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9
149화 중국시장 (7)
“흐음, 좋소. 다만 내일 오후에 잠깐밖에 시간을 내지 못합니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대규는 장룽차오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OO호텔 스위트룸으로 와 주십시오. 거기서 개인적으로 음식 대접을 해드리겠습니다.”
호텔 측에 부탁하면 스위트룸에도 이동식 조리 시설이나 도구를 가져와 요리할 수 있다.
중국의 최고위 공무원 장룽차오를 대접한다고 하면 당연히 호텔 측에서도 오케이할 것이다.
얼마 후 식사가 끝났고, 대규와 준섭은 레스토랑을 나섰다.
준섭을 대규를 바라보며 물었다.
“사장님, 대체 무슨 생각이십니까?”
“제 요리를 먹여서 장룽차오의 생각을 바꿔 놓으려고요.”
“하지만 대관령의 양고기도 없지 않습니까. 물론 사장님의 요리 실력은 믿어 의심치 않지만, 단순히 그 요리 대접만으론 대규 식품에 대한 제재를 풀긴 힘들 것 같습니다.”
“제가 알아서 할게요.”
대규는 자신 있게 말했고, 이번에도 준섭은 그를 믿는 것 말고는 별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양고기도 없지 않습니까?”
물론 상관없다.
헤르메스의 장화를 이용하면 순식간에 영등포 본사 건물의 창고로 이동해서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준섭에게 이 얘기를 할 순 없었다.
대규는 대충 현지에서 식재료를 구하면 된다고 둘러대고 준섭은 먼저 호텔 방으로 보냈다.
세운 계획은 이러했다.
일단 장화를 이용해 양고기와 크림소스, 판테온의 콩 등 재료를 가져와 내일 요리할 준비를 한다.
그리고 이제 얼굴을 알게 된 장룽차오의 무의식으로 들어갈 예정이다.
그곳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가 그의 무의식을 변형시킬 계획이다.
변형시킬 내용은 이렇다.
‘대규의 요리를 먹고 몹시 감동을 한 그는 이 요리가 있는 식당을 중국에 유치하면 중국의 경제 발전에 몹시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대규 식품에 대한 경제 제재를 특별히 풀어 주며 더불어 중국의 다른 고위 공무원들에게 대규의 양갈비 요리를 소문낸다.’
어차피 자신이 요리스킬을 발휘하면 무조건 3인에게 입소문을 내게 돼 있다. 하지만 대규는 장룽차오가 고위 공무원들에게 입소문을 내길 바랐다.
‘그편이 훨씬 중국 진출을 위해 유리하다. 고위 공무원들을 사로잡아 버리면 차후 사업 확장에도 엄청 용이할 거야.’
라이펑이 말했던 것처럼 중국은 인맥과 연줄, 즉 꽌시의 세계다.
고위 공무원들을 잘 잡아놓는다면 지금처럼 준섭이 발 벗고 뛰어다니며 여기저기 업체들을 직접 알아볼 필요가 없다.
대규는 호텔 방으로 돌아간 준섭에게 내일 이용할 스위트룸 예약과 이동식 조리도구, 설비들을 호텔에서 빌리라고 지시해 뒀다.
그리고 자신은 헤르메스의 장화를 이용해 영등포 건물 창고로 순식간에 이동했다. 그리고 보관함에서 인피니투스를 꺼내 양갈비 고기와 크림소스, 판테온의 콩 등 식재료를 매우 넉넉하게 챙겨 왔다.
자신이 쓰는 칼 등의 조리 도구도 가져올까 했지만 그럼 준섭이 의심할 것 같아서 관뒀다.
호텔로 돌아온 그는 인피니투스를 보관함에 잘 넣어뒀다.
이제 장룽차오의 무의식으로 들어갈 때였다.
‘그런데 그 왕 서방 같은 장룽차오 녀석… 속마음을 들어 보니 성격이 만만치 않아 보이던데. 그 정도 직위에 올랐으면 절대 물렁물렁한 인간은 아닐 거야.’
장룽차오의 무의식을 지키고 있는 문지기가 어떤 존재일지 궁금해졌다.
강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규는 보유 스킬 꿈의 침입자를 발동시켰다.
[무의식 혹은 꿈속으로 침입할 대상을 선택하십시오. 한 번이라도 면식이 있는 대상이라면 누구든 침입할 수 있습니다.]
대규는 수많은 이름 중에서 장룽차오의 이름을 선택했다.
장룽차오의 이름은 리스트 맨 아래에 있었다. 가장 최근에 만난 사람은 아래쪽에 추가되는 것 같았다.
[장룽차오의 무의식으로 들어가시겠습니까? Yes/No]
Yes를 선택하자 주변의 풍경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규가 도착한 곳은 끝없이 펼쳐진 높다란 성벽이었다.
