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8
148화 중국시장 (6)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대규가 묻자 라이펑이 대답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 출신으로 그렇게 단기간에 세미데우스가 된 영웅은 없으니까요. 그래서 질투를 하는 무리와 대규 님을 적대시하는 자들도 생겨났나 봅니다. 원래 남들보다 많이 가지고 있으면 항상 미움을 사게 되는 법이지요.”
“그렇군요.”
“물론 대규 님에겐 상대도 되지 않는 자들입니다.”
하지만 대규는 왜 라이펑이 이런 얘기를 자신에게 하는지 궁금했다.
“왜 당신은 이런 얘기를 저에게 하는 겁니까?”
이렇게 묻자 라이펑이 대답했다.
“현실에서 대규 님이 앞으로 이룩하실 성공은 이제 중국의 경제적 성장과도 밀접하게 연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성장은 바로 제 성공, 출세와 직접 연관이 되지요.”
역시 공략집에서 본 대로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이다.
“대규 식품의 도시락과 탕꼬에 대해선 이미 다 조사를 했습니다.”
“그렇다면 라이펑 님은 저의 편이 되어 주신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적어도 이쪽 중국 대륙에서는 말입니다.”
라이펑은 씩 웃으면서 대규에게 다시 한 번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청하는 것이었다.
속마음을 들어 보니 비열함이 엿보이지는 않았다.
‘이 사람은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 전략과 전술을 잘 세우는 비즈니스 감각이 탁월한 사람이구나. 비열하게 남을 뒤통수 치는 사람은 아니었군.’
대규 역시 씩 웃으며 그의 손을 붙잡았다.
라이펑과 안면을 트고 지내는 건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특히나 대규 식품이 중국 진출을 앞둔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말이다.
“언제 판테온에서 만나면 밥 한번 같이 먹도록 하지요.”
그러자 라이펑이 말했다.
“송구스럽지만, 저는 인간이라 판테온에 자유자재로 갈 수 없습니다.”
“아, 그렇군요. 제가 깜빡했습니다.”
“밥은 현실에서도 언제든지 먹을 수 있지 않습니까. 바로 지금처럼 말입니다. 그것보다 대규님과 같은 전투에서 함께 싸우게 된다면 큰 영광일 것 같습니다.”
곧 준섭이 돌아왔고, 그들은 판테온과 관련된 이야기를 싹 숨겼다.
얼마 후 셋은 기분 좋게 헤어졌다.
그리고 다음 날, 대규와 준섭은 장룽차오를 만나러 갔다.
장룽차오와의 약속 장소는 베이징 시내 최고급 프렌치 레스토랑이었다.
택시를 타고 도착한 장소는 천안문(天安門) 근처의 한 장소였다.
예전엔 미국 대사관이 있었던 이곳은 현재 으리으리한 식당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고 했다.
장룽차오와 만나기로 한 프렌치 레스토랑 역시 그런 으리으리한 식당 중 한 곳이었다.
택시에서 내리자 커다란 정원이 펼쳐져 있었고, 저 멀리 근대시대의 대저택같이 생긴 석조건 물이 보였다.
“설마 저 건물이 식당입니까?”
대규가 묻자 준섭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석조 건물은 예전에 미국 대사관의 건물이라고 했다. 현재 건물 내부는 식당으로 개조된 상태였다.
2000년대 중반에 미슐랭 3스타 쉐프가 이곳으로 와 프렌치 레스토랑을 차렸다고 한다. 현재 이 레스토랑은 베이징 최고의 프렌치 레스토랑이라고 극찬을 받는다.
‘같은 고급 레스토랑이라도 한국 강남의 골목에 있는 굴라 레스토랑과는 차원이 다르구나…….’
커다란 정원에 대저택을 연상케 하는 석조 건물이라니.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가자 지배인이 준섭을 알아보고 말을 걸었다.
“미스터 전, 오셨습니까. 자리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준섭과 대규는 지배인을 따라 들어갔다. 그들의 손엔 커다란 봉투들이 들려 있었다.
대규는 레스토랑의 인테리어를 보고 감탄했다.
굴라 레스토랑보다 천장이 몇 배는 높았다.
게다가 고급스러운 원목 테이블과 의자가 자리마다 딱딱 각이 잡힌 채 놓여 있었다.
그리고 한쪽 벽면에는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을 연상케 하는 커다란 벽화가 걸려 있었다.
곧 대규와 준섭은 자리를 안내받았다.
그들의 테이블은 다른 테이블들과 동떨어진 곳이었다.
따라서 미팅을 하기에 아주 적합했다.
얼마 후, 장룽차오가 등장했다.
그는 풍채 좋게 생긴 중국의 중년 남자였다. 외모는 정말 전형적인 중국의 왕 서방처럼 생겼다.
