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7
147화 중국시장 (5)
공항에서 나와 베이징 시내로 들어선 대규는 깜짝 놀랐다.
“우와.”
고층 빌딩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거리는 사람들로 빽빽했다.
사실 대규는 중국에 처음 와 봤다.
고층 건물들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준섭에게 물었다.
“서울보다 훨씬 좋은 것 같은데요?”
“그 옛날의 중국이 아니랍니다.”
도심 곳곳에 있는 광고판에는 전에 준섭이 태블릿 PC로 보여 줬던 것처럼 한류 스타들의 모습이 걸려 있었다.
한류 스타들의 출연이 저지됐어도 광고판은 그대로인 것 같았다. 일단 계약을 맺은 게 있으니까 말이다.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는데 준섭이 대규에게 말했다.
“사장님의 도시락들 한번 보시지 않겠습니까?”
“좋죠.”
마침 저 앞에 세븐 일레븐이 하나 보였고, 그들은 그곳으로 향했다.
중국의 편의점은 한국보다 훨씬 상품의 종류가 많았다.
삼각김밥과 샌드위치, 빵, 우유, 계란 등 각종 식품을 편의점에서 구입할 수 있었고, 즉석에서 조리할 수 있는 도시락 코너가 있었다.
그런데 옆에서 익숙한 언어가 들렸다.
한국인 배낭여행객들이었다.
그 모습을 본 준섭이 말했다.
“배낭여행객들이 편의점을 많이 이용한다고 합니다. 이곳 베이징의 식비는 꽤 비싼 편이거든요. 중국에 처음 오는 여행객들은 한 끼마다 인당 70~80위안 이상을 쓴다고 합니다.”
70~80위안이면 한화로 만 원이 훌쩍 넘는 금액이다. 주머니가 가벼운 배낭여행객들에겐 살짝 부담될 수 있는 금액일 수도 있다.
“중국 물가가 비싼 건가요?”
대규가 묻자 준섭이 대답했다.
“그것보다는 중화요리의 특성상 단품이 아니라 여러 음식을 시켜야 하는 점 때문입니다. 그래서 단품 메뉴로 승부하는 우리 탕꼬가 이곳에 진출하면 더욱 인지도를 얻을 수 있겠다는 판단도 했습니다.”
“그렇군요.”
도시락 코너를 가자 생소한 광경이 보였다.
뷔페처럼 여러 반찬이 각자 그릇에 담겨 있었고, 사람들이 반찬을 고르면 종업원이 그걸 도시락 박스에 담아 주고 있었다.
“저건 뭐죠?”
“중국 편의점의 즉석 도시락 코너입니다. 오직 중국에만 있는 것이지요.”
즉석 도시락 코너는 뷔페식으로 반찬을 골라 도시락을 파는 것을 말하며, 중국 현지인들이 점심, 저녁 시간대에 가장 선호하는 음식이다.
반찬 메뉴를 매일 열두 가지씩 제공하며 한 끼 식사당 두 가지의 메뉴를 선택해서 먹을 수 있다.
장점은 일단 가격이 싸고 즉석에서 바로 조리해 내오는 것이기 때문에 냉동 식품 특유의 냉동 맛이 없다는 것이다.
“호오, 특이하군요.”
그런데 저 멀리 반가운 도시락이 보였다.
바로 대규 식품의 탕꼬 도시락과 다이어트 도시락이었다.
대규는 가판대에 적혀 있는 중국말을 읽어 보았다. 물론 공략집이 알아서 잘 해석해 줬다.
[한국에서 대인기를 얻고 있는 K-Food!]
사람들이 가판대 앞에 모여 있었다.
그중 두 명의 여자가 도시락을 고르며 말했다.
“나 이거 알아! 한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도시락이래. 특히 한국 연예인들이 많이 먹는다더라.”
“어머, 정말? 나 살을 빼야 하는데… 그럼 이거 먹어야지.”
살을 빼야 한다고 말한 여자는 다이어트 도시락을 세 상자나 집어 갔다. 역시 대륙의 사람들은 통이 큰 것 같았다.
대규는 준섭과 편의점을 나오며 기분 좋게 말했다.
“도시락이 잘 팔리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그들은 호텔에 가서 짐을 풀었다. 그리고 준섭은 대규에게 일정을 말해 줬다.
“오늘 저녁에는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운 좋게 약속을 잡은 중국의 고위 공무원과 식사를 함께할 예정입니다.”
장소는 베이징의 고급 호텔에 있는 중식 레스토랑이었다.
“그럼 옷을 갈아입고 준비를 해야겠군요.”
약속 시간이 됐고, 그들은 호텔의 중식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레스토랑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지배인이 깍듯하게 안내를 하기 시작했다.