‘뭐야, 이건!’
성벽은 끝없이 펼쳐져 있었으며 구불구불하게 늘어져 있었다.
대규는 헤르메스의 장화로 날아올라 성벽의 생김새를 확인했다.
장룽차오의 무의식은 미로 형태의 상민과 달랐다. 이곳은 꼭 중국의 만리장성을 닮았다.
그때 메시지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성공적으로 무의식에 접속했습니다. 이곳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30분입니다.]
[30:00…….]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고 대규는 얼른 지도창을 띄웠다.
만리장성 같은 성벽은 끝없이 펼쳐져 있었지만, 저 멀리에 그 끝이 존재했다.
성벽의 끝에 하얀색으로 반짝이는 빛이 보였다.
무의식의 깊은 곳!
대규는 장화를 이용해 장벽의 끝 쪽으로 날아갔다.
날아가는 중 주변을 둘러봤다. 장룽차오의 관심사나 뭐 그런 것들이 궁금하기도 했다.
오른쪽을 둘러보니 순금 덩어리들이 잔뜩 쌓여 있는 풍경이 보였다.
탐욕스러운 얼굴만큼이나 그의 무의식 속에는 물질과 부에 대한 엄청난 관심이 몰려있는 듯했다.
‘대단하군. 그렇게 높은 위치에 있으면서도 아직도 부를 원한다니.’
아무래도 부를 향한 그의 열망은 끝이 없는 것 같았다.
이번엔 왼쪽을 돌아보자 특이한 광경이 보였다.
황금용이 잔뜩 새겨진 왕좌에 앉아있는 한 사내의 모습이었다.
사내는 구슬이 앞뒤로 주렁주렁 달린 면류관을 쓰고 있어서 그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면류관을 쓰고 왕좌에 앉아있는 걸 보니 중국의 황제인 것 같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 얼굴은 장룽차오의 얼굴이었다.
‘황제가 되고 싶은 열망이라니, 권력욕을 상징하는 건가.’
부와 권력욕으로 무의식이 가득 차 있는 것이 확실히 그다웠다. 그럼 다는 건 뭐가 있을까?
대규는 고개를 들어 위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온갖 건강에는 좋다고 소문난 귀한 음식들이 보였다.
인삼, 산삼, 진귀한 버섯들…….
그리고 대규가 줬던 붉은 고사리들의 모습도 보였다.
‘부에 권력, 그리고 불로불사라니. 완전 진시황 같은 녀석이잖아.’
장룽차오는 중국의 정책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막강한 인물이다. 라이펑의 말에 따르면, 그는 지금은 장관급 인물이지만 나중엔 국가 주석의 자리까지 노리고 있다고 했다.
대규가 본 장룽차오가 장차 현군(賢君)이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세상은 항상 현명하고 어진 사람이 통치자가 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통치자가 되는 건 권력욕과 야심이 강한 사람이지. 아차,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지.’
지금 이 시각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대규는 장룽차오의 관심사 따위는 집어던지고 빨리 장벽의 끄트머리인 무의식의 깊숙한 곳을 향해 날아갔다.
그때 뭔가가 대규의 뺨을 스쳤다.
피융-
따가운 고통이 느껴졌고, 대규는 앞을 바라보았다.
피융-
피융-
앞쪽에서 화살들이 비처럼 날아오기 시작했다.
네메시스의 방패를 들어 화살들을 막았다.
부시식.
화살들은 방패에 꽂히자마자 순식간에 부식되어 사르르 부서져 버렸다.
‘문지기들이 벌써 나타난 건가?’
하지만 무의식의 깊숙한 곳에 다다르려면 아직 멀었다.
그때 장벽 앞쪽을 바라본 대규의 눈동자가 커졌다.
장룽차오의 문지기는 상민이 문지기와 달랐다. 불꽃 거인 하나가 보스 몬스터처럼 딱 버티고 있던 상민의 문지기와 달리 장룽차오의 문지기는 수십, 아니 수백 명의 병사로 이뤄져 있었다.
게다가 병사들은 모두 중국의 전통 갑옷을 입고 있었다.
그들의 낯빛은 모두 퀴퀴한 흙빛이었다.
‘아니… 그냥 흙이잖아!’
그들은 흙으로 만들어진 인간의 형상이었다.
병마용(兵馬俑)!
병마용이란 중국 진시황 무덤의 부장품으로 갱 속에 파묻혀 있던 약 1만구의 병마이다. 그들은 흙을 구워 만든 병사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병마용의 병사들은 당시 중국인들보다 훨씬 큰 184~197cm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 대규 눈앞의 병마용들은 인간처럼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문지기가 병마용들이라니…….’
중화사상, 권력, 부와 합쳐진 장룽차오에게 잘 어울리는 문지기였다.
