나 여신이 그를 직접 대장군이라고 부른 적은 없었다.
여신은 대규에게 말했다.
“이리 앞으로 나오거라.”
대규는 그녀의 왕좌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황금 갑옷 장갑을 낀 손을 대규의 이마에 댔다.
이마에 차가운 금속 장갑의 느낌이 닿았고, 곧 그녀의 손에서 무지갯빛이 나오기 시작했다.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아테나 여신이 당신을 부대의 최고 지위 대장군에 임명했습니다.]
[여신이 자리를 비웠을 시 당신이 이 부대를 지휘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됩니다.]
[권위가 추가로 2 상승합니다.]
얼마 후, 무지갯빛이 사라졌다.
대장군이 됐다고 해서 뭐 별다른 점은 없었다. 권위가 2 올라간 것 말고는 외관의 변화는 없었다.
대규는 고개를 들어 천막 내의 영웅들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모든 영웅이 자신을 보고 천천히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이게 어찌 된 일이지?’
그 모습을 보자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영웅들의 시점은 달랐다.
지영은 고개를 숙인 채로 대규를 흘끗 바라봤다.
대규가 세미데우스가 된 이후 인간인 자신과는 존재 자체가 달라져 그 분위기에 눌리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더욱 달랐다.
아테나 여신이 대규의 이마에 손을 댄 이후 그전보다 훨씬 더 큰 위엄이 지영을 휘감았다.
이 무리의 대장이자 우두머리, 한마디로 알파메일(Alpha male)이라는 느낌이 확 전해질 정도였다.
그전보다 훨씬 확연하게 자신보다 높은 서열에 있다는 게 실감 났다.
‘이제 대규 씨는 나의 윗사람이다.’
하지만 그 사실에 기분이 나빠지거나 하진 않았다. 지영을 비롯한 다른 영웅들은 그 사실을 몹시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부하 늑대들이 우두머리 늑대를 보고 저자가 내 위에 있다고 기분 나빠하거나 그러지 않는 그것처럼 말이다.
대규가 대장군의 칭호를 받자 오크 대장군 가로쉬가 손뼉을 짝짝 치며 말했다.
“새로운 대장군의 탄생이로군! 축하한다.”
그리고 그는 아테나 여신에게 예의를 차리며 이렇게 말했다.
“아테나 여신이시여, 본 부대의 새 대장군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고맙다. 그대 역시 우리 부대로 와 줘서 감사하다.”
“천만의 말씀이십니다.”
여신은 고개를 숙이고 있는 가로쉬에게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대신 나는 그대의 주군 아레스처럼 그대들을 방목하진 않을 것이다. 우리 부대에는 엄격한 규율이 있다. 그러니 그대와 그대 부대의 영웅들도 그걸 잘 지켜 주길 바란다.”
여신의 입가엔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단호하고 싸늘했다.
그녀의 눈빛을 본 가로쉬는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명심하겠습니다.”
아테나 여신은 같은 전쟁의 신이지만 가로쉬 자신이 모시고 있는 아레스 신과는 전혀 다른 성격을 지녔다.
이제 여신은 앞으로 닥쳐올 포르피리온 전투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실 지금 상황은 좋지 않다. 기가스 포르피리온은 벌써 죽음의 평원을 침략했고, 우리 아군의 전선은 일보 후퇴한 상황이다. 카페르 족 병사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버텼지만…….”
그녀는 어두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가 끌고 온 괴수들에게는 무리였다. 하지만 이제 우리 정예군 영웅들의 힘을 보여 줄 때다.”
여신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무기인 창을 척 들며 소리쳤다.
“녀석을 잡아 죽여 판테온의 위력을 똑똑히 보여 줄 것이다!”
그러자 영웅들 역시 우렁찬 목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아테나 여신에게 승리의 영광을!”
“아테나 여신에게 승리의 영광을!”
여신은 흡족한 표정으로 영웅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번 전투 역시 공적에 따라 특별한 보상을 내릴 것이다. 그럼 전장으로 이동하도록 하자.”
여신이 손을 휘두르자 거대한 투명막이 여신과 영웅들을 모두 휘감기 시작했다.
아프로디테 여신이 했던 것과 비슷한 이동 투명막인 것 같았다.
그리고 여신과 영웅들은 죽음의 평원으로 이동했다.
휘이잉-
죽음의 평원에선 스산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기가스 포르피리온은 저 멀리 후퇴해 있는 아테나 여신의 전선을 보며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씩.
그의 몸통과 얼굴은 지난번보다 훨씬 더 새카맸다.
그도 그럴 것이 저번에 아테나 여신에게 벼락을 맞고 또다시 온몸에 화상을 입었던 것이다.
“그 거만한 여신 계집… 이번엔 아주 싹 쓸어주마. 크크크.”
