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
145화 중국시장 (3)
신각의 눈이 다시 번쩍 뜨였다.
“오오, 이건!”
닭고기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부드러운 육질과 강한 풍미에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신각은 대규를 보며 말했다.
“고기의 풍미가 아주 좋습니다. 닭고기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게다가 이 훌륭한 식감이라니.”
그는 다시 한번 닭고기 조각을 집어 먹은 뒤 말을 이었다.
“제가 여태껏 먹어 본 닭고기 요리 중에서 최상입니다. 이 로스팅의 식감과…….”
거창한 평론을 주절주절 늘어놓으며 그는 한 접시를 싹 비워 버렸다.
그는 대규를 보며 물었다.
“대체 이 요리의 이름은 뭡니까? 중국의 고급 레스토랑에서 먹었던 유린기에도 뒤지지 않는 맛입니다.”
그러자 대규는 씩 웃으며 말했다.
“제 탕수육 치킨 식당 탕꼬의 간판 메뉴인 크림탕꼬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평론가님께서 싫어하시는 서민 식당의 대표적인 길거리 음식 메뉴죠.”
‘뭐라고? 이 음식이?’
그 말을 들은 김신각은 갑자기 얼굴이 굳어졌다.
길거리 음식이란 걸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맛이 좋았다.
대규는 그런 신각을 보며 말을 이었다.
“저희 레스토랑 굴라의 양갈비 스테이크를 즐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제 크림탕꼬 역시 저의 음식입니다.”
“아…….”
“그리고 평론가님께서 고급 중화요리라고 말씀하신 유린기 역시 그 뜻은 ‘기름을 뿌린 닭고기’로 닭튀김의 일종입니다. 탕수육 치킨 탕꼬와 만드는 방법은 동일한 음식인 거지요.”
김신각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유린기와 탕꼬는 그 근본이 같은 음식입니다. 음식에는 조선 시대 신분 제도처럼 귀천이 없습니다. 오직 고객에게 정성을 다하는 맛있는 음식과 그렇지 않은 음식이 있을 뿐입니다.”
대규는 빈 접시를 메이터 디에게 건네며 마지막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평론가님의 혀가 그 사실을 알아 주셨으면 합니다.”
“끄응…….”
김신각은 표정이 굳어진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얼마 후 그가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으며 가만히 말했다.
“알겠소. 내가 실례했습니다. 다음번엔 당신의 다른 식당인 탕꼬도 한번 들러 봐야겠습니다.”
그 말에 대규는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그럼 잡지의 칼럼, 기대하겠습니다.”
“알겠소.”
말을 마친 신각은 가게를 나섰다.
이후 대규의 레스토랑 굴라는 잡지 ‘Moreau de roi’에 실렸다.
신각의 칼럼은 호평 일색이었다.
‘메인 요리 양갈비 스테이크는 뛰어난 양고기의 육질과 그 풍미를 아주 잘 살렸다. 간만에 미뢰 하나하나에서 황홀함의 향연이 펼쳐졌고, 간만에 나의 혀는 몹시 호강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내용이 칼럼의 말미에 적혀 있었다.
‘오너가 마지막에 내놓은 특별 메뉴도 아주 좋았다. 탕수육 치킨인 크림탕꼬였는데, 싸구려 길거리 음식이라는 편견을 깰 만큼 아주 맛있는 음식이었다. 이 잡지의 독자 여러분도 한 번쯤은 탕꼬의 크림탕꼬 탕수육 치킨을 먹어 보길 바란다. 이 김신각이 평론가의 명예를 걸고 강력하게 추천한다.’
신각의 칼럼은 화제를 모았다.
인터넷에서는 벌써 별의별 반응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깐깐징어 같은 평론가 김신각이 탕꼬를 먹었단다!
-그 인간, 다 좋은데 맨날 길거리 음식 깎아내릴 때마다 입에 깔때기 씌우고 떡볶이랑 어묵 먹이면서 고문하고 싶었는데 ㅋㅋ 탕꼬가 해냈다!
-그럼 탕꼬가 고급 음식에 전혀 뒤지지 않는 맛이라는 거네. 맛만 있는 게 아니라 가성비도 갑이었어. 명불허전 탕꼬~
-저 지금 당장 탕꼬 먹으러 갑니당. ㅎㅎㅎ
레스토랑의 호평만으로도 엄청난 마케팅 효과인데, 탕꼬까지 호평을 받아 반응은 더욱 폭발적이었다.
인터넷 반응을 보니 김신각은 본래 길거리 음식이나 서민들이 먹는 음식은 입에도 안 대는 인간으로 유명한 것 같았다.