레스토랑의 내부 인테리어는 아주 멋있었다. 세련된 스타일과 중국적인 고전 인테리어가 섞여서 매우 고급스러웠다.
준섭이 예약자의 이름을 대자 지배인은 홀을 거쳐 룸으로 안내했다.
“우와.”
그들이 도착한 룸은 꽤 컸다.
벽에 부착된 선반에는 청나라 시대 보물같이 생긴 항아리와 장식품들이 놓여 있었다.
룸의 한가운데에는 원형의 테이블이 설치돼 있었다.
의자들은 테이블을 빙 둘러서 놓여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젓가락과 그릇 등이 세팅돼 있었다.
얼마 후, 중국의 고위 공무원인 라이펑이 대규와 준섭이 있는 룸으로 들어왔다.
고위 공무원이라고 해서 40대 이상의 중년일 거라고 예상했는데, 의외로 라이펑은 준섭보다 약간 더 나이가 들어 보이는 느낌이었다.
대규는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라이펑을 바라보았다.
그때 공략집이 떠올랐다.
-차원의 틈 공략집-
이름: 라이펑(Rai Feng)(인간 영웅)
상태: Lv.96(53%)
특징: 민첩성이 빠르고 지능이 높아서 사리분별을 잘함. 나서서 싸우는 것보다 전략전술에 능하다.
<라이펑에 대한 공략(하급)을 습득했습니다.>
<라이펑에 대한 당신의 공격력이 10% 상승합니다.>
<라이펑은 심장을 찌르거나 목을 제거할 경우 즉사합니다.>
‘뭐라고?’
이자도 판테온의 영웅이란 말인가.
대규가 놀라고 있는 사이, 준섭이 먼저 일어나 라이펑과 악수하며 인사를 했다.
“오셨습니까, 라이펑 씨. 반갑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준섭 씨. 저도 반갑습니다.”
“이쪽은 저희 대규 식품의 사장님이신 김대규 사장님이십니다.”
그때 대규를 바라본 라이펑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그 모습을 본 준섭이 라이펑에게 물었다.
“저희 사장님을 알고 계십니까?”
“아, 아닙니다.”
라이펑은 황급히 말한 뒤 대규와 악수를 하려고 손을 내밀었다.
대규는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김대규입니다.”
그때 라이펑이 대규의 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판테온에서 유명한 김대규 영웅님을 이곳에서 보게 되다니, 영광입니다.”
대규는 악수를 나눈 뒤 라이펑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가 저 나이에 빠르게 출세할 수 있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영웅이라면 가능했다. 저쪽 세계에서 받아 온 보상을 이용하면 누구보다도 빠르게 성공할 수 있다. 바로 대규처럼 말이다.
게다가 공략집으로 보니 라이펑은 지능이 높다고 했다. 그렇다면 다른 영웅들보다도 훨씬 빠르게 성공했을 것이다.
게다가 저자는 곧 인간 한계 레벨 100 달성을 코앞에 두고 있다. 자신처럼 공략집이 있는 게 아닌데도 말이다.
저 정도면 인간 영웅 중에서는 상위급에 속한다.
만만히 봐서는 안 될 것이다.
그들이 자리에 앉아 요리가 서빙되기 시작했다.
처음엔 애피타이저로 걸쭉한 수프 같은 것이 나왔는데, 처음 보는 음식이었다.
“이건 뭡니까?”
대규가 묻자 라이펑이 친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옌워(燕窩)로 만든 수프입니다.”
옌워라면 제비의 집이었다.
대규도 제비집 수프에 관한 이야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바다제비가 지은 집을 갖고 만든 요리로, 중국 황제들이 즐겨 먹는 아침 수프였다.
몸에 좋은 효능을 지니고 있어서 청나라의 황제였던 건륭제는 매일 아침 공복에 이 제비집 수프를 먹었다고 했다. 그리고 황제 중 가장 장수했다.
‘판테온의 요리 정도의 효과는 아니지만, 엄청 효능이 뛰어난 음식인 건 확실하군.’
대규는 천천히 수프를 음미했다.
‘으, 이건 무슨 맛이지?’
미끄덩하는 감촉에 달달하면서도 요상한 향이 퍼져 나왔다. 맛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수프를 비우자 다음 요리가 서빙됐다.
투명한 얇은 회 같은 것이 접시 한가운데 딱 한 점 놓여 있고, 그 옆엔 붉은 실같이 생긴 허브가 화려하게 데코레이션을 하고 있었다.
라이펑이 설명했다.
“위츠(魚翅), 생선의 날개란 뜻으로 이건 상어의 지느러미입니다.”
샥스핀!
‘여기 와서 그 귀한 걸 먹어 보는구나.’