‘흙으로 만든 병사라. 악마의 화염으로 구워 주마.’
대규는 병마용들을 향해 불카누스의 사슬검을 휘둘렀다.
화르륵-
검은 사슬날에서 악마의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맨 앞줄에 있던 병사들은 사슬검의 화염에 맞자마자 흙으로 만든 몸이 순식간에 녹아내려 버렸다.
대규는 쉴 새 없이 병마용들을 공격했지만, 그 머릿수가 너무 많았다.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게 광역 공격이지!’
대규는 성벽 한가운데 착지했다.
곧 병마용들은 대규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래, 많이많이 달려들어라. 그럴수록 좋으니까.’
대규는 자신의 반경 5미터 내로 병마용들이 최대한 많이 달려들길 기다렸다.
병마용들은 꾸역꾸역 밀려들었다.
지금이다.
“비산의 결계!”
대규가 외치자마자 5미터 반경으로 반투명한 둥근 막이 생겨났다.
그런데 그전과 달리 막의 색이 검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데몬의 목젖으로 무기를 업그레이드한 것과 연관이 있는 걸까?’
그 순간,
번쩍!
화르르륵-
검은 화염들이 맹렬하게 쏟아져 내렸다. 마치 불꽃의 비가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
“키이익!”
“그으으으!”
검은 불길은 병마용들을 순식간에 녹아 버렸다.
흙으로 만들어진 그들의 몸이 녹아내리면서 진흙으로 변했다.
곧 까만 진흙이 대규의 발목까지 덮어버렸다. 질척한 것이 기분 나쁜 감촉이었다.
대규는 진흙을 벗어나 성벽 앞쪽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아직도 병마용들은 많이 남아 있었다. 녀석들은 저 앞에서 대규를 향해 달려왔다.
베어도 베어도 끝이 없었다.
장룽차오 이 인간은 자신의 무의식을 진시황릉처럼 만들고 싶었던 건가?
“거치적거리니까 방해하지 마라!”
대규는 이렇게 외치며 사슬검을 힘껏 휘둘렀다.
촤라락-
수 미터로 늘어난 사슬날에 붙어 있는 악마의 화염이 병마용들을 공격했다.
불타 녹아내리는 병마용들을 뚫고 지나가며 대규는 쉴 새 없이 사슬검을 휘둘러 댔다.
드디어 성벽의 끝에 도착했다.
장룽차오의 무의식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이제 5분밖에 없었다.
문지기인 병마용들은 강하진 않았지만, 머릿수가 엄청나서 대규 혼자 상대하는 데 좀 힘이 들었다.
‘물량 앞에 장사 없다더니…….’
어쨌든 이렇게 도착했다.
대규는 마지막 병마용을 향해 사슬검을 휘둘렀다.
스르륵-
마지막 병마용은 대장군이었고, 다른 병사들보다 훨씬 몸집이 컸다. 하지만 쉽게 해치울 수 있었다.
녀석의 흙 몸뚱이가 녹아내리자 무의식의 열쇠가 나타났다.
그리고 성벽 끝에 작은 문이 생겨났다.
대규는 문에다가 열쇠를 들이밀었다.
끼이익.
곧 문이 열렸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상민의 무의식처럼 그곳은 텅 빈 공간이었고, 한가운데 작은 금고가 놓여 있었다.
대규는 금고를 열었다.
그 안에 놓여 있는 녹음기가 보였다. 됐다.
녹음기를 든 뒤 천천히 입을 열어 이렇게 말했다.
“…내일 대규식품의 김대규가 만든 양갈비 스테이크 요리를 먹고 감탄한 뒤 대규 식품에 대한 경제 제재를 풀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중국 고위 공무원들에게 양갈비 스테이크에 대해 입소문을 낸다.”
그렇게 말하고 나니 무의식에서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다 됐다.
대규는 성공적으로 모든 임무를 마친 뒤 장룽차오의 무의식을 빠져나왔다.
다음 날, 장룽차오와 약속한 시각이 됐고, 대규는 식재료가 든 인피니투스를 들고 호텔의 스위트룸으로 향했다.
준섭은 대규의 지시대로 호텔의 스위트룸을 빌렸고, 호텔 측의 도움을 받아 이동식 조리대와 조리 시설까지 설치했다.
호텔 관계자들은 처음에 이동식 조리대와 조리 시설 설치를 반대했지만 장룽차오의 이름을 대니 갑자기 태도를 바꿔 흔쾌히 허락했다.
중국 사회에서 고위 공무원들의 파워는 생각보다 엄청난 것 같았다.
“오셨습니까.”
곧 장룽차오가 스위트룸으로 들어왔고, 대규와 준섭은 그에게 인사를 했다.
장룽차오가 테이블 앞에 앉자 대규는 설치한 이동식 조리대에서 요리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