그런 인간이 탕꼬를 먹고 극찬을 했으니 이는 실로 엄청난 반응이었다.
대규의 식당들은 날로 번창하기 시작했다.
레스토랑 사업들은 순조롭게 진행이 됐고, 대규식품은 이제 탕꼬와 신지 양꼬치, 그리고 굴라 레스토랑의 중국 진출을 앞두고 있었다.
도시락들이 중국에서 훌륭하게 자리를 잡은 상태이니 이 정도면 식당들이 진출해도 나쁘지 않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탕꼬부터 차례차례 진출할 계획을 세웠고, 중국에 사무실도 차리기로 했다.
이 일 때문에 부사장인 준섭은 중국을 왔다 갔다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대규는 그런 준섭을 위해 특별한 선물들을 준비했다.
오시리스의 고대 고사리 뿌리를 우린 물과 판테온의 콩을 갈아 만든 두유를 그에게 선물했다.
그것들은 시중에서 파는 웬만한 건강 식품들보다 효과가 훨씬 좋았다. 물론 준섭에겐 그 효과에 대해 자세히 말하진 않았다.
준섭은 고사리 우린 물과 두유를 꾸준히 먹으면서 점점 건강해졌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느라고 항상 몸이 축났는데, 그것들을 먹은 이후 그의 몸은 20대만큼 건강해졌다.
“모두 사장님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고마워하는 준섭을 보고 대규는 결심했다.
‘앞으로 명절이나 뭐, 직원들에게 감사 선물을 전해야 할 일이 생기면 이 고사리 우린 물과 두유를 나눠 줘야겠다.’
스팸이나 참치 캔, 해바라기씨 유보다 훨씬 좋은 것 같았다.
그리고 대규는 자신의 직원들이 건강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회사 일을 하면서 몸이 망가지는 직원들이 많은데, 적어도 자신의 회사 직원들이 그렇게 되는 건 막고 싶었다.
어쨌든 중국에서의 사무실 건설과 프랜차이즈 사업 진행은 순조롭게 이뤄졌다.
대규식품은 우선 탕꼬의 중국 진출을 위해 중국의 종합 유통 기업인 아니스(Anis) 그룹과 업무 협약을 맺기로 했다.
이제 두 회사는 10주 동안 교육을 진행하고 올 하반기 중국 베이징에 탕꼬 1호점을 열 계획이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중국 대륙에 탕꼬와 양꼬치, 양갈비 스테이크 등 대규식품의 음식을 본격적으로 선보일 예정이었다.
“협약을 성공적으로 맺었습니다. 이제 대륙을 점령할 일만 남았습니다.”
준섭은 대규의 사무실로 들어와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번 협약에서 마스터 지역 판권 계약을 체결할 예정입니다. 이를 통해 거점 시장인 중국 베이징을 포함해 다른 주요 지역 진출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게 될 겁니다.”
“잘됐군요.”
“예. 게다가 평론가 김신각의 칼럼 이후 굴라 레스토랑의 인지도가 높아졌지만 탕꼬 역시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음식이란 이미지가 퍼져서 더욱 인지도가 높아졌습니다. 잡지사의 취재에 응하길 정말 잘했습니다. 이 모든 게 사장님의 용기 있는 결단력 덕분입니다.”
말을 마친 준섭을 대규를 바라보았다.
대규의 얼굴엔 항상 봐왔던 자신감이 차올라 있었다.
준섭은 이제 더 이상 대규를 의심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위기는 뜻하지 않은 곳에서 터졌다.
대규는 사무실에서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고 있었다. 실시간 검색어 1위 키워드로 ‘북한의 핵실험’이 떠올라 있었다.
북한이야 항상 잊을 만하면 종종 핵실험을 주기적으로 해대면서 세계적인 이슈를 만들어 댔다. 그래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좀 달랐다.
얼마 후 새로운 뉴스가 헤드라인을 강타했다.
[미국, 핵잠수함 한국 배치 결정]
그 뉴스로 인해 한국은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핵잠수함이란 핵무기를 실은 잠수함을 통칭하는 말은 아니었다. 핵무기를 실었는지에 대한 여부는 상관없이 추진 동력이 핵에너지인 잠수함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 용도에 따라 핵무기를 탑재한 것과 탑재하지 않은 것, 그리고 순항 미사일을 보유한 것으로 구분한다.
어찌 됐든 무기를 탑재하고 있는 잠수함은 무시무시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2010년 기준으로 핵잠수함으로 보유하고 운용 중인 국가는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인도 6개국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미국이 핵잠수함을 한국에 배치하기로 전격 결정한 것이다.