왕 서방처럼 변발도 아니고 메기수염을 기른 것도 아니었지만, 그냥 딱 왕 서방의 느낌이었다.
그의 이마 한가운데엔 커다란 복점이 있었고, 얼굴에는 탐욕스러운 기운이 흘렀다.
“크흠!”
장룽차오는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테이블 쪽으로 다가왔다. 최고위 공무원답게 그의 옆에는 젊은 수행비서가 서 있었다.
그는 비서에게 말했다.
“나가 봐도 괜찮아. 밖에서 대기하고 있게.”
“옛!”
비서는 군대의 병사처럼 장룽차오에게 90도로 깍듯이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갔다.
장룽차오는 테이블로 다가와 대규와 준섭을 거만한 얼굴로 내려다봤다.
그때 준섭이 재빨리 일어나 싹싹한 목소리로 그에게 인사를 했다.
“장룽차오 님, 반갑습니다. 라이펑 님의 소개를 받고 온 대규 식품의 전준섭이라고 합니다. 이쪽은 저희 대규 식품의 사장님 김대규…….”
“알고 있소.”
그는 거만한 목소리로 준섭의 말을 끊어버린 뒤 테이블에 앉았다.
준섭은 무안했지만 이내 다시 싹싹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문은 미리 해놨습니다. 곧 음식이 나올 겁니다.”
얼마 후 코스 요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애피타이저로는 어니언 수프가 나왔는데 프렌치 레스토랑다운 메뉴였다.
어니언 수프는 아주 맛이 있었지만 세 명의 분위기는 냉랭했다. 준섭이 무슨 말만 하려고 하면 장룽차오는 거만한 표정으로 그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대규는 그런 장룽차오의 모습이 탐탁지 않았다. 하지만 중국 진출 사업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이 참아야만 했다.
얼마 후, 메인 요리인 스테이크가 나왔고 준섭이 본격적으로 말문을 열었다.
“장룽차오 님,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 경제 제재 정책으로 인해…….”
“안 됩니다. 나도 도와주고 싶지만 어쩔 수 없소. 그건 나 말고 다른 고위 공무원들이 같이 추진하는 정책이오.”
그는 준섭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딱 잘라 거절해 버렸다.
그리고 그는 준섭과 대규를 불쾌하다는 듯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당신들은 우리 중화민국의 문화를 잘 모르는 것 같소만. 우리 중화민국에선 남에게 이런 식으로 부탁하지 않소. 아주 몐쯔(面子)가 상하는군!”
몐쯔란 중국인들 말로 체면을 말한다. 속된말로 치면 가오 정도 되려나.
말을 마친 장룽차오는 두툼한 이중 턱을 손끝으로 연신 만져대며 준섭을 바라봤다.
‘뇌물을 바라고 있군.’
대규는 장룽차오의 표정을 보고 바로 짐작했다. 저런 인간은 굳이 공략집으로 속마음을 읽지 않아도 다 뻔히 보인다.
기분이 나빴지만 걱정할 건 없다.
대규는 장룽차오를 보며 말했다.
“저희가 어찌 감히 장룽차오 님의 몐쯔를 상하게 하겠습니까? 그럴 줄 알고 저희 쪽에서도 준비를 해왔습니다.”
대규는 레스토랑에 들어올 때 들고 왔던 쇼핑백 중 하나를 장룽차오에게 건넸다.
‘챙겨 오길 잘했군.’
사실 이 뇌물 준비는 라이펑의 조언을 듣고 준비한 것이었다.
어제 저녁 식사에서 라이펑은 이렇게 말했다.
“장룽차오 님은 꽌시와 몐쯔를 아주 중요시 여기는 분입니다. 꽌시는 인맥, 연줄을 뜻하는 말이고, 몐쯔는 체면을 뜻하는 말이지요. 사실 장룽차오 님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중국인이 꽌시와 몐쯔를 중요히 여깁니다만…….”
라이펑의 말에 따르면, 장룽차오는 자신의 꽌시에 드는 인물들을 엄청 챙겨 준다고 했다. 하지만 그 꽌시에 들어가려면 그의 몐쯔를 충분히 세워 줘야 한다고 했다.
“이것이 바로 중국 공직사회의 현실입니다. 개인적으로 이게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장룽차오 님을 만나 부탁을 하려면 그의 몐쯔를 살려 줄 선물이 필요할 겁니다.”
“그럼 뭘 선물해야 좋을까요?”
대규가 묻자 라이펑은 이렇게 말했다.
“부와 권력을 모두 섭렵한 자들이 원하는 건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바로 영원한 삶, 즉 불로불사에 대한 열망이지요.”
“그럼 불로초라고 갖고 가야 한단 말입니까?”
대규가 묻자 라이펑은 웃으며 말했다.