대규는 지느러미를 젓가락으로 집어 천천히 음미했다.
요리사로서 진귀한 식재료를 음미하면서 머릿속 깊숙이 기억해 두고 싶었다. 다 좋은 경험들이다.
샥스핀의 육질은 훌륭했다.
이윽고 본 요리들이 나왔고, 술도 주문했다. 중국에서 최고의 명주라 불린다는 마오타이주였다.
처음에 대규가 마오타이주를 주문하려고 하자, 라이펑이 말리며 자신이 주문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사실 중국에는 가짜 마오타이주가 많습니다. 심지어 이런 호텔 고급 식당에도 말입니다. 정부의 고위 공무원이 아니면 대부분 가짜를 내오죠. 그래서 중국이 가짜 천국이라는 악명을 달고 있는 겁니다.”
이 말을 하며 라이펑은 씁쓸하게 웃었다.
가짜 천국이란 말이 진짜였구나.
곧 주문한 마오타이주가 나왔고, 셋은 잔에 술을 채운 뒤 건배를 했다.
마시자마자 식도가 타들어 갈 것 같은 작열감이 들었다.
얼마 후, 그들은 본론에 들어갔다.
준섭은 라이펑을 바라보며 말했다.
“라이펑 님, 저희 대규 식품이 아니스 그룹과 협약을 맺을 수 있게 중간에서 도움을 주셨으면 합니다. 저의 이런 부탁이 염치없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만… 대규 식품의 사업이 중국에서 큰 손해를 볼 일은 절대 없을 거라 약속드립니다. 라이펑 님도 도시락의 위력을 이미 체험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니 제발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말을 마친 준섭은 고개까지 조아렸다.
하지만 라이펑은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저도 그 사정은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경제 제재 정책은 정부의 최고위층에서 내린 것입니다. 저조차도 함부로 어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대규가 물었다.
“정말 어떻게 방법이 없겠습니까?”
그 순간 라이펑의 눈에는 대규의 몸에서 발산되고 있는 은색의 빛이 보였다.
라이펑은 저절로 고개를 숙였다. 일개 인간 영웅으로서 반신반인 세미데우스의 위엄에 눌린 것이다.
“…죄송합니다. 저로서도 이게 최선입니다.”
라이펑의 깍듯한 모습을 본 준섭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상했다.
분명 라이펑이 자신과 대규의 부탁을 들어주는 입장인데, 왜 그는 저토록 대규에게 깍듯한 걸까.
흡사 주군과 부하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곧 라이펑은 대규에게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김대규 사장님, 저와 사장님은 같은 편에서 함께 싸우는 처지이니 최선을 다해 돕도록 하겠습니다. 게다가 사장님은 저희 중에서도 특별한 분이시니…….”
그는 판테온에서의 대규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물론 준섭은 저 말의 저의를 알아듣지 못했다.
‘같은 편에서 싸운다고? 둘 다 원래부터 면식이 있는 사이였나?’
라이펑은 말을 이었다.
“협약을 맺게 해 주지는 못하겠지만… 이번 경제 제재 정책을 주도한 정부의 고위층 공무원 한 명과 친분이 있습니다. 그분을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정말입니까?”
“네. 차 한잔할 수 있는 자리는 어떻게든 만들어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이후의 일은 사장님이 알아서 하셔야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감사합니다.”
대규가 이렇게 말하자 라이펑은 황송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럼 중국 정부의 최고위층 공무원인 장룽차오 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분은 한국으로 치면 거의 한 부서의 장관급 인물입니다. 혹시 내일 저녁 시간 어떠십니까?”
대규는 준섭을 바라보았다. 모든 일정은 준섭이 관리하고 있었다.
그러자 준섭이 재빨리 대답했다.
“가능합니다! 감사합니다!”
이후 세 명은 기분 좋게 술과 음식을 비웠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 독한 술인 마오타이주를 먹는데 취기가 거의 오르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벌써 뻗었을 텐데 말이다.
‘인간이 아니라 세미데우스의 육체를 갖게 돼서 주량도 늘어난 건가.’
준섭이 화장실에 가려고 자리를 비웠을 때 라이펑이 대규에게 말했다.
“판테온에서 소문이 자자한 김대규 영웅님을 이렇게 뵙다니… 영광입니다.”
“아닙니다, 라이펑 님이야말로 이렇게 젊을 줄 몰랐습니다.”
“이곳에서의 보상 덕분이지요. 인간 출신 영웅들 사이에서 대규 님은 몹시 유명합니다. 인간 출신으로 세미데우스가 된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라이펑은 어두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사실 인간 출신 영웅들 사이에서 대규 님에 대한 별의별 말과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