미국은 대외적으론 북한의 위협적인 핵실험을 견제하기 위해서 내린 결정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 이면엔 점점 성장해 가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의도가 다분히 내포되어 있었다.
게다가 이 결정으로 우리나라 국민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으며, 사회적으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게다가 미국의 의도를 알아차린 중국의 외교부 측도 가만히 있진 않았다. 중국의 외교부는 미국의 핵잠수함 배치를 아무런 반대 없이 받아들인 한국을 곱게 보지 않았다.
심지어 다음과 같은 강경한 입장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한국은 핵잠수함을 배치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핵잠수함이 한국을 방어해 주지는 못할 것이다.’
게다가 이번 일로 중국은 한국을 대상으로 경제 제재까지 걸겠다고 했다.
얼마 후, 중국의 경제 제재로 인한 후폭풍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한류 연예인들의 방송 출연을 금지하는 금한령(禁韓令)이 내려졌고, 국내 영화들도 중국 진출이 좌절됐다. 심지어 중국인들이 그토록 좋아하던 한국 화장품의 수출량도 감소됐다.
게다가 중국 정부는 관광객들의 해외 쇼핑마저 자제하게 만들었다. 현지 쇼핑 횟수를 위반하면 벌금을 물게 한다는 법을 만들었다.
쪼잔해 보였지만 꽤 강경한 조치였다.
중국의 이러한 경제 보복은 대규식품에도 타격을 주기 시작했다.
대규식품과 협약을 맺을 계획이었던 아니스 기업은 협약을 없던 거로 하자고 준섭에게 연락해 왔다.
이런 식의 일방적 파기는 불가하다고 준섭이 말했지만, 그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정부가 제한해서 어쩔 수 없습니다. 우리가 당신과 계약을 맺게 되면 중국 공안의 눈에 들게 됩니다. 미안하지만, 우리의 입장도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실로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는 대규식품의 잘못으로 벌어진 일도 아니었다.
만약 대규식품이 실수로 실패하고 그로 인해 손해를 본 거라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이 경우는 국제 정세와 그로 인한 이슈 때문에 쫄딱 망하게 된 것이었다.
현재 중국 프랜차이즈 사업에 주력을 하고 있는 상태여서 그 손실도 어마어마했다.
준섭은 분노에 차서 자신의 사무실 책상을 주먹으로 쾅 내리쳤다.
평소에 이성을 잘 잃지 않는 그였지만 이번 상황은 너무 억울했다.
‘대기업에서 일하면서 이런 경우는 많이 봐 와서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그때는 기업의 일개 사원이었다.
막상 자신이 부사장으로 있는 이곳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자 화가 나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래도 준섭은 대규에게 보고했다.
물론 그들의 얼굴은 어두웠다.
준섭은 대규에게 말했다.
“중국 측에서 협약을 없던 거로 하자고 계속해서 연락이 옵니다. 아무래도 중국에 다시 한 번 직접 찾아가 봐서 설득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게다가 이번엔 인맥을 총동원해서 어찌어찌 중국의 고위 공무원과 저녁 약속을 잡게 됐습니다. 그때 그를 설득해 최대한 협약을 맺어 볼 작정입니다.”
그러자 대규가 말했다.
“부사장님, 저도 같이 갑시다. 사장인 저도 같이 가서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장님은 바쁘신데…….”
“저의 사업이 걸려 있는 일인데, 이쪽이 더 중요합니다. 제 것까지 비행기 표를 예약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대규는 준섭과 중국에 가기로 결심했다.
출국 이틀 전.
대규는 자신의 오피스텔에서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대체 어떻게 해야 중국인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을까.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서 먹인다고 그들의 생각이 쉽게 바뀌진 않을 것이다.
이미 협약을 맺기로 했던 아니스 그룹의 임원들은 대규식품의 음식들을 다 먹어 본 상태였다.
지금 그들의 마음을 돌리려면 맛있는 음식 말고 그 이상의 것이 필요했다.
‘흐음,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군.’
그때 머릿속에 아프로디테가 보상으로 줬던 스킬이 떠올랐다.
[꿈의 침입자-상대방의 꿈 혹은 무의식으로 침입해 그의 정신을 건드리거나 변형시킬 수 있다. 지속 시간 30분. 마나 소모 300.]
혹시 이걸 이용한다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
하지만 자신은 이 스킬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그 방법도 잘 몰랐다.
‘시험 삼아 한번 써 볼까.’
대규는 보유 스킬란에 적힌 스킬 꿈의 침입자를 발동시켰다. 그러자 곧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무의식 혹은 꿈속으로 침입할 대상을 선택하십시오. 한 번이라도 면식이 있는 대상이라면 누구든 침입할 수 있습니다.]