“하하,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현대인의 불로불사가 대체 무엇이겠습니까? 건강에 좋은 식품이나 뭐 그런 것들이지요. 대신 아주 귀한 물건이어야 장룽차오 님이 좋아할 겁니다.”
라이펑과 헤어진 후 대규는 준섭에게 자신이 선물을 구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리고 홀로 한 잔 더 하겠다며 준섭을 먼저 호텔 방으로 보냈다.
준섭을 보낸 후 라의 목걸이로 오시리스의 정원에 들어가 오시리스의 붉은 거대 고사리들을 잔뜩 캐왔다.
붉은 고사리는 모든 질병에 효과적이다. 게다가 더욱 좋은 점은 바로 그 붉은색이었다.
라이펑과 준섭의 말에 따르면, 중국인들은 붉은색을 길한 징조라고 생각해서 되게 좋아한다고 했다.
심지어 중국 부자들은 명품도 빨간색으로만 산다고 했다.
이제 장룽차오는 대규가 건넨 쇼핑백 안에 들어있는 물건을 꺼내고 있었다.
대규는 그의 탐욕스러운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물론 이제 이 인간의 얼굴을 직접 봤으니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오늘 밤 이 인간의 무의식에 들어가 대규 식품에 대한 경제 제재를 풀도록 조종할 수는 있다.’
하지만 대놓고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장룽차오의 말에 따르면 그 정책은 장룽차오 말고 다른 고위 공무원들이 합심해서 만든 것이다. 장룽차오 혼자 갑자기 뜬금없이 대규 식품에 대한 제재를 풀자고 주장하면 오히려 이상한 의심만 받고 더 큰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어제 라이펑이 했던 말은 달랐다.
“장룽차오 님만 설득하면 한국의 모든 산업에 대한 제재를 풀긴 어려워도 대규 식품 한 곳만큼은 가능할 겁니다. 그만한 권력자이기 때문에 그 정도는 충분히 가능합니다.”
하지만 지금 장룽차오의 반응을 보니 그게 쉬울 것 같지는 않았다.
어떻게 하면 그의 마음을 확 끌어들일 수 있을까.
무의식을 변형시킨다고 해서 어떻게 이번 협약은 맺는다 해도 그뿐이다. 매일같이 그의 무의식에 들락날락하는 건 아주 귀찮은 일이다.
중요한 건 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우선 무의식에 침투해서 허가를 받고 동시에 이 자의 호감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양동작전이 필요하다.
곧 장룽차오가 상자를 열자 붉은 고사리들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건 고사리 아니요?”
장룽차오가 묻자 대규가 말했다.
“일반적인 고사리가 아닙니다. 이 크기와 색깔을 보십시오. 한국에서도 거의 구하기 힘든 거랍니다. 붉은 고사리를 보신 적 있습니까?”
“아니, 처음 봅니다.”
장룽차오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지만, 대규는 술술 말을 이었다.
“이 고사리는 불로초라고 불릴 만큼 몸에 매우 좋은 음식입니다. 한입 먹어 보시면 그 효과를 실감하실 겁니다.”
불로초라는 말에 그의 눈빛이 반짝였다.
하지만 그는 이내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은 뒤 고사리의 뿌리 부분을 살짝 베어 먹었다.
‘응?’
뿌리를 씹어 삼키자마자 만성적으로 시달렸던 근육통과 뒷목의 뻐근함이 고급 마사지를 받은 그것처럼 시원하게 팍 풀렸다.
장룽차오의 눈이 번쩍 뜨였다.
‘세상 진귀하다는 음식들을 다 먹어 봤지만 이런 효과는 못 봤는데…….’
이건 진짜다.
그는 들고 있는 고사리의 나머지 뿌리를 다 씹어 먹었다.
한편 대규는 장룽차오의 속마음을 다 듣고 있었다. 그는 고사리의 효과에 대해 감탄하고 있었다.
이때 2차 공격을 해야 한다.
“여기 또 있습니다.”
이번에는 다른 쇼핑백을 건넸다. 거기엔 붉은색 명품 가방이 들어 있었다.
이 역시 대규가 어젯밤 구해 온 가방이었다.
“사모님께서 명품을 좋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이 역시 약소하지만, 저희의 성의입니다.”
그러자 장룽차오는 한결 기분이 풀린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크흠, 센스가 있으시구만. 하지만 아까 말했듯이 경제 제재는 내가 혼자 독단적으로 결정한 게 아니라…….”
하지만 그의 속마음은 아까보다 훨씬 누그러졌다.
‘몐쯔를 아는 한국인들이군!’
됐다.
대규는 그의 속마음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장룽차오 님.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그러면 다른 부탁이라도 들어주실 수 있으십니까?”
“흐음, 뭐요? 어디 한번 들어나 봅시다.”
“저의 요리를 장룽차오 님께 대접하고 싶습니다. 꼭 말입니다. 그건 가능하시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