그의 뒤에서 심상치 않은 그림자들이 보였다.
그는 이번엔 거인 병사들을 끌고 오지 낳았다.
우둑- 우두둑-
그의 뒤에는 괴상한 모습을 한 괴물들이 보였다.
그것은 딱딱한 갑각류의 껍질을 지니고 있는 거대한 벌레 같기도 했다. 하지만 벌레의 몸 위에는 거대한 뇌같이 생긴 이상한 기관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이상하고 끈적한 촉수가 수십 개씩 돋아난 괴물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 괴물들의 뒤에는 거대한 성채처럼 보이는 한 그림자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크크크. 아테나 그 계집, 이번엔 정말 박살을 내 주마. 그 방패도 보기 좋게 부숴 주마!”
기가스 포르피리온은 그전과 달리 머리에 까만 철로 만들어진 거대한 투구를 쓰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애마 가고일을 부르기 위해 손가락을 입에 넣고 휘파람을 불었다.
휘익-
펄럭, 펄럭.
흉측하게 생긴 가고일이 날아와 기가스 포르피리온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가고일의 등에 올라탄 뒤 고삐를 쥐고 흔들었다.
“이랴앗!”
가고일은 괴상한 울음소리를 내며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싸울 시간이다! 크툴루의 병사들이여!”
기가스 포르피리온은 땅 위에 있는 괴물들에게 외쳤다.
그러자 괴물들은 여신의 전선을 향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테나 여신과 영웅들은 곧 죽음의 평원에 도착했다.
대규는 평원에 도착하자마자 얼굴을 찌푸렸다.
평원에는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있었다.
곧 산양 카페르 족의 병사가 여신과 영웅들을 맞이했다.
“오셨습니까.”
하지만 그의 표정은 몹시 암울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카페르 족 병사들은 기가스 포르피리온의 괴수 군단에 쫓기고 쫓겨 후방까지 후퇴했다. 그리고 그동안 병사들도 많이 죽었다.
“다들 어디 있는가?”
여신이 묻자 산양 병사는 그녀를 요새 뒤편으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거대한 십자 모양의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아테나 여신은 비석 앞에서 눈을 감고 가만히 고개를 숙인 뒤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수고가 많았다. 엘뤼시온에서 평화롭게 지낼 수 있기를…….”
이곳은 아무래도 이번에 쳐들어온 기가스 포르피리온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죽은 병사들의 묘지인 것 같았다.
묵념을 마친 여신은 다시 고개를 들고 영웅들에게 이렇게 명령했다.
“곧 기가스 포르피리온이 쳐들어올 것이다. 다들 준비를 하고 있으라.”
“예, 알겠습니다.”
대규는 자신의 장비들을 점검했다. 그런데 옆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크르륵…….”
“헉헉…….”
아레스 부대의 영웅들이 내는 소리였다. 전투가 다가오자 흥분하기 시작한 것이다.
‘볼 때마다 저놈의 숨소리는 기분 나빠 죽겠어.’
그런데 가로쉬가 지영을 향해 천천히 다가가고 있었다. 그는 다른 녀석들과 달리 흥분하는 숨소리를 내지 않고 있었다.
“크흠, 자매.”
가로쉬는 헛기침을 크게 한 뒤 떨리는 목소리로 지영을 불렀다.
자신의 무기인 쌍검을 점검하던 지영은 가로쉬를 보며 물었다.
“무슨 일이죠?”
“이, 이거… 받아 주십시오!”
그는 흉측하게 생긴 물건을 꺼내 두 손으로 공손히 지영에게 건넸다. 그것은 꼭 괴물, 혹은 야수의 송곳니같이 생긴 물건이었다.
‘저게 뭐지?’
대규가 그 물건을 바라보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오우거의 송곳니]
[전투 상황에 돌입했을 때만 한시적으로 운이 1 증가한다. 이것을 전투 중 지니고 있으면 상대방의 공격을 더 잘 피하고 자신의 공격이 상대방에게 더 강하게 들어간다.]
운 수치는 일반적인 레벨 업으로 올리기 힘들었다. 물론 대규는 공략집을 이용해 남들보다 많이 올릴 수 있었지만 말이다.
전투 상황에 한해서만 운 수치를 올려 주는 아이템이라지만, 그래도 귀한 물건임엔 틀림없었다.
‘저 귀한 물건을 지영 씨에게 주다니. 저놈의 오크가 지영 씨에게 단단히 빠졌나 보군.’
그게 끝이 아니었다.
가로쉬는 송곳니를 내밀면서 고개를 숙인 채 지영에게 이렇게 외치는 것이 아닌가.
“자매! 이 전투가 끝나고 우리가 무사히 살아남는다면… 저와 결혼해 주십시오!”
‘저 자식, 이런 상황에서 지금 프러포즈하